A musical genius who hates music RAW novel - Chapter 25
024화
“오랜만이다, 너. 무슨 일이야?”
“무슨 일이라뇨, 여기 제 사무실인데요….”
“아, 그렇구나…. 난 지현이 만나러 왔는데. 우연이네.”
세상에는 인연이라는 것과 우연이 있다. 그 인연과 우연은 10년이 지나건 몇 년이 지나건 증명을 할 방법은 없지만 존재하는구나. 김수원은 이정화를 마주하며 그것을 느꼈다.
“둘이 아는 사이였다니! 와! 너무 신기하다….”
“그러게, 난 수원이가 이런 회사에서 일하는 것도 몰랐네. 너는 무슨 일 해?”
“누나…. 밖에 간판 A & R 3팀장이라고 되어 있잖아요….”
“A & R 팀이 뭐 하는 팀인데? 근데 팀장이야? 김수원 팀장님! 얼~ 출세했는데?”
유치원 시절부터 마주했던 다섯살 많은 친구의 누나.
여덟살 많은 큰누나인 정희에게는 오히려 말을 놓을 수가 있는데, 작은누나인 정화는 어릴 때부터 그 박력에 밀려 여섯 살이었던 시절부터 존댓말을 써 왔다.
아이러니하지만 그렇게 살아 왔기에 왜 그럴까 하는 의심조차 한 적이 없었다.
“작곡이나 뭐 음원 수집해서 가수한테 제공하거나 그런 건데, 우리 회사가 작곡 전문 엔터거든요. 그래서 외부 음원 수집보다는 자체 작곡을 하는 편이에요. 저는 세 개 있는 팀 가운데 3팀의 팀장이죠.”
“나 이번에 내는 정규 앨범 프로듀서 맡아 주실 프로듀서님이셔.”
“와…. 맨날 현이랑 쌈박질만 하는 것 같더니 언제 음악을 했대? 그런 거 한 번도 못 봤는데?”
정화는 수원을 바라보며 정말 놀랐다는 듯한 말투로 말을 했다.
“응? 김수원 팀장님이 우리 정현 님이랑 친구였다고요?”
“어, 얘네 여섯 살 때부터 둘이 붙어 다녔어. 유치원 때는 엄청나게 싸웠어. 자동차 장난감 하나 갖고 온종일. 중학교, 고등학교 때도 맨날 같이 있었는데? 둘 다 친구가 없거든.”
친구가 없다는 정보는 너무 과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수원은 말릴 수도 없었다.
정화의 전신에서 뿜어져 나오는 박력은 어릴 때부터 무섭다고 생각하며 살았으니까.
“누나, 저 애 아빠예요….”
“와…. 김수원 팀장님한테 그런 비밀이 있었네…. 전혀 몰랐네요. 미리 말씀하시지. 그럼 더 잘해 드렸을 텐데.”
더 잘해 준다는 것은 대체 어떤 의미인가. 수원이 이 공간에서 제외된 것처럼 두 여자는 멈추지도 않고 대화를 이어갔다.
한동안 이어지던 두 여자의 대화는 사무실에 전화가 걸려 올 때까지 계속되었다. 음원의 복사가 완료되었다는 팀원의 전화였다.
‘이제 일을 시작할 수 있겠구나.’라고 생각하며 수원은 지현에게 말을 꺼냈다.
“지금 여기에, 우리 회사에서 만든 출시되지 않은 음원들이 전부 들어 있어요. 그런데 걸 그룹, 보이 그룹, 밴드 음원까지 전부 들어 있어서 살펴보시기엔 범위가 너무 넓을 것 같은데 괜찮으세요?”
대답한 것은 지현이 아닌 정화였다.
“점심시간이 다 됐는데 지금 이걸 볼 시간이 있어? 밥부터 먹고 하자.”
관계자도 아닌 정화가 이 장소를 이끌어 간다. 이건 아마 본능 같은 것일 거다.
정현이 정화에 대해 했던 말 중에 집안의 돌격 대장이라는 말을 한 기억이 났다. 집안 모든 일에 가장 앞에서 나서는 그런 사람.
“그래, 언니. 밥부터 먹고 하자. 밥부터 먹고 해요, 김 팀장님.”
“정혁진 선배님한테 전화해서 같이 먹자고 해 볼까요?”
수원은 용기를 내어 밥을 먹을 때 함께 동병상련의 감정을 느낄 수 있는 누군가를 원했다. 지금 이 자리에서 가능한 사람은 정혁진뿐이고.
“아뇨. 난 언니랑 김 팀장님, 이렇게 셋이서 먹을래요.”
“톱스타와 점심 식사라니 영광입니다. 하. 하. 하.”
수원은 이 정신없는 두 여자 사이에서 탈출하고 싶었지만, 자신에게는 그리고 회사에도 유지현이 갑이기에 거스를 수가 없었다.
지금 데뷔하는 신인이라면 자신이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을 텐데, 지금 눈앞에 있는 이 푼수데기가 대한민국 땅에서 가장 인기 있는 솔로 여자 가수이기 때문이다.
두 사람에게 끌려 나와 의자에 앉은 뒤 어디인가 확인을 해 보니, 태어나 처음 와 보는 샐러드 전문점이었다.
압구정동에 이런 가게도 있었구나. 샐러드라는 건 고기를 먹을 때 함께 나오는 거라고만 생각했었다.
적어도 메뉴판에 적힌 가격은 고기보다 비싼 것 같다. 이 가격이면 고기를 먹지….
“정현 님이 어렸을 때 이야기 좀 해 주세요. 팀장님.”
“야! 내가 맨날 해 줬잖아. 걔 5살 때까지 이불에 오줌 싸서 그 한약 같은 거 매일 먹었었다니까? 그거 있잖아. 어린아이들 발육 돕는 젤리 같은 거.”
“언니! 거짓말하지 마! 정현 님이 그랬을 리가 없어.”
이들은 자신들의 대화에 끼어들 여지를 전혀 주지 않았다. 수원은 적당히 맞장구만 치고 있었고, 이 그룹에서 빠져나가 사장인 정혁진과 밥을 먹는 것이 더 나을 것 같다는 상상을 했다.
평소에는 그렇게 부담스러워서 혁진이 찾을 때마다 항상 빠지고 싶은 자리였지만, 지금은 너무 간절했다.
수원에게는 오늘 이 점심시간이 너무 괴로웠다.
***
지옥 같던 점심시간이 지나가고, 지현과 함께 다시 돌아온 사무실.
점심을 먹고 식당에서 나오는 길에 정화는 수원의 전화번호와 명함을 강탈해서 가져가고 본인의 전화번호는 가르쳐 주지 않았다.
왔던 모습 그대로 소란스럽게 사라졌다. 그녀는 어렸을 때와 전혀 달라진 것이 없었다.
없었다고 생각했다.
음원 목록을 삼 분의 일 정도 확인했을 때쯤, 유지현은 돌아갔고 단 한 곡도 고르지 못했다.
이날 저녁 사무실에서 혼자 작업을 하고 있던 수원에게, 정화의 전화가 걸려 왔다.
전화를 기다렸던 것은 아니었지만 의외의 일이었다. 보통 전화번호를 받아 가거나 명함을 가져간 사람이 당일 전화를 거는 일은 별로 없으니까.
저녁에 치맥이나 먹자는 이야기에 낮에 있었던 지나고 나니, 조금은 유쾌했던 우연한 만남을 생각한 수원은 가벼운 마음으로 나갔다.
치킨집에 도착해서 주문한 뒤 의자에 앉았을 때 정화의 입으로 전해 들은 이야기는 전혀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다.
“현이가 영국에 있어.”
“뭐라고요?”
수원은 깜짝 놀라 자신도 모르게 소리쳤다.
하지만 치킨집은 워낙에 소란스러운 곳이기에 그 누구도 신경을 쓰는 사람은 없었다.
“현이가 영국에 있다고.”
“연락 왔어요? 정희 누나는 모른다고 하던데?”
“알아. 네가 언니한테 연락했던 거. 그리고 현이가 연락한 게 아니야.”
“그럼요? 누가 연락한 건데요?”
“외국인이었어. 전화해서 현이랑 무슨 관계냐고 묻더라고. 누나라고 했지. 거기까지는 알아들었는데 갑자기 말이 빨라지는 거야. 나야 영어를 못하잖아, 국내파니까. 나는 영어를 잘하지 못한다 라고 말하고 정희 언니 번호를 가르쳐 줬지.”
수원은 휴대폰을 들고 정희에게 전화를 걸려 했지만, 정화의 만류로 할 수 없었다.
“전화해도 언니는 안 가르쳐 줄 거야. 나한테도 말 안 해 주더라고. 정희 언니가 좀 우직한 면이 있어. 장녀라서. 고집도 세고.”
“그러면 어떻게 해요. 정현이 그 자식…. 힘든 일 다 끝나고 소송도 끝나서 다 좋아졌는데…. 내가, 내가 가야 해요.”
소리 없이 눈물이 맺혀갔다. 친구라면서 아픔을 같이해 주지 못한 10년 전, 그해 겨울이 가슴에 소리 없이 스쳤다.
수원은 차가워진 가슴을 끌어안으며 하지 못했던 말을 이었다.
“아직 안 끝났다고 생각해서 안 돌아오는 거잖아요. 우리들이, 주변 사람들이 자기가 힘들어하는 것보다 주변에서 더 힘들어하니까…. 그게 자기 잘못이라고….”
수원의 얼굴은 눈물과 콧물로 엉망이 되었지만, 정화는 그런 모습은 아랑곳하지 않고 맥주를 들이켜며 말을 했다.
“그건 모르겠지만, 내일 언니가 협연하러 영국에 나간다고 하더라. 보통 공연을 하거나 독주회, 협연할 때는 보통 한두 달 전에 스케줄이 나오거든? 근데 갑자기 그 말을 하더라고. 뭔가 있어.”
그 순간 수원의 눈이 반짝였다.
***
다음 날 오전 JHJ 토탈 뮤직 사장실.
“저, 휴가 가려고 합니다.”
“휴가? 지금 유지현 앨범 작업하고 있는 거 아니었어?”
“다녀와서 할게요. 일주일이면 됩니다.”
정혁진이 머리를 감싸며 괴로운 듯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대체 무슨 일이야? 꼭 지금이어야 돼? 언제는 휴가를 준다고 해도 일하겠다며 회사에 나오더니, 휴가는커녕 쉬는 시간도 아껴야 하는 타이밍에 휴가를 가겠다고?”
“작업에 필요해서 요청한 겁니다. 재충전이 필요해요. 소재가 고갈된 느낌이에요.”
수원은 입에서 나오는 대로 마구, 그리고 단호하게 던졌다.
한 집안의 가장이기에 사장이 가지 못하게 한다면 어쩔 수는 없었지만, 자신이 알고 있는 혁진이라면 보내줄 것이라 믿으며.
“난 모르겠다. 지현이한테 설명은 네가 직접 해라. 작업 한 주 늦어진다고 욕먹지 말고, 알았지? 체리 엔터 사장은 내가 일단은 대충 막아 볼게.”
“이해해 주셔서 고마워요. 선배님.”
회사에 출근함과 동시에 휴가를 간다며 퇴근을 했다. 본인이 생각해도 어이가 없었지만 그래도 해야만 하는 느낌이었다.
김수원은 유부남이다. 그 말은 자신의 시간을 가족을 위해 써야 하는 부분도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제 겨우 돌이 지난 딸과 결혼한 지 3년밖에 되지 않은 부인이 있었다.
“출장 갔다 올게. 일주일 걸릴 거야. 해외로 가서 전화 못 할 수도 있으니까 너무 서운해하지 말고, 알았지?”
수원은 자신의 딸인 지유를 안고 자신을 배웅하는 부인의 이마에 가벼운 입맞춤을 하며 말을 했다. 흥분한 내색을 하지 않으려 엄청나게 노력했다.
출근하자마자 집으로 돌아와 짐을 싸며 회사에서 갑자기 결정된 출장이라 말하는 남편의 말은, 의심할 구석이 전혀 없었다. 그는 지금까지 충실한 남편이자 아빠였으니 말이다.
부인이 자신의 말을 철석같이 믿는 모습을 보며 수원은 약간의 죄악감이 밀려왔지만, 지난 10년 동안 자신에게 연락하지 않았던 친구를 향한 밀려드는 분노와는 비할 바가 못 되었다.
지금 자신에게 가장 소중한 가족의 존재를 뒤로하고서라도, 기억도 나지 않을 어렸을 때부터 외동아들이었던 자신에게 형제가 되어 주었던 정현을 찾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공항에 도착해 있었다. 역시 도착해 있던 정화와 함께 영국행 직항 티켓을 들고 항공사 게이트에서 티케팅한 뒤 출국장으로 향했다.
“참 신기하네. 너 연락처도 몰라서 연락도 못하고 지냈었는데, 이렇게 영국을 같이 가고.”
“그러게요. 늘 영국에 가 보고 싶었지만, 이런 식으로 가게 될 줄은 몰랐네요.”
“그래? 난 언니 공연할 때 한두 번 가 본 게 전부야. 너도 알다시피 내가 영어가 안 되잖니. 엄마나 언니는 영어 잘하던데. 원래는 지현이 데려가려고 했었거든. 걔 현이 좋아하니까.”
“뭐라고요?!”
뭔가 들어서는 안 될 것을 들어 버린 느낌이었다. 수원은 커다래진 눈으로 정화를 바라보았다.
“지현이가 현이 좋아한다고. 그런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지 마. 남자 여자 이렇게 좋아하는 거 말고. 음…. 존경? 동경? 그런 느낌이야.”
“제발…. 제가 작업하고 있을 때는 스캔들 같은 거 안 나겠죠?”
“지현이 고 계집애 엄청나게 독해. 휴대폰 벨 소리도 현이 거고 바탕 화면도 잠금 풀면 현이 어릴 때 사진인데, 어디 가서 현이에 대한 말 한마디도 안 하는 거 봐. 아무도 몰라. 우리가 떠들고 다녀도 아무도 안 믿을 거야. 자기가 피해 보는 건 생각도 안 해. 언론 때문에 우리 현이가 또 상처받을까 봐 숨기는 거지. 그런 애야.”
정화의 믿을 수 없는 정보들은 비행기 탑승 시간이 되도록 멈출 줄을 몰랐다.
어느덧 비행기 탑승 시간이 되어 수속을 마치고 비행기에 올라가 자리에 앉았다.
12시간이 지나면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수원은 두근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기가 어려웠다.
삥!
안전 벨트 사인이 점등하며 안내 방송이 나온다. 안전 벨트의 버클을 채우며 창밖을 내다보고 있을 때쯤, 승무원의 안전장비 착용 방법에 대한 안내가 끝났고, 비행기가 천천히 뒤로 움직이며 이륙을 하기 위해 터미널을 빠져나갔다.
혼자 남겨졌던 그해 겨울은 너무 추웠었다. 하지만 올해 겨울은 춥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작은 희망을 수원의 가슴에 품을 때쯤, 비행기가 활주로를 날아올랐다.
음악이 싫은 음악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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