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musical genius who hates music RAW novel - Chapter 26
025화
“What is your purpose for here? (이곳에 방문하신 목적이 무엇입니까?)”
“음…. 아이 캐임 히어 포 트립. (나는 이곳에 여행하러 왔습니다.)”
“I see, How long will you stay in U.K.? (그렇군요, 영국에 머무르는 기간은 어떻게 되나요?)”
“음…. 메이비 어 위크. (아마도 1주일 정도예요.)”
“Welcome to London. Enjoy your trip. (런던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즐거운 여행 되세요.)”
해외 여행에서 가장 힘든 것이 출입국 관리 사무소라는 이야기를 들어 본 적이 있었기에, 생각보다 긴장을 많이 했었다.
심하면 돌아가는 비행편의 티켓도 확인하고, 마약 운반자가 많아서 옷을 벗겨 놓고 엑스레이를 찍는다는 이야기도 들었었다.
정작 히스로 공항에서 만난 출입국 관리소의 직원은 별다른 질문 없이 수원을 통과시켜 주었다.
“후우….”
긴장이 풀리자 자신도 모르게 한숨이 나왔다. 등줄기에서 흐르는 식은땀은 겨울이라 그런지 더 차갑게 느껴졌지만, 서울처럼 미친 듯한 칼바람이 불어오지는 않았다.
두 사람이 런던의 히스로 공항에 도착한 것은 오후 6시 50분. 출입국 사무소에서 나와 공항 출구 방향으로 빠져나온 것은 저녁 7시 20분이었다.
커다란 여행용 가방을 갖고 영국에 온 것이 아니라서 짐을 기다릴 필요는 없었기에, 곧바로 공항 밖으로 나가는 길로 향했다.
“정희 누나한테 전화해 봐야 하는 거 아니에요?”
“야, 너! 해외 나와본 거 처음이지?”
“아니, 엄마랑은 나와봤는데….”
이럴 때는 쓸데없이 예리하다. 수원이 여권을 만든 것이 어언 5년 전.
학교를 졸업하면서 ‘작곡가가 되면 해외에 자주 나가야 한다더라’ 라는 이야기를 듣고 10년짜리 여권을 만들어 두었었다.
하지만 지난 5년간 단 한 번도 혼자 해외에 나오지는 못했지.
중‧고등학생 때 해외에 자주 다녔던 엄마, 윤주란에게 이끌려 자신은 항상 따라다니기만 했을 뿐이다.
지금 정화에게 이끌려 돌아다니는 것처럼 해외에서의 주체는 언제나 자신이 아니었다. 신혼여행도 제주도로 갔었으니까.
새끼 작곡가에게는 그저 단순한 볼륨 조절이나 밸런스 조절 이상의 일은 많이 주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사무실을 벗어나는 일은 없었다.
가끔 자신이 생각해도 괜찮은 멜로디가 나와도 그걸 가지고 지지고 볶는 스킬들은 선배들이 더 뛰어났기 때문에, 단독으로 작곡가에 이름을 올렸던 일은 막내 생활을 한 지 2년이 지나고 난 다음이었다.
해외의 유명 레코딩 스튜디오를 사용했던 경험담을 말하는 선배들의 ‘어디에 있는 스튜디오가 그렇게 좋더라’라는 케케묵은 라떼들.
이제는 한국에서도 레코딩 모듈들을 모두 구할 수 있는 세상이 되어서, 더 좋은 환경을 위해 해외로 나가 녹음을 하는 일은 없다고 봐도 됐다.
“여기 이 자판기에서 핸드폰 유심칩을 팔아. 이거 사서 껴.”
수원과 정화는 공항의 출구 옆에 있는 자동판매기에서 가장 싼 20파운드짜리 휴대폰 유심을 구매해 갈아 꼈다.
“이러면 한국에서 오는 전화 못 받는 거 아니에요?”
“로밍해서 전화 받으면 그거 다 네 전화로 청구된다. 나중에 수백만 원 나와.”
“헐….”
수원은 처음 들어 보는 정보에 귀를 열어 경청했다. 공항 출구 옆 벤치에 앉아 유심칩을 갈아끼는 경험은 어딘지 모르게 신선한 느낌이었다.
개통을 위해 주민 등록 번호 문의 같은 것도 없던데, ‘얘네는 대포폰 이런 개념 자체가 없겠구나’ 하는 딱 한국적인 생각을 하고 있을 때쯤 휴대폰으로 문자가 날아왔다.
[휴대폰 사용 승인이 되었습니다. 남아 있는 통화 50분. 데이터 2GB]전화를 개통했던 것이 너무 오래되어 놔서, 지금은 한국도 이럴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잘은 모르겠지만.
“다 됐으면 가자.”
정화가 일어나며 말을 했다.
“어딜 가요?”
“저녁 식사 시간인데 밥 먹으러 가야지.”
수원은 어이가 없었지만 따르는 수밖에 없었다. 자신은 경험자가 아니었고, 정화는 경험자였기 때문이다.
이런 단순한 논리로 자신의 주장을 할 수 없다는 게 어이가 없었지만.
둘은 영국의 명물이라는 검은색 택시-블랙캡을 타고 이동했다. 수원은 어디로 가는 건지 전혀 알 수 없었지만, 지금 이 무리를 이끄는 사람은 정화였기에 따라야만 했다.
수원과 정화가 내린 곳은 한글 간판이 가득한 거리였다.
“아니 뭐야, 영국인데 한글 간판이 있네?”
“여기 한인 타운이야.”
정화는 그것도 몰랐냐는 듯이 말을 했지만, 그 말이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그저 해외에서 한글을 볼 수 있다는 게 신기했을 뿐.
“저기 식당으로 가자.”
자신의 상상 속에서 첫 끼를 스테이크로 먹고 두 번째는 패스트푸드, 세 번째는 룸서비스 같은 코스로 지정이 되어 있었지만, 런던에서의 첫 끼는 뚝배기 불고기가 되었다.
밥을 거의 다 먹었을 무렵, 수원은 정화에게 다시 물었다.
“정희 누나한테 연락해야 하는 거 아니에요?”
“기다려.”
살짝 답답해지기 시작했다. 해외에 처음 나와서 관광지에 돌아다니는 것도 아니고, 한국인 사장님이 운영하는 한국인 식당에서 밥 다 먹고 후식으로 한국 사이다를 마시며, 한국 예능이 나오는 TV를 보며 자리에 앉아 있다는 것이 어딘지 이상했다.
딸랑딸랑.
“야! 이정화, 너!”
이래도 되는 건가 하는 생각으로 머릿속이 혼란스러워질 때쯤, 식당으로 이정희가 들어왔다.
“어~ 왔어?”
“어~ 왔어가 아니지, 어 왔어가! 너 대체 무슨 생각으로 여길 와!”
“만났으면 됐지, 뭐.”
흥분해서 마구 쏘아대는 정희에 대비하여 정화는 느긋함 그 자체였다.
“누나…. 아, 안녕.”
“아, 수원이 너 오랜만이다? 암튼 이정화 이거 대책 없는 건 알아줘야 해. 영어 한마디도 못하는 게 대체 무슨 생각으로 여기를 와.”
‘그러고 보니 정화 누나는 영어를 못하는데 출입국 사무소는 어떻게 넘어왔을까?’
라는 생각을 할 때쯤, 자리에서 일어나는 정화를 따라 수원도 자연스럽게 따라 일어났다.
“어디 호텔이야? 가자.”
흥분한 정희의 말과 주변을 모두 무시하고 자신이 하고자 하는 대로 밀고 나가는 추진력. 역시 굉장한 사람이라는 것을 새삼 느낄 수 있었다.
“진짜 정현이한테 연락 온 거야, 누나?”
수원이 가게 밖으로 나와 우버를 부른 정희의 옆에 서서 묻자 정희는 퉁명스러운 말투로 대답했다.
“아직 몰라.”
“내가 말했잖아, 말을 안 해 준다니까. 엄마도 그렇고 언니도 그렇고. 오죽 답답했으면 영어 한마디도 못하는 내가 여길 오자 그랬겠어.”
정희의 답변에 불만이 가득한 말투로 말을 하는 정화.
“엄마는 나한테도 안 해 줘.”
둘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려니 정현은 어머니에게 정기적으로 연락을 하는 것 같았다.
“아주머니는 아세요?”
정희와 정화, 두 자매는 고개를 돌려 수원을 바라보며 말했다.
“너 진짜 아무것도 모르는구나?”
어딘지 장난스러운 정화의 말.
“우리 엄마뿐만이 아니라 너희 엄마한테도 전화해, 걔. 엄마는 정기적으로 만나고 있고.”
정확히 정보만을 알려 주는 정희의 말에 수원은 충격을 받았다. 정현의 어머니는 그렇다 치고, 자신의 엄마도 알고 있었다는 것은 오늘 처음 알았기 때문이다.
이런저런 생각들로 머릿속이 복잡해질 무렵, 우버가 도착해서 셋은 차에 오를 수 있었다.
차에 올라타기 전부터 시작된 자매의 말싸움에, 끼어들 수가 없어 창밖을 내다보며 수원이 잡생각들을 하고 있을 무렵 정희가 말을 꺼냈다.
“내가 정화 너한테 말을 안 했던 이유가 이런 것 때문이야. 조심스럽게 말을 해서 가자고 부추겨야지, 너는 그냥 끌고 가려는 거잖아. 걔가 죄지었니?”
“10년이면 들어올 때 됐어. 걔 언니 동생만 되는 거 아니야. 나도 참을 만큼 참았고. 언제까지 엄마가 보여 주는 사진만 보면서 맨날 보고 싶어 해야 해? 내 동생인데.”
“에휴…. 말을 말자. 암튼, 엄마가 가끔 사진만 보여 주고 어디에 있는지 말을 해 주지 않았었는데 이제야 위치를 알게 됐어. 그래서 온 거야. 데려가려고.”
정희는 언제나 그래왔듯이 조심스럽게 자신이 왜 혼자 오려 했는지 수원에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구구절절 옳아 보이는 소리였지만 정화는 중간중간 ‘어련하시겠어’라는 투의 말로 비꼬았다. 이런 것이 반복되자, 정희는 입을 닫았고 목적지에 도착할 때까지 차 안은 적막함이 흘렀다.
도착한 곳은 한인 타운에서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펍과 숙박 시설로 구성된 4층짜리 영국식 작은 전통 호텔이었다.
“일단 오늘은 여기에서 자고, 내일 점심에 기차를 타러 가야 하니까 일찍 일어나. 알았지?”
“런던에 있는 거 아니었어요?”
수원은 물었다.
“난 영국이라 그랬지, 런던이라고 한 적은 없는데?”
계단을 올라가며 정화가 말을 했고 수원은 접수대에서 숙박 접수를 했다.
그렇게 런던에서의 첫날 밤이 지나가고 있었다.
***
1주일의 휴가에서 하루가 지났다. 수원은 처음에 도착했을 때는 느끼지 못했지만, 막상 느끼게 된 시차는 적응하기 어려웠다.
아침 일찍 일어나라고 했던 정희의 말처럼 자신도 모르게 일찍 눈이 뜨였지만, 정작 이 씨 자매는 연락을 받지 않았다.
수원이 머물렀던 호텔은 조식을 제공하는 5성 호텔 같은 그런 으리으리한 곳은 아니었다.
말이 호텔이지 한국의 모텔 같은 분위기에, 1층에 식당같이 생긴 펍이 붙어 있을 뿐이었다.
수원은 1층에 있는 펍에서 돈을 주고 토스트와 커피를 마시며 연락이 오기를 기다렸다.
휴대폰을 보며 얼마나 기다렸을까? 자신의 루틴이라고 할 수 있는 정현의 웹사이트 확인과 이메일들을 확인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 정희가 내려왔다. 10시가 다 되어 갈 무렵이었다.
“아침은 먹었니?”
일찍 일어나라고 했던 사람이 여유를 부리며 10시에 내려오는 모습을 보자 이상한 느낌이 들었지만, 수원은 그럴 수도 있다는 생각에 대수롭지 않게 넘기며 대답을 했다.
“그냥 토스트. 누나는 뭐 먹을 거야?”
“아니, 생각 없어. 그냥 정화 내려올 때까지 기다려야 하니까.”
정희는 생각 없다는 말과는 달리 베이컨 에그와 커피를 주문하더니, 조금은 무기력한 모습으로 말을 했다.
“정화가 제일 서운해했어. 현이 없어졌을 때.”
조금은 뜬금없는 말이었다. 자신이 생각할 때는 항상 강해 보이기만 했던 사람이었으니까.
“정화는 다른 사람이 볼 때는 엄청나게 드세고, 자기 하고 싶은 대로 다 하면서 산다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그렇지는 않아.”
점원이 주문했던 베이컨 에그와 커피를 가져다주자 정희는 가볍게 감사 인사를 하고 먹기 시작했다.
말을 모호한 곳에서 끊었기에 그다음에 나올 말들이 궁금했지만, 물어볼 수는 없었다.
정희가 접시를 비우고 머그잔에 담긴 커피를 반쯤 마셨을 무렵 말을 이었다.
“아빠 돌아가시고 항상 동생이라고 생각하던 현이가 갑자기 자기가 돈을 벌어 오겠다며 자기만 믿으라고 했을 때, 정화가 엄청 힘들어했었어. 그때 고3 올라갈 때였었거든.”
수원은 자신이 몰랐던 이야기를 들으며 숨을 죽였다. 자신이 정현과 아무리 친하다고는 해도 자세한 사정을 모두 알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대학교에 합격해도 등록금이 없어서 갈 수 있냐 없냐 이런 이야기가 집에서 나오니까, 혼자서 몰래 울고 그랬어. 겉으로는 강한 척해도 엄청 애가 여려. 겁도 많아서 유학도 포기했고.”
기분이 묘했다. 자신이 알던 사람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듣는 것만 같았다.
창밖으로 보이는 이국적인 거리의 풍경 위로 차가운 겨울비가 내리고 있었다.
음악이 싫은 음악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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