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musical genius who hates music RAW novel - Chapter 28
027화
펍 앞에 놓인 의자에 앉아 바텐더와 이야기를 하는 정현은 너무나 즐거워 보였다. 한국에서 보던 괴로운 표정이나 권태가 사라진 너무나도 해맑게 웃는 얼굴이었다.
수원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10년 동안 참을 수 없던 그리움을 쏟아내는 기분이었다. 자신의 앞에 서 있는 두 명의 누나들도 울고 있었고, 이 자리에서 울고 있지 않은 것은 크리스뿐이었다.
눈가의 흐르는 눈물을 닦고 정현에게 다가가려는 순간, 정현이 바텐더와 함께 크게 웃었다. 그리고는 가게의 한 귀퉁이에 있는 업라이트 피아노를 향해 걸어갔다.
마치 늘 있는 일이라는 듯한 가벼운 몸놀림으로 피아노 앞에 놓인 의자에 앉았다.
바텐더가 오디오의 전원을 내리자, 스피커에서 흐르던 음악은 더는 들리지 않았다.
정희와 정화 그리고 수원은 악기라는 것을 볼 때마다 혐오감에 가득 차 있던 정현의 얼굴을 아직도 생생히 기억했다.
하지만 이곳에서의 정현은 아무런 거리낌 없이 업라이트 피아노 앞에 앉아, 건반에 덮인 덮개를 열고 몇 번 건반을 눌러 본 뒤 외쳤다.
“좋아, 다 됐어! 모두의 것이 되어 버린 에릭의 엉덩이를 위하여!”
크게 외치는 정현. 그리고 환호하는 사람들.
크리스는 그 소리를 듣고 일행에게 말해 주었다.
“다 됐나 봐요! 제목이 나왔어요!”
정현이 제대로 소리가 날 것 같지도 않은, 낡아빠진 피아노를 사용해 연주하는 멜로디는 너무나도 흥겹게 만들었다.
정현의 모습을 보면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어깨를 흔들고 있던 일행은, 그 어떤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아무런 가사도 없었지만, 그 자체만으로 하나의 완성된 음악이었다.
사람의 온몸을 감싸는 신나는 멜로디가 시작되었다.
조금씩 빨라졌다가 느려지기를 반복하는 스윙 특유의 리듬감이, 사람들의 몸을 앞뒤로, 양옆으로 흔들기 시작한다.
이어지는 가벼운 허밍.
그 뒤를 따라오는 너무나도 사랑스러운 멜로디와 가끔 보여 주는 익살스러운 표정.
그리고 정현의 움직임에 따라 펍 안에서 들려 오는 환호들. 이 펍 안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이 지금껏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던 음악으로 물들어갔다. 수원과 두 명의 누나들까지도.
흥겨운 음악을 만들어 내던 정현이 다시 한번 무어라 큰소리로 외치자, 바 안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깔깔대며 웃었고 정현은 연주만 하는 것이 아니라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본 적 없는 행복한 모습으로.
“리는 프레스턴의 슈퍼스타라고요!”
활짝 웃으며 정현을 바라보는 크리스의 눈에서 꿀이 떨어지고 있었다.
***
“그래서 말이야, 에릭이 그 뒤에 있는 못에 바지가 찢어져서 속옷만 입고 가야 했다니까. 크크크.”
잔에 가득 담긴 맥주를 받아 들이켜며 두꺼운 바에 양팔을 기댄 채로, 바텐더인 로스에게 오늘 있었던 웃겼던 일을 말한다.
로스는 그 이야기를 받아 특유의 시크한 말투로 대꾸했다.
“속옷이라도 입고 있었던 게 어디야. 엉덩이에 못이 걸렸어 봐. 지금쯤 유치장 단골손님 콘라드랑 같이 누워 있을걸?”
딸랑딸랑.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에릭 클랩튼의 노래가, 문이 열릴 때 들리는 차임벨 소리와 겹쳐져 불협화음이 되어 조금 거슬렸다.
하지만 불편할 정도는 아니었다. 동네 펍에서 맥주를 마시는 사람이 자신만 있는 것은 아니니까.
정현은 맥주를 한 모금 더 마시며 말을 이었다.
“그래도 착한 애야.”
로스는 씻어낸 잔을 마른 헝겊으로 닦으며 코웃음을 섞어 정현을 쳐다보지도 않고 대답했다.
“그런 착한 애를 괴롭히는 네가 나쁜 놈이지. 다음번엔 리, 네 바지가 못에 걸려야 해. 착한 에릭이 아니라.”
“크크크. 일하러 갈 때마다 여벌을 가지고 가야겠는데?”
로스는 잔을 닦기 위해 헝겊을 든 오른손의 엄지손가락으로, 가게 한편에 있는 업라이트 피아노를 가리키며 말했다.
“리, 잘못 박힌 못에 희생된 에릭의 바지를 위해서 추모곡이라도 한 곡 해 주는 건 어때?”
“하하, 바지를 위한 추모라고?”
“네가 노래를 불러 추모를 해 주면, 벗겨졌던 에릭의 엉덩이가 조금은 덜 부끄러워질 테니 말이야.”
정현은 씨익 하고 웃으며 말을 하는 바텐더 로스의 부추김에,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잔을 들고 일어나 늘 그렇듯이 피아노로 향했다.
피아노의 앞에 놓인 의자에 앉아 피아노의 덮개를 열어 잠시 머릿속에 낮에 있었던 일들을 떠올리며, 눈을 감고 건반을 눌렀다.
따다다란~
에릭의 놀란 얼굴, 그리고 바지에 못이 걸려 찢기는 모습까지도 눈앞에 선하게 떠올랐다. 크게 뜬 눈, 까만색 곱슬머리. 바지가 찢어지며 그의 갈색 피부가 드러나는 그 순간을 표현하고 싶다.
정현의 머릿속에서 연주가 시작되었다. 그 모습 그대로 피아노의 선율이 들려 온다. 오늘 그가 느꼈던 유쾌한 감정들이 덩어리로 뭉치며 하나의 음악을 만들어 주었다.
“좋아, 다 됐어! 모두의 것이 되어 버린 에릭의 엉덩이를 위하여!”
“위하여!”
펍 안에 있는 사람들이 잔을 들어 환호하자 정현은 연주를 시작했고, 로스는 오디오의 전원을 내렸다.
사람들은 대화를 멈추고 정현을 바라보았다.
정현이 낡은 업라이트 피아노의 건반을 어루만질 때마다, 감미로운 멜로디가 만들어졌다.
“자, 모두 잘 들어 두라고, 바로 이 음악이 에릭의 사랑스러운 엉덩이를 위한 곡이니까 말이야!”
정현의 말과는 다르게 연주되는 곡은 너무나 감미로웠다.
감미롭게 전개되던 음악이 갑자기 활기찬 음악으로 바뀌며 정현은 입을 열었다.
“사랑스러운 너에게 내가 해 주고 싶은 말이 있어.”
딴딴~ 따단~
짧고 강렬한 하이라이트로 강조를 해 준다.
손가락이 건반 위를 달려가며 만들어 내는, 고백하러 가는 일곱 살배기 어린아이처럼 활기찬 멜로디.
정현은 구석에 앉아 주스를 마시는 에릭에게 시선을 주면서 노래를 이어 갔다.
“알지? 내가 널 사랑하고 있다는 걸 말이야. 너 말이야 너~ 사랑스러운 에릭의 토실한 엉덩이~”
딴딴~ 따단~
격해지는 감정을 담아내며 감정의 깊이를 더한다.
잠깐 흘러가는 부드러운 멜로디를 만들어 내자, 피아노의 뒤편에 앉아 있던 에릭이 멜로디를 따라 리듬을 타며 외친다.
“몰랐는데요! 바지라도 사 주지 그랬어요?”
에릭이 깔깔대며 노래를 따라 부르자, 펍 안의 사람들은 모두 함께 웃었다.
사람들이 웃기 시작하자, 정현은 본격적으로 노래를 하기 시작했다.
끝없이 이어지는 멜로디와 노래들.
머릿속에서 들려 오는 그 황홀한 멜로디를 손가락으로 표현해 본다.
손가락으로 그려지는 멜로디가 피아노를 타고 빠져나와, 빨라지는 박자와 버무려진 노랫말이 흐르며 사람들의 어깨를 춤추게 했다.
이곳의 중심에 서 있는 가장 아름다운 악기는 바로 정현의 목소리였고, 그의 손가락에서 흘러나오는 멜로디였다.
물론 노래의 가사는 붙여진 제목만큼이나 장난기가 가득 담겨 있었다.
하지만 정현의 입에서 흘러나온 그 가사는 장난기가 담긴 사랑스러움으로, 모두의 가슴을 파고들었다.
한 잔의 맥주와 잠시간의 연주 그리고 노래. 사람들과 함께 하루의 일과를 마친 뒤, 펍에서 마무리하는 최고의 행사였다.
“감사합니다, 신사 숙녀 여러분!”
노래가 끝나고 정현은 자리에서 일어나 중세 시대의 누군가처럼, 오른손을 가슴 앞에 두고 사람들을 향해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
“리!”
“한 곡 더!”
한두 명의 사람들이 앙코르를 외치기 시작하자, 펍 안의 모든 사람이 앙코르를 외쳤다.
정현은 그들을 바라보면서 손가락을 세우곤 한쪽 입술을 올려 씨익 웃으며 대답했다.
“No, No, No. It is time for sleep to Good Kids, Guys. You know, A Song a Day! (안 돼, 이제 착한 아이는 집에 가서 잘 시간이라고. 알고 있지? 하루에 한 곡이라는 거!)”
공연이 끝났음에도 환호를 멈추지 않는 사람들에게 한마디 해 준 뒤, 맥주가 반 정도 사라진 잔을 손에 들어 다시 바텐더를 향해 걸어가는 그 순간.
탁. 탁. 탁. 탁.
누군가의 구두가 펍의 타일 바닥을 빠르게 때리는 소리가 들려 왔다.
먼 곳에서부터 가까운 곳으로.
정현은 자신도 모르게 소리가 나는 방향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고개를 돌려 얼굴을 마주하기도 전에, 달려왔던 누군가가 정현을 와락 껴안았다. 들고 있던 컵에서 맥주가 소용돌이치며 바닥으로 조금 쏟아졌다.
떨리는 손의 주인은 작게 소리 내어 울고 있었다.
“뭐야, 리! 너, 여자친구 있었어?”
당황한 정현을 향해 로스가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을 남기곤 멀어져간다.
“여행이라고 했잖아…. 왜 여행을 가서 돌아오질 않는 거야, 이 나쁜 놈아….”
울음 섞인 목소리로 들리는 한국어. 한 달에 한두 번 어머니에게 전화할 때가 아니면 들을 수가 없던 한국어였다. 그리운 목소리였다.
“누나…?”
정현은 당황해서 뒤로 빼고 있던 손을 앞으로 둘러, 자신이 낼 수 있는 가장 강한 힘으로 작은누나를 껴안았다.
“누나!”
항상 정현이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고 함께 힘들어했던 가족들. 자신을 만나게 되면 또다시 힘들어하게 될까 봐 보고 싶어도 찾아갈 수 없었던 가족.
연락하고 싶어도 자신으로 인해 다시 힘들어할까 두려워서 연락조차 못했던 누나를 만나자, 자신도 모르는 눈물이 눈에서 터져 나왔다.
“오늘 공연도 멋있었어요, 리!”
크리스가 다가와 활짝 웃으며 말했다. 정현은 밝게 웃으며 대답했다. 눈에 눈물이 가득 고여 당장이라도 떨어질 것 같았다.
하지만 그녀의 옆에 정희가 있는 것을 보고 크리스가 자신의 누나를 데려와 주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고마워, 크리스. 내 첫 번째 팬! 어쩌면 오늘이 내 생일인가 봐! 네가 생일 선물을 주는 걸 보니 말이야!”
눈에서 눈물은 흐르고 있었지만, 오늘은 최고의 날이었다.
***
“한국으로 가자, 응?”
“내가 거기에 가서 뭐 먹고 살아. 여기가 내 집이야.”
“누나가 현이! 너! 먹여 살릴 거야! 먹여 살릴 수 있어! 이 누나가, 그만한 능력은 있는 사람이야!”
“먹고 산다는 게 진짜 먹고사는 것만 말하는 게 아니잖아.”
술에 취해 한 시간째 반복되고 있는 실랑이를 벌이는 두 사람은, 이제 다른 사람들은 전혀 신경조차 쓰지 않고 있었다.
조용히 맥주와 안주를 먹고 있던 그녀는, 맥주가 떨어져 요리용으로 쓰려고 사다 놓았던 와인 병의 코르크 마개를 뽑음과 동시에 정신을 놓아버렸다.
“정화야 왜 그래, 너 취했어?”
정희는 걱정이 된다는 듯한 말투로 말을 했다.
“현이 데려가야 해…. 이제는 내가 행복하게 만들어 줘야 하는 차례란 말이야….”
정현이 집을 떠나온 지 10년. 간간이 찾아오는 어머니와 연락하며 지낸 것은, 혹시나 실종 신고라도 할까 하는 마음과 자신을 걱정할 것 같다는 마음이 반반이었다.
어머니인 김지숙은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정현이 하려는 것을 반대하지 않을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누나들과 연락하지 않았던 것은, 지금처럼 자신을 걱정할 것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낳아준 어머니보다 더 애틋해하는 것이 자신의 누나들이었으니까.
“여기가 내 집이야, 누나. 나 이 지역에서 한 명밖에 없는 제대로 된 목수고, 나 하나만 보면서 배우고 있는 열여덟살짜리 꼬맹이도 있어.”
정현은 자신에게 일을 배우고 있는 에릭이 떠올라, 잠시 맥주로 목을 축이고 말을 이었다.
“내가 다시 돌아가는 일은 없을 거야. 그 꼬맹이 내 밑에서 5년은 더 배워야 해.”
접시에 풀어 놓은 나초에 살사 소스를 찍어 입으로 가져갔다. 싸구려 소스지만 그럭저럭 매콤한 맛이 느껴졌다.
“좋아. 그럼 나도 안 가. 현이랑 같이 살 거야!”
쿵.
이 말을 마지막으로 정화는 테이블에 머리를 떨궜다. 정화가 술에 취해 진상 부리는 모습을 처음 본 크리스는 생각보다는 즐거워하는 듯 미소를 보였다.
보통 이곳의 펍에서 진상을 부리면 펍의 가드가 일단 때리고, 경찰이 와서 곤봉으로 때린 다음 데려가니까.
아마 이 지역에서는 주정뱅이 콘라드가 가장 많이 맞아 본 사람일 거다. 살아 있는 사람 중에서는.
정화는 쓰러진 뒤, 정희와 수원의 손에 들려 방으로 이동했다. 정화를 침대에 눕혔는지 정현에게 자러 간다며 둘 역시 방으로 들어갔다.
아직 깨어 있던 정현과 크리스는 자리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엉망진창으로 어질러진 것은 자다가 일어났을 때, 더 치우기 귀찮아진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고마워, 도와줘서.”
가볍게 말했다. 도와줘서 고맙다고. 다른 진지한 말들은 낯간지러워서 하기가 불편했다.
“미안해, 리. 나 때문에 귀찮아진 것 아니야?”
“귀찮을 게 뭐가 있어. 가족인데. 미안해할 필요 없어.”
테이블을 닦으며 웃어 보이는 크리스.
정현은 쓰레기들을 봉투에 담아 집 앞 현관 밖에 놓인 양철 쓰레기통에 넣고 다시 집으로 들어왔다.
쓰레기를 버리기 위해 잠깐 문을 열고 나갔다 왔음에도 겨울의 한기가 느껴졌다.
현관을 닫으며 거실 쪽으로 들어가자 외투를 챙기는 크리스가 보였다.
“나, 난 가 봐야 할 것 같아. 밤도 늦었고….”
이 동네는 술집도 9시에 닫는 시골이다. 지금 길거리를 돌아다니는 건, 동네에서 불량한 양아치들 말고는 찾아볼 수 없을 거다.
게다가 그녀가 사는 곳은 여기에서 대략 3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상가의 2층에 있다. 양아치들의 소굴과 굉장히 가까운 곳이다.
지금 이대로 보내면 아마 백 퍼센트의 확률로 그 녀석들의 질 나쁜 장난질에 당하게 될 거다.
“그러지 말고 자고 가. 위험하잖아.”
크리스는 자고 가라는 말에 조금 당황했는지 눈동자가 흔들렸다. 고개를 숙이더니 잠시 뒤에는 얼굴이 빨갛게 변했다.
“아, 아냐. 괜찮을 거야. 나 여기에서 태어났는걸. 괜찮을 거야. 아마도.”
여기에서 태어나 자란 아이들은 이곳을 떠나 맨체스터에서 생활하려고 한다. 한 시간 거리이기 때문에 출퇴근하기는 조금 멀긴 하지만 생활 반경이 되기도 하고, 맨체스터는 이런 시골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도시니까.
“안 돼, 슈퍼스타가 팬을 걱정하게 만들지 마.”
크리스의 얼굴이 조금 전보다 더 빨갛게 변했다. 정현은 그녀를 이끌어 2층의 하나 남은 침실인 자신의 방 안에서 말했다.
“잘 자. 좋은 꿈 꾸고.”
크리스는 고개를 숙인 채 눈치 보듯 살짝살짝 눈동자가 정현을 향했지만, 정현은 방문을 닫고 1층의 거실로 돌아와 소파에 몸을 쓰러지듯 뉘었다.
너무 많이 울고 웃어, 아침이 되면 눈이 부을 것만 같은 밤이었다.
음악이 싫은 음악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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