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musical genius who hates music RAW novel - Chapter 32
031화
크리스가 계약을 위해 한국으로 가고 나서 이틀, 정현의 일과는 전혀 바뀐 것이 없었다. 똑같이 현장에 나가고, 똑같이 일했다.
투쿵!
둔탁하고 커다란 소리가 나오는 공사 현장. 네일 건에서 발사된 못이 나무에 박히는 소리. 그리고 건설 현장에서 흔히 쓰이는, 커다란 다목적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라디오의 음악소리가 어우러지며 절묘한 리듬을 만들고 있다.
“에릭! 방부목 두 개 더 갖고 와. 자르지 말고!”
어프렌티스-도제 제도로 한창 정현에게 작업을 배우고 있는 현장의 막내, 18살짜리 꼬맹이 에릭이 푸른색의 방부 처리가 되어 있는 나무를 지정된 위치에 세운다.
그다음은 어렵지 않다. 에어 컴프레서가 연결된 네일 건을 사용해 못을 박아 다른 나무와 고정하면 될 뿐이다.
투쿵! 투쿵!
라디오에서는 건설 현장에서 듣기 좋은 옛날 팝 음악들이 흘러나온다. 과거 K팝이 인기가 많았을 때는 한국의 음악도 꽤 많이 나왔던 것 같은데, 지금은 거의 들을 수가 없게 되어 버렸다.
한창 K팝 열풍이 불었을 때는 웸블리 스타디움에서 6만 명이 보러 오는 일도 있었다고 하지만, 그런 일은 몇 년 전의 과거가 되어 버린 지 오래.
“음~ 흠흠~”
라디오에서 나오는 음악에 콧노래로 따라 부르며 작업을 한다.
에릭이 나무와 나무의 사이에는 기역자처럼 생긴 고정용 플레이트를 덧대면, 그 위에 다시 한번 네일 건을 쏜다.
투쿵! ♩~ ♫ Looking back on 투쿵! ♩~ ♫ When we first met~ 투쿵!
네일 건의 소리가 적절한 박자에, 리드미컬하게 방부목을 때린다.
30년 전 굉장한 인기를 끌었던 아토믹 키튼의 Whole Again과 네일 건의 소리가 어우러지며 부드러웠던 원곡의 음들을 강조한다.
“You can make me Whole again~ ♫ 호우~”
현장의 인부들은 콘서트 홀을 찾은 관중들처럼 스피커에서 나오는 라디오 소리를 함께 따라 부르며 작업을 한다.
건물을 세우기 위한 땅 위에는 미리 콘크리트를 부어 굳힌 바닥이 만들어져 있고, 간간이 튀어나온 검은색 파이프가 그 자리에 무엇이 만들어져 올라갈 것인지를 알려 준다.
설계도를 다시 한번 확인하고 방부목을 세워야 하는 곳의 콘크리트 바닥에 붉은색 연필로 표시를 한다. 그러면 눈치 빠른 에릭이 줄자를 꺼내 건네준다.
정현은 줄자를 빼내어 지정된 길이에 연필로 가볍게 표시를 하고, 수평계를 대어 직각에 맞게 검은색 마커를 꺼내 연필 표시에 맞춰 길게 내리긋는다.
“네가 몇 년째지, 에릭?”
“2년째예요.”
“어후···. 이제는 이런 건 혼자 할 수 있을 때도 되지 않았냐?”
“자꾸 그러면 담당 교육관에게 이를 거예요. 사부님이 가르쳐 줄 생각은 안 하고 다른 일만 하려 한다고.”
에릭은 웃어넘기며 작은 재료를 다듬는, 손바닥만 한 작은 기계톱을 들어 어울리지 않는 협박을 한다.
아마 에릭은 직업학교를 졸업하더라도 바로 다른 곳에 가서 일하지는 못할 것이다.
고등학교 대신 직업학교에서 시작한 에릭은 어프렌티스 기간인 3년을 채워도, 실무 기간이 4년 이상은 되어야 마스터 카펜터 자격을 주니까.
성인의 경우에는 직업 수련 기간이 2년이지만, 고등학교를 대체해야 해서 고등학교와 같은 기간인 것뿐이다.
어차피 가르치는 것은 학교의 선생이 아니라 현장의 목수니까.
그것까지 생각하면 지금부터 5년은 더 붙어 있어야 할 녀석이다. 빠르게 키우기 위해서는 힘들겠지만, 온갖 궂은일은 다 해야 한다.
현장의 장비들을 정리하고 펼치고 필요하다고 하면 가져다주고 다 쓰면 가져다 놓고. 비가 오면 발전기의 전원을 내리는 일까지도 에릭이 해야 하는 일이다.
에릭은 이렇게 학교 대신, 현장에서 목수 일을 배운다.
이곳의 날씨는, 아니 영국의 날씨는 건물을 짓기에 썩 좋은 편은 아니다. 과장을 좀 보태서 일 년의 반 정도는 비가 오는 곳이니까.
바꿔 말하자면 일 년의 180일 정도는 백수가 된다.
일을 할 수 없는 날이 늘어날수록 보상 심리로 인해 인건비는 올라가고, 인건비가 오르면 그에 따라 집값도 오른다.
어떻게 보면 악순환이라고 볼 수 있지만, 언젠가부터는 당연한 일이 되었다.
이 저주받은 영국 땅에서는, 비가 오지 않는 지역을 찾는 것이 더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차를 타고 한 시간 정도 가면 맨체스터라는 큰 도시가 있기에, 이 프레스턴이라는 작은 도시는 노인들밖에 남질 않았다.
길거리에 돌아다니는 젊은 녀석들은 모두 다른 지역에서 온 대학생.
프레스턴 지역에는 대학이 세 개나 있지만, 모두 외부에서 공부하러 온 학생들이라 힘든 목수 일을 배울 생각은 하지 않는다.
그래서 에릭은 이상한 놈이었다.
젊은 사람들이 모두 빠져나간 프레스턴에서 힘든 목수를 하겠다며, 자신에게 배우고 있는 것도. 그가 이곳에서 태어나지 않은 외부인이라는 것 역시도.
아직까지는 방부목과 장비들만 나르는 수준이지만, 곧 자신만의 줄자와 톱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그 장비들을 픽업트럭 짐칸에 싣고, 플라스틱 보온 런치 박스에 담은 싸구려 샌드위치와 음료수 한두 캔을 먹고 마시며 현장에서 살아가게 될 것이다.
두께 5cm 정도, 폭 10cm 정도의 방부목을 여러 개 사용해 고정하며 건물의 뼈대를 만드는 것은 빌더가 아니라 목수가 해야 하는 일이지만, 아직은 정현이 해야 한다.
이곳 프레스턴에는 교육을 받은 마스터 카펜터가 정현밖에 남질 않았기 때문이다.
이곳에서 6년간의 어프렌티스 기간을 포함한 마스터 카펜터-숙련 목수 자격을 얻기 위한 기간을 채우고, 그 자격증으로 빌더 시험을 치렀다. 그렇게 소규모 건설 책임자인 빌더가 되어 집을 만드는 총책임자가 된 지 벌써 2년째.
하지만 여전히 주변 동료들은 그를 목수로 알고 있다. 그에게 에릭을 붙여 가르치게 만든 직업학교의 담당 교육관도 그를 목수로 알고 있다.
키잉~!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움직이기 시작하는 작업 테이블에 고정된 기계톱. 플라스틱 안전장치를 살짝 올려 방부목에 표시된 부분을 톱에 가져다 댄다.
“음~ 흠흠~”
라디오에서 나오는 음악을 콧노래로 따라 부르며 나무를 자른다.
지이이이이이잉~!
톱밥이 날린다.
오늘은 비를 가져온 구름이 보이지 않아 일하기에 좋은 날이었다.
일이 잘되는 즐거운 날이었다.
정현은 에릭을 보는 것이 즐거웠다. 에릭은 태어나자마자 버려진 아이였지만 성실했고, 보육 시설에서 자란 아이라고 볼 수 없이 착했다.
그런 에릭이 물었다.
“사부님, 사부님은 왜 목수가 되셨어요?”
작업 중에 뜬금없는 질문이 들어오자 정현은 조금 멍해질 수밖에 없었다. 이유가 뭐였을까? 잘 기억이 나질 않았다.
“글쎄, 너는 왜 목수가 되고 싶었는데?”
에릭은 가끔 엉뚱한 면이 있었다. 보통은 학교의 선생님이 아닌 이상 이렇게 현장에 나와 일을 배운다면 사부(Master)가 아니라 누구누구 씨 혹은 선생님(Mister)이라고 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정현을 마스터 카펜터(숙련 목수)의 앞부분을 따서 마스터라고 불렀다.
그리고 가끔 이상한 질문을 던졌다.
“집이 없는 사람들에게 집을 만들어 줄 수 있잖아요!”
“너도 집이 없잖아, 네 집부터 만들어야 하는 거 아니야?”
정현은 에릭이 하는 말에 피식 웃으며 말했다.
“나는 아직 괜찮아요. 어리잖아요.”
에릭은 하얀 이를 보이며 웃었다.
***
며칠 동안 맑다가, 크리스가 계약을 마치고 돌아오던 날 비가 오기 시작했다.
차를 끌고 에릭과 함께 맨체스터 국제 공항에 마중을 나가는데, 차창 앞 유리에 빗물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많이 내리는 것이 아니라서 와이퍼를 약하게 켜 놓고, 김이 서리지 않도록 에어컨을 틀었다.
“분위기가 괜찮네.”
정현은 혼잣말하듯 말을 꺼냈다.
“그러네요.”
에릭이 대답을 하곤 라디오를 틀었다. 적당히 비가 오는 날에 듣기 괜찮은 음악이 나오고 있었다.
“크리스는 왜 사부님 나라에 갔던 거예요?”
잔잔한 음악 사이로 에릭이 물었다.
“내가 만든 음악을 팔러 갔다 오는 거야.”
“펍에서 불렀던 노래들을 말하는 건가요?”
에릭은 정현이 펍에서 부르는 노래들밖에 들어 본 적이 없었다. 질문하는 그 모습이 퍽 귀여워 정현은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펍에서 만든 것도 있고, 집에서 만든 것들도 있지. 공사 현장에서 만든 것도 있고.”
“와···. 그러면 사부님은 엄청 부자 되시겠네요!”
돈을 벌려고 하는 것이 아니다. 정현은 음악을 팔아서 무언가를 하고 싶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그저 자신이 아끼는 사람들과 자신이 만든 음악을 함께 즐기고 싶다고 생각했을 뿐이다.
“그럼! 당연하지!”
정현은 웃으며 대답했다. 에릭을 놀리고 싶다거나 그런 마음은 아니었다.
“나중에 저도 노래 부르게 해 주세요!”
에릭은 노래를 ‘만들어’ 달라고 하지 않고 ‘부르게’ 해 달라고 하였다.
“평소에도 같이 부르잖아. 펍에서.”
“아뇨! 그런 거 말고. 음악을 판다고 하셨잖아요. 파는 음악을 불러 보고 싶어요.”
정현은 다른 사람의 기준을 잘 알지 못했다. 아예 누가 노래를 잘하고 못하고는 관심을 두질 않았던 것이다. 그의 기준은 조금 기형적인 형태였다.
애초에 음악의 기준이 모두 천상의 목소리라 불렸던 자신의 목소리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까지 보컬이 들어간 음악을 즐겨 듣지 않았다.
그래서 에릭의 이런 말을 같이 놀고 싶다는 것으로 받아들이며, 웃어넘길 수 있었다.
“그래 다음에 한번 같이 불러 보자.”
“다음에 비가 오는 날!”
“그래, 다음에 비가 오는 날. 오늘은 좀 바쁠 것 같으니까.”
그렇게 둘은 공항으로 가는 길, 함께 라디오에서 나오는 음악을 따라 부르며 기분 좋게 갈 수 있었다.
그다음 날에도 비가 왔다.
크리스틴 뮤직의 사장이지만, 자신이 해야 할 일은 정현의 매니저라고 곧이곧대로 믿고 있던 크리스와 에릭이 집에 놀러 왔다.
“비가 오는 날이에요!”
“그렇게 계속 내릴 줄은 몰랐지.”
정현은 허탈하게 웃었다.
“정말 탁월한 결정이야, 리! 에릭이 노래를 얼마나 잘 부르는데! 아, 물론 리만큼은 아니지만.”
정현은 크리스의 말이 조금 이상하게 들렸지만, 어린아이를 기분 좋게 해 주고 싶어서 하는 말인 줄만 알았다.
“그래 좋아, 오늘 한번 같이 놀아 보자. 에릭은 어떤 노래를 부르고 싶어?”
에릭은 한참을 고민하며 끙끙 앓다가 말을 했다.
“불러 보고 싶은 게 너무 많아서 못 고르겠어요! 사부님이 골라 주시면 안 돼요?”
“하하, 그냥 평소에 즐겨 듣는 음악을 말해 봐. 어려울 것 하나도 없어. 노는 건데 뭘.”
정현 역시 에릭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잘 알지 못했기에, 골라 줄 수가 없었다.
물론 만든다면 어떠한 곡이라도 만들 수 있을 테지만, 그 곡이 에릭이 원하는 것인지 아닌지 알 수 없으니까.
“내가 골라 주어도 될까?”
정현과 에릭이 고민하고 있을 때, 크리스가 말했다. 네 개의 눈이 그녀를 향하자 그녀가 환하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내가 에릭하고 딱 어울리는 노래를 알고 있거든.”
음악이 싫은 음악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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