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musical genius who hates music RAW novel - Chapter 33
032화
“에릭에게 딱 맞는 노래?”
“응!”
크리스가 흥분해서 깁스로 고정된 왼팔까지 들며 이야기하자, 정현은 조금 의아한 기분이 들었다.
“저는 음악을 가리지 않고 다 듣는 편이에요. 다 좋은데 어떻게 고르겠어요. 크리스에게 맡길래요.”
에릭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항복했다는 듯 두 손을 들었다. 그 모습을 보며 크리스가 말을 이었다.
“브라이언 맥나잇의 Back at one! 에릭에게 딱 맞아!”
정현은 들어 본 적이 없는 노래였다.
“좋아, 일단 한번 들어 보자.”
크리스가 자신의 휴대폰을 조작해서 음악이 흐르게 해 주자, 정현은 눈을 감았다.
간주가 없이 바로 피아노와 함께 시작하는 음악.
리듬 앤드 블루스, R & B의 리듬으로 시작하고 있었다.
[부정할 수 없어요~ 우리가 함께 있어야 한다는 것을~]노래를 부르는 기교가 뛰어나다. 비브라토를 이 사람처럼 넣으면 보통 사람들은 억지 같다는 느낌이 들겠지만, 전혀 그런 느낌이 들질 않고 자연스럽다.
[모든 것은 시간이 알려 줄 거예요~]부드럽게 진행되던 음악에서 분위기가 살짝 바뀌며 드럼과 코러스로 전환점을 알려 준다.
[하나, 당신은 내 꿈이 현실이 된 것만 같아요~]노랫말에 뒤따르는 코러스가 아련한 듯한 느낌을 만들어 주는 것이 꽤 괜찮은 느낌이었다.
가사가 낯뜨거워 정현의 취향은 아니었지만, 좋은 음악이었다.
그러고 보니 에릭과 함께 펍에서 노래를 부를 때와 비슷한 목소리 같았다.
“그러게. 비슷하네.”
정현이 말하자 크리스가 동의했다.
“그렇지?”
하지만 이 말들에 에릭이 대답하기를 주저하고 있었다.
“왜 그래, 에릭? 마음에 안 들어?”
“…아뇨….”
“다른 노래가 좋아?”
“…아뇨…. 너무 좋아요. 이 노래. 이런 노래는 처음 들어 봐요!”
에릭의 입이 벌어지며 다물지 못하고 있었다. 이런 잔잔한 음악이 낮에 듣는 라디오에서는 나오지 않았기 때문일까.
정현도 처음 들어 보는 음악이었다.
그리고 잔잔하게 흘러가는데 밝은 분위기의 감미로운 멜로디가 정현의 마음에도 들었다.
하지만 조금 더 듣고 싶었다. 그가 입맛을 다시며 크리스에게 물었다.
“비슷한 다른 노래는 없을까?”
그녀는 정현이 자신의 추천이 마음에 안 들어서 그런다고 생각했는지 살짝 시무룩해졌다.
“왜, 별로야?”
“아냐, 좋았어! 비슷한 노래를 더 듣고 싶어서 그래.”
“나도 더 듣고 싶어, 크리스!”
에릭까지 거들며 더 듣고 싶다고 거들자, 크리스는 잠시 고민하더니 입을 열었다.
“제임스 잉그램의 Just once는 어떨까?”
셋은 한참이나 R & B에 빠져들어 갔다. 정현은 후회했다. 제대로 자리를 잡고 자신의 작업실에서 들었어야 했는데, 여기는 거실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정현 혼자만 즐기는 것은 무리가 없었지만 다 함께 들어야 의미가 있었다. 에릭이 노래를 부르는 것을 들어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올라가자.”
2층에 있는 작업실에 정현 외에 다른 사람이 발을 들이는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사실 이 집에 다른 사람이 들어오는 일이 거의 없었기도 하고.
누군가와 함께 지내는 동안에도 자신의 공간에 다른 사람을 들이지는 않았다. 사람들을 만나는 일은 일을 하는 곳이나, 거리, 펍에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어릴 때처럼 친구네 집에 놀러 가고 놀러 오는 일은 없었는데, 지난번 누나들의 방문이 정현의 집 문을 열어 두게 했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사람을 그리워했었나 보다.
작업실의 문을 열자 정면 창가에 책상과 왼쪽 벽 한 면을 가득 채우고 있는 책장 가득한 CD가 보였다.
책상의 오른쪽에는 대각선으로 피아노처럼 생긴 신시사이저.
책상 위에는 CD 플레이어와 앰프 그리고 정현이 작업을 할 때 사용하는 컴퓨터, 책상을 중심으로 양옆에는 커다란 스피커가 자리잡고 있었다.
“우와…. 엄청나요. 사부님!”
“나는 여기가 레코드 숍인 줄 알았어!”
에릭과 크리스는 각자의 감탄사를 내뱉으며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항상 혼자 들어온 곳이라 앉을 곳이 없네. 에릭, 나랑 내려가서 식탁 의자 좀 가져오자. 크리스는 앉아서 잠깐만 기다려 줄래?”
“응!”
크리스는 팔이 부러져 의자를 함께 나를 수가 없기에, 정현은 에릭과 식탁 의자를 갖고 돌아와 책상 앞에 자리를 잡고 에릭에게 물었다.
“일단, 노래하려면 자기 자신에 대해 알아야 해.”
“자기 자신이요?”
정현은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이곤, 컴퓨터의 전원을 올렸다.
“음역부터 확인해 보자.”
정현은 신시사이저의 전원을 올리며 말했다.
둘의 보컬 스케일이 시작되었을 때, 크리스는 그 둘을 지켜보며 미소를 지었다.
***
“에릭, 너에게 할 말이 있다.”
며칠 뒤 일을 마치고 자신의 집 거실에서 에릭과 함께 저녁을 먹은 다음 정현은 생각해 두었던 말을 꺼냈다.
그 말을 듣고 에릭이 겁을 먹었는지 우물쭈물한 느낌으로 고개를 떨구고 있었다.
한참 동안을 그러고 있다가 고개를 들었는데, 송아지처럼 착하게 생긴 눈망울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 있었다.
“사부님…. 저 해고되는 건가요…?”
이건 또 뭔 신박한 헛소리냐. 얘도 참 겁이 많다.
“너 나 몰래 장비라도 부쉈냐? 왜 울어? 그런 거 아니고, 너 혹시 노래 부르고 싶나 해서. 취미 말고 전문적으로 말이야.”
그제야 에릭은 두 손으로 양 눈을 비비며 활짝 웃었다. 울다가 웃으면….
“노래는 부르는 거 전부 좋아해요! 사부님한테 배웠잖아요. 노래!”
정현은 자신이 에릭을 가르친 적은 없다고 생각했다. 알고 있는 잡다한 음악에 대한 지식을 누군가에게 가르칠 정도로 쉽게 들여다본 적이 있던가.
게다가 정현이 생각하기에, 본격적으로 무언가를 시작하려면 필요한 게 너무 많았다.
“너 노래 연습하는 방법 가르쳐 줄 테니까, 가르쳐 주는 대로 매일 한 시간씩 해야 해. 알았지?”
하루에 한 시간이면 충분하다 생각했다. 한 시간 동안 발성과 호흡을 연습하면 보통의 가수들 정도는 될 거로 생각했다.
하지만 좋은 선수가 좋은 감독이나 코치가 되지는 못하는 것처럼, 정현은 좋은 선생님은 아니었다. 특히 노래를 부르는 데는 더더욱.
정현의 방법을 배워서 에릭이 따라 할 수 있었던 건, 지난 2년간 옆에 붙어 있으며 정현을 따라 해 왔기 때문이었다.
물론, 정현은 알지 못했다. 여전히 에릭이 평범한 수준이라고 생각했을 뿐이니까.
“영화 같은 것도 많이 보고. 너 아직 여자친구도 사귀어 본 적이 없잖아. 노래에 감정을 실어 부르려면 경험이 많아야 하니까, 뭐든 많이 해 봐.”
“네! 해 볼게요!”
그때 크리스가 집으로 들어왔다.
“나 왔어!”
그녀는 거실에 앉아 있던 둘을 번갈아 보며 말했다.
“리! 왜 애를 울리고 그래…. 괜찮아, 에릭?”
정현은 억울했지만 당황해서 입이 떨어지질 않았다.
“아, 아, 아….”
“아?”
“아니야! 내가 울린 거 아니라고!”
정현이 버럭 소리를 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렇게 변명을 하는 것밖에는 할 수 있는 말이 없었다.
“오해야, 크리스! 사부님이 나에게 노래를 가르쳐 주신다고 했어!”
이번에는 기쁨의 눈물을 흘리고 있었나 보다. 다행히도 에릭이 이유를 말해 주어서 오해는 풀렸다.
크리스는 이해할 수 없었다. 정현이 물론 엄청난 노래 실력을 갖추고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고 에릭이 정현보다 모자란다는 생각은 들었지만, 그녀에게 에릭 역시 굉장하기는 마찬가지였으니까.
“그런 게 필요해? 에릭에게?”
크리스가 정현을 바라보며 묻자 잠시 생각하는 것 같더니 빙긋 웃으며 대답했다.
“기초가 탄탄해야지.”
크리스의 얼굴이 황당함으로 물들어 가는 저녁이었다.
***
맨체스터 라디오의 인기 DJ인 프레드릭 스펠만은 라이브 클럽 공연을 자주 보러 왔다.
마이너한 취미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이 라이브 클럽 공연에서 얼마나 많은 가수가 배출되었는가.
비록 펍이나 라이브 클럽에서 배출된 가수 중에 UK 차트를 휩쓴 것은, 이미 해체해 버린 밴드 ‘오아시스’밖에 없었고 그 오아시스를 본인이 배출한 것도 아니었지만 말이다.
그래도 프레데릭은 맨체스터의 라이브 클럽에서 음악을 듣는 문화가 있었기 때문에, 그런 엄청난 인기를 지닌 밴드가 발굴되었다고 믿었다.
프로그램에 누군가를 출연시키기 위해서는 프로듀서와의 협의가 필요하지만, 십수 년간 프로그램을 해 오면서 자신이 원하는 노래만 한두 곡 정도 틀어 줄 수 있는 정도의 권한은 갖고 있었다.
몇 명 정도, 인기를 조금 끌었지만, 그 정도 급의 재능을 원하는 것이 아니었다.
맨체스터에서 오아시스를 보고 자란 프레데릭은 오아시스급의 슈퍼스타를 발굴하는 것이 꿈이었기 때문이다.
나중에 TV에 나온 스타를 보면서 ‘내가 아니었으면 저 친구는 아직도 클럽을 전전하고 있을 거라고!’라는 말을 할 수 있는 그런 기대를 품고, 오늘도 라이브 클럽을 찾아 맥주 한 잔을 주문하며 바텐더에게 물었다.
“괜찮은 친구들 좀 있나? 요즘에는 통 와보질 못해서 말이야.”
“예전에 봤던 애들뿐이야. 아, 뉴 페이스가 하나 있긴 한데 아직 실력은 모르겠군. 오늘 처음 와서.”
프레데릭은 실망했다. 몇 달 전에도 한 번 왔었는데, 그때도 크게 실망해서 돌아갔던 기억이 났다.
지난번과 차이가 없다면 정말 가능성이 없어 보인다는 생각이 들었다.
“맛있는 맥주나 줘. 오늘은 날이 아닌가 보네. 그냥 술 마시러 왔다고 생각해야겠구먼.”
“맥주가 다 똑같지, 맛있고 없고가 있나? 분위기로 마시는 거지, 술이란 건.”
바텐더가 맥주가 가득 차 있는 파인트 잔을 내밀며 말했다.
그렇게 적당히 술을 몇 잔 마시고 돌아가려고 했다. 에릭이 무대에 올라와서 노래를 부르기 전까지는 말이다.
“저 친구가 뉴 페이스라고? 아직 학교도 졸업 못했을 것 같은데?”
흥미가 떨어졌다. 오늘 이곳에 오게 했던 자신의 촉이 무뎌졌다 느꼈다. 맥주를 들이켜며 무대에서 몸을 돌려, 바를 향해 앉았다.
하지만 그는 금세 다시 고개를 돌려 무대를 쳐다볼 수밖에 없었다.
기대도 하지 않았던 무대였다.
어리바리한 느낌을 받았다.
무대에 올랐던 다른 이들에게도 기대하지 않았지만, 그보다 더 기대하지 않았었다.
도입부부터 따라가는 감미로운 허밍으로 시작된 노래는, 그의 입에 들어간 맥주 한 모금을 입을 다무는 것도 잊게 만들어 도로 뱉게 했다.
멜로디에 돌입해서 허밍이 아닌 목소리가 나왔을 때는 숨이 멎는 듯했다.
이렇게 완벽한 목소리라니!
마치 초콜릿을 녹여서 만든 것처럼 달콤하고 쌉싸름한 목소리였다.
이런 가수가 왜 아직 무명이었는지 이해를 할 수 없었다.
그리고 음악. 목소리에 놀라서 생각하지 않고 있었는데 이 음악이 더 대단하다.
저런 굉장한 목소리의 뒤를 받쳐 주는 완벽한 하모니를 만들어 주고 있었다.
분명 본인이 작곡한 것이리라. 이런 라이브 클럽에 나올 이름도 없는 누군가에게, 완벽하게 자신의 목소리에 꼭 맞춘 곡을 만들어 줄 작곡가는 없을 테니까.
‘누구야, 쟤는! 저런 애가 왜 이제야 나타난 거지?’
저런 아이라면 언제라도 *브리튼스 갓 탤런트에 나왔어도 이상하지 않았다. 아니, 브리튼스 갓 탤런트에도 저 정도로 노래를 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런 그가 노래를 마치고 말을 했을 때야 왜 무명이었는지 알 수 있었다.
[안녕하세요, 맨체스터의 여러분! 저는 에릭입니다. 오늘이 제 첫 번째 공연인데 여기 분위기가 너무 좋네요!]사람들이 환호하고 있었다. 분명 처음 보는 사람인 것이 분명한 그의 노래가 아닌 멘트에 환호했다. 그만큼 그의 노래는 사람들을 빠져들게 했다.
그리고 에릭은 사람들의 환호 속에서 다음 노래를 시작했다.
간혹 영화에서는 나왔다. 시골 출신의 슈퍼스타들이 통기타를 들고 도시로 상경해서 성공하는 장면 같은 것 말이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가장 최근에 밑바닥에서 버스킹과 클럽 공연을 하다 올라온 아티스트는 에드 시런.
그가 데뷔한 이후 벌써 20년이 흘렀지만, 시스템의 변화 때문인지 길거리에서 주목받아서 올라가는 신데렐라 스토리의 또 다른 주인공은 없었다.
“젠장, 빨리 가 봐야겠어. 늦겠다고!”
멍하니 있던 프레데릭은 확신했다. 이 에릭이라는 친구가 최고의 아티스트로 불리는 것은 시간문제일 뿐이라는 것을.
프레데릭은 지갑을 찾아 명함을 꺼내려 했다.
하지만 드디어 꿈에도 그리던 최고의 아티스트를, 자신의 손으로 발굴할 수 있다는 생각에 손이 떨려 바로 꺼내질 못했다.
그가 데뷔하고 나면, 신데렐라가 아니라 왕이 될 수 있을 거로 생각했다.
에릭이 공연을 마치고 스테이지 아래로 내려올 때, 그는 환호하는 사람들 사이를 헤치며 다가가 소리를 쳤다.
“이봐, 에릭! 에릭! 나 잠깐 볼 수 있나?”
그의 손에는 땀에 젖은 자신의 명함이 쥐여 있었다.
*Britain’s got Talent: 영국의 슈퍼스타 K 같은 경연 프로그램. 노래뿐 아니라 재능이라고 여겨질 만한 것을 가진 사람을 가리지 않고 뽑았던 프로그램. 휴대전화 외판원을 하다 신데렐라가 된 폴 포츠가 이 프로그램 출신이다. 2018년이 마지막 시리즈였다.
음악이 싫은 음악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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