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musical genius who hates music RAW novel - Chapter 35
034화
“넌 어떻게 하고 싶어?”
정현은 에릭에게 물었다. 최고의 무대가 되었건 최고의 퍼블리셔가 되었건 당사자에게 의사를 물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저는 사부님이나 크리스가 하자는 대로 하고 싶어요.”
하지만 에릭에게는 제 생각이라는 것이 없었다. 아마도 살아오면서 자신의 의사를 결정하는 일이 많이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럼 크리스는 어떻게 했으면 좋겠어?”
정현은 이번에는 크리스에게 물었다.
“나는 리가 하자고 하는 대로 따를게.”
아니, 얘들은 왜 자기 의사가 없냐. 너희 나한테 너무 의지하는 거 아니냐? 라고 묻고 싶었지만, 정현은 꾹 참았다.
한숨을 내쉬며 다시 이야기했다.
“내가 결정하는 대로 따른다. 맞지? 나중에 다른 소리 하기 없기다?”
“네!”
“응!”
아기 새를 기르는 어미 새의 마음이 이럴까. 혼자서는 아무런 결정도 내리지 못하는 두 명을 바라보며 정현은 다시 이야기했다.
“일단, 지금 이대로는 안 돼. 이 회사는 내가 그냥 일하다가 가끔 만드는 음악들을 팔려고 만든 회사야. 그런데 지금은 에릭이 일하러 가면 매니저로 크리스가 따라가잖아. 그러면 전화를 받을 사람도 없어서 나는 사무실을 지켜야 하고 말이야.”
두 명의 아기 새는 더욱 집중하고 정현을 바라본다.
“만약에 유니버설에서 에릭과 계약하고 싶다고 하면 에릭은 그쪽으로 가. 거기는 공룡이야, 우리는 개미고. 좀 더 큰 가수가 되고 싶다면 거기로 가는 게 맞아.”
“싫어요!”
조금 전까지만 해도 다른 소리를 하지 않겠다던 에릭은 바로 싫다며 벌떡 일어나며 소리쳤다.
“너, 아직 계약하지 않은 거 알지? 보호자로 등록되어 있는 보육원의 신부님에게도 허락받지 않았고. 제대로 된 가수가 되고 싶다면 제대로 된 회사로 가야 관리를 받을 수가 있어, 에릭.”
“그래도 그건 싫어요. 내가 신부님에게 허락받아 올게요. 난 사부님하고 떨어지고 싶지 않아요!”
에릭이 이렇게 떼쓰는 것은 처음 보았다. 항상 좋다고 하고 웃기만 하던 녀석이 소리를 치며 싫다고 한다. 그런 그와 2년이 넘도록 함께 지내오면서 처음 보는 모습이었다.
정현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에릭을 바라보았다. 그의 눈가에 가득 눈물이 고여 있었다.
“날 버리지 말아요. 착한 아이로 있었잖아요…. 가수가 되지 않아도 괜찮아요. 목수가 될게요. 그냥 여기 있게 해 주세요….”
크리스가 엎드려 울기 시작하는 에릭에게 다가가 등을 쓰다듬어 주며 말을 했다.
“걱정하지 마, 에릭. 내가 옆에 있어 줄게. 리가 너를 정말 보내고 싶어서 이런 말을 하는 건 아닐 거야. 너를 걱정해서 그러는 거지.”
“5년은… 같이 있어 줄 거라고 했잖아요….”
에릭의 울음소리가 집 안에 번져간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밝게 웃고 있던 에릭의 목소리가, 집 안을 울음소리로 채워가고 있었다.
태어나자마자 부모에게 버려졌던 에릭. 그에게는 버림받는 것이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일이었다는 것을 정현은 알게 되었다.
만약 이대로 그를 다른 곳으로 보내려 한다면, 자신이 사람들을 싫어하게 되었던 것처럼 에릭도 음악을 싫어하게 될 것이다.
“에릭, 그러면 일단 전문 매니저부터 구하자. 본격적으로 하는 건 그때부터 하기로 하고 말이야.”
정현은 울고 있는 에릭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그제야 에릭은 고개를 들어 정현을 바라보며 웃어 주었다.
에릭의 얼굴은 눈물과 콧물로 엉망이 되어 있었지만, 정현을 바라보며 환하게 웃어 주었다.
“내가 잘못했어. 에릭. 너를 다른 곳에 보내는 일은 없을 거야.”
한참을 토닥이며 에릭을 진정시켰고, 이야기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왔다. 결국 크리스와 에릭은 결정을 내릴 수 없을 것이다.
에릭은 울다가 지쳤는지 소파에서 잠들어 있었다.
“첫 번째, 유니버설에서 에릭을 달라고 하면 무조건 거절하는 거로. 내 생각에는 유니버설로 가는 게 맞는데 본인이 원하지 않으면 어쩔 수 없는 거지 뭐.”
“응.”
“두 번째, 라이브 라운지는 나가는 걸로 하자. 이거는 실력 증명도 될 거고, 파급력이 너무 큰 기회야. 놓치면 안 돼.”
“응.”
크리스는 대답을 하고 나서 한참을 머뭇거리다 정현을 불렀다.
“리.”
자신의 의견을 내보이지 않던 크리스가 정현을 부른다.
“왜?”
“나, 사장 같은 거 못 할 것 같아…. 미안.”
그럴 것 같았다. 자신의 의견이라고는 메뉴판에서 자신이 좋아하는 음식 추천밖에 하지 않으며 살아 왔는데, 갑자기 다른 사람의 앞날을 책임져야 하는 위치에 선다는 것이 힘들었겠지.
“다음 주까지만 해 봐, 다음 주에 유니버설하고 이야기까지만 마무리하면 다른 사람 찾아볼게.”
“미안해….”
“미안할 게 뭐가 있어. 그냥 적성에 안 맞았던 거지. 괜찮아.”
길지 않을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짧아도 너무 짧았다. 크리스틴 뮤직의 사장인 크리스틴 로저스가 채운 사장의 임기는 고작 3개월이었다.
새로운 사장은 어떻게 찾아야 할까 고민하던 때에 크리스가 말했다.
“그냥 리가 하면 안 돼? 다른 사람에게 맡겨도 결국 그 사람도 리에게 물을 거야. 그렇게 될 거라면 차라리 처음부터 리가 사장이 되는 게 낫다고 봐.”
정현은 크리스를 바라보았다. 자신에 대해 한 치의 의심도 없는 얼굴이었다.
“나는… 너무 유명한 사람이야. 그 유명세가 너희에게 상처를 줄 수도 있어.”
“리가 유명하다고? 나는 너에 대한 건 하나도 들어 본 적이 없는데?”
“그래서 내가 이곳에 있던 거야. 나를 아는 사람이 없으니까. 아, 로스는 알고 있었지만 모르는 척해 주었지.”
정현은 크리스가 몰랐던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했다.
자신이 살아 왔던 이야기들과 한국에서 자신을 공격했던 언론과 사람들, 법정에 대한 것들.
최종적으로는 한국에서 도망치게 된 이유까지도.
“나는 처음에는 그저 내 안에 있는 것들을 꺼내는 것만으로도 만족했어. 꺼내지 않고서는 죽을 것만 같았거든.”
“그랬구나….”
“그런데 어느 순간 사람들이 내가 꺼낸 것들이 가짜이기를 기대하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되었어. 커다란 다이아몬드가 아니라 커다란 유리 조각이기를 바라는 사람들을 보면서 생각했지. 아, 이 사람들은 내가 아무리 진실을 말한다고 하더라도 믿어 주지 않을 거다.”
크리스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정현의 옆에 다가와 안아 주었다.
“처음에는 그 사람들의 명단을 인터넷에 남겨놓는 것만으로, 그들이 받을 불이익을 생각하며 좋았어. 복수하는 느낌이었으니까. 그런데 웃기는 건 그 명단을 만드는 데 수십만 파운드가 들어갔는데 나는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다는 거야.”
그들과의 소송에서 받은 돈이 얼마인지도 모르지만, 정현은 단 한 푼도 건드리지 않았다. 그 돈을 쓰고 싶은 마음이 들면 그때의 일들이 떠오를 것만 같아서였다.
그래서 지금도 그 돈을 쓰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그리고 명단을 보게 되면 그때 학교 앞과 법원 앞에서 보았던, 사람들의 의심하는 눈들이 기억나게 될까 봐 볼 수가 없었다.
“난 그들이 나만큼 상처를 받기를 바랐어.”
정현은 그들이 자신보다 더 큰 상처를 받기를 바랐지만, 자신에게 난 흉터만큼 큰 상처를 받은 사람은 없었다.
하지만 자신에게 난 커다란 흉터가 어느새 크게 자라 자신을 괴물로 만들고 있다고 생각했다.
“나는 그런 내가 무서웠어. 나도 그 사람들과 똑같은 괴물이 되어가고 있다는 생각에 도망을 친 거야. 나도 그들과 똑같은 사람이 되어 버릴까 봐.”
정현은 고해성사하듯 고개를 숙이고, 여태까지 자신의 마음속에 담아두었던 이야기를 토해냈다.
크리스는 그런 정현의 등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괜찮아. 사람은 전부 겁쟁이인걸. 나도, 너도 그리고 에릭도. 그러니까 우리가 이렇게 만난 걸 거야. 겁쟁이들끼리.”
“그렇겠지….”
“하지만 말이야, 아무리 겁이 나더라도 앞을 향해서 걸어야 해.”
크리스의 말에 정현은 아무런 대답도 할 수 없었다.
“우리 같이 걸어가자. 힘이 들면 언제나 옆에 있어 줄 테니까, 언제라도 말해. 내가 안아 줄게.”
정현은 크리스를 안으며 정말 오랜만에 울었다.
크리스는 무슨 일이 있더라도 자신의 편이 되어 줄 거라는 것을 느낄 수 있게 해 주는 사람이었다.
***
“마커스 스미스입니다. 마크라고 불러도 됩니다.”
“크리스틴 로저스예요. 여기에 방문하겠다고 하신 용건이…?”
일주일을 미뤄 약속을 잡았지만 일주일 만에 새로운 사무실을 꾸미는 것은 시간상으로 무리였다. 결국 유니버설 뮤직의 CEO를 만난 자리는 뒷마당에 만든 헛간 같은 사무실 앞이었다.
사무실을 빌릴 돈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일주일 만에 구하고 계약하고 작업실을 꾸미는 일은 불가능했다.
크리스 그리고 마커스와 에디. 세 명은 마치 차 마시는 시간을 갖듯 잔디밭에 놓인 테이블에서 각자의 음료를 앞에 두고 있었다.
“집으로 불러 주셔서 감사합니다. 확실히 사무실에서 만나는 것보다는 편하네요.”
마커스는 사무실이 아니라 일부러 집으로 불러 주었다고 오해를 하고 있었다.
“사무실보다 확실히 편하죠.”
비서인 에디는 거기에 말을 덧붙였다.
크리스는 여기가 사무실이 아닐뿐더러 자신들을 집으로 초대를 했다는 오해를 풀 생각이 없었다. 그저 이 부담스러운 자리가 빨리 끝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었다. 오늘까지만 이 부담스러운 사장이라는 직위에 있기로 했기 때문이다.
상대는 이제 겨우 시작한 크리스틴 뮤직과는 달리 업계의 공룡이었다. 그렇게 큰 회사가 어떤 문제로 여기까지 방문을 했는지 알 수 없다는 것이 가장 큰 걱정거리였다.
“편하시다니 제 마음도 좋네요. 그나저나 용건을 듣고 싶은데요.”
재촉하는 크리스를 바라보면서 마커스는 차를 마시곤 천천히 입을 열었다.
“요즘에 화제가 되는 신인 가수 에릭 퍼트니.”
크리스는 그의 말이 이어지기를 기다리며 차를 마셨다.
“…를 가르쳤다는 사람을 만나고 싶습니다.”
예상과는 전혀 반대의 질문이었다. 에릭을 원한다고 하면 안 된다고 거절하고 돌려보내기로 정현과 이야기가 되어 있었는데, 이들은 에릭이 아니라 정현을 원하고 있었다.
크리스는 예상했던 것과는 다른 이야기가 들리자 혼란스러워졌다.
“그건 제가 결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에요, 마커스 씨. 본인에게 물어봐야 할 것 같은데요. 실례지만 왜 그를 만나고 싶어 하는지 가르쳐 주실 수 있을까요?”
마커스의 눈이 빛났다.
“저희 회사에서 새로 만드는 그룹의 인스트럭터로 모시고 싶습니다. 그러면, 소개해 주실 수 있을까요?”
크리스는 잠시 고민을 하고 난 다음 대답했다.
“잠시 기다리세요.”
자리에서 일어나 정현이 있는 사무실을 바라본 뒤 테이블에서 멀찌감치 떨어져 전화를 걸었다.
“그런 게 아니야 리. 이 사람들은 에릭을 원하는 게 아니야.”
[이상한데? 에릭이 아니라면 여기까지 올 이유가 전혀 없잖아?]크리스가 사무실을 힐끗 바라보자 창가에 몰래 고개를 내밀고 있는 정현이 보였다.
“이 사람들이 원하는 건. 리, 바로 너였어.”
음악이 싫은 음악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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