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musical genius who hates music RAW novel - Chapter 36
035화
창가에 보인 정현은 머리를 벅벅 긁더니 대답했다.
[아이 씨, 괜히 에릭만 울렸잖아. 이럴 줄 알았으면 다른 데 가라는 말 안 했지. 그냥 거절해. 만나고 싶지 않다고 해.]“난 못하겠어. 나와서 직접 거절해 주면 안 될까? 이 사람들 너를 만나기 전까지 돌아가지 않을 것 같아.”
크리스는 펍에서 맥주잔과 음식을 나르던 아이였다. 이런 일에 대한 내성이 없었다. 결국 정현이 직접 나서야 할 것만 같았다.
[어휴, 간다. 가.]얼마 지나지 않아 사무실의 문이 열리고 정현이 나왔다.
“나를 찾으셨다고 들었습니다. 미스터…?”
“마커스, 마커스 스미스입니다.”
목소리가 들리는 방향으로 몸을 돌리던 마커스는 깜짝 놀라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몸을 떨며 말했다.
“호, 혹시 제가 아는 사람이 맞습니까?”
정현은 그런 마커스의 질문에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대답했다.
“마커스 씨. 당신이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든 나는 별로 관심 없어요. 돌아가세요.”
“당신이 어떻게 여기에… 사라졌다고 들었던 게 10년이 지났습니다, 리!”
“크리스틴 뮤직은 내가 만든 회사예요. 당신이 들어와 있는 이곳은 크리스틴 뮤직의 부지고.”
이렇게 뒷마당에서 하기에는 너무 드라마틱하지 않은 대화였다. 하지만 마커스는 돌아가라고 하는 정현의 말은 신경도 쓰지 않으며 혼잣말을 했다.
“그랬었군! 당연하지, 백 년 만에 나온 최고의 천재가 만들었으니 음악이 그렇게 아름다웠던 거야.”
“한국을 떠나온 지 10년이나 됐어요. 지금은 이곳에서 목수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정현은 테이블 옆 비어 있는 의자에 앉으며 말했다. 정현이 의자에 앉자 그제야 마커스도 자리에 앉았다.
“목수라니! 천상의 목소리를 지닌 당신이 아니더라도 목수는 누구라도 될 수 있는 거잖습니까!”
“마커스 씨는 목수를 쉽게 보시네. 자격증 따는 데 6년이나 걸렸는데.”
“저는 다릅니다. 당신의 재능이 가짜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리! 그 멍청한 사람들하고는 다르단 말입니다. 보호해 드리겠습니다. 세상의 누가 오더라도 당신의 성벽이 되어 지켜 드릴 수 있다고요.”
마커스는 처음 본 차분했던 모습과는 다르게 손까지 떨며 흥분하고 있었다.
“영국 정부도 똑같은 말을 했지만 저는 거절했습니다. 이곳에 사는 건, 그냥 나를 모르는 사람들 사이에서 살아가고 싶었기 때문이에요. 그 이야기가 어디에도 알려지지 않은 건, 알려지면 내가 떠난다고 했기 때문이고요.”
정현의 입이 열리며 크리스는 알지 못하는 정보들이 들려 왔기에 조금 당황했지만, 정현을 믿는 마음으로 굳게 버티며 서 있었다.
“한 번! 딱 한 번만 믿어 주세요. 두 번 믿어 달라는 말은 하지 않겠습니다. 딱 한 번이면 됩니다.”
전 세계 음악 시장을 삼등분하고 있다는 유니버설 뮤직의 영국 지사 CEO 마커스 스미스가 정현에게 애원하고 있다.
눈앞에 보이는 모습은 크리스에게는 너무 낯선 광경이었다. 그제야 정현이 했던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가 너무 유명하기 때문에 자신과 에릭이 받을 피해가 걱정된다는 말.
정현이 직접 해 주었을 때는 실감이 나질 않았었지만, 눈앞의 광경이, 그가 오히려 사실을 더 작게 축소해서 말했다는 것을 느낄 수 있게 만들어 주었다.
그렇게 크게 느껴지던 마커스가, 정현의 앞에서는 조금 전에 자신 앞에서 보이던 여유를 부리지 못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게다가 마커스의 옆에 있는 비서 에디는 놀라서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입을 벌린 채 멍하니 서 있었다.
“믿으면, 제가 믿으면 무얼 어떻게 해 주신다는 건데요?”
오랜 침묵 끝에 정현이 입을 열었다. 마커스는 정현의 말이 흥정하는 것이라고 여기며 자신이 제시 할 수 있는 건 무엇이든 제시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원하는 건 뭐든지 해 드릴 수 있습니다. 당신이 돌아왔다는 걸 세상에 알리기만 해도, 세상은 뒤집힐 거라고요!”
정현은 피식하고 웃으며 말했다.
“돌아가긴 어딜 돌아가요. 마커스 씨, 흥분하지 마시고 해 주실 수 있는 것만 이야기하세요.”
마커스는 침을 꿀꺽 삼키며 생각했다. 자신이 줄 수 있는 것과 줄 수 없는 것 모두.
“퍼블리셔 계약이건 뮤직 레이블 계약이건 원하는 대로 해 드리겠습니다. 원하는 건 뭐든 말씀하세요. 제가 들어드릴 수 있는 건 뭐든 할 테니.”
정현은 생각에 잠겼다. 지금 자신들에게 필요한 것은 정말 너무 많았다.
“일단 이렇게 하죠. 내가 이곳에서 작업한다는 건 어디에도 말하지 말아 주세요. 나중에, 아주 나중에 내가 그럴 마음이 생기면 말해 드릴 테니 그때 터뜨리시고.”
“당연하죠. 조용히 입 다물고 있겠습니다. 들었지, 에디? 입 다물고 있어야 한다고!”
그 말을 들은 에디는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대답했다.
“네, 네! 당연하죠!”
세상에서 사라진 지 10년이 지났지만, 에디의 눈앞에 있는 남자는 이미 전설이 되어 버린 남자였다. 음악을 하는 모든 사람이 알고 있는 그런 사람. 몰라서는 안 되는 사람이었다.
“퍼블리셔 계약은 통상 계약이면 됩니다. 나로 인해서 다른 사람이 피해를 보는 걸 바라는 게 아니니까요. 뮤직 레이블도 산하 업체로 인수되기보다는 동등한 계약 관계로 가기를 원합니다.”
“정말 그걸로 괜찮으시겠습니까? 저희는 정말 수수료 같은 건 없어도 상관없습니다.”
마커스는 수수료를 더 주겠다고 해도 거부하고 있었다.
“그냥 일반적인 수준으로 해 주세요. 그 대신에 믿을 수 있을 만한 매니저를 보내주세요. 이쪽에는 사람이 없어서 구인 공고를 내도 아무도 찾아오지 않더라고요.”
“음…. 차라리 런던으로 오시는 건 어떻겠습니까? 저희가 건물을 마련해 드리겠습니다.”
정현의 고민이 깊어졌다. 나쁘지는 않은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조건도 아주 좋았다.
사무실이 아니라 건물을 마련해 준다고 한다. 규모 자체가 자신이 생각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규모였다.
하지만 바로 결정할 수는 없었다. 혼자라면 당연히 가겠다 했을지도 모르겠지만, 지금은 크리스와 에릭이 함께였다.
혼자서 결론을 낼 수가 없어 정현은 크리스를 바라보며 물었다.
“크리스, 네 생각은 어때? 런던으로 가는 게 좋을 것 같아?”
“나, 난. 리가 하자는 대로 할게….”
“난 지금 네 의견이 필요해. 런던으로 간다는 건, 나 혼자 결정할 수 있는 게 아니잖아.”
크리스는 복잡한 마음이었다. 솔직한 마음으로는 자신이 둘에게 크게 도움이 될 것 같지가 않았다. 충분히 대단한 정현이나 에릭은 자신이 없어도 잘 해낼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둘은 런던으로 가….”
크리스를 바라보던 정현은 고개를 돌려 마커스를 향해 웃으며 말했다.
“들었죠? 사장님이 가지 않겠다고 하네요. 우리는 이곳에 남겠습니다.”
“알겠습니다. 런던으로 돌아가서 바로 계약서를 새로 써서 보내드리겠습니다. 이곳에 오며 가져온 계약서는 괜한 종이 낭비만 된 것 같네요. 내일 매니저로 쓰실 사람과 함께 보내드리도록 하죠.”
마커스는 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인사를 하고 비서인 에디와 함께 멀어져갔다.
크리스는 정신이 하나도 없는 것이 폭풍이 지나간 것 같았다.
일주일 전에 정현에게 들었을 때만 하더라도 이 정도일 줄 몰랐다.
왜 클래식에서 엄청난 재능을 가졌다고 했던 사람에게, 대중음악의 전문가라는 사람이 껌벅 죽는 것처럼 대하는 걸까?
크리스는 정현에게 그 이유를 물었다.
“나도 모르지. 내가 없어진 사이에 내 소문이 이상하게 바뀌었나 본데? 예전에는 그냥 성악계의 신성 정도였거든.”
정현은 그런 것에는 전혀 관심이 없어 도움이 되는 답변을 해 주지는 못했다.
그날 저녁 인터넷 검색이 그 질문에 대해 답변을 해주었다. 수도 없이 많은 글들이 이정현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크리스는 그중에서 하나를 골라 읽어 보았다.
[그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은 그가 그저 엄청난 목소리를 가졌다고만 생각할 것이다. 그가 엄청난 목소리로 성악계를 뒤엎어 버리고 사라진 것이 사실이니까.하지만 그가 사라지기 전 남긴 아홉 개의 곡. 그 자체만으로도 그는 전설이 되었다. 게다가 그것에 더불어 편곡을 했다고 알려진 락 음악까지도, 이미 락 음악에 있어서 신기원을 열었다고 평가되며 이후 나오는 락 음악에 엄청난 영향을 주었다.
그와 가장 친하다고 했던 친구는 그가 만들었던 백 곡이 넘는 곡을 모두 들어 보았고, 그 아홉 곡과 비슷하거나 뛰어넘는 수준이었다는 말을 했다. 상식적으로 믿을 수가 없는 말이다. 그보다 대단한 음악이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 수가 없는 곡들이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 아홉 곡은 하나같이 클래식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고 평가되었다. 여섯 개의 피아노 독주곡과 두 개의 교향곡. 그리고 하나의 성악곡까지 전부.
그렇다면 그와 함께 사라진 100여 개의 곡은 어떤 수준이라는 말인가?
많게는 120개의 악기를 다루는 대규모 교향곡을 만든 사람이다. 이 곡들을 들어 보면 그가 작곡을 하는 데에 엄청난 재능을 가졌다는 것은 누구라도 알 수 있다.
그가 단지 클래식에 치우친 재능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는 것 역시 그가 편곡한 락 음악을 들어 본다면 누구든지 알 수 있다.
그가 돌아오는 날 모든 음악은 변하게 될 것이다.
필자를 비롯한 수많은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새로운 음악과 함께 돌아올 천재의 귀환을 기다리고 있는 이유다.]
글을 읽은 뒤, 크리스는 정현이 만들었다고 하는 음악들을 들어 보았다.
자신도 모르게 눈물을 흘리게 만드는 가슴이 시린 슬픈 곡이었다. 음악을 듣는 시간은 순식간에 흘러갔고 크리스는 자신도 모르게 뒷마당의 테이블 앞에 앉아 울고 있었다.
한참 동안 눈물을 흘리던 크리스는 사무실에서 게임을 하는 정현을 찾아가 뒤에서 안으며 말했다.
“내가 너를 아프게 하는 모든 것들에게서 지켜 줄게….”
뜬금없는 소리에 정현은 당황했지만, 그녀의 목소리가 너무 진지해서 잠자코 있을 수밖에 없었다.
***
다음 날, 마커스가 보낸 사람들이 도착했다. 새로운 매니저가 되어 줄 거라는 두 명과 계약서를 들고 온 마커스의 비서 에디였다.
“그레고리 테이트입니다. 그렉이라고 부르시면 됩니다.”
그렉은 덩치가 어마어마했다. 그냥 살만 찐 덩치가 아니라 온몸이 근육 덩어리 같았다. 인상도 격투가 같은 느낌이라 무서울 정도였다.
그리고 말이 없었다. 말을 걸기 전에는 그 어떤 말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또 한 명의 매니저.
“마리 시미아노비츠입니다. 마리라고 불러 주세요.”
왜 매니저를 하고 있는지 도무지 이유를 알 수 없는 사람이었다. 외모만 보면 모델을 하는 게 돈을 더 많이 벌 것 같았다.
“이 둘과 함께 일하시면 됩니다. 주급은 저희 쪽에서 지급할 테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스트리밍 정산 비율만 하더라도 다른 곳들보다 훨씬 많이 쳐주는 느낌이었는데, 매니저들의 임금까지 제공한다는 계약서를 들고 왔다.
“제가 마커스 씨에게 요구했던 건 그냥 일반적인 계약이었는데 이건 좀 과한 거 아닌가요?”
스트리밍 업체의 수수료를 제외한 후, 75퍼센트가 일반적인 제작사 측의 비율이기는 하다. 그런데 거기에 아티스트 비율 10퍼센트를 더 챙겨 주겠다고 한다. 거기에 매니저들의 주급까지.
즉, 정현 측이 수익의 85퍼센트 이상을 가져가게 되는 계약이었다.
“그 말씀을 하실 줄 알고 계셨는지, 저만 보내셨습니다. 계약서 수정을 해 달라고 하실 게 뻔하다고 하시면서….”
정현은 헛웃음을 지었다. 마커스는 은근히 고집이 있는 사람이었다. 아니면 자신에게 엄청 잘 보이고 싶어 하는 사람이든가.
“일단 사인은 하겠습니다. 당장 에릭에게 매니저가 필요하거든요.”
사장이라는 자리에서 물러난 크리스가 아닌 정현이 펜을 들고 계약서에 사인을 했다.
“그러면 슬슬 움직여 볼까요?”
새로운 출발을 알리는 말이 정현의 입에서 뱉어졌다.
음악이 싫은 음악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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