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musical genius who hates music RAW novel - Chapter 37
036화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퍼블리셔와의 계약 후 가장 큰 고민은 사무실이었다. 언제까지 집의 뒷마당에서 계약서에 사인할 수만은 없으니까.
사실 처음에 회사를 만들려고 했을 때 사무실을 알아보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다.
사무실을 빌리는 가격은 그리 높지 않았다. 하지만 실질적인 작업자가 한 명이기에 장기적으로 보았을 때, 사무실의 의미가 없다고 생각해 집의 뒷마당에 만들었던 것이 컸다.
그런데 요즘에는 사무실에 혼자 나와 있는 일이 많았다. 대부분의 시간은 빈둥대고 있지만 그래도 자리를 지켜야 했다. 작업은커녕 생각에 빠질 시간도 없었다. 에릭의 스케줄을 물어보는 전화가 너무 많이 걸려오기 때문이다.
전화를 받는 일은 너무 싫지만, 지금은 어쩔 수 없었다. 다들 바빠서 사무실을 지킬 수 있는 사람이 정현밖에 없었기에.
어차피 목공 일이야 마커스 말대로 할 수 있는 다른 사람들도 널려서인지, 지금은 의뢰가 많이 들어오지는 않고 있었으니까.
“나 왔어.”
사무실의 문이 열리고 크리스가 들어온다. 요즘에 크리스는 회사의 기본적인 경리 같은 것에 대해 돌리 아줌마에게 배우는 중이었다.
“그냥 돌리 아줌마랑 같이 퇴근하라니까, 끝나고 여기 올 필요 없어. 어차피 여기에서 할 일도 없잖아.”
공식적으로는 단 한 명의 아티스트만을 데리고 있는 회사라, 돈이 들어오고 나가는 것은 그 한 명에 달려 있기 때문에 딱히 어렵게 계산하지 않아도 충분했다.
“하, 할 일이 없기는 왜 없어. 여기 이렇게 지저분한데 청소도 해야 하고….”
얼굴이 빨개져서 청소하는 척을 한다. 예전과는 조금 다른 느낌이지만 그냥 모르는 척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그래. 마음대로 해라.”
기지개를 켜면서 일어났다. 목공 일을 하지 않으니까 점점 게을러지는 게 느껴진다. 아침에도 늦게 일어나고, 게다가 사무실이 뒷마당에 있으니까 움직임도 적어져서 더 그런 것 같기도 하다.
“사무실 옮기자. 부동산에 들러야겠어.”
“옮기는 김에 이름도 바꾸자.”
크리스가 말했다. 정현은 솔직히 크리스틴 뮤직이라는 이름이 나쁘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왜? 널 부를 때도 크리스틴이라고 불러줄까?”
그녀는 정현이 크리스틴이라고 부르는 것을 상상했는지, 부르르 떨고 대답했다.
“싫어. 다른 사람 이름을 부르는 것 같아. 느끼해.”
남의 이름도 아니고 자기 이름을 부르는데 그게 느끼하다니. 철이라고 부르던 철수한테, 철수라고 불러주면 느끼하다는 거랑 뭐가 다른 거야 대체.
“네 이름인데?”
“응. 내 이름이라도.”
이런 부분들이 이해가 잘 안 됐다. 아마도 그게 여기에서 태어난 사람과 다른 곳에서 태어난 사람의 차이가 아닐까.
당장 정현 자신만 하더라도 가족들이 현이라고 부르는 것과 친구들이 정현이라고 부르는 것에 큰 차이점을 느끼지는 못했다.
“그래, 사람마다 생각이 다를 수 있으니까.”
“응? 뭐라고?”
“아니야, 그냥 혼잣말.”
이런저런 우스갯소리를 나누다가 문득 궁금해져서 물었다.
“이제 에릭 정산 들어올 때 됐잖아. 얼마나 들어왔어?”
“아직 안 됐을걸? 그거 분기별로 들어오는 거잖아. 아직 5월이니까.”
아직 한 분기가 되지 않았다. 한국에서는 한 달에 한 번씩 정산이 아니었나? 이게 월급처럼 나라마다 모두 달라서 헷갈릴 때가 종종 있었다.
“사무실은 그러면 어떻게 하지. 정산금 생각하고 옮겨야겠다고 한 건데.”
“잠깐만, 내가 확인해 볼게.”
크리스가 컴퓨터 앞에 앉더니 은행 사이트에 들어간다.
“리, 잠깐 이것 좀 봐봐.”
다급하게 부르는 목소리.
“왜? 뭔데?”
의자를 굴려 미끄러지듯 크리스의 옆으로 다가갔다. 주거래 은행으로 쓰는 바클레이 은행 사이트. 밑으로 쭉 따라가 크리스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곳을 향했다.
“일, 십, 백… 120만 파운드네. 이야, 에릭 잘나가잖아?”
120만 파운드면 한국 돈으로 19억 조금 넘는 돈. 고작 3개월간의 활동치고는 엄청나게 벌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냐! 에릭 정산금은 아직 들어오지도 않았어. 이거 한국에서 보낸 거야.”
엥? 한국이라면 수원이네 회사인가? 앨범을 지난달에 발매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제 우리 백만장자야. 크리스.”
그 짧은 시간에 이렇게 벌었다고? 앨범 발매한 지 얼마 안 된 걸로 아는데. 그 가수의 영향력이 엄청난가 보다.
“아니, 걔네는 정산금을 보내면 보낸다는 전화를 하든가 메일을 보내든가 해야지, 연락 한번 하지 않고 돈을 보내네. 뭐, 그래도 돈 생겼으니까 사무실은 보러 갈 수 있겠다.”
“리, 몇 곡이나 팔기로 했던 거야? 얼마나 되길래 백만 파운드가 넘는 거야?”
그 자리에 있지도 않은 사람에게 계약서를 직접 사인하고 왔던 사람이 오히려 물어보고 있다.
“몰라 나도. 전화해서 물어볼까?”
오랜만에 전화를 들어 수원에게 걸었다. 오후의 바람이 비교적 따듯하다는 생각이 드는 저녁에.
영국 특유의 딱딱한 벨 소리가 들리다 한국의 벨 소리로 바뀐다. 두 번, 세 번.
[여보세요.]“나다. 잘 지내고 있냐?”
오랜만에 목소리를 들었다. 몇 달 만일까? 그전에는 몇 년 동안이나 목소리를 듣지 않았어도 아무렇지도 않았는데, 한 번 만났던 것 때문인지 이따금 목소리가 듣고 싶다고 생각할 때가 있었다.
[나야 항상 똑같지. 그런데 왜 전화를 걸어, 돈 나가게. 요즘에는 음성 챗을 걸어도 음질 괜찮던데.]인터넷이 발달한 요즘에는 국제 전화를 거는 사람이 없다. 화상 통신과 그 외 여러 가지 것들을 쉽게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조금은 낡은 생각일지도 모르지만, 인터넷으로 거는 것에서 느껴지는 미묘한 시차가 조금은 꺼리게 만드는 경향이 있다.
“그래, 그냥 인터넷으로 거는 거랑 국제 전화로 거는 것은 기분 차이가 있으니까. 그나저나, 오늘 계좌를 확인했는데 말이야.”
자잘한 이야기를 뒤로하고 드디어 본론으로 들어간다. 궁금했던 부분은 19억이 넘는 큰돈에 대한 것이니까.
[아, 생각보다 적지? 앨범 발매할 때 첫 달 예상치로 미리 넣었을걸. 나머지가 다음 달에 합산되어서 들어가니까 다음 달에는 더 많이 들어갈 거야. 앨범 발매하고 나서 계속 1위였으니까.]이 돈이 적은 돈이었던가? 비율은 낮게 계약했던 거로 알고 있었다. 그냥 공개해서 사람들과 함께 즐기기 위해서였기 때문에.
조금 혼란스러워졌다.
“내가 몇 곡을 계약한 거야? 생각한 거랑 금액이 달라서.”
[응? 열두 곡인데? 금액이 적게 들어갔나?]열두 곡이었나. 수명이 짧은 대중음악이기 때문일까. 한순간을 불태운 듯한 금액이 들어왔다. 수원이는 예상보다 적으냐 물었지만, 예상했던 것보다 많다. 정규 앨범에 열두 곡.
“몇 곡을 계약했는지를 몰랐었거든.”
[크리스가 가져간 계약서에 쓰여있을 텐데, 확인 안 해 본 거야?]계약을 하고 돌아오던 날 들고 왔던 가죽 서류 케이스. 단 한 번도 열어 본 적이 없었다.
“내가 그런 걸 확인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건 알고 있잖아.”
[그렇겠지. 어쨌거나 연락해 주지 못해서 미안해. 이쪽도 앨범 발매하느라 정신이 없었어.]연락 같은 건 그다지 상관이 없다. 나도 정신이 없었으니까.
“뭐, 이쪽도 정신이 없었던 건 마찬가지니까. 됐어.”
어쨌거나 궁금했던 점은 해결이 되었다.
[그래, 다음에 또 통화하자.]“그래, 다음에.”
고개를 뒤로 젖혀 크리스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녀는 한국어를 모르기 때문에 옆에서 계속 듣고 있었어도 알아듣지 못했을 테니까.
“열두 곡이래.”
크리스의 얼굴에 놀라움이 번져가는 것이 보인다. 계약을 한 지 삼 개월. 앨범 발매 후 한 달이 지난 시점에 백만장자가 되었다는 것에 대해 놀라움일까.
“잘못 입금한 거 아니래? 자릿수를 잘못 입력했다던가!”
“그런 건 아닌 것 같던데. 오히려 적게 넣었다고 다음 달에 더 넣을 거라고 하더라.”
아, 크리스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금액이었기 때문이었나. 어디서였더라, 대기업을 졸업하고 받는 풀타임 잡의 평균 연봉이 3만 5천 파운드라는 이야기를 들었던 기억이 난다. 한화로 5천만 원이 조금 넘는 금액.
물가나 여러 가지를 고려하면 한국에서 3천만 원을 받는 정도일까.
“저, 저, 저 정말이야? 120만 파운드라고! 120파운드가 아니라!”
“그래, 정말이라고.”
음악이라는 것은 이상한 업종이다. 지난 일주일 동안 한 끼도 먹지 못한 누군가와 자가 비행기에서 스테이크와 와인을 먹으며 이동하는 누군가가 무대라는 동일한 장소에 존재할 수 있는 업종이다.
둘의 차이를 사람들은 인기라는 말로 뭉뚱그려 표현하지만, 그 인기에 따라 벌어들이는 돈이 하늘과 땅만큼이나 차이가 나는 곳이기도 하다.
만약 자신이 삼류 밴드의 삼류 보컬리스트였다면. 만약 목소리로 사람들을 감동하게 할 수 없어 콩쿠르에서 바로 탈락했었다면. 만약 음악을 만들어 내는 것에 재능이 없었다면.
이렇게 짧은 시간에 20억이라는 돈을 벌어들일 수 있었을까?
“가자, 사무실을 알아봐야지.”
복잡한 생각을 하는 것은 정현의 취향이 아니다.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것만 한다.
그렇게 사무실을 닫고 집을 나서며 말했다.
“응, 시내로 갈 거지?”
아직 아무것도 정해지지 않았다.
“아직은 모르겠네.”
차의 문을 열고 올라타며 시동을 걸었다.
***
맨체스터 지역 방송국의 프레드릭이 도와주었기 때문에 음원을 스트리밍 업체에 쉽게 등록할 수 있었고, 그로 인해 퍼블리셔가 필요하다 느낄 타이밍에 유니버설과 계약할 수 있었다.
그런데도 BBC 1에서 연락을 주었던 것은 굉장히 의외였다. 빌보드 전체 차트 1위를 몇 주는 해야 연락을 하는 이곳 영국에서 가장 올라가기 힘든 무대가 라이브 라운지였기 때문이다.
“운이 좋은 편인가?”
런던에 나와 있었다. 에릭의 라이브 라운지 출연 섭외가 굉장히 의외였던 터라 사기가 아닐까 싶어서 직접 나왔다. 여차하면 마커스에게 전화를 할 생각도 있었다.
약속 장소인 라디오 방송국 회의실. 정체를 숨기려고 선글라스를 쓴 정현의 옆자리에 크리스가 앉아 있었다.
“뭐라고?”
“운이 좋은 것 같다고.”
“누가?”
“내가.”
지금까지 살아오며 운이 좋다는 생각을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었는데, 요즘에는 하려는 것마다 잭팟을 맞아 버리는 느낌이다.
“그건 아닌 것 같은데.”
크리스는 운이 좋은 것 같다는 말을 부정했다.
“왜? 충분히 좋은 거 아냐?”
“운이라는 말로는 부족하지.”
“그런가.”
아무리 생각해도 결론이 나지는 않는다. 기차를 타고 런던을 향할 때만 하더라도 라이브 라운지의 캐스팅 디렉터라는 말로 사기를 치는 줄 알았거든.
그런데 방송국의 입구에서 제지를 하지 않는 것을 보고 아, 이건 사기가 아니었다고 하는 걸 알아버렸다.
그래서 여기에 올 때 사기면 테이블을 엎고 경찰에 신고하는 가상 시나리오를 작성하며 왔었는데, 시간 낭비만 한 셈이 되었다.
어차피 기차에서 할 일도 없었지만.
회의실의 문이 열리며 네 사람이 들어왔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스티브 홀든 입니다. 라이브 라운지의 메인 디렉터죠.”
살짝 살집이 있는 몸에 머리가 벗어진 남자가 손을 내밀며 악수를 청한다. 푸근한 인상과는 달리 강렬한 눈빛을 보여 주는 느낌.
“크리스틴 뮤직의 리입니다. 반갑습니다.”
“처음 뵙겠습니다. 크리스틴 로저스입니다.”
그다음에는 나머지 세 사람도 돌아가며 악수를 청한다.
“만나 뵙게 되어서 반갑습니다. 전화 드렸던 니콜라스 베일리입니다. 닉이라고 불러 주세요. 캐스팅 디렉터를 하고 있습니다.”
사무실에 전화를 걸었던 사람. 약간 태닝을 한 것 같은 피부를 가진 스타일이 좋은 미중년인 남자였다.
“아트 디렉터인 도나 해니먼입니다.”
둥근 안경을 쓰고 있는 고집 있을 것 같은 외모의 중년 여자. 하얀색에 가까운 금발 머리를 대충 묶고 있었다.
“카일라 리즈입니다. 라이브 라운지의 세션 팀을 이끌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입을 연 사람은 갈색 머리를 묶고 있는 히피 같은 차림의 젊은 여자였다.
한순간에 네 명이 등장하니 정신이 없었는데 메인 디렉터라는 남자가 입을 열었다.
“우리 라이브 라운지에서는 항상 최고의 아티스트만을 섭외해 왔습니다.”
“네, 잘 알고 있습니다. 지난번 무대도 봤고요. 그래서 더 의문이 생겼습니다. 데뷔한 지 겨우 삼 개월 된 에릭을 섭외하시겠다고요?”
앞에 앉은 네 명은 갑자기 따지는 투로 이야기하는 정현을 바라보며 가볍게 웃었다.
“이번 무대의 테마가 라이징 스타거든요.”
라이징 스타. 뭔가 가슴을 울리는 것 같은 단어가 나왔다.
음악이 싫은 음악천재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