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musical genius who hates music RAW novel - Chapter 38
037화
“북미와 영국 최고의 라이징 스타를 모아서 한 무대에 올리는 기획입니다.”
“미국 빌보드 1위의 안젤리나 던슨과 UK 차트 1위인 에릭이 만나는 거죠.”
메인 디렉터와 캐스팅 디렉터는 흥분하며 말했다.
“지금까지와는 다르네요? 항상 검증된 가수들만 캐스팅해 왔잖습니까?”
정현은 조금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어 다시 물었다.
“처음 기획은 4주째 빌보드 차트 1위를 차지하고 있는 안젤리나 던슨의 단독 무대였습니다만, 신인이기 때문에 단독 무대보다는 영국에서도 한 명을 내세우자는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에릭은 곁다리였구나. 이제야 섭외하려고 했던 것이 이해된다. 안젤리나라는 가수를 메인으로 세우고 에릭은 그 사람을 보조하는 역할로 쓰이게 될 거다.
“그러면 무대 기획에서 그 안젤리나 던슨인가 하는 사람을 띄워 주게 되겠군요?”
이건 민감한 문제다. 최악의 경우에는 그냥 들러리가 되어 그 안젤리나라는 사람의 코러스 취급을 받을 수 있으니까.
“안젤리나는 디즈니 키즈입니다. 북미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는 가수죠.”
디즈니 키즈인지 뭔지 알 바 아니다. 굳이 손해 보는 것을 알면서 자리에 가야 할 이유는 없지.
“저희와는 상관없는 이야기입니다. 그 동시 출연하는 가수와 동일한 노출 시간을 보장할 수 없다면 출연하지 않겠습니다.”
메인 디렉터인 스티브 홀든의 표정이 굳어진다.
“이것 보세요, 그 에릭인지 뭔지 하는 가수에게는 이게 천금 같은 기회일 수도 있다는 거 아십니까?”
천금 같은 기회라. 그럴 수도 있다. 만약에 시골에서 기타만 치다가 무대가 고파 상경한 가수 지망생 출신이라면 말이다. 그런 가수 지망생에게는 애초에 라이브 라운지 섭외를 하지 않겠지만.
그나저나 에릭인지 뭔지라니. 정현은 메인 디렉터의 입에서 저런 말이 나오는데도 라이브 라운지에 출연 의사를 보일 만큼 좋은 사람이 아니다.
“천금 같은 기회? 우리 에릭에게 그딴 건 필요 없어.”
정현은 자리에서 일어서며 말을 이었다.
“기회가 거기에만 있는 건 아니거든, 가자. 크리스.”
“앗! 응!”
정현은 BBC 텔레비전 센터를 나오며 말했다.
“그냥 전화로 거절할걸, 괜히 시간 낭비만 했네.”
“으응….”
크리스는 어딘지 모르게 안절부절못하고 있다.
“왜? 걱정돼?”
“응…. BBC잖아….”
그래, BBC였다. 영국 최대의 방송국. 한 시간짜리 TV쇼를 위해 수십억을 태우는 그런 방송국이었다.
“그게 뭐? 그런 건 아무런 상관없어.”
정현은 휴대 전화를 들어 마커스에게 전화를 걸었다.
[안녕하십니까, 리.]“안녕하세요, 마커스.”
[마크로 충분합니다. 그나저나 오늘은 어쩐 일로 전화를 주셨나요.]“BBC 1 라이브 라운지 때문에 런던에 와 있는데, 그곳에서 우리 에릭을 들러리로 세우려고 하더라고요.”
[아니! 제가 전화를 걸어서 어떻게든 메인으로…!]“아니에요. 우리는 안 나가기로 했어요. 그런데 좀 괘씸해서 그냥 BBC에서 제가 만드는 음악 모두를 사용하지 못하게 하고 싶네요. 그거면 됩니다.”
[알겠습니다. 스트리밍 플랫폼에 원작자에 의한 사용 불가를 넣으면 간단히 해결됩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제가 만든 곡 전부입니다. 에릭의 곡만 말하는 게 아니에요.”
[그렇게 하겠습니다. 런던에 계신다면 얼굴을 뵙고 이야기하는 건 어떻겠습니까? 제가 괜찮은 식당을 알고 있습니다.]“좋죠.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저희가 그쪽으로 갈게요.”
‘소심하다고 할 수도 있지만, 지금은 이게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이다. 하지만 기대해라. 겨우 에릭의 곡 두 개뿐이지만 앞으로 그보다 더 많은 곡을 공개하게 될 테니까.’
전화를 끊고 속으로 복수를 다짐했지만, 상황은 정현의 생각보다 크게 번지고 있었다.
그날 저녁 BBC 3 라디오 방송국.
현대 음악을 송출하는 BBC 1과는 다르게, BBC 3 라디오 방송국의 테마는 클래식과 재즈 등 현대 음악에서 벗어난 음악을 송출하는 곳.
최근 10년 사이에 저녁 8시를 담당하는 세계의 클래식 시간에 가장 사람들의 호응이 좋은 음악가는 이정현이었다. 그가 만든 두 곡의 교향곡과 여섯 곡의 피아노 독주곡은 시간도 다른 교향곡에 비해 짧고 감정이 풍부해 사람들이 자주 찾는 곡이었다.
담당하는 DJ의 멘트가 끝나고 PD는 음악을 틀려 했지만, 재생 불가라는 메시지만 보인다.
“큐! 어? 왜 이거 재생이 안 돼?”
그의 실황 앨범 CD는 딱 3천 장만 발매하여 구할 수가 없었기에 각 방송국에서는 모두 디지털 스트리밍으로 송출을 해야 했다.
하지만 세계의 클래식 PD는 오늘 첫 곡으로 재생하려던 곡이 재생되질 않자 옆에 대기 중이던 조연출에게 물었다.
“오늘 오후에 퍼블리셔에서 이메일 날아왔던데요. 이정현 곡 BBC에서 송출 불가라고.”
“뭐? 그게 무슨 말이야? 아니 그러면 어제 방송 콘티 들어갔을 때 말을 했어야지!”
“메일이 오늘 낮에 왔다니까요. 아까 말씀드렸었는데.”
조연출은 억울했다. 자신은 메일을 확인하면서 바로 전달했기 때문이다.
“얼른 다른 거라도 틀어! 방송 사고 나기 전에!”
일단 급한 불은 껐지만, 더 큰 일이 남아 있었다.
“그러면 월말 콘서트는?”
이번 달 말에는 런던 필하모닉의 연주로 이정현의 곡들을 연주하여 생방송으로 송출되는 계획이 잡혀 있었다. 게다가 그 장소는 2,700석의 사우스뱅크 센터 로열 페스티벌 홀. 런던 필하모닉의 주 공연 장소였다.
“당연히 안 되겠죠. 원작자가 송출 불가를 걸어 버렸는데.”
“퍼블리셔가 어딘데?”
“유니버설 뮤직 UK요.”
“사유가 뭔데?”
PD는 머리를 헝클어뜨리며 조연출에게 물었다.
“원작자의 요청이라던데요?”
“아이 씨, 갑자기 이게 무슨 일이야! 지금 악보 넘어가서 한창 연습 중일 텐데…. 이거 해결해야 해, 최대한 빨리! 전화 걸어서 물어봐.”
“이미 밤이에요. 업무 종료 시간이라고요.”
월말 콘서트까지 해결되지 않으면 오늘과 같이 작은 해프닝으로 끝나지 않는다.
“어? 이정현 행방불명이라고 하지 않았어? 그런데 어떻게 요청을 할 수 있지?”
“본인의 요청이라고 하는 거 보면, 돌아온 거겠죠. 죽은 게 아니었으니까 언제라도 돌아올 수 있는 거 아닙니까.”
조연출은 시큰둥하게 대답했다.
한 시간가량의 방송이 끝난 뒤 PD는 유니버설 뮤직에 전화를 걸어 따지려 했지만, 이미 업무가 끝난 저녁 9시였기에 전화를 받는 사람은 없었다.
정현은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이 일로 인해 그가 행방불명에서 돌아왔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하며, 유니버설 뮤직은 문의 전화에 시달려야 했다.
정현은 이 사태를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애초에 에릭의 두 곡만 방송 불가가 될 것이라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자신의 다른 곡들이 유니버설과 퍼블리싱 계약이 되어 있을 거라고는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다.
그리고 마커스가 자신이 말한 것을 그렇게 철저히 수행할 것도 알지 못했다.
그래서 다음 날 전해진 뉴스를 보게 되었을 때, 정현은 놀랄 수밖에 없었다.
[10년 전 행적을 감추었던 천재 음악가 이정현이 복귀한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충격을 전하고 있습니다.]“응? 뭔 말이야? 누가 복귀해?”
점심으로 스파게티를 먹고 있던 정현은 자신에 대한 뉴스를 보게 되었다.
“복귀한다고 했어?”
옆에 앉은 크리스가 정현을 바라보며 물었다.
“복귀는 누가 복귀를 한다 그래. 난 지금이 딱 좋구먼.”
지금이 가장 좋았다. 편하게 쉴 만큼 쉴 수 있고 놀 만큼 놀 수 있는 시간. 바쁘지 않았고 사람들에게 시달리지도 않았기에 만족스러운 시간이었다.
“뉴스에서는 복귀했다는데?”
자신이 이곳에 있다는 것이 알려지기라도 했을까 봐 마음 한구석에 불안이 스쳤다.
크리스는 다 먹은 그릇을 들고 싱크대로 향했고, 정현은 그런 크리스를 향해 불안감을 씻어내듯 말했다.
“그냥 헛소문이겠지. 내가 지금 이곳에 있다는 것도 마커스 말고는 아무도 모를걸.”
그래, 헛소문일 것이다. 돌아온다는 말도, 돌아오지 않겠다고 하는 말도 자신은 한 적이 없었으니까.
저런 가짜 뉴스를 만든 사람도 참 한심했다. 누가 10년 동안이나 잠적한 사람에게 관심을 둔단 말인가.
찌이이이.
집의 현관에 새로 달아 놓은 버저가 울렸다.
“아잇 깜짝이야! 하필이면 이런 타이밍에 누가 오고 난리야!”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긴장했었나 보다. 정현은 뉴스를 보며 이런저런 생각에 빠져 있다가 버저 소리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누구세요.”
현관문의 금속 체인을 걸어 둔 채 문을 살짝 열어 밖을 살폈다.
“오랜만입니다.”
영국은 기본적으로 욕심이 많은 나라다. 2차 세계 대전까지 식민지가 되었던 수십 개국과 그 인구 수억 명을 여전히 ‘커먼웰스’라는 이름의 끈으로 묶어 놓고 있는 나라.
그 끈 안에 있는 나라들은 대부분 영국 국왕이 최고의 통수권을 지닌 것으로 법이 보장하고 있었다.
작위라는 것도 그랬다. 영 연방 왕국 내의 국민에게만 줄 수 있으며 그 ‘커먼웰스’라는 끈 안에서는 지금도 확실하게 존재하는 그것.
중세 시대의 작위와는 전혀 다른 의미가 있지만 많은 사람이 ‘경’이라며 존경을 담아 칭하게 만드는 것만으로도 가치가 있다 여겼다.
정현에게 그 작위를 제안했던 남자가 자신의 앞에 있었다.
처음 보았을 때는 금발이었던 찰랑거리는 머리카락이 모두 하얗게 변했고 얼굴에도 주름이 늘어 있었지만, 여전히 미남 소리를 들을 것 같은 중년의 남자.
“오랜만이네요, 알버트 경.”
“제가 안으로 들어갈 수 있게 해주시겠습니까?”
문의 밖에서 정현을 바라보며 알버트라고 불린 사내가 말했다.
“당신만입니다. 옆에 붙어 있는 경호원들은 제외하고.”
“물론입니다.”
정현은 현관문의 체인을 제거하고 알버트를 안으로 들였다. 경호원들은 애초에 들어올 계획이 없었다는 듯이 밖에 남아 있었다.
“커다란 성에서 사시는 분이 이런 누추한 곳까지 오실 줄은 몰랐네요.”
“저라고 성에서 살고 싶어서 지내는 것은 아닙니다. 그곳에 있어야 할 필요가 있어서 지내는 것뿐이죠. 생각보다 불편하거든요. 성이라는 게.”
가시가 돋친 말도 요리조리 잘 피해 가는 이 사람은, 영국 왕실과 밀접한 관계를 맺은 공작이라는 높은 작위를 가진 사람이었다.
정현은 소파를 향해 다가가 앉기를 권하며 크리스에게 차를 가져다 달라 말했다.
그리고 그 차가 도착하기 전 정현은 입을 열었다.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작위나 귀화에 관한 건 이미 거절했습니다만….”
“이번에는 의뢰를 하러 온 겁니다. 물론 작위에 관심이 있으시다면 마음 같아서는 지금이라도 당장 드리고 싶지만, 지금 상황은 그리 썩 좋지 않거든요.”
크리스가 밀크티와 비스킷을 가져와 소파 앞의 탁자에 놓고 주방으로 돌아갔다.
그녀가 보였을 때 잠깐의 인사만 했을 뿐, 알버트는 제삼자가 대화에 끼는 것을 무척 꺼리는 눈치였다.
“상황이 썩 좋지 않다?”
“네. 아시다시피 연세가 좀 되니까요.”
이 말에 정현은 그가 무슨 말을 하는 것인지 알 수 있었다.
“그 좋아하시던 담배까지 끊으시면서 건강을 관리하셨지만, 올해는 넘기기 어려울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알버트는 담담하게 말했다. 마치 자신과는 전혀 상관없는 것에 대해 말하는 듯했다.
“우리는 그분의 마지막을 위한 최고의 음악이 필요합니다.”
음악이 싫은 음악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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