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musical genius who hates music RAW novel - Chapter 39
038화
“영 연방 50여 개국을 통치한 수장의 마지막을 장식할, 웅장하고 장엄하며 슬픈 최고의 장송곡이 필요합니다.”
“그걸 저에게 의뢰하신다는 건가요? 저는 영국 사람도 아닌데요.”
정현이 생각하기에 영국은 자국인에 대한 자존심으로 뭉친 나라였다. 그걸 외국인인 자신에게 의뢰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신이 만들어 낸 교향곡 을 쓰자는 의견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너무나도 강렬한 슬픔만 느껴지는 곡이라, 장례식을 TV로 접하게 될 수많은 국민들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것이라는 의견이 있었습니다.”
알버트는 곡을 만들어 낸 정현 본인도 기억도 나질 않는 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의 이야기를 듣자 음악들을 들었던, 수많은 사람이 울고 있던 모습이 생각났다.
“이미 수도 없이 많은 음악가가 만들어 놓은 장송곡이 있습니다. 그런 알려진 곡을 사용해도 되는 것 아닙니까?”
알버트는 우아한 손놀림으로 차가 담긴 잔을 들어 입에 가져갔다. 그렇게 한 모금을 목으로 넘긴 다음 천천히 잔을 내려놓고 말을 이었다.
“그럴 수도 있겠습니다만, 그 수많은 교향곡이 만들어진 곳은 대부분 독일과 오스트리아입니다. 알고 계실지 모르겠지만 현 왕가인 윈저 가문은 독일 작센에 뿌리를 두고 있죠.”
“그렇죠. 클래식의 발상지라고도 볼 수 있는 곳이니까요.”
“왕가는 1차 대전 당시에 독일과 전쟁을 치르면서 가문의 이름을 윈저로 바꾸었습니다. 그런 가주의 장례식에서 독일의 교향곡을 쓰는 것은 있어서는 안 될 일이지요.”
그렇게 생각해 보니 영국 출신으로 알려진 클래식 음악가 가운데 엘가를 제외하면 유명한 사람이 없다는 것이 떠올랐다. 왕실에서 직접 운영하는 예술 학교까지 있는데도 말이다.
“생각은 해 보겠습니다. 그렇지만 제가 직접 그분을 만나 뵌 적이 없어서 확답을 드리기는 곤란할 것 같네요.”
정현은 최대한의 예절을 갖추며 알버트에게 말했다. 다른 것보다 온 세상을 수십 년 동안 통치하다시피 해 온 사람의 일이었으니까.
“그렇겠죠. 처음에도 말씀드렸다시피 의뢰를 하러 온 것입니다. 의뢰라는 것은 받아들이는 쪽에서 수락해야 성립이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알버트는 하얀 머리를 쓸어 올리며 가벼운 미소를 보였다. 아마도 저 미소에 넘어가지 않은 사람이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아름다운 표정이었다.
“일단 생각은 해 보겠습니다.”
정현은 무겁게 이어지던 대화에 마침표를 찍었다.
“결정되시면 이쪽으로 연락을 주십시오. 즉시 모시러 오겠습니다.”
알버트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연락처가 쓰인 네모난 종이를 건네주었다. 처음에는 명함이라 생각했지만, 종이에는 이름도 직위도 주소도 아무것도 없이 숫자만 쓰여 있었다.
정현이 신기하다는 시선으로 종이를 바라보자 그는 자주 있었던 일인 듯 물어보지도 않았던 것에 답변해 주었다.
“이름이 힘이 될 수 있는 직위에 있어서, 될 수 있으면 공식적인 문서에는 이름을 남기지 않으려 하고 있습니다.”
자신은 겪어 본 적이 없는 또 다른 세상의 이야기였다. 직위에 관한 것도, 이름에 관한 것도.
문을 열고 그를 배웅하자 기다리던 경호원 둘이 그를 양쪽에서 보좌하며 멀어져갔다.
그들이 차를 타고 멀어지는 모습을 보며 한참을 서 있었는데 크리스가 다가와 말을 걸었다.
“무슨 일이야?”
자세한 내용을 말할 수가 없었다. 알버트의 말과 분위기에서 느껴지듯 이 일은 다른 사람에게 알려져서는 안 될 일일 거라는 느낌이 든다.
“응, 곡 의뢰.”
이렇게 대충 넘길 만한 사항은 아니었지만, 어쩔 수 없다. 말해 줄 수가 없기 때문이다.
“난 아까 왔던 그 사람 좀 무섭던데.”
알버트는 굉장히 잘생긴 사람이었다. 무서운 이미지와는 거리가 있는.
“그래? 잘생기지 않았었어?”
“잘생겼다기보다는 굉장히… 뭐라고 해야 하지? 그… 귀족 같은 느낌이었어.”
귀족 같은 느낌이라니. 그런 느낌도 있었던가? 정현은 머릿속으로 그의 모습을 떠올려 보았지만, 크리스가 말한 귀족 같은 느낌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었다.
“난 잘 모르겠는데. 그 귀족 같은 느낌이 무슨 말인지 말이야.”
“그 있잖아. 영화에서 왕족들이라든지….”
열심히 설명하려 하는 크리스와 이해하지 못하는 정현이 많은 대화를 나눌 수 있던 밤이었다.
고민은 길었지만, 결정은 짧았다.
[여왕께서 왕세손에게 선위하시겠다 선언하셨습니다.]선위란 왕이 죽기 전에 왕위를 물려주는 것. 그것을 선언하는 모습이 나오지 않고 선언문을 리포터가 읽는 것을 보면 건강이 얼마나 안 좋아졌는지 알 수 있었다.
수십 년 동안 왕세자의 자리에서 왕위를 기다리던 왕세자가 아닌 왕세손에게 자리를 물려주는 것은 조금 의외였지만.
아마 왕세자가 거절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할아버지도 이미 80살이 넘었으니.
어쨌든 이 결정은 뉴스의 머리기사와 신문의 1면을 장식할 정도로 큰 의미가 있는 일이었다.
그 파장은 다이애나 왕세자빈이 파리에서 교통사고로 사망했을 때 보다 더 컸다고 한다.
왕위에서 물러난다고 선언한 왕이 아직 머무르고 있는 버킹엄 궁전 앞은 평소처럼 관광객이 아닌 기자들로 가득 찼다.
뉴스에서는 그 궁전의 모습을 보여주며 물러날 왕의 생애에 관한 이야기와 새로운 왕이 될 왕세손의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엄청나네….”
평소처럼 펍의 바에 앉아서 TV를 보고 있던 정현이 말했다.
“엄청나지. 여왕님이 있어서 아직 연합 왕국이 유지되고 있던 거라고.”
로스는 평소와는 다르게 진지한 느낌으로 말을 했다.
“런던에 다녀와야 하나?”
“런던? 갑자기 무슨 말이야? 런던으로 옮기려고?”
정현은 맥주를 들이켜며 말했다.
“누가 곡 좀 써 달래서.”
그런 정현의 말에 로스는 코웃음을 치며 답했다.
“써 달라고 하면 써 주면 되지. 에릭한테 곡 써 준 건 돈도 안 받았다며.”
“그럴까?”
정현이 결심한 것은 그 전이었지만, 로스의 말에 자리에서 일어날 수 있었다.
그리고 다음 날 정현은 혼자 런던으로 향했다. 대부분의 일정에서 함께하던 크리스가 함께하지 않은 것은 굉장히 의외였지만, 정현은 그녀가 사무실에 남아 있기를 바랐다.
또한 주변이 소란스럽게 되는 것을 막기 위해 알버트가 차를 보내주겠다고 하는 것도 거절하며 혼자 기차에 올랐다.
차를 운전하는 것보다 편하기 때문이었다. 가만히 앉아 있어도 자신이 원하는 곳에 데려다준다는 믿음과 졸고 있어도 안전하게 데려다준다는 신뢰성이 복합된 것에서 기차를 고를 수 있었다.
그렇게 도착하게 된 런던 유스턴 기차역에는 정현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었다.
“알버트 경을 보좌하는 필립 오닐 이라고 합니다. 이정현 님의 수행을 명하셔서 이 자리에 오게 되었습니다. 여행은 편안하셨는지요.”
필립 오닐이라는 사람의 말투는 중세 시대에 머물러 있는 것 같았다. 검은색 정장에 베이지색 바바리코트, 그리고 검은색 페도라를 쓰고 있는 말 그대로 영국 신사 같은 차림이었다.
둥근 안경 뒤에 숨겨진 눈빛은 차가웠지만, 그의 목소리는 중후한 맛이 있었다.
“안녕하세요. 오닐 씨. 기차는 뭐 다 똑같죠.”
“필립이면 충분합니다. 제가 앞서 안내하겠습니다. 함께 가시죠.”
필립을 필두로 네 명의 수행원이 함께하고 있었다. 이들은 정현을 둘러싸고 필립의 뒤를 따라 차에 올랐다.
처음 도착한 곳은 맞춤복을 만드는 양복점. 정현이 태어나 처음으로 방문해 보는 맞춤복 전문점은 적응하기가 어려웠다.
전신 거울 앞에 놓인 둥근 나무판에 올라간 정현에게 재봉사가 말했다.
“팔을 살짝 들어 보실까요.”
“아, 네, 넵.”
팔을 살짝 들자 줄자로 치수를 잰다.
“됐습니다. 다음에는 허리와 어깨를 재도록 하겠습니다.”
하얀 콧수염을 가진 재봉사는 줄자를 가지고 정현의 몸 이곳저곳의 치수를 재었다.
여유가 있는 목소리와는 다르게 손놀림은 빨랐고 정확했다.
정현의 모든 치수를 적어넣은 종이가 만들어지자 그는 말했다.
“내일 아침까지는 만들어 두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대공께서도 감사의 인사를 전하라 하셨습니다.”
필립은 특유의 중세 시대 말투로 재봉사에게 말을 건네며 가게를 나섰다.
“알현하기 위해 필요한 일입니다.”
물어본 적도 없었지만, 그가 말해 주었다.
“알현이요?”
정현이 물었다. 왕을 알현한다는 일은 미리 듣질 못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기차를 타기 전에, 그 왕의 건강이 좋지 않아서 선위를 하는 것이라는 뉴스를 보았던 기억이 아직 남아 있었다.
“네, 내일 오후에 버킹엄궁에 방문해 직접 알현하실 겁니다. 이렇게 귀찮게 해 드려 죄송합니다만, 지금 입고 오신 옷이 궁에는 어울리지 않아 부득이하게 옷을 먼저 만들게 되었습니다.”
그의 말은 기품이 있었다. 양해를 구하는 것에도 익숙해 보였다.
하지만 결코 호락호락해 보이는 사람은 아니었다.
정현은 자신의 몸에 걸쳐진 옷을 한번 훑어보았다. 평소에 입던 청바지와 운동화가 보였다. 이런 옷을 입고 왕을 만나러 갈 수는 없는 일이었기에, 자연스럽게 그가 하는 말이 이해되었다.
“아, 네. 괜찮습니다. 공짜 옷도 생기고 좋죠.”
큰 불만을 느끼지는 않았다. 공짜로 옷을 만들어 준다는 것도 나쁘지 않은 일이었다.
저런 맞춤옷을 만들어 주는 곳에서 옷을 맞추기 위해 치수를 재는 일도 처음 있는 일이었지만, 괜찮은 기분이었다.
자신을 위해 세상에 단 하나뿐인 옷이 만들어지는 것이니까.
다시 차에 올라 이동한 곳은 거대한 저택이었다.
저택의 거대한 문을 열고 들어가자 양옆으로 서 있는 십수 명의 메이드들이 보였고, 그 끝에는 정장을 입은 나이 든 노인이 허리를 꼿꼿하게 세운 채 정현을 바라보고 있었다.
“오늘부터 이곳에 머무르실 겁니다. 필요한 것이 있으시다면 부담 갖지 마시고 시종장을 불러 명하시면 됩니다.”
“시종장인 아서라고 합니다.”
정장을 입은 노인이 다가와 허리를 굽히며 자신을 아서라고 칭했다.
부담이 되지 않을 수가 없는 일이었다. 태어나서 처음 겪어 보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저 그냥 호텔에서 지내면 안 되나요…?”
정현은 자신에게 다가온 압박감에 호텔에서 지내고 싶다 말했다.
“이런 말씀 드리기 죄송합니다만, 그것은 불가합니다. 이곳에 방문하신 이유를 알고 계시겠지만, 저희에게는 정현 님의 안전과 보안을 확보해야 하는 의무가 있습니다. 이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
이곳은 화려한 감옥 같았다.
거대한 건물의 천장에 매달려 있는 샹들리에부터 끝없이 이어진 창문들까지.
2층으로 연결된 거대한 계단의 난간과 바닥에 깔린 카펫들의 무늬조차 압박감이 느껴졌다.
불과 기차에서 내렸던 몇 시간 전까지, 이렇게 거대한 저택의 한복판에 홀로 남겨질 줄은 몰랐지만, 정현은 이제야 실감할 수 있었다.
자신이 영국 왕실에 관련된 일로 이곳에 왔다는 것을.
“그냥 안 한다고 할걸….”
정현은 안내받은 침실에서 울상을 지었지만 이미 돌이킬 수 없었다.
음악이 싫은 음악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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