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musical genius who hates music RAW novel - Chapter 4
003화
공부를 안 하던 사람이 수업을 이해하는 건 참 힘들다.
한 학기가 보통 5개월 정도라고 치고 두 개의 학기와 두 번의 한 달짜리 방학이 1년을 채우게 되는 대한민국의 고등학교. 그 가운데 한 학기를 통으로 빠져 버린 데다가 중학교 3년의 수업도 거의 들어 본 적이 없던 나는 수업의 내용 자체를 거의 이해할 수 없었다.
즉, 내 머리는 초등학교 이후로 지식이란 걸 음악 말고는 집어넣어 본 적이 없는 머리라는 거다. 지식도 없고 상식도 없지.
지금은 고등학교 2학년 4월. 수능을 보기까지 대략 1년 6개월이 남았다. 문제는 내가 수학의 정석은커녕 중학교 때 배우는 2차 방정식도 모른다는 점.
나뿐만이 아니라 체육, 예술 특기자들은 죄다 이 모양일 거다…. 수업을 들을 시간이 없으니까.
게다가 점심시간까지 지나서 식곤증도 몰려온다.
정기 연주회를 열면서 활동을 하기 시작한 큰누나 덕분에, 이제 나는 금전적인 문제는 신경 쓸 필요가 없었다.
뭐, 그것 말고도 내가 예전에 발매했던 공연 실황 앨범 같은 게 아직도 팔려 주는 덕에, 원하는 건 거의 다 살 수 있는 부자라고 볼 수 있겠지만 사고 싶은 게 없다. 하고 싶은 게 없다.
“미친… 영어 말고는 죄다 모르겠다아….”
돈이 있으면 뭐 하나. 해외 콩쿠르를 자주 다녔던 덕분에 영어는 제법 쓸 만한 수준인데 나머지 과목은 진짜 말 그대로 망했다.
이 상태로는 진짜 음악 특기생 타이틀을 빼면 갈 수 있는 곳이 없다.
1교시 국어. 정몽주의 단심가에서 화자가 하고자 하는 말은 무엇인가?
화자가 뭐지? 지화자? 추임새인가.
3교시 세계사. 산업 혁명은 언제 어디에서 일어난 것인가?
망할 다 때려치고 산업 전선에서 노가다나 뛸까 보다….
5교시 화학 II. 에탄올의 화학식은 무엇인가?
아, 이건 알지. 상처 소독할 때 쓰는 거.
이런 기본적인 것들조차 나는 알 수가 없었다. 수업 진도를 따라가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상황.
학교의 수업을 이해할 수가 없으니 차라리 과외를 받는 게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책상에 엎드려 있으려니 누군가가 나를 불렀다.
“정현아, 이정현!”
“아, 왜!”
멍청한 나 자신에게 울분이 터져 소리를 빽 하고 내질렀더니, 나를 부른 녀석은 살짝 당황한 눈초리로 말을 이었다.
“미, 미안. 내가 깨웠어?”
“후우…. 왜?”
담임 선생님이 나를 찾았다는 소리를 듣고 교무실로 향했다. 나를 찾을 이유가 있나? 담임의 입장에서는 나를 걱정할 만한 학생으로 분류하지는 않았을 거다.
왜냐고?
나를 수도 없이 많은 음악 콩쿠르에서 우승을 했던 엘리트 음악인으로 알고 있을 테니까.
미국의 줄리어드, 영국의 왕립 음악 대학, 프랑스의 국립 고등음악원 등등 수많은 예술 대학교에서 나를 보내 달라는 레터들을 받았다고, 이미 한국대 교수님이신 수원이네 어머님께 전해 들었거든.
문제는 내가 음악을 싫어한다는 거지만 아직 담임은 모른다. 말해 줄 필요도 없고.
교무실 문에 살짝 노크를 한 뒤 열고 들어가니 넓은 교무실에 홀로 자리에 앉은 우리 반 담임인 김용덕 선생님이 나를 반겼다.
“어, 왔니?”
“무슨 일이세요?”
담임은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웃으며 나에게 말을 했다.
“이번에 전국 학생 대회가 열린다는데….”
“저 이제 대회 못 나가요.”
긴말이 나오기 전에 잘라 버렸다. 분명 큰 대회에 나가서 학교의 위신을 세우고 어쩌구 하는 내용이겠지.
나갈 마음도 없지만, 나갈 수 있는 콩쿠르도 없다. 이건 사실이니까.
“그, 그러니… 사고 친 건 아니… 지…?”
“협회에서 제발 나오지 못하게 해 달라고 저 가르쳐 주신 교수님께 연락했다고 하더라구요.”
별거 아니라는 듯이 가볍게 대답해 주었다. 김용덕 선생은 안도의 한숨과 쓴웃음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그렇구나…. 어쩔 수 없지. 알았다. 가면서 여기 유인물 애들에게 전달해 주겠니?”
“네.”
나는 양손 가득 회색 갱지에 프린트된 유인물을 들고 교실로 향했다.
어려서부터 나는 평범한 사람이 되기를 원했다. 평범한 고등학교, 대학교 그리고 직장인까지.
그리고 먼 훗날에는 평범한 가정을 만들어서 여우 같은 부인과 토끼 같은 자식들까지. 어릴 때부터 같이 놀았던 친구들의 집들이 우리 집과는 너무 달랐기 때문일 거다.
평범이라는 레일에서 1천 광년 정도 떨어져 있는 우리 집안이 너무나도 싫었기 때문이겠지.
그나마 김수원과 오랫동안 친하게 지냈던 이유가, 우리 집과 비슷한 가정환경이었기 때문이다. 사업가인 아버지와 음악가인 어머니.
매일매일 음악을 들어야 했다. 모차르트, 하이든, 베토벤, 파가니니, 리스트, 차이코프스키…. 그리고 이름을 알 수 없는 그 누군가의 음악까지도.
이제는 콩쿠르에 나가지 않아서 그 지겨운 음률들을 듣지 않게 된 지 1년이 다 되어가는데, 아직까지도 머릿속에서 끊임없이 음악소리가 울리고 있다.
이 소리들을 듣고 싶지 않아서 매 순간 나는 다른 무언가에 집중해야만 했다.
게임, 소설, 만화 등 온갖 것들을 접하며 집중했지만, 한순간이라도 방심해서 집중이 끊어지면 다시 내 머릿속을 차지해 버리는 음악소리 덕분에 나는 두통약을 달고 살아야 하는 몸이 되었다.
그렇게 1년이 지난 지금, 여태까지 단 한 번도 들어 본 적 없는 음악의 편린들이 내 귓가를 울린다.
바이올린, 콘트라베이스, 첼로, 클라리넷, 바순, 오보에…. 처음 듣는 오케스트라의 연주가 머릿속에 울려 퍼진다.
가끔은 들어 본 적 없는 소리가 섞여 있어 이건 또 어떤 악기인가 궁금해지는 내 자신이 싫다.
언제쯤 이 소리가 들리지 않게 될까?
소음이 좋다.
버스 정류장에 앉아 지나가는 차들의 소리와 사람들의 말소리에 귀를 기울이면, 머릿속에서 울리는 소리들이 점차 들리지 않게 되어간다.
사람들이 각각 웅성대는 소리와 대로변의 차들의 소리가 합쳐져, 정말이지 멍하니 있기 딱 좋은 소리를 만들어 준다. 이런 것이 바로 힐링이 아닐까?
학교 앞 버스 정류장에는 의자가 없기 때문에, 양재역에 도착한 뒤 그대로 버스 정류장에 앉아 버렸다.
양재대로는 12차선이나 되는 넓은 도로라서, 항상 엄청난 소음을 품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여기에서 집까지는 걸어서 20분이나 걸리지만, 이곳의 버스 정류장에 앉아 시간을 보내는 일은 내 가장 큰 취미 생활이다.
말 그대로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게, 생각할 수 없게 만들어 준다.
뉴스에 몇 번 나왔다고, 잡지에 몇 번 나왔다고 나를 알아보는 사람은 없다. 대한민국 땅에서 음악이란, 정말 배부른 사람들이나 하는 일이니까.
삶에 치여 바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잔뜩 있는 이곳에서, 나는 그들처럼 그저 스쳐 가는 돌멩이 같은 사람일 뿐이다.
부르르르.
바지 주머니 속 휴대폰이 진동한다. 집중이 깨지고 다시 음악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한다.
[어디니?]나긋한 어머니의 목소리가 음악 소리와 섞여 들려 온다.
“양재역이에요. 지금 막 버스에서 내렸어요.”
이제 집에 돌아가야 할 시간이다. 나는 가방을 고쳐 매고 자리에서 일어난다.
***
4월의 어느 토요일. 우리 학교 야구부는 춘계 주말 리그에서 이겼고, 나는 과외 상담을 받기로 했다.
무려 영어를 제외한 전 과목 과외.
작은누나의 친구의 친구라고 했던가?
그러면 친구인 거야, 아닌 거야, 뭐야? 무슨 사이인 거야?
잘 모르는 사이일 테지만 결국 한두 다리만 건너면 모두 아는 사람이 된다고 했으니까 덮어 두기로 하자. 사나이는 시시콜콜한 건 묻지 않는 거라 했다.
한국 대학교 4학년인 작은누나와 동갑이라고 했지만 오늘 오는 사람은 2학년이라고 한다. 왜 2학년일까? 휴학을 한 걸까?
어쨌거나 나보다 다섯 살이 많은 사람이라고 한다. 경영학과 학생이라고 했는데 과외 전문이라고 들었다.
한국대에서는 일부러 졸업을 하지 않고 휴학한 채 고액 과외 아르바이트하는 사람이 많다고 한다. 아무래도 우리나라에서 가장 들어가기 어려운 대학이라서 그렇겠지.
그래도 나는 비교적 가르치기 쉬운 학생이 아닐까? 머리에 들어 있는 게 없으니까. 쏙쏙 잘 들어가지 않을까?
띵~ 동~
초인종이 울리고, 나는 대문의 비디오 모니터를 확인하며 문을 열었다.
“안녕하세요.”
단정하게 무난한 회색 정장을 차려입은 아낙네다. 집안사람들이 죄다 키가 커서 이렇게 키가 작은 여자와 대화를 나눠 보는 것은 진짜 오랜만인 것 같다.
160 정도 되려나? 단발머리에 동그란 안경을 끼고 있다.
“어서 오세요.”
현관을 열어 집 안으로 들이며 나는 거실로 앞장섰다.
“죄송해요. 집 안에 저밖에 없네요. 음료수는 뭐로 하시겠어요? 차? 커피? 주스?”
드라마를 보고 배운 접대법이다. 보통 사람들은 이 세 가지를 즐겨 마신다고 했다.
“커피로 부탁드려요. 감사합니다.”
“네, 잠시 앉아 계세요.”
캡슐 커피 머신에 캡슐 하나를 넣으며 잔을 준비한다.
어머니는 차기작 회의로 인해 출판사에 가셨고 큰누나는 정기 연주회, 작은누나는 놀러 나갔다.
집에 있는 사람이 나밖에 없으니 커피를 만드는 일도 가져가는 일도 내가 해야만 한다.
두 개의 머그잔을 손에 쥐고 거실로 향했다.
“처음 뵙겠습니다, 이정현입니다.”
나는 살짝 미소를 섞어 잔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네, 처음 뵈어요. 오늘부터 과외를 맡은 박재경이라고 해요.”
처음 보는 사람이라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서 살짝 당황하고 있었는데, 다행스럽게도 먼저 말을 걸어 주었다.
“고등학교 2학년이면 한창 공부를 시작해야 할 때네요. 그런데 특기자로 음대 가시는 거 아닌가요? 굳이 과외를…?”
이 사람 나를 조사해 온 것 같다. 특기자를 운운하는 거 보니 말야.
“수능 보려구요. 음대는 가고 싶은 생각이 없어서.”
박재경 씨는 나의 말에 놀라서 그 기능을 멈춰 버렸다.
“네…. 네? 뭐라구요? 이정현 씨 국보급 성악가라고….”
“음대는 가고 싶은 생각이 없다구요.”
“왜… 왜죠?”
“싫어하거든요. 음악.”
“어…. 에?”
납득하지 못했다는 얼굴로 계속 얼굴에 물음표를 띄우고 있다. 하지만 굳이 설명해 줘야 할 필요를 느끼질 않아서 이해할 때까지 조용히 기다려줬다.
“저 음악 싫어한다구요.”
“…….”
재경은 정신 공격을 받았다. 그 효과는 굉장했다.
우리 집 거실의 시간은 멈춰 버렸다.
“그럼 실례지만 지금 학교 등수는…?”
“1~2등 정도 해요. 뒤에서.”
“아….”
재경은 울고 말았다.
영어를 제외하면 학습 상태가 중학생 수준도 되질 않는, 고등학교 2학년을 만나 절망을 마주하게 된 과외 선생님 재경.
거듭된 정신 공격으로 인해 충격을 받아 일찍 돌아갔다. 과외는 월요일부터 하는 걸로 결정되었다.
집 안에 혼자 남은 나는 다시 머릿속에서 울리기 시작한 음악소리를 멈추기 위해, 멍하니 웹 서핑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웹 서핑은 힘들다. 조금이라도 방심하면 다시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하니까.
“아~ 대체 어떻게 해야 이 소리를 없앨 수가 있을까?”
들려오는 음악소리는 다양하다. 클래식만 듣던 때는 오케스트라만 들려 왔지만, 밴드 활동을 하며 나도 모르는 사이에 밴드 음악을 듣게 된 지금은 밴드 음악도 들려 온다.
이 소리를 없애기 위해서는 다른 무언가가 필요하다는 생각에 무심코 TV를 틀었다.
멍하니 있기엔 참 좋은 게 TV다.
하지만 토요일에 TV를 본 적이 거의 없어서 잊고 있었다.
“아….”
젠장…. 토요일 오후에는 가요 순위 프로그램을 하는구나….
잠시 멍하니 있다 급하게 다른 채널로 돌렸더니, 이제는 머릿속에서 가요까지 들려 오기 시작했다.
망했다….
음악이 싫은 음악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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