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musical genius who hates music RAW novel - Chapter 42
041화
“아니, 그게 무슨 문제라고 한 것은 아닙니다만….”
“…….”
나는 나름 진짜 열심히 만들었다. 평소에 에릭하고 노는 것보다 더 많은 신경을 썼다. 한 나라의 왕에게 헌정하는 곡이니까.
그런데 왜 저런 의심하는 눈빛으로 나를 보는 거지? 저런 눈빛을 보았던 적이 있었다. 기분이 썩 좋지는 않았다.
“일단 열심히 만들었으니 들어 보신 후에 이야기하죠. 알버트 경. 메건.”
슬픔을 테마로 한 곡부터 시작했다. 슬픔이라는 감정과 괴로움이라는 감정은 예전에 많이 꺼내 보았던 기억이 있기 때문에 그리 어렵지는 않았다. 어려웠던 것은 위엄 쪽.
첼로로 시작하는 무거운 멜로디가 흘러나온다.
그 멜로디는 슬프지만 애처롭지는 않다.
가슴을 찌르는 아픔은 느껴지지만, 귀를 간지럽히지는 않는다.
그렇지만 애처로운 슬픔이어서는 안됐다. 한 시대를 다스린 왕의 죽음이니까.
중후한 슬픔.
중후한 슬픔이 온몸을 감싼다.
하이라이트에 다가설 때 팀파니로 감정을 간지럽힌다.
천천히, 하지만 늘어진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도록.
클라리넷의 애절한 멜로디가 콘트라베이스의 토대 위에서 춤을 추며 마무리.
아직은 컴퓨터로 만들어 낸 가상 악기의 소리이기 때문에 그 무게가 조금 가볍지만, 누군가의 손에서 빚어내는 음이라면 조금 더 내가 원하는 것에 가까워질 것이다.
그래. 이게 내가 처음 생각한 왕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하지만 장송곡으로 쓰기에는 부족하다. 이 안에는 아직 슬픔만이 가득 차 있을 뿐이다. 중후하지만 슬프기만 한 곡이다.
어디 외딴곳에서 살고 있다 떠난 그런 영지의 귀족을 기리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중후하지만 위엄이 서려 있지는 않았다.
짧았던 첫 번째 곡이 끝났다.
“어떠셨습니까?”
두 사람에게 물었지만 돌아오는 답변은 없었다.
“이… 이건….”
알버트가 물어보는 것 같다. 친절하게 답변해 주어야겠지. 나에게 곡 의뢰를 한 의뢰인의 대리인이니까.
“아, 제목은 아직 정하지 않았지만… 음…. 슬픔 1번 정도로 해 두죠.”
“아니, 이정현 님. 이 곡은 보다 더 슬프지 않습니까….”
이 곡은 슬픔이 중점이었기 때문이다. 이라는 그 실황 앨범에 들어 있던 곡은, 사실 슬픔이라기보다는 잠을 자고 싶었던 마음이 가득 담겨 삶에서 잠을 빼앗긴 상실감으로 이루어져 있던 것이었으니까.
은 감정적인 표현에서 부족함이 많이 드러나는 곡이었다.
“주제가 슬픔이었으니까요.”
말을 하며 고개를 돌려 알버트의 얼굴을 바라보니 지루했는지 눈이 빨갛게 충혈되어있었다. 그 옆으로 보이는 메건의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잠들었는지 고개를 숙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정말 대단한… 아니, 무서운 분입니다. 당신은….”
원하는 대로 열심히 만들었는데 무섭다고 말하면 왠지 의욕이 떨어지잖아….
“애초에 2층에 올라올 때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알버트 경. 이 곡들은 애초에 제가 원하는 수준에 올라온 곡들이 아닙니다.”
알버트의 얼굴이 창백하게 굳어가고, 조금 전까지는 매우 아름다웠었던 것만 같은 콧물을 흘리는 못난이가 고개를 들었다.
“슬픔 2번과 3번은 1번보다 더 많이 슬플 겁니다. 1번은 감정을 제대로 잡지 못했던 첫날 만들었던 곡이거든요.”
“커헉….”
“…….”
“그럼 2번으로 이어서 들어 보실까요?”
“커흠. 커흠. 아닙니다. 이 정도면 충분히 기대 이상이었습니다. 완성되면 말씀해 주십시오. 그때 들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아까 전까지만 해도 기대감에 차서 들어 보고 싶다고 했던 사람이 아니었다. 실망한 건가?
“그럼 위엄 1번을 들어 보시겠어요?”
“아닙니다, 저는 급한 볼일이 생각나서… 죄송합니다. 이정현 님. 제 쪽에서 찾아왔으면서도 먼저 자리를 비워야 할 것만 같습니다.”
급한 일이 있었는데도 곡의 완성도를 위해 찾아와 주다니. 알버트는 확실히 왕가에 대한 충성심이 가득한 인물임에 틀림이 없다.
“바쁘신 일이 있으신 와중에도 찾아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알버트 경. 완성도가 떨어지는 곡을 들려 드려서 실망하신 건 아닐지 모르겠습니다.”
“아, 아닙니다. 메건, 너는 이곳에서 이정현 님을 도와라. 알겠지?”
“…네에….”
메건이 콧물을 닦으며 말을 했다. 잠이 들면 콧물과 침이 나오곤 하니까 이 정도는 이해할 수 있었지만, 기껏 열심히 만들어 놨는데, 잠이 드는 건 실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공작가 손녀니까. 내가 이해하기 싫어도 해야겠지.
“메건이 남아 이 저택에 머무르며 도와드릴 겁니다. 만약 더 필요한 게 있으시다면 저에게 말씀해 주십시오. 제가 무엇이든 가져다드리겠습니다.”
알버트가 정말 급했는지 자리에서 일어나 버렸다.
“아, 저기. 부탁하고 싶은 게 있습니다.”
“말씀하십시오.”
“감자 칩하고 초콜릿 그리고 탄산음료를 좀 많이 먹을 수 있게 해주세요. 아서는 건강에 문제가 생긴다면서 잘 안 주더라고요.”
아서는 항상 ‘이미 많이 드셨습니다.’라고만 말하며 더 주지 않았다.
그래서 의욕이 떨어져 작업 중간에 멈추었던 것도 여러 번. 작업을 하다 보면 단 것이 엄청나게 당기거든.
“…그것이 다인가요?”
“네 그게 답니다. 어차피 작업은 여기 컴퓨터로 하니까요. 딱히 필요한 건 없습니다.”
“알겠습니다. 그러면 다음에 완성의 연락을 하시게 되면 그때 뵙겠습니다.”
“급한 일이 있으신데 붙잡아 두어 죄송합니다. 다음에 뵙도록 하죠, 알버트 경.”
알버트는 엄청나게 급한 일이 있었는지 빠르게 사라져갔다. 이렇게 바쁘게 사는 사람이 나를 도와줄 사람까지 찾아주다니.
나는 몸을 돌려 메건을 바라보며 말했다.
“혹시 악보 잘 그리시나요, 메건?”
“악, 악보요?”
무슨 일을 하는지도 모르고 이곳에 왔나 보다. 내가 노예상이었으면 어쩌려고 자신의 손녀를 아무런 설명도 하지 않고 데려온 거지?
“제게 필요한 사람은 제가 만든 음악을 악보로 만들어 줄 사람이에요.”
“이 곡을요?!”
“아뇨, 이건 의뢰받은 곡이 아니니까. 의뢰받은 곡이 완성되면 그걸 악보로 만들어 주시면 됩니다.”
완성되지도 않은 곡을 굳이 악보로 만들 필요는 없다. 의뢰받은 곡은 대관식과 장례식에 쓰일 두 곡뿐이니까.
메건은 작게 한숨을 쉬며 대답했다.
“휴우…. 네, 알겠습니다. 만드시는 걸 구경하는 건 상관없나요?”
“그게 재밌지는 않을 텐데 구경하시려고요?”
생긴 거랑 다르게 다른 사람을 관찰하는 취미가 있는 아가씨였던 것 같다.
“네, 저도 작곡과라서 꼭 보고 싶어요.”
메건의 얼굴이 빨개졌다. 역시 이상한 쪽의 취미가 있는 사람이었나.
하지만 예의는 지켜야 한다. 상대는 공작가의 손녀니까.
“아! 그러셨구나, 그러고 보니 과도 몰랐었네요. 어쨌거나 잘 부탁드립니다. 만나서 반가웠어요.”
인사를 하고 방의 문을 열어 준다.
“앗, 나가서 작업하는 건가요?”
“아뇨, 이제 낮잠 시간이라 잠을 좀 자두려고요. 사용하실 방은 시종장인 아서 씨에게 말해 주시면 됩니다.”
잠을 자는 것은 중요하다. 몹시 중요하다. 아마도 그걸 깨닫게 되는 순간이 이 아가씨에게도 찾아올 것이다. 만약 불면증에 걸리게 된다면.
나는 손을 저어가며 메건을 방에서 내보냈다.
나른한 오후의 햇살이 비추니 조금 더운 느낌이라 커튼을 치고 에어컨을 틀며 베개에 머리를 파묻었다.
이제 좀 살 것 같다.
***
잠을 자고 일어났을 때는 저녁을 먹을 시간쯤이었다. 계속 단것만 먹으면서 작업을 했더니 뭔가 칼칼한 게 당겼다. 매콤한 김치찌개나 육개장 같은.
침대에서 이불을 걷으며 일어나 옷을 챙겨입었다. 실내에서 신발을 신는다는 게 생각보다 굉장히 불편했지만, 어차피 청소는 다른 사람들이 해 주는 거니까.
계단을 타고 1층으로 내려오자 아서와 메건이 보여 미리 말을 했다.
“아직 식사 준비 안 했죠? 하지 않으셨다면 나가서 먹고 오려고 하는데요.”
“아, 일어나셨습니까. 식사는 언제나 메뉴를 정해 주시기에 아직 준비하지는 않고 있었습니다. 걱정 말고 다녀오십시오.”
“항상 고마워요.”
먹고 싶은 걸 못 먹으면 기분이 별로기 때문에 메뉴는 매번 물어볼 때마다 정해 주고 있었다. 그리고 영국의 가정식은 자극적인 음식을 좋아하는 한국인에게 그리 맛있는 편이 아니거든.
“저, 저기….”
“네?”
메건이 말을 걸어왔다.
“저도 따라가도 되나요?”
따라온다고? 한인 타운으로?
“오셔도 상관없기는 한데, 메뉴가 좋아하실 만한 게 있을까 모르겠네요. 아서, 택시 불러 주세요.”
“예. 알겠습니다.”
한인 타운은 런던의 바깥에 있기 때문에 나갔다 들어올 때 혼잡 통행료 8파운드(약 12,000원)를 내야 한다.
과자나 음료수에 8파운드를 사용하는 건 하나도 안 아까운데, 괜히 나갔다 올 때 돈 내는 건 안 내도 되는 돈을 쓰는 거라 아까워 미칠 것만 같았다.
그래서 한인 타운을 갈 때는 택시를 이용하려 한다. 물론 택시비가 더 들어가기는 하겠지만 이건 기분 문제니까.
“한식 드셔본 적 있어요?”
나는 메건에게 물었다. 한식이 외국인에게는 굉장히 이질적인 음식이기 때문에 메뉴를 미리 골라놓아야 할 것 같은 기분이었거든.
“아뇨….”
너는 삼겹살 당첨. 첫 한식에는 무조건 불고기랑 삼겹살이지. 호불호가 없거든.
“택시가 도착했다고 합니다. 가시지요.”
정원 앞에는 블랙캡이 서 있었다. 기본 택시를 불러 줘도 괜찮은데 요금이 비싼 블랙캡을 부르다니… 차라리 우버를 불러 달라고 할 걸 하는 후회가 들었지만, 내 안의 아서는 우버가 뭔지 모를 것 같은 이미지였다.
아서가 앞장서서 택시의 문을 열어주며 말했다.
“일이 끝나면 전화 주십시오.”
“알겠습니다. 쉬고 계세요.”
택시 기사에게 한인 타운이 있는 뉴몰든으로 가 달라고 말을 하고 좌석에 몸을 기댔다.
앞에 앉은 메건은 힐끔힐끔 나를 보고 있다.
“아, 침실은 만들었나요?”
옷차림이 아까와 똑같아서 물어보았다.
“네. 2층 정현 님의 옆방이에요.”
“작업실을 다른 방으로 바꿔야겠네요. 내일은.”
급하게 만드느라 침실에 넣어놨지만 다른 사람과 함께 작업한다면 침실에 넣어놓을 필요가 없었다.
부르르르르.
진동이 온다. 보통 저녁 시간대에는 크리스가 업무 보고를 위해 전화를 거니까 크리스겠거니 하고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리, 마커스 씨에게 전화가 왔어!]“무슨 일인데?”
[마커스 씨가 BBC에서 요청이 있었다는데?]“요청? 거기에서 나한테 요청할 게 있나? 에릭 노래 쓸 수 있게 해 달라고?”
조금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생각할 때는 방송국이 나에게 원할 만한 것이 없다.
[런던 필하모닉 5월 말 공연을 하는데 곡을 사용할 수 있게 해 달라는 요청이라는데?]“런던 필하모닉? 거기에서 에릭의 곡을 연주한다는 거야?”
교향악단이 대중음악을 연주하는 일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심포니 앤 메탈리카 같은 이벤트도 있었으니까.
[에릭의 곡은 아닌 것 같던데 (Lost)이라 그랬나 (Lose)라고 했던가 그런 제목이었어.]“어? 그걸 관현악단이 연주하는 데도 내 허락이 필요하다고?”
[나는 모르지. 마커스 씨랑 통화해 봐. 자세한 건 그쪽에서 알지 않을까?]어디에서 내가 복귀했다는 소문이 났었나 했는데 이거였구나….
음악이 싫은 음악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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