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musical genius who hates music RAW novel - Chapter 43
042화
뚜르르르르.
[좋은 저녁입니다. 리.]“안녕하세요. 마크. 전화하셨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습니다.”
[아, 네. 직접 전화를 드리려고 하다가 혹시라도 하시는 일에 방해될까 싶어서….]부담스러울 정도로 지나치게 예의가 바른 사람이다. 왜 그런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쨌거나 궁금한 걸 물어보도록 하자.
“런던 필하모닉 이야기는 뭔가요, 처음 듣는데.”
[5월 말에 있을 정기 공연을 BBC 3 라디오에서 생방송으로 송출하기로 했다고 합니다. 거기에서 연주할 곡이 리의 곡이라고 들었습니다.]BBC는 괘씸한 곳이다. 하지만 잘못은 1 라디오가 했으니 3에 덮어씌우는 건 좀 억울할 수도 있을 것 같다.
“그건 그럼 이번에는 사용하도록 해 주세요. 그런데 내가 안 된다고 하면 내 곡을 다른 사람이 연주하는 것도 안 되는 건가요?”
[저작권 개념입니다. 집에서 연주하는 건 상관없겠지만, 그걸 공공이나 상업용으로 사용하는 것은 문제가 될 수 있죠.]다른 사람이 연주하는 것인데도 저작권을 휘두를 수 있다는 건 처음 알았다.
“그렇구나! 알겠습니다. 고마워요. 마크. 아 방송국에는 BBC 1에서 했던 일 때문에 그랬다는 말은 하지 말아 주세요.”
[그렇게 하도록 하겠습니다. 더 필요한 건 없으신가요?]“없습니다. 고마워요. 나중에 밥이나 같이 먹죠.”
전화를 끊고 정신을 차리니 택시는 이미 목적지에 도착했는지 길가에 정차해 있었다.
“얼마예요?”
“요금은 따로 계산될 겁니다. 이용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택시 요금도 내주는 거였나? 괜한 걱정을 했다. 굉장히 빈틈이 없는 사내였다, 아서. 여기에서는 알버트인가.
“감사합니다. 수고하세요.”
말 한마디도 없던 메건은 택시에서 내린 뒤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여긴 처음 와보는 건가요?”
“네….”
한인 타운에 외부인이 오는 건 K팝 팬밖에 없다. 그나마 K팝의 인기가 식어 지금은 거의 이곳에 사는 한인들 외에는 보기가 어렵다.
아마 한글로 된 간판이나 여러 가지 부분에서 일반적인 영국의 모습과는 굉장히 다른 느낌을 줄 거라 생각한다. 나야 한글이 먼저 머릿속에 박혀 있던 사람이라 아무런 위화감도 없지만, 메건에게는 다르겠지.
“일단 밥부터 먹으러 가죠.”
“메뉴가 뭔가요?”
저 앞에 한국식 고깃집이 보였다. 아직 도착하지도 않았는데 벌써 입안에 침이 고인다.
“삼겹살입니다.”
“그게 뭔가요?”
“돼지의 뱃살로 만든….”
오늘도 외국인 한 명에게 한국식 바비큐를 전파하는 데 성공했다.
***
“그러면 저희 쪽 잘못은 아니라는 말씀이시죠?”
세계의 클래식 PD는 저녁 식사 시간 무렵에 유니버설에서 걸려온 전화를 받는 중이었다.
[네, 아무래도 저희는 저작권자 명의로 송출 금지 요청을 받았을 뿐이거든요. 이번에는 송출을 하셔도 괜찮지만, 다음은 모르겠어요. 저희가 연락을 한 것이 아니라 연락이 온 거거든요.]“알겠습니다. 알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세계의 클래식 PD는 전화를 끊었지만, 이정현이 곡을 사용할 수 있게 허락해 준 이유를 알 수 없어 혼란스러웠다.
그런 기분도 모르고 조연출은 자신에게 물었다.
“뭐래요. PD님?”
“이번에만 사용할 수 있게 해 준대. 대체 무슨 일이야.”
근본적인 해결책은 될 수 없었다. 이번만 사용할 수 있다면 다음은 없다는 소리와 다를 바가 없었기 때문이다.
“셜록 홈스가 필요하겠네요. 이 사건의 진상을 밝히려면.”
“셜록 홈스는 무슨 얼어 죽을 셜록 홈스야! 넌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콘티나 복사해서 돌려! 난 국장님한테 가서 해결됐다고 말하고 올 테니까.”
다른 곳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조연출에게 풀어내며 PD는 사라져갔다.
“아이 씨. 왜 나한테 화풀이야….”
그는 쓸쓸하게 복사기에 다가갔다.
***
똑똑똑.
누군가가 방을 노크하고 있다.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아서였구나. 저택에서 지낸 지 일주일이나 되었는데도, 아침에 방문을 두드리는 건 도무지 적응되질 않는다.
“들어오세요….”
노인네를 문 앞에 세워 둘 수는 없는 노릇. 피곤하고 더 자고 싶지만 그래도 일어나기는 해야 한다.
“안녕히 주무셨습니까. 오늘 날씨가 참 좋습니다.”
“그런가요. 오늘은 정원에서 먹을게요.”
아서는 건강을 챙겨야 한다며 규칙적인 기상 시간과 아침 식사는 필수라고 하였다. 덕분에 아침에는 일찍 일어날 수 있게 되었지만, 점심시간 지나고 나서 낮잠 시간이 생겼지.
이상하게 낮잠을 말리지는 않는다. 노인네라 아침잠이 없어서인가….
다만 날씨가 좋다는 말이 야외에서 먹는 것을 권하는 말인 것은 알게 되었다. 이상하게 이 나라 사람들은 햇볕을 좋아하니까.
가끔 날씨 좋은 날에 공원에 가보면 사람들이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속옷만 입고 엎드려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처음에는 공원에서 속옷만 입은 채 누워 있는 사람들-특히 여자들을 보면서 ‘우와 이게 무슨 일이야’라며 신기해했었지만, 지금은 정말 말 그대로 아무렇지도 않았다. 항상 있는 일이었으니까
“흐아아아~”
하품을 하면서 억지로라도 잠기운을 털어 버리며 세수를 하고 이를 닦는다. 밥을 먹고 닦아야 하느냐 먹기 전에 닦아야 하느냐는 언제나 고민되는 문제지만, 잠을 깨기 위해서라도 일어나자마자 이를 닦아주어야 한다.
티셔츠와 청바지를 입고 슬리퍼를 신은 채 1층으로 내려갔다. 항상 정장에 구두를 신고 있는 아서가 아주 싫어할 만한 차림이었다.
정원에 준비되어 있는 티테이블에 메건이 먼저 나와 앉아 있었다. 분명 이른 아침 시간임에도 옷도 다 차려입고 하얀색 머리띠까지 단정하다.
생각보다 나이가 많았던 것이 틀림없다. 이렇게 아침잠이 없다니.
“좋은 아침, 메건. 일찍 일어났나 봐요?”
“아뇨, 잠을 못 잤어요.”
아, 일찍 일어난 게 아니라 못 잤던 건가. 왠지 눈 밑에 다크서클이 있는 것 같기도 하다. 기분 탓이겠지만.
아마 곧 잠의 소중함을 깨닫게 되지 않을까?
“그래요? 피곤하면 언제라도 가서 자요. 어차피 오늘은 영화만 볼 거니까.”
오늘은 위대한 왕에 대한 영화들만 볼 계획이었다. 이 영화들이 음악들을 만들 때 참고할 만한 이미지가 될 테니까.
“영화요?”
메건이 물어보는 그때, 메이드들이 아침 식사를 가져왔다.
오늘은 햄 페이스트리와 딸기잼 그리고 버터. 개인적으로 아침 식사에는 커피보다는 우유가 좋은 것 같다.
“네. 영화요.”
“오늘은 쉬는 날인가요?”
얘는 또 무슨 한가한 소리야. 하루라도 빨리 끝내야 이 집에서 탈출하는데.
“음악을 만들기 위한 이미지를 쌓는 거예요. 일이죠.”
노는 건 그것보다 더 즐거운 것이 많다.
“네….”
“같이 봐도 돼요. 난 재미없는 건 안 보니까.”
“정말 같이 봐도 되나요?”
“내가 거짓말할 이유가 없잖아요.”
왕이나 귀족에 대한 이미지가 약하다 보니, 그 분위기 같은 것이 표현하기가 어려웠다. 아마도 내가 영국의 왕가나 귀족 집안에서 태어났다면 표현하기가 조금 더 쉽지 않았을까?
응? 메건은 공작가 손녀잖아. 영화를 보는 것보다 차라리 메건에게 듣는 건 어떨까?
조금 생각을 해 보았지만 그건 좀 무리가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허물없이 물어볼 정도로 친한 것도 아니고, 워낙에 말이 없어서 물어보는 대로 대답을 해 줄 것 같지도 않았다.
적당히 차려진 아침을 먹고 자리에 앉아서 정원의 풍경을 바라보았다. 넓은 벌판처럼 펼쳐진 잔디와 곳곳에서 자라나는 나무들 그리고 꽃과 화초들이 어우러져, 마치 공원에 온 것 같은 풍경이었다.
“날씨 좋네.”
“그러네요.”
아침의 부드러운 햇살이 몸을 노곤하게 만들고 있었다. 등받이에 기대어 몸을 뒤로 살짝 늘어뜨리니 잠이 올 것 같았다.
방금 일어났는데 다시 잠들 수는 없다. 적어도 영화를 보다가 잠들도록 하자.
기지개를 켜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 커다란 집의 1층에는 온갖 이름이 붙은 방이 다 있는데, 거실, 주방, 식당은 일반적인 거니까 넘어가자. 그것 말고도 응접실과 서재, 온실, 볼룸 그리고 가장 중요한 극장이 있다.
왜 극장-시어터룸인지는 모르겠지만 크기는 크다. 그래서 이름에 걸맞게 극장으로 꾸몄다.
블루레이 플레이가 가능한 게임기와 프로젝터를 설치하고 7.1 채널 돌비 서라운드 스피커를 설치했다.
가장 중요한 관람석 의자는 발 받침이 있는 안락의자로.
“안마 의자였으면 더 좋았을 텐데….”
조금은 아쉬운 소리를 입 밖으로 내뱉으며 의자에 앉아 영화를 재생시켰다.
오늘 볼 영화는 왕의 위엄을 보여주는 영화다. 영국의 전설적인 왕 아서 펜드래곤이 검사에서 왕으로 거듭나는 이야기. 과거부터 가장 많이 영화나 소설로 만들어진 이야기.
다 알고 있는 내용이라 솔직히 재미는 없었다. 그럭저럭 흥행했다고 해서 가져왔지만, 알고 있는 미래를 보는 건 그리 재미있지 않으니까.
“지루하네….”
“그러네요.”
어느새인가 옆에 와서 앉아 있던 메건이 혼잣말에 대답해 주었다.
몇 번의 치열한 전투가 지나가고 영화는 클라이맥스를 지나 엔딩에 다다르고 있었다. 왕의 위엄을 보고 싶어 기대하며 보았지만, 기대하던 그런 모습은 없었고 젊고 능력 없는 왕자가 계단식 성장을 하며 왕이 되어가는 모습만 끊임없이 보여 주었다.
영화의 스태프 롤이 올라가며 끝이 났다. 눈을 감고 그 안에서 보였던 이미지를 떠올려 보았다. 영국 역사상 가장 위대했던 왕의 모습.
왕으로 각성한 아서가 계단을 걸어 왕좌에 올라간다. 한 걸음, 두 걸음.
계단을 올라가면서 점점 커지는 트럼펫 소리가, 왕이 돌아왔음을 알린다.
그래, 이거다. 왕은 방해하는 모든 것을 물리치며 자신을 증명하고 왕위에 스스로 올랐던 거다.
단상 위에 올라 몰려든 백성들을 바라보며 맹세한다.
‘나 아서 펜드래곤은 이곳에서 위대한 연합 왕국의 왕이 되었음을 선언한다.’
그는 왕자였다. 자신의 이름보다 유명한 검인 엑스칼리버를 얻기 전까지는 인정도 받지 못했던 그런 왕자.
위대한 검을 얻고 위대한 왕으로 각성한다.
그 과정을 떠올리자 호른의 웅장한 소리가 페이드 인이 되며 끼어 들어간다.
거의 다 되었다. 대관식에서 들릴 것 같은 음악에 가까워졌다.
어? 그런데 이번에 왕이 되는 사람 이름이 뭐였더라? 이름과 얼굴이 떠오르지 않으니까 이미지가 잘 맞지 않는 것 같은 느낌.
아무래도 이름과 얼굴을 알아야 멜로디가 완성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한 방에 완성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하며 영화를 봤던 건데, 내 생각처럼 잘되지 않았다.
눈을 뜨고 버튼을 눌러 의자를 세웠다.
“아, 거의 다 됐는데.”
“뭐가요?”
메건이 아직 옆에 있었나 보다. 그래, 이 여자라면 알고 있지 않을까?
“아! 물어보고 싶은 게 있는데.”
나는 비장함이 가득한 메건의 얼굴을 보며 물었다.
“뭐든 물어보세요!”
그녀는 침을 삼키며 준비가 되었다는 신호를 주었다.
“혹시 이번에 왕이 된다는 그분을 만나 볼 수 있을까요?”
내가 만들 곡이 쓰일 대관식의 주인공을 만나고 싶어졌다.
음악이 싫은 음악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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