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musical genius who hates music RAW novel - Chapter 45
044화
낯선 천장이다.
지난 일주일 동안 머무르던 저택의 나무 천장이 아니라 하얀색 패널 처리된 천장이었다.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 기억은 나질 않지만, 다행인 것은 아직 살아 있다는 점이었다. 손가락도 발가락도 움직였다.
“다행이네.”
나도 모르게 입에서 안심하는 말이 튀어나왔다. 목소리는 가뭄에 메마른 논처럼 갈라져 있었지만, 그래도 말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안심할 수 있었다.
“깨어났어요?! 의사 선생님 불러올게요. 잠깐만 기다려요.”
호들갑을 떨며 말을 거는 목소리가 들려 고개를 돌려보니, 메건이 평소와 비슷한 차림으로 앉아 있었다. 책을 보고 있다 놀란 건지 한 손에 책을 들고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어떻게 된 거예요?”
분명 부엌에서 냉장고 문을 열어 케이크를 먹던 것이 기억이 났다. 단편적이기는 하지만 그것이 마지막 기억이었다.
“냉장고 앞에서 쓰러져 있었어요. 바로 병원으로 이송됐고. 4일째네요. 여기에 있었던 게.”
메건은 나에게 병원에서 4일이나 지냈다고 했다.
“넘어지면서 머리를 심하게 다치지 않아서 다행이에요. 의사 말로는 금방 일어날 수 있을 거라고 했는데, 3일이 넘어가서 걱정 많이 했었거든요.”
메건은 그 말을 마치고 방에서 나갔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도무지 이해되질 않았다. 작업을 완료하고 배가 고파서 냉장고에 갔었던 것인데, 꺼내 먹었던 케이크가 상해 있던 걸까? 아니면 바닥이 미끄러웠던 걸까?
여러 복잡한 생각들이 머릿속을 파고들며 아프다는 생각이 들었다.
머리가 아프다는 생각에 손을 갖다 대었을 때, 머리에 두른 붕대가 느껴졌다. 아마도 쓰러질 때 이마 부근을 부딪혔던 모양이다. 둘린 붕대 위로 손을 가져다 대자 통증이 느껴졌다.
“아…. 더럽게 아프네….”
시간이 조금 지나자 메건과 그녀가 데려온 의사가 함께 방으로 들어왔다.
“잠시 확인 좀 하겠습니다.”
의사는 펜 라이트를 들어, 내 양쪽 눈을 확인하고 양손과 양발을 만지며 질문을 퍼부었다.
“제 손가락을 꽉 쥐어 보세요. 네, 잘하셨고요. 이번에는 이쪽 손으로….”
태어나 처음으로 병원에 입원해 보는 경험을 했기 때문인지 정신이 없었다. 그저 의사가 시키는 대로 움직이는 수밖에.
일련의 검사들을 마치고 의사는 아무런 이상이 없는 것 같다며, 잠시 쉬고 있으라고 말하곤 나가 버렸다.
“아서가 평소에 안 챙겨 주던가요?”
메건이 물어왔지만, 질문의 의미를 파악할 수가 없었다.
“그건 또 무슨 말인가요?”
“탈진했대요.”
탈진. 내가 무슨 마라톤 선수도 아니고, 종일 자리에 앉아만 있었는데 탈진이라니.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
나도 모르게 헛웃음이 나왔다.
“그럴 리가요, 가만히 앉아서 작업하는 거 봤잖아요.”
“그러니까요. 옆에서 작업하는 걸 보면서 다 봤죠. 의사도 내가 찍어 놓은 비디오 영상까지 봤는데, 이럴 수가 없다고 하더라고요. 정신을 잃을 정도로 탈진하려면, 며칠은 계속 작업을 했어야 된대요.”
아서는 매번 밥의 영양분을 고려하며 식단을 짤 정도로 음식을 준비하는 데에 있어서 까다로운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이 영양소를 놓친 식단을 나에게 내어줄 리가 없었다.
눈앞에 지나친 간식이 건강을 해친다고 걱정하듯 말하던 아서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런 말을 하면 아서가 굉장히 서운해하지 않을까요. 아침은 잘 먹지도 않던 저에게 아침 식사까지 매일 먹였는데.”
“우리 할아버지도 두 번이나 왔다 가셨어요.”
메건은 식사를 챙겨 주는 아서에 대한 이야기를 하자 할아버지의 행적을 말해 주며 치켜세웠다. 이상한 곳에서 경쟁 심리를 불태운단 말이지.
“바쁜 분인데 나 때문에 더 바빠졌겠네요.”
다른 것들보다 퇴원에 대한 것을 물었지만, 퇴원을 바로 할 수는 없다고 했다. 무엇보다 이곳이 1인실이라는 게 마음에 걸렸다.
1인실은 가격이 비싸고 나는 의료 비용을 지불하지 않아도 되는 내국인이 아니라, 지불해야 하는 외국인이니까.
“며칠 더 지켜보는 게 좋을 것 같다고 하는데 퇴원하고 싶으신가요?”
“당연하죠. 병원은 냄새부터 싫어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하다. 병원이라는 곳은 이상하게 아프지 않더라도 아픈 것처럼 느끼게 만드는 곳이니까.
“그래도 인간미가 있는 모습이네요.”
“그건 또 무슨 소리예요?”
“그렇게 엄청난 걸 만들어 놓고 아무렇지도 않게 웃으면서 야식을 먹으러 간다고 하길래, 사람이 아닐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있었거든요.”
메건은 내가 야식을 먹으러 가겠다고 했을 때의 이야기를 꺼내며 웃고 있었다.
너도 그 화려한 감옥에 갇혀 있다고 생각해 봐라. 나도 모르게 열심히 하게 된다니까. 이 아가씨는 성에 사는 아가씨라 그 마음을 모를 수도 있겠구나.
그래서 조급한 마음에 무리했었는지도 모르겠다.
쓸데없는 메건의 농담 따윈 웃어넘기며 몸에 덮인 이불을 걷어내었다.
“어디, 가시려고요?”
화장실에 갈 때도 보고해야 가는 몸인가, 지금은.
“일단은 화장실에.”
“제, 제가 도와드릴게요.”
화장실에 갈 때까지 도움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 오지는 않았다. 나에게는 두 다리가 있으니까. 링거가 걸린 줄이 조금은 불편하지만, 볼일을 보는 데에는 지장이 없을 것 같았다.
화장실을 다녀왔더니 살짝 자괴감이 들었다. 메건이 침대 옆 의자에 앉아서 기다리고 있었던 탓이다.
“악보는 다 만드셨나요, 메건?”
나는 무안한 마음에 그녀에게 악보에 관해 물었다.
“아, 네. 다 만들었어요. 그런데 일반 오케스트라와는 구성이 다르던데 그건 괜찮은 건가요?”
“일반 오케스트라와 마칭 밴드 (Marching Band – 행진하며 연주를 하는 악단)를 합친 구성입니다. 거의 150명은 필요하겠네요.”
일반적인 교향악단 구성으로는 대관식의 행진에 쓰일 만한 곡을 만들 수가 없었다고 해야 할까, 아니면 분위기가 맞지 않았다고 해야 할까.
내가 자주 들어 볼 수 없는 구성을 사용했던 것 때문에 몸에 과부하가 걸렸을지도 모르겠다.
“마칭 밴드라… 군대의 군악대 같은 걸 말씀하시는 거죠?”
군악대도 마칭 밴드의 한 종류 아니었나? 행진하면서 연주하는 음악대는 모두 마칭 밴드라고 불리는 거로 알고 있었는데. 어릴 때 동화책으로 읽었던 브레멘 음악대처럼.
“네 아마도 맞을 거예요. 시작을 마칭 밴드로 하는 곡이라.”
내가 생각한 것은 차량에 탑승해서 천천히 퍼레이드로 도로를 행진할 때 앞뒤에 붙는 마칭 밴드가 연주하고, 성 앞에서 기다리던 오케스트라가 그것을 넘겨받아 연주하는 구성이었다.
완성한 다음에 한 번도 실제 연주를 들어 보질 않아서 정확하게 구성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나라면 그렇게 했을 것 같았다.
“제가 한번 알아볼게요. 오케스트라와 군악대.”
“네, 고마워요. 실 연주를 한 번이라도 봐야 할 것 같았는데, 메건이 알아봐 준다고 해서 다행이네요.”
퇴원할 때까지 이틀이나 걸렸다. 각종 검사를 하고 그 결과가 나올 때까지 병원에서 나갈 수가 없었다.
이틀 뒤 병원에서 나와 저택으로 돌아갔을 때는 정말이지 아무것도 하고 싶지가 않았다. 말 그대로 온몸에 기운이 하나도 없었다.
마치 곡을 만드는 데에 모든 것을 쏟아부었던 것처럼.
“게으른 것도 버릇이 되면 곤란한데….”
아마도 재충전 중일 것으로 생각했다. 지금 방전되어 재충전하고 있는 휴대폰처럼. 지난 며칠간 잊고 있다 발견한 휴대폰은 방전된 채로 꺼져 있었다.
전원을 켜자마자 끊이지 않는 진동. 부재중 전화로 와 있던 크리스에게는 걱정할까 봐 바빠서 전화를 볼 시간이 없었다고 말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또 하루가 지나 연락 온 메건이 섭외한 곳은 왕실 군악대와 런던 필하모닉이었다.
그리고 나는 지금 런던 필하모닉이 연주하기로 한 사우스뱅크 센터 앞에서 내 손에 쥐어진 티켓을 보고 있었다.
“얼른 들어가요. 늦겠어요.”
앞서 걷고 있는 메건이 재촉한다.
망할.
내가 내 돈을 내고 남이 연주하는 내 음악을 들으러 와야 한다니.
알버트가 티켓을 구해 주겠다고 했지만, 거기까지 폐를 끼치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그런데 티켓이 매진이라 중고 장터에서 바가지를 쓰며 구매해야 했다.
무슨 티켓이 이렇게 비싼 거야.
물론 돈이 아까워서 알버트 경이 있는 R석을 구매하지는 못했다. 중간쯤 있는 A석이었다.
“내가 꼭 들어야 되는 건가요?”
“당연하죠. 이정현 님이 지정해 주어야 연주자 지정을 할 수가 있다고요. 게다가 할아버님도 이정현 님의 곡을 들으려 여기까지 오셨는데요.”
솔직히 와서 연주를 듣는 것이 쓸데없는 짓이라고 생각했다. 그 누가 연주하더라도 내 머릿속에서 들리는 그 음악을 재현하는 건 무리가 있으니까. 현실의 연주는 실수를 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냥 런던 필하모닉이 하게 해 달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듣지 않고서는 받아 주지 않겠지. 고집쟁이들 같으니.
이런저런 잡다한 생각을 하는 사이에 지휘자가 들어와서 인사를 하고 연주가 시작되었다.
듣고 싶지 않아 두 손으로 귀를 막았지만, 소리는 틈을 비집고 흘러들어왔다.
자동으로 머릿속에서 곡이 연주된다.
아직 기억하고 있었구나.
내가 담았었던 감정의 파도에 몸을 실어 하염없이 떠내려가니 짧지 않았던 한 시간이 흘렀다.
“쉽지 않구나. 왠지 손발이 오그라드는 느낌이야.”
나 자신이 만들어 냈던 무언가를 오랜 시간 뒤에 마주한다는 것은 굉장한 노력이 필요했다. 어딘지 어설퍼 보이는 느낌이라 개선할 점이 너무 많이 보였다.
언젠가는 이 곡도 개선해야겠다고 생각하며 홀에서 빠져나와 로비를 거니는데, 멀리서 알버트가 조금 전까지 무대 위에서 지휘를 하던 남자와 함께 걸어오고 있었다.
“건강하게 보여서 다행입니다.”
“걱정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여기 이쪽 분은 아까 공연장에서 만나 뵈었던 런던 필하모닉의 상임 지휘자이신 리처드 경입니다.”
“리처드 브라운입니다. 이렇게 만나 뵙게 되는군요. 영광입니다.”
지휘하며 역동적으로 움직이던 만큼이나 그의 손에는 땀이 배어 축축했지만, 그의 긴장한 표정은 거짓말이 아님을 알 수 있게 해 주었다.
“오늘 공연 잘 봤습니다, 리처드 경. 확실히 서울에서 초연했던 것을 들었을 때보다 낫더군요.”
빈말은 아니었다. 내가 만들면서 들었던 것들과 거의 흡사한 수준이었으니까.
“이렇게 보러 오실 줄 알았다면 연습 기간을 조금 더 잡을 걸 그랬습니다.”
리처드는 하얗게 새어 있는 머리를 만지며 너털웃음을 지었다. 그러고 보니 둘 다 나이가 많다. 메건이 가장 어리고 알버트가 가장 많으니 평균 연령은 중년 정도일까.
“이러지 말고 자리를 옮겨 이야기하시죠.”
알버트의 제안에 우리는 자리를 옮겨 이야기하게 되었다.
사우스뱅크 센터의 컨퍼런스 룸. 수백 명은 족히 들어올 수 있을 것 같은 이 커다란 장소에 사람은 겨우 네 명.
“사실 제가 리처드 경을 뵙고 싶다고 한 것은 대관식에 쓰일 음악을 완성하기 위해서입니다.”
나는 자리에 드리워진 무거운 침묵을 걷어내며 말을 시작했다.
“그 곡이 벌써 완성되었습니까?”
대답한 것은 의외로 리처드가 아니라 알버트였다.
“메건, 악보를 주시겠어요?”
메건을 부르자 그녀는 갖고 있던 가방 안에서 악보를 꺼내 테이블 위에 올렸다.
두께만 해도 수백 페이지는 되어 보이는 악보의 더미. 그것을 보자마자 리처드는 호기심에 눈을 빛내며 말했다.
“새로운 곡이 완성된 겁니까?”
“이 곡은 영국 역사상 가장 위대하다는 말을 듣는 아서 왕을 테마로 만든 곡입니다.”
머리가 하얀 두 남자는 들어 본 적도 없는 곡의 악보를 보며 서로 감탄사를 내뱉었다.
“오…. 위대한 왕을 테마로 만든 곡이란 말입니까?”
“상상만으로도 굉장할 것만 같습니다.”
“이 곡을 베이스로 왕실 군악대와 함께 구성하면 될 것 같아요.”
나는 내가 생각한 구성을 말해 주었다. 사실 지휘를 하는 것도 아니고 악단을 구성하는 것도 내가 아니기 때문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여기쯤에서 끝날 거다.
“다음 주에는 폐하와 함께 들어 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겠습니다.”
알버트의 말에 런던에 도착한 지 2주가 지나서야 겨우 첫 번째 의뢰의 끝이 보였다.
이제 하나만 더 만들면 그 집에서 탈출할 수 있겠지…?
음악이 싫은 음악천재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