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musical genius who hates music RAW novel - Chapter 46
045화
세계 대전 이전까지 강력한 군사력으로 세계 곳곳에 많은 식민지를 건설해 왔던 영국. 그로 인해 ‘해가 지지 않는 나라’라는 타이틀을 갖고 있던 영국이었다.
그렇지만 지금 영국이라는 연합 왕국에는 위기감이 있었다.
영국은 약 80년 만의 왕권 교체로 영 연방 ‘커먼웰스’의 붕괴가 현실이 되어, 자신들의 이득이 줄어들 것을 우려했다. 그렇기 때문에 대관식을 최대한 성대하게 치르며 이탈을 막고자 했다.
“폐하, 대관식에 쓰일 곡을 시연할 준비가 되었습니다.”
알버트는 시연을 위해 왕가의 모든 사람이 모일 날을 만들었고, 여왕은 그것을 승인했다.
확인해야 했기 때문이다. 대관식을 위해 만들어진 곡이 자신이 물러나더라도 하나의 연합 왕국으로 묶어 줄 만한 것인지를.
“앞장서세요, 알버트 경. 들어 보도록 하죠.”
왕가의 모든 사람이 모인 버킹엄궁. 그 위에는 오랜만에 국기인 유니언잭이 아닌 왕의 상징 로열 스탠더드 깃발이 내걸리며, 지방에서 요양하던 자신들의 왕이 돌아와 있음을 알리고 있었다.
왕좌의 앞에 자리한 2백 명에 가까운 런던 필하모닉의 연주자와 왕실 군악대가 왕족들이 모두 모인 자리에서 연주를 시작했다.
지금껏 대부분의 영국 왕실과 정부의 공식 행사에 쓰였던 음악은 에드워드 엘가의 . 영국의 국가만큼 많이 쓰인 이 곡이 영국에서 만들어진 유일무이한 공식적인 행사 곡이었다.
많은 악성이 태어났던 중세 유럽. 영국은 끊임없이 이어진 전쟁으로 그들이 기피하는 나라였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지금 군악대와 교향악단이 연주하고 있는 이 곡을 듣고 있는 왕가의 사람들은, 자신들이 듣고 있는 음악이 유럽 거장들의 그것이라 해도 믿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왕좌에 앉아 있던 여왕은 10년 전, 이 곡을 만든 사람을 얻기 위해 적극적이지 않았던 것에 조금 더 후회했고 한편으로는 안심했다.
손자를 위해 만들어진 곡은 자신이 들어 보았던 그 어떤 음악보다도 웅장했고 찬란했으니까.
그렇게 연주가 끝난 뒤, 안심하고 웃으며 대관식의 일정을 잡을 수가 있었다.
“이제야 대관식을 할 수 있겠어요. 세인트 폴 성당에 연락해서 일정을 잡아 봅시다.”
***
“대관식 공식 실황 중계가 iTV로 넘어갔다고?”
BBC의 사장은 화가 났다.
영국 유일의 공영 방송국임에도 자국의 왕이 바뀌는 금세기 최대 사건이 될지 모르는 대관식을 중계할 수가 없다는 소리를 들었기 때문이다.
바로 실황 중계 방송국이 민영 방송사인 iTV로 지정이 되었다는 소식이었다.
이 실황 중계 방송을 해외에 송출할 권리만 팔아도 최소 수억 달러는 될 것이라는 예상치가 나왔다. 그 예상치를 보며 즐거워하고 있었는데, 이 소식은 말 그대로 마른하늘에 날벼락이었다.
“네. 왕실 대변인에게서 연락이 왔습니다. 공정성을 위해서 공영 방송보다는 민영 방송에 맡기겠다는 취지랍니다.”
“그건 대외적인 입장일 거고, 진짜 이유는 뭔데? 알아봤을 거 아냐!”
“그게….”
사장은 국장이 우물쭈물하며 말을 흐리자 결국 폭발해 버렸다.
“아! 답답하게 굴지 말고 그냥 말하라고! 말하란 말이야!”
“대관식에 쓰일 곡을 만든 작곡자가 송출 불가를 걸어서 저작권 보호 때문에 그럴 거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작곡자? 그게 누군데?”
“이정현입니다.”
최근까지도 복귀하느냐 마느냐의 이야기로 화제가 되었었던 음악 천재가, 영국 유일의 공영 방송 BBC에 자신의 음악이 노출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는 이야기였다.
“그걸 왕실에서는 동의했단 말이야? 그 자식은 왜 우리 방송국에 송출 불가를 걸었는데?”
“그게 이 일은 확실한 것은 아닙니다만, 라이브 라운지 때문이라는 소문이 있습니다.”
사장실에 끌려와 욕만 먹고 있던 편성 국장은, 얼마 전 라이브 라운지와 캐스팅 회의 때문에 방송국에 이정현이 방문한 것으로 추측이 된다는 소문을 전했다.
확실한 정보도 아닌 소문뿐이었지만, 유니버설에 전화를 걸어 확인하며 소문은 사실이 되었다.
“네에? 가수 에릭의 곡도 이정현이 만들었었다고요?”
어이가 없었다. 10년 동안 잠적을 하는 줄로만 알았던 이정현이 이미 수개월 전부터 활동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네, 아무래도 저작권자가 같다 보니 정지 요청이 들어왔을 때 모두 정지가 되었습니다. 저희는 저작권자 명의로 송출 금지 요청을 받았을 뿐이거든요.]BBC의 사장은 전화를 끊었지만, 속에서 차오르는 화를 주체할 수 없어 큰소리를 지르며 라디오 방송국으로 달려갔다.
“아니 대체, 여왕님이 작위를 주느니 마느니 하는 음악가를 어떻게 대했길래 사용 정지를 걸게 만드는 거야! 스티브 이 자식!”
그 뒤 라이브 라운지의 연출진이 갈리고 이정현이 복귀한 것이 세상에 알려지는 데에는, 한 시간이 채 걸리지 않았다.
이날 저녁 7시. 이정현이 UK 차트 1위를 하고 있던 가수 에릭의 곡을 만들었다는 사실이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속보입니다. 영국 UK 차트를 점령하고 빌보드 차트에 이름을 올리고 있는 가수 ‘에릭’ 씨와 한국의 음원 판매 순위를 줄 세우는 가수 ‘유지현’ 씨의 노래를 만든 것으로 알려진 ‘크리스틴 뮤직’의 정체가 10년째 행방을 알 수 없던 이정현 씨인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자세한 것은 영국 현지에 나가 있는….]영국 시각으로 저녁 8시. 한국 시각으로 새벽 4시에 YTM 뉴스에서 긴급 속보로 알린 이 소식은, 10년 만에 인터넷 포털의 기사를 이정현의 기사로 가득 차게 만들었다.
아침 스케줄에 나가기 위해 일어났던 유지현은 뉴스 기사가 뜬 포털의 메인 화면을 보고, 혼이 나가 버리기 직전에 이정화에게 전화했다.
“언니, 이게 무슨 일이야?”
[지현아, 왜? 무슨 일 있어?]“내가 부른 노래, 정현 님이 만든 거였대….”
[아, 정현이가 수원이한테 뭔가 주긴 하더라. 그게 그거였나 보네.]유지현과 전화 통화를 하고 있던 이정화는 지나가듯 말했다.
“뭐?! 언니, 정현 님 어디 있는지 알고 있던 거야?”
[응? 아냐, 아냐, 아냐. 예전에, 아주 예~ 전에 줬다고….]“일단 김수원 팀장님한테 가서 물어봐야겠어.”
[고생이 많다….]모든 것을 알고 있던 김수원은 유지현의 끈질긴 추궁에도 끝까지 모른다고 하였고, 영국행 비행기 티켓을 끊으려던 그녀의 시도도 매니저에 의해 무산되었다.
그리고 크리스틴 뮤직 사무실의 유일한 직원인 크리스는 이미 5시에 퇴근을 한 상태였지만, 전화기는 밤이 새도록 울리고 있었다.
***
대관식에 쓰일 악보를 넘기고 나서 벌써 한 달이라는 시간이 지나 7월이 되었다.
악보를 리처드에게 넘기고 다른 때와 다름없이 열심히 빈둥대고 있던 어느 날, 대관식의 일정이 잡혔다는 연락을 받았다.
내가 생각하던 계획은 대관식 전에 왕세손을 만나 음악을 그에게 맞게 맞춤으로 만들려고 했었는데, 의뢰인이 그걸로 만족했다고 하니 그럴 필요가 없어져 버렸다.
“아, 몰라. 어떻게든 되겠지.”
나에게는 부족해 보였지만 그래도 왕실에서는 만족했으니까 이렇게 바로 사용을 하겠다고 하는 거겠지.
크리스는 자꾸 전화를 걸어 귀찮게 한다. TV에 나에 대한 뉴스가 나온 이후에 여기저기서 끊임없이 전화가 걸려온다는 불평 섞인 말이었다.
[아무것도 할 수가 없어. 전화가 쉴 새 없이 걸려와!]“그럼 코드를 뽑아. 안 받으면 되잖아.”
심드렁하게 말한 뒤 전화를 끊어 버리고 내 손에 들려 있던 전화도 꺼 버렸다.
복잡하게 생각할 필요 없이 나처럼 전화를 꺼 버리면 해결되는 문제를 내게 전화까지 하면서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묻는 게 귀찮았다.
“별것도 아닌 거로 전화를 하고 난리야.”
내일 있을 대관식. 왕족이나 귀족 혹은 성직자가 아니었기에 대관식이 열리는 곳에 공식적으로는 들어갈 수가 없다. 그렇다고 다른 사람들 사이에서 함께 지켜보는 것도 내키지 않았다.
그래서 내가 선택한 것은 편하게 집에서 TV로 보는 것이었다.
오늘은 계속 함께 있었던 메건과 알버트도 찾아오질 않았다. 내일 있을 대관식 때문에 정신이 없었기에 그 누구도 나에게 관심을 두질 않았다.
정작 나는 실제 연주하는 곡을 들어 보지도 못해서 최종적인 조율은 해 보지도 못했음에도, 채택되어 버려서 더는 할 수 있는 일도 없었다.
이 일이 나를 조금 무기력하게 만들었다. 난 완벽하지 않다고 느꼈는데, 다들 그것에 만족하는 듯한 분위기였기 때문이다. 내가 발표한 곡 중에서 완벽하다고 느꼈던 것은 지금까지 단 한 곡도 없었다.
사실 곡을 만든 것도 아니다. 그냥 머릿속에 떠도는 걸 꺼냈을 뿐이니까. 무언가를 떠올리면 머릿속에서는 그에 맞는 음악이 흘러나왔으니까.
그렇지만 조금은 더 괜찮아질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드는 부분이 느껴졌다.
두 번째 곡은 전혀 실마리를 잡지 못하고 있었지만.
전에는 원하지 않아도 머릿속에 쉽게 떠올랐다면, 냉장고 앞에서 쓰러진 이후 아무리 떠올리려 해도 머릿속에서는 더는 그 어떤 음악도 들려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누구에게도 말하지는 않았지만 그리 크게 걱정하지는 않았다. 원래부터 갖고 싶어 했던 것도 아니었고, 이것으로 인해 불면증까지 겪으며 괴로워했었으니까.
지금까지 무엇을 하더라도 따라다니던 음악소리가 들려 오지 않는 삶을 살 수 있게 된 것이 오히려 좋다.
대관식이 끝나면 알버트 경에게 다른 곡은 도저히 만들 수가 없을 것 같다고 말한 뒤에 돌아가야겠다. 그러면 프레스턴에 돌아가서 음악이 들리지 않는 편안한 삶을 살 수 있겠지.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편안해졌다. 다른 사람들을 만족하게 할 수 있을까 걱정할 필요도 없고, 부담을 가질 필요도 없는 삶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음악이 한때는 들렸지만, 이제는 들리지 않는다. 그것뿐.
내일은 대관식이 있는 축젯날이다. 다들 즐겁게 대관식을 바라보며 즐기겠지. 나도 오랜만에 TV를 보며 맥주를 사다 마셔야겠다.
항상 복잡한 소리로 시끄러웠던 머릿속에서 아무런 소리가 들리지 않는 것이 조금 이상하다.
똑똑똑-
“일어나실 시간입니다.”
여느 때와 다르지 않게 아서는 문을 노크하며, 아침이 온 것을 알려 주었다. 이렇게 편하게 잠을 잤던 적이 있을까 싶을 정도의 완벽한 잠을 자고 일어났다.
“네, 일어났어요.”
오늘은 다른 날보다 더 상쾌한 기분으로 아서의 노크에 답해 주었다. 마음에 놓였던 짐을 덜어낸 느낌이랄까. 이제 곧 있으면 아서와는 헤어지게 될 거다. 그렇게 생각하니 조금은 아쉬운 것 같기도 하고.
세수하고, 이를 닦고 아침 식사를 하기 위해 정원으로 향하며 상쾌함을 느낄 수 있었다. 하늘에 날아다니는 새소리도, 바람에 흩날리는 나뭇가지의 소리도 이제는 음악으로 바뀌어 들리지 않았다.
“정현 님.”
다른 때와는 다르게 아서가 식사 도중에 말을 걸었다.
“네?”
“열 시쯤에 모든 사용인이 대관식을 보러 나가려 하는데 함께하시겠습니까?”
TV로 볼 거다. 맥주 한 캔을 곁들여서 말이지.
“다녀오세요. 저는 여기에서 보려고요.”
웃으며 대답하자 아서도 알겠다며 다녀오겠다고 말했다.
정말이지 기분 좋은 아침이었다. 시어터 룸에서 프로젝터를 틀어 대관식을 보기 전까지는.
“으아아아아아악!”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지르며 머리를 부여잡았다. 지금껏 단 한 번도 느껴 본 적이 없는 고통.
고통은 머리의 구석구석을 찌르고 있다.
눈앞에 보이는 갈색의 카펫 위에 코에서 흘러내린 피와 입에서 흘러내리는 침이 떨어지는 것이 보인다.
한 방울, 두 방울.
카펫이 조금씩 핏빛으로 빨갛게 물들어가는 것을 보며 이를 악물었다.
귀로는 여전히 스피커에서 울려 퍼지는 내가 만든 대관식의 음악이 들려 오고 있었다. 내가 만들며 들었던 그때보다도 더 거대한 울림.
전화기는 어디 있지? 구급차. 구급차를 불러야 한다.
도저히 걸을 수가 없을 정도로 아파, 기어서라도 전화기를 두고 온 침실까지 가려 했다. 분명 그랬다.
내가 정신을 잃었던가?
눈을 떴을 때는 얼굴에 닿아 있는 카펫이 느껴졌고, 스피커에서 울리는 소리가 들려 왔다.
프로젝터가 비추는 화면으로 사람들이 버킹엄궁의 발코니에 나와 있는, 이 나라의 새로운 왕인 윌리엄 5세를 바라보며 환호성을 지르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나는 카펫 위에 엎드린 채로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얼굴에 닿은 카펫이 피 때문인지 축축하게 느껴졌다.
“빌어먹을 음악….”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사람들의 환호성보다 더 큰 소리가 머릿속에서 들려 왔다.
지난 한 달 동안 들려오지 않았던 음악소리가 전보다 더 또렷하게.
음악이 싫은 음악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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