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musical genius who hates music RAW novel - Chapter 48
047화
지이잉, 지징, 덜컥.
리카르도는 일렉 기타를 연주하기로 했다.
기타에 연결된 케이블을 앰프에 꽂는 순간 들리는 노이즈.
이곳 산타모니카 해변의 아케이드 주변에는 항상 많은 사람이 오가지만, 그만큼 소란스럽기 때문에 소리가 작은 어쿠스틱 기타로는 시선을 끌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노래를 부르지는 못하지만 카를로스 산타나 같은 최고의 기타리스트를 꿈꾸는 리카르도.
언젠가는 커다란 밴드에서 연주를 할 수 있겠지만 오늘은 아니었다.
그의 무대는 아이스크림 가게와 햄버거 가게 사이에 있는 좁은 광장.
그리고 무대 복장은 다 해진 반바지와 낡은 티셔츠.
어릴 때부터 기타리스트를 꿈꿨던 리카르도는 밴드에 들어가려 지원할 때마다, 항상 ‘히스패닉이 라틴 밴드에 가야지, 왜 우리 밴드에 들어오려는 거야?’라는 말을 들어왔다.
코카시안은 락이나 메탈. 히스패닉은 라틴. 아프리칸은 재즈나 블루스.
그는 인종으로 장르를 나누려 하는 캘리포니아의 밴드 문화 때문에, 어떤 밴드에도 들어가질 못하고 있었다.
항상 사람이 부족한 락이나 메탈 밴드와는 다르게, 라틴 밴드는 빈자리가 생기기를 기다리며 사람들이 줄 서 있었으니까.
그래서 그가 선택한 것은 버스킹이었다.
리카르도의 버스킹에는 마이크가 없다. 오로지 기타와 앰프 하나. 배터리 형태의 무선 앰프는 가격이 너무 비싸서 살 수가 없었다. 그렇기에 바로 옆 아이스크림 가게에 이야기하고 전원 플러그를 꽂아 쓸 수 있도록 허락을 받았다.
버스킹의 격언.
‘처음 관중들이 아무도 없을 때는 일단 눈에 띄는 곡.’
오늘 리카르도가 선택한 첫 곡은 조 새트리아니. 여름의 산타모니카 해변에 어울리는 Summer Song으로 오늘 공연의 시작을 알렸다.
미리 준비해 놓은 반복되는 퍼커션과 베이스가 녹음된 음원을 틀고 자세를 잡는다.
손끝으로 잡는 넥보다는 보디에 가까운 피킹 포지션.
띠리링, 띠리리링~
Summer Song 특유의 시작 부분 고음 고속 속주 기타를 따라 한다. 리카르도의 손가락이 움직이는 것과 동시에 입술도 함께 움직이는 극한의 집중.
잠깐 이어지는 반복되는 리듬과 벤딩.
반복되던 리듬을 잠시 멈추고 드럼의 킥 사운드를 기다렸다 터지는 여름이 생각나게 만드는 선율.
톤을 만들어 줄 오버 드라이브는 없지만, 지판을 긁으며 비행기 날아가는 소리를 내 본다.
촤아아아아아앙-
반복되는 베이스와 드럼 사운드 위에, 신나고 활기찬 음악이 기타에서 뿜어져 나온다.
작고 노이즈도 많은 앰프지만, 그래도 자신이 연주하는 것을 원하는 대로 들려 주고 있었다.
고음 속주 계열의 피킹과 더불어 쉴 새 없이 밴딩을 해야 하는 곡이지만, 기타 연주곡에서는 손꼽히는 수작.
이미 7월의 한여름이지만, 한여름의 그 열기를 깨뜨릴 것만 같은 시원한 기타 소리.
화려한 속주로 손을 털듯 소리를 내며 사람들이 시선을 끈다.
조 새트리아니가 사용하는 아이바네즈 시그니처 기타는 아니지만, 충분히 제 역할을 해주었던 에피폰 기타가 리카르도의 손에서 빛나고 있었다.
온몸을 불태웠던 연주가 끝나고 정신을 차리자 흘러내리는 땀이 느껴졌다.
“Hola! Buenas Noches! (안녕. 좋은 저녁이에요.)”
해가 붉게 저물어가는 산타모니카의 해변. 리카르도의 눈앞에는 열 명가량의 사람들이 자신의 연주를 들어 주고 있었다.
거대한 스타디움에서 하는 공연은 아니었지만, 자신이 연주하는 곡을 들어 준다는 것만으로도 리카르도는 만족스러웠다.
“다음 곡은 조금 더 신나는 거로 해 볼까요.”
그렇게 한 시간가량 신나는 버스킹은 계속되었다. 산타모니카에 어울리는 활기찬 곡으로.
버스킹을 마치고 기타 가방 안에 있는 얼마 안 되는 돈을 챙기고, 악기와 앰프를 정리하던 리카르도에게 다가온 녹색 하와이안 셔츠를 입은 검은 선글라스를 쓴 남자.
첫 곡부터 자신의 버스킹을 봤던 것 같은 선글라스를 낀 남자가, 팁을 주려는 것인지 리카르도에게 다가왔다.
“너. 꽤 괜찮게 치는 것 같은데 나랑 한번 놀아 볼래?”
그에게 팁이 아닌 다른 의도가 있었다는 건 그가 말을 하고 나서 알게 되었다.
리카르도는 정리하던 손을 멈추고 선글라스를 낀 남자를 바라보았다.
어딘지 익숙한 얼굴. 아시아인이 많이 사는 캘리포니아에서 자랐기에 얼굴을 구분하는 건 쉬웠다.
하지만 본 적은 있는 것 같은데 어디서 보았는지는 모르겠다. 눈을 가리고 있는 짙은 레이밴 선글라스 때문이었다.
“기획사에서 오셨나요?”
남자는 웃으며 대답했다.
“아니, 놀러 왔는데?”
리카르도는 눈을 돌려 자신의 낡은 에피폰 기타를 바라보았다.
부러져 에폭시로 고정해 놓은 넥. 반쯤 부서져 버린 픽업. 손잡이가 없어져 버린 노브. 금이 간 보디.
누군가가 버린 것을 주워 고쳐 쓰고 있는, 리카르도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기타.
“저… 같은 게 그런 걸 할 수 있을까요?”
“그렇게 망가진 기타도 제대로 칠 수 있는데, 너는 뭐라도 될 수 있을걸.”
그렇게 정현은 기타리스트를 꿈꾸던 소년 리카르도 페레즈를 산타모니카 해변에서 주웠다.
***
신기한 아이를 만났다. 연주 실력은 둘째치고, 완전히 망가진 것처럼 보이는 기타를 아무렇지도 않게 연주하는 아이.
리카르도라는 그 아이는 내가 만나 보았던 그 누구보다도 신기한 아이였다.
“얘들아, 들어 봐. 내가 방금 진짜 웃기는 애를 만났는데 말이야.”
“웃기는 애?”
“코미디언이에요?”
호텔 방에서 아직도 감자튀김과 햄버거를 먹고 있던 크리스와 에릭이 나를 바라보며 물었다.
“그래, 웃기는 애. 코미디언은 아니고. 길에서 완전 폐품 같은 기타를 치는데 소리가 제대로 나더라니까.”
분명 그렇게 망가진 기타를 친다면 어디라도 조금은 어긋났어야 정상이다. 악기는 민감하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이상한 곳이 있으면 원하는 소리를 내주지 않으니까.
하지만 리카르도의 기타에서 나오는 음은 모두 보통의 기타와 똑같았다.
“그게 그렇게 대단한 거야?”
“그건 대단한 게 아니지. 신기한 거야. 기타를 잘 칠 수 있는 사람은 널렸어. 그런데 망가진 기타로 보통 기타처럼 칠 수 있는 사람은 없거든.”
다시 생각해 봐도 신기한 애였다. 음이 어긋나리라는 것을 예측한 듯이 치는 신기함. 어쩌면 예측을 한 게 아니라 망가진 기타에 적응을 했을 수도 있지만.
“그렇게 기타를 잘 쳐?”
크리스의 말에 잠깐 고민해 봤다. 그게 잘 치는 건가?
“아니. 전혀. 완전 못 쳐.”
“못 치는데 그게 왜 신기한 거야?”
크리스가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뭐라고 대답해야 할까.
“사부님 말은 원래 좀 이상해. 이해하려고 하면 안 돼. 엄청 어려운 걸 쉽다고 하고, 쉬운 걸 어렵다고 하거든.”
크리스와의 대화에 에릭이 끼어들었다. 솔직히 내가 생각하는 걸 얘네들이 이해할 거라고는 기대하지 않았지만, 이상하다고 하는 건 너무 하잖아.
나는 큰마음을 먹고 다시 한번 쉽게 설명을 해 주려고 했다.
“잘 들어. 망가진 기타야. 음. 목소리로 바꿔서 생각해 보자. 성대에 상처 같은 게 엄청 많아. 그런데 목소리는 제대로 나오는 거라고. 그게 신기한 거지. 그럴 수가 없으니까.”
최대한 쉽게 설명하려 해 봤지만, 설명하는 것은 생각보다 어려웠다. 둘은 여전히 얼굴에 물음표를 띄우고 있었다.
“나는 잘 모르겠어. 어쨌거나 굉장한 거라는 거잖아, 리.”
“저도 잘 모르겠어요. 사부님.”
“…그냥 내일 만나 봐. 내일 여기로 오기로 했으니까. 나는 나가서 기타나 사 와야겠다.”
“그나저나 리. 그 옷 너무 이상해, 아저씨 같아.”
나의 패션을 욕하다니! 하와이안 셔츠가 얼마나 예쁘고 좋은데. 이곳에 와서 가장 처음 샀던 셔츠였다. 녹색 배경에 하얀색 꽃이 그려진 예쁜 셔츠.
“크리스! 네가 패션에 대해 뭘 알아!”
“다른 건 몰라도, 그 옷이 별로라는 건 저도 알 것 같아요. 사부.”
에릭까지 한통속이었다. 세상에 믿을 놈이 하나도 없구나.
***
“우와….”
“어, 왔니. 얘들아, 얘가 어제 말했던 리카르도야.”
다음 날 호텔에 찾아온 리카르도는 자신의 기타 케이스를 품에 꼭 끌어안고 왔다.
크게 소리를 내어 크리스와 에릭을 불러 소개를 해 주었다.
“아, 아, 안녕하세요. 리카르도 페레즈입니다.”
“안녕, 나는 크리스틴 로저스라고 해. 크리스라고 불러.”
“요! 나는 에릭이야. 에릭 퍼트니.”
에릭은 요즘 가수 활동을 하더니 어디서 래퍼 같은 짓만 배워 왔다.
그리고 에릭의 매니저 두 명은 자기소개를 하지 않고 소파에 앉아 있었다. 왜 다들 내 방에 있는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지트 같은 분위기가 되어 버렸다.
“…진짜 지금 빌보드에 있는 그 에릭이에요?”
“그래, 맞아. 사부님은 아직 한참은 멀었다고 하지만, 빌보드에 올라가 있는 건 맞지.”
“어디 가서 내 이야기 좀 하지 마, 에릭.”
토크쇼 가서도 내 이야기만 하다가 끝냈던 게 한두 번이 아니다. 왜 자신의 이야기는 하지 않고 남의 이야기만 하는 걸까.
“물어보는데 어떻게 해요. 대답은 해 줘야죠.”
“뭐, 나에 관해 물어보는 토크쇼 진행자도 잘못이지만 대답해 주는 너도 나빠.”
그리고 한참 먼 것은 맞다. 아직 평범한 수준이지.
아마 인터뷰 같은 걸 모두 거절하고 있으니, 꿩 대신 닭이라고 에릭에게 물어보는 것일 거다. 에릭은 적어도 대외적인 활동은 하니까.
“에릭의 사부님? 혹시…. 이정현 님인가요?”
“이야. 한 번도 와 본 적이 없는데 이제는 미국 사는 꼬맹이도 날 아네? 맞아. 놀러 왔는데, 네가 너무 눈에 띄어서 말이야.”
“진짜 이, 이, 이, 이정현?”
리카르도는 선글라스를 벗는 나를 보고 얼어붙었다. 에릭이 더 유명하지 않았나? 빌보드 30위권이면 꽤 유명할 것 같은데.
“어쨌거나 미국에 놀러 왔으면 그것에 맞게 놀아야겠지.”
“사부님! 오늘 바닷가 놀러 가요?”
“리, 나 수영복 없는데!”
얘들아, 리카르도가 찾아왔잖아. 방금 사무실 들어왔는데 바로 놀러 나가자고 말하면 뭐가 되니.
“일단 리카르도 실력부터 보자고. 등에 멘 거 말고 이걸로 쳐 봐.”
나는 망가진 기타 말고 멀쩡한 기타로 리카르도가 연주하는 모습을 보고 싶었다.
그래서 어제 근처 악기상을 뒤져 괜찮은 ESP 기타를 가져다 놓았다. 앰프는 그럭저럭 쓸 만한 마샬 앰프. 어제 오버 드라이브도 없이 효과음을 냈으니 이펙터는 가져오지 않았다.
“오늘 연주 잘하면, 그 기타 네 거야.”
그 말에 리카르도의 눈빛이 변했다. 욕심을 내기 시작하는 것이 느껴졌다.
역시 망가진 기타를 갖고 싶어서, 일부러 망가뜨렸던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현마다 튜닝을 시작하는 리카르도. 튜너도 없이 거의 단숨에 튜닝한다. 현을 튕기는 소리도 몇 번 안 들어 보고 튜닝을 하는 것을 보면 재능이 있어 보였다.
“어떤 곡을 칠까요…?”
“난, 아무거나 상관없으니까 네가 치고 싶은 거로 쳐.”
리카르도는 침을 꼴깍 삼키곤 기타를 바라보았다.
“정말 제가 가져도 되는 거죠?”
“잘 치면.”
리카르도는 숨을 크게 들이쉬더니 연주를 시작했다.
음악이 싫은 음악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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