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musical genius who hates music RAW novel - Chapter 49
048화
“크크크크.”
나는 웃었다. 웃을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말 그대로 정말 더럽게 못 쳤기 때문이다.
내 웃음에 리카르도의 얼굴은 빨갛게 변했다.
“…….”
“너, 망가진 기타로 시작했어?”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는 리카르도. 그럴 줄 알았다.
망가진 기타로는 꽤 괜찮게 친다고 생각했지만, 정상적인 기타로는 소리를 제대로 내질 못했다.
리카르도의 왼손으로 지판을 짚는 감각은 어긋나 있었다. 정상과 비정상의 중간 정도.
넥이 망가져 고정되어 있지 않은 기타를 사용했으니 음이 왔다 갔다 하는 것에는 익숙했겠지만, 그 때문에 피킹도 운지법도 완전히 정상은 아니었다.
“그래. 뭐, 사용하던 기타가 그랬으니 별수 없겠지. 아, 그건 너 가져.”
“정말요?!”
내가 연주해 보라고 주었던 ESP 기타를 가지라고 말하자 리카르도는 놀라서 소리를 쳤다.
버스킹으로 벌어들이는 돈으로는 아마 생활비를 제외하면 모을 수도 없을 테니, 성인이 될 때까지는 살 수도 없는 기타.
“그 대신, 너 빡세게 연습해서 내 세션이 되어라.”
그 말에 리카르도는 울면서 나를 안으려고 했다. 나는 리카르도의 머리를 멀리 치우며 안을 수 없게 했고, 그는 한참을 기뻐하다가 기타를 놓고 돌아갔다.
비싼 기타를 갖고 돌아가면 누가 훔쳐 갈 것이 분명하다면서, 매일 연습을 하러 찾아오겠다고 했다.
그 기타 하나 값에 미래의 세션을 싸게 영입했다.
망가진 기타로 그 정도 실력까지 올랐으면, 정상인 기타로는 조금 더 올라갈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었으니까.
***
“밤공기 좋다.”
어디선가 대마초 냄새가 날 것만 같은 풍경인데 그걸 좋아하는 건지 의심스러웠지만, 그래도 크리스의 말에 맞장구는 쳐 주었다.
“그러게. 오랜만에 보네, 바다.”
“나도. 알잖아, 나는 프레스턴 밖으로 잘 안 나갔던 거. 이번이 두 번째로 해외 나와 보는 거야.”
노을빛으로 물들어 가는 모래사장에 앉아, 들어왔다 나가는 파도를 바라보았다.
멀리 수평선이 어슴푸레 보였지만, 빨갛게 칠해진 바닷물과 짙은 푸른색의 하늘이 만나는 모습이 어딘지 모르게 비현실적으로 아련한 느낌을 주었다.
“좋네….”
그리고 내 말이 끝나기 무섭게 머리 뒤에서 들리는, 쿵작거리는 음악소리가 시작됐다. 파티 시작했나 보다.
이 지랄 같은 산타모니카 해변에 있는 집들은, 한 집 걸러 한 집마다 매일 저녁 광란의 파티를 한다.
밤바다의 풍경을 좀 보고 싶어서 밖에 나가면, 여기가 나이트클럽인지 아니면 해안가인지 구분이 되질 않았다.
“돌아가자. 주정뱅이들이 차 끌고 나올라.”
“으, 응!”
그냥 술 마시고 춤만 추면 괜찮은데, 꼭 차를 끌고 나오는 게 문제. 아주 걸어 다니는 흉기들이다.
밤마다 경찰차의 사이렌 소리와 그들을 피해 도망가는 차에서 흘러나오는 시끄러운 음악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서둘러 머무는 호텔로 돌아와 엘리베이터를 타려고 버튼을 누르는 순간, 조금 전의 그 광경을 생각하다 음악이 떠올랐다.
수험생들이 환장할 것 같은 반복되는 훅과 후렴, 중독되는 킥 사운드. 조금씩 그 음악을 확장해 본다.
쫓는 자와 쫓기는 자의 음악. 이걸 랩과 보컬로 나눠서 표현하면 재밌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띵!
엘리베이터가 도착하며 정신을 차렸다. 방으로 걸어가는 길에 조금 전에 떠오른 곡을 떠올려 보았다.
세션이 필요하다. 이번에는 가상 악기와 실제 악기를 섞어서 만들어 보고 싶었다.
내 방에 들어가며 이럴 때 써먹을 수 있는 카드. 수원 카드에 전화를 걸었다.
한국 시간으로는 아직 점심시간 전에 바쁘게 일하는 시간이기는 하지만, 이해해 줄 거다.
[여보세요?]“나다.”
[누구세요?]아, 미국으로 오면서 심 카드를 갈았더니 내 번호가 안 뜨나 보구나.
“이정현입니다. 이놈아.”
[어? 어, 어. 이 번호는 뭐야? 너 미국 갔냐?]쓸데없는 질문 세례를 하는 수원의 말은 무시하고 나는 세션이 필요하다고 내가 필요한 이야기만 했다. 아무래도 작곡한다고 하니까 세션을 잘 알 거라는 생각이었다.
[기타리스트는 한국에서 찾아줄 수 있는데, 장르가 뭐야? 락이야?]“아냐, 장르는 아직 안 정했어. 아마도 락은 아닐 거야. 보컬이 소울 풍이라.”
[아, 에릭인가 보구나.]어떻게 알았지?
내가 아무런 답변을 하지 않으니 수원은 계속 말을 이었다.
[이번에 빌보드 30위권에 들어갔던데, 대단하더라. 겨우 두 번째 싱글이었잖아?]“……. 시끄럽고. 일단 기타리스트랑 베이시스트 좀 찾아봐. 드럼도 있으면 좋은데. 트럼펫이랑 색소폰도 좀….”
이번에는 좀 필요한 게 많다. 대관식 이후로 트럼펫에 맛 들였는지 그 소리가 너무 좋게 들렸다.
그리고 소울 음악의 단골. 색소폰도 이번 작업에서 쓰고 싶은 악기였다.
빨랑 해치워 버리고 싶다.
그런데 문득 궁금해졌다. 에릭이 랩을 할 수가 있나?
“래퍼들이랑 이야기는 많이 해 봤는데, 제가 해 보려니까 안 되더라고요. 근데 갑자기 랩은 왜요?”
“아, 지금 생각난 거에 랩 들어가면 괜찮을 것 같아서.”
그리고 수원이가 보내줄 세션들이 도착하기 전에 만들어서 녹음도 할 수 있을 것 같고.
“아쉽네요. 사부님이 만드는 곡이면 전부 다 제가 하고 싶은데….”
에릭의 눈에 욕심과 아쉬움이 동시에 묻어났다.
“보컬 파트랑 랩 파트 둘 다 있는 곡인데, 네가 둘 다 해 줄 수 있기를 바랐지.”
래퍼 구하기 귀찮으니까.
라는 말은 차마 하지 못했다. 나는 결국 밤 열두 시를 기다려 마커스에게 전화를 했다. 캘리포니아에서 밤 열두 시면 런던은 아침 일곱 시.
[좋은 하루 보내셨습니까?]“좋은 아침이에요, 마크.”
[산타모니카의 날씨는 정말 매력적이지요. 잘 즐기고 계십니까.]스몰 토크는 좀 그만했으면 좋으련만, 이상하게 친해질수록 근황이라든지 날씨 이야기를 더 많이 하는 것 같다.
“혹시, 래퍼와 DJ. 괜찮은 사람 소개해 주실 수 있나요?”
[음…. 얼마 후에 데뷔를 시키려고 준비 중인 아이들이 있습니다만, 그중에 랩을 하는 아이가 꽤 괜찮습니다.]DJ에 대해 이야기는 하지 않는 걸 보면, 모르거나 소개해 주고 싶을 만큼의 실력자가 없거나 둘 중의 하나겠지.
“런던에서 준비 중이라는 거죠? 녹음을 이쪽에서 할 생각인데, 보내주실 수 있나요?”
[당연히 보내드려야죠. 그 친구도 함께 작업할 수 있어 영광이라 생각할 겁니다. 아마 내일 만나 보실 수 있을 겁니다.]여전히 조금 부담되는 말투를 사용하고 있지만, 바로 보내줄 모양이다. 아주 좋군.
“그러면 녹음실 섭외도 부탁드릴게요. 래퍼가 오고 가사를 쓰고 녹음을 한다고 생각하면 삼일 정도 뒤가 좋겠네요.”
그렇다면 바로 작업을 시작해야겠다. 적어도 래퍼가 오기 전에는 만들어 놓아야 가사를 쓸 수 있을 테니까.
다음 날 아침, 이번 곡을 만들기 위해 필요한 가상 악기를 구매했다. 평소에 쓰던 악기들과는 구성이 좀 달라서 뭐가 괜찮은 건지 잘 분간이 되질 않았다.
한 시간 정도 구매했던 가상 악기를 써 보다 부족하다는 것을 느꼈다. 다른 건 몰라도, 힙합을 위한 드럼머신은 가상 악기로는 부족했다.
한참을 더 낑낑대다 많이 답답했는지, 나도 모르게 입으로 속마음을 내뱉어 버렸다.
“아…. 이거 가상 악기로는 안 되겠는데?”
“가상 악기로 안 되면, 실제 악기를 사면 되는 것 아니에요?”
“어?”
“그렇잖아요. 가상 악기로 부족하면 진짜 악기를 사면 되잖아요.”
옆에서 보고 있던 에릭의 말이 나의 폐부를 깊숙이 찔렀다. 그러네, 사면 되네. 내가 못 다루면 다룰 줄 아는 사람을 찾으면 되고.
“에릭, 너 그렇게 안 봤는데, 생각보다 똑똑하구나?!”
“…….”
에릭의 굳어가는 표정과는 별개로, 이번에는 진짜 악기들로 꾸미려는 나의 욕심이 조금씩 채워지고 있었다.
그렇게 급하게 시내 악기상에서 찾은 롤랜드 TR-8S. 힙합에서 많이 쓰이는 샘플링 시퀀서와 보통은 드럼머신이라고 부르는 리듬머신을 합쳐 놓은 놈.
버튼이 좀 작은 편이라 일반적인 버튼이 큰 샘플러보다는 쓰기가 조금 불편하지만, 그래도 전자 드럼을 쉽게 사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합격이랄까.
믹서가 달려 있어서 볼륨 조절은 편할 것 같다.
힙합만 하는 사람들은 샘플러와 드럼머신을 전용 머신을 따로 사서 쓴다고 들었는데, 나중에 좀 더 익숙해지면 사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샘플러는 쓸 수 있는 곳이 많아 보였다. 버튼도 큼지막하고, 원하는 타이밍에 버튼만 누르면서 반복되는 것을 사용하는 데에는 정말 편해 보였다.
그런데 왜 드럼머신 안에 있는 드럼 소리도 가상 악기인데, 이 소리가 더 육중한 것 같은 거지.
똑같은 소스를 가상 악기로 내주면 좋을 텐데, 가상 악기라고 내놓은 것은 정말 확연히 느껴질 정도로 가볍다.
아마 악기 업체의 돈벌이 때문이 아닐까. 이걸 가상 악기로 내놓으면 아무도 악기를 안 살 테니까.
결국 랩톱 하나만 갖고 될 거라 생각하고 미국에 왔던 내 손에 드럼머신까지 들어왔다.
평소처럼 드럼 사운드를 만들기 위해 마우스를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드럼머신을 연결하고 버튼을 눌러 보았다.
오. 마우스로 누르는 것은 연주를 한다기보다는 배열을 하는 느낌이었다면, 드럼머신을 갖고 노는 것은 직접 연주하는 것 같은 느낌이다.
“이런 것도 괜찮네.”
일단 생각했던 음악은 밤에 길가에 나가서 들었던 도망가는 놈들과 경찰차의 사이렌에서 나온 거였으니 그걸 떠올려 본다.
시작은 경찰차의 사이렌.
로직에서 제공하는 샘플을 사용해 페이드 인으로 들어온다. 멀리에서 다가오는 사이렌 소리로 경찰이 다가오는 것을 표현하고, 적당히 커졌을 때 드럼 킥.
쿵. 쿵. 쿵. 쿵.
빠른 것 같다. 조금 천천히. 리듬을 조금 바꿔 보자.
쿠웅. 치. 퉁. 둥. 쿠웅. 팍. 퉁. 둥.
리듬감이 괜찮아진 것 같다. 드럼 사운드의 날카로움을 조금 빼고 싶은데 이건 어떻게 해야 하는 거지. 잘 모르겠다. 일단은 여기까지 저장.
복사하고 붙여넣어 반복. 이 리듬이 베이스가 될 거다. 리듬은 트랩 힙합으로 따라가고, 멜로디는 R & B.
누군가는 이 음악을 끔찍한 혼종이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두 음악의 뿌리는 어차피 같다. 그걸 구분한 건 시간이 지난 다음이었지. 처음부터 구분한 것은 아니란 말이지.
당연히 두 장르의 경계선을 녹일 수 있을 거다.
느껴야 해. 박자를. 드럼 사운드를 조금 줄이고, 경찰차의 사이렌 뒤에 트럼펫으로 질러 주자. 자동차 경적처럼.
빰빠빰빠밤~!
코러스 파트가 들어가야 한다는 게 느껴진다. 음. 드럼머신의 샘플링 기능을 사용해 볼까.
내 목소리를 허밍으로 랩톱 내장 마이크에 녹음해서, 리버브를 조금 넣고 샘플러에 넣었다.
우~ 우~ 후~
새로운 것을 산 기념으로 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을 다 시도해 봤다.
누가 그러길 광기와 열정은 동전의 앞뒷면 같은 거라고 했는데, 지금 내가 딱 그 꼴인 것 같았다.
머릿속에서 나오는 음악을 무시하고 하고 싶은 건 다 때려 박아 보았다.
“엉망진창이겠지?”
나는 낄낄대며 지금까지 만들었던 것을 들어 보기로 했다.
“에릭~ 에릭!”
에릭을 부르자 얼마 안 지나 그가 들어왔다. 얘는 스케줄이 있어서 미국 왔다는 애가 계속 내 방에 있다.
“네에~ 생각보다 똑똑한 에릭이 왔습니다~”
너 아직 삐져 있었구나.
“미안하다고 했잖아. 그런 거로 삐지지 말고, 이거 한번 들어 봐. 방금 사 온 드럼머신이랑 샘플러로 널 위해 만든 거야.”
“이번만이에요….”
“그래, 그래.”
나는 에릭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귀여워해 주었다.
“이거 한번 들어 보고 느낌이 어떤지 말해 봐. 나도 아직 만들고 나서 안 들어 본 거야. 들어 보고 같이 이야기해 보자.”
“알았어요. 한번 들어 보죠.”
키보드의 스페이스를 누르자 음악이 시작됐다.
음악이 싫은 음악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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