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musical genius who hates music RAW novel - Chapter 5
004화
나에게 밤이란 길어야 2시간 정도 잠들 수 있는 고통의 시간이 된 지 오래다. 시끄러운 소리들이 나의 잠을 방해하니까.
오늘은 신경 정신과에서 불면증 상담을 받는 날. 일요일 오전이지만 예약을 받아 줘서 다행이다. 평일에는 학교 때문에 시간이 나질 않으니까. 가족들에게는 말하지 않았다. 그냥 불면증 클리닉이라고만 했지 신경 정신과 상담이라고는 안 했다.
“소리가… 들린다구요…?”
“네…. 잠시라도 집중이 끊어지면 시끄러운 소리가 들려요….”
“그 소리 때문에 잠도 못 주무신다는 거죠?”
“네…. 제발 소리만 들리지 않게 해 주세요….”
수도 없이 많은 사람들이 환청과 이명으로 고통받는다고 들었다. 나 정도면 일반인 수준이 아닐까?
귀신이 하는 말도 아니고 그저 악기 소리일 뿐이니까.
“구체적으로 어떤 소리를 듣고 계신 건가요?”
“…음악소리예요.”
“음악….”
“네…. 시도 때도 없이 들려와서 너무 힘들어요, 선생님….”
“그거… 영감이란 거 아닌가요?”
“영감… 이요?”
“네, 영감. 영어로 인스피레이션(Inspiration). 그 예술가들이 막 영감이 떠올랐다고 할 때 말하는 그 영감이요.”
영감은 개뿔 얼어 죽을. 내가 무슨 음악가도 아닌데 왜 나에게 이런 시련을 주는 거냐… 이런 영감 원한 적 없다고!
“……. 이거 안 들리게 해 주실 수 없나요?”
“에…. 직업이 뭐라고 하셨죠, 이정현 님?”
“학생이에요. 고등학교 2학년.”
“고등학생….”
“선생님…. 방법이 없을까요?”
의사 선생은 노트에 상담 내역을 적다가 갑자기 고개를 들어 내 얼굴을 바라본다.
끔벅끔벅. 눈을 두 번 깜박이더니 놀란 목소리로 호들갑 떨며 말하기 시작했다.
“…어? 헐…? 이정현 씨 아니 님? 성악계의 신성?!”
아, 젠장. 여기 온 거 비밀인데 걸려 버렸네.
“네, 맞아요. 제가 그 이정현이랍니다….”
내 입에서 나도 모르게 터져 나온 거지 같은 말투에 손발이 오그라드는 것이 느껴지지만, 여기에서는 친절함을 코스프레해야 한다. 사람들의 소문이 내 생각보다 빠르더라고.
“영감이라…. 보통 예술하는 분들은 영감이 오는 것을 굉장한 축복이라고 생각하시던데 말이죠….”
아, 젠장 나 예술 안 한다고! 때려치웠단 말이다!
“축… 복이요…?”
“영감을 받으신 예술가분들은 보통 그 삘이 빡 왔을 때, 영감받은 부분을 모조리 쏟아내면 자신이 텅 비어 버린 것 같다고 말씀하시더라구요.”
“모조리… 쏟아내라…?”
“네, 그러면 한동안 영감을 받을 때까지 또 괴로워하곤 하시죠. 영감이 떠오르질 않는다고.”
나쁘지 않아. 신선한 방법이다. 여태까지 내 머릿속에서 들려오는 음악소리를 밖으로 꺼낸다는 생각 자체를 해 본 적이 없었다.
“고마워요, 선생님! 한번 해 볼게요!”
“도움이 됐다니 기분이 좋네요. 후후. 혹시… 괜찮다면 사인 한 장… 받을 수 있을까요?”
***
나는 지금 굉장히 초조하다.
이 머릿속에 떠다니는 쓰레기들을 쏟아내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모르기 때문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내 머릿속에서는 120인 심포니 오케스트라가 공연하고, 6인조 프로그레시브 락 밴드가 콘서트장을 열었으며, 걸 그룹과 보이 그룹이 만나 혼성 그룹을 결성한 상태다.
이 음정들만으로 악보를 그리면 혹시 없어질까 싶어, 큰누나 방에 굴러다니는 오선지에 그려 봤지만 소리는 사라지지 않았다. 영화 아마데우스에서는 악보만으로 사라지던데….
“하아….”
한숨을 내쉬면서 책상에 엎드려도 소리는 들려 온다.
“하아~”
자세를 바꾸면서 고쳐 앉아도 소리는 들려 온다.
“아 X팔! 대체 어떻게 해야 하냐고!”
나는 악기를 못 다룬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배웠던 적이 없다.
다시 말하지만 머릿속에서는 120인 관현악단, 6인조 프로그레시브 밴드 그리고 8인조 혼성 그룹이 노래하고 춤을 추고 자빠졌다.
이걸 어떻게 밖으로 꺼내냔 말야. 사람들을 모아서 이 악보에 따라 연주시키고 공연을 시켜야 없어지는 걸까?
쏟아내라…. 쏟아낸다…. 무슨 방법이 없을까?
드르르르륵.
휴대폰이 진동한다. 책상 위에 올려놓아서인지 오늘은 조금 소리가 시끄럽다.
휴대폰 액정에 떠오른 이름은 항상 같은 이름 김수원. 어릴 때부터 친구라서 나에게 전화 거는 놈은 얘 아니면 유자밖에 없다.
왜냐하면 내 전화번호를 아는 사람이 이 둘 뿐이기 때문이다.
“어, 왜.”
[뭐 하고 있어?]“엎드려서 궁상떨고 있지 뭐.”
[나 심심한데 놀러 와. 피자나 시켜 먹자.]“그러지 뭐…. 난 페퍼로니.”
수원이네 집은 남부 터미널역과 가깝다. 우리 집에서 지하철로는 한 정거장, 버스로는 여기저기 돌아가서 대략 30분 정도가 걸린다.
하지만 나는 버스를 타기로 한다. 피자 배달에 걸리는 시간이 30분이니까.
게다가 나는 역에 정차할 때 나오는 그 특유의 시그널 음악이 거슬려서 지하철을 타지 않기 때문이다.
아, 상상했더니 시그널에서 파생된 음악이 들려 오기 시작했다. 젠장.
쾅! 쾅! 쾅!
초인종 소리도 거슬려서 나는 그냥 대문을 두드리고 말았다.
철컥.
대문 건너편에 있는 정원을 지나 보이는 현관이 열리고 김수원의 얼굴이 보인다.
“어라, 너답지 않게 일찍 왔네?”
“아, 지친다 지쳐….”
“아저씨도 아니고 맨날 지쳐.”
나는 신발을 벗고 집 안에 들어가 거실 소파 위에 늘어진다. 여기가 나의 지정석이다.
“뭐 하고 있었냐아~”
반쯤 얼굴을 소파 구석에 파묻고 물어본다.
“아, 노래 만들고 있었어.”
노래를 만든다? 머릿속에 번쩍하면서 엔도르핀이 솟는다. 나도 모르게 허리를 세우며 물었다.
“노래를 만든다고? 어떻게? 피아노 치면서 악보 쓰고? 아마데우스처럼?”
“요즘에 누가 일일이 악보 그리면서 노래 만들어. 컴퓨터로 만들지. 볼래?”
호오…. 컴퓨터에 그런 기능이 있었단 말인가? 난 주로 웹 서핑과 게임 그리고 소설 읽는 데 컴퓨터를 써 왔다.
컴퓨터로 작곡을 할 수 있다는 건 처음 들었다.
“세상이 좋아졌구만! 컴퓨터로 그런 것도 하고 말야!”
나는 감탄하면서 수원이를 따라 방에 들어갔다. 그의 컴퓨터 화면에 보이는 건 엑셀 화면처럼 촘촘하게 짜인 바둑판 같은 화면.
왼쪽에는 악기 그림이 있고 오른쪽에는 색깔이 입혀진 띠가 줄줄이 늘어서 있다.
프로그램에 대한 설명을 기대했는데 뜬금없이 자기가 만든 거지 같은 음악을 틀길래 뒤통수를 한 대 때려 주고 바로 멈춘 뒤, 설명을 요구했다.
수원이가 사용하는 것은 프로툴스라고 하는 DAW(Digital Audio Workstation) 프로그램.
작곡과 레코딩에서 가장 많이 사용하는 툴이라고 한다. 신기하구만, 신기해. 정말 세상 많이 좋아졌다.
“수원이 너. 작곡가 할라고?”
“에이, 작곡가는 무슨, 나 재능 없잖아. 그냥 취미야. 가끔 멜로디 같은 거 떠오르면 그거 만드는 거지 뭐. 아깝잖아, 시간 지나가면 까먹을 텐데.”
멜로디가… 떠오른다? 나랑 비슷한 건가 얘도?
“너도 머릿속에서 막 연주가 들리고 그러냐?”
“연주가 들리는 건 아니고 그냥 멜로디 정도만…? 멜로디 떠오르는 거 붙이고 그다음에 거기에 맞는 다른 악기들 붙이고 하면서 만들어.”
고개를 살짝 갸웃하면서 나를 바라보는 김수원. 얘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과 나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은 조금 다른 느낌이다.
하지만 좋은 정보를 얻었다. 개똥도 약에 쓰일 때가 있다고 하더니 김수원이 나에게 깨달음을 가져다줄 줄이야. 18년 동안 살아오며 처음인 것 같다.
“그래서, 요 프로툴스라는 거 악기 다룰 줄 몰라도 쓸 수 있냐?”
학생 할인 같은 게 더해지니 비싸지 않았다. 하지만 이야기를 조금 더 들어 보고 검색을 해 보니까, 가상 악기네 뭐네 하면서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일단 웹 서핑에서 나온 검색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하자면.
1. 미디 DAW는 악기를 다룰 줄 몰라도 크게 상관없다.
2. 작곡은 프로툴스보다 로직프로가 더 편하다.
3. 레코딩 및 사운드 믹싱은 프로툴스가 최고다. (믹싱이 뭔지 모르겠지만….)
4. 공짜 미디 작곡 프로그램도 있다.
라고 한다.
프로그램마다 장단점이 있어서, 어떤 것을 사용하는지는 거의 취향 차이라고 한다.
하지만 세계 어디를 가더라도 레코딩에 이점이 있는 프로툴스를 사용하는 인구가 가장 많다고.
한국에서는 크랙 버전이 퍼졌던 이력이 있어서 프로툴스보다 큐베이스를 많이 쓴다고는 하는데 DAW 툴 중에 가격이 가장 비싸다는 게 흠.
그렇다면 나는 로직프로를 써야겠다. 남들이 많이 사용하는 걸 쓰고 싶지는 않다는 청개구리의 본능이 내 안에서 꿈틀댄다.
로직프로는 사과 농장의 컴퓨터에서만 돌아간다고 하니까 내가 쓰는 랩톱에서도 돌아갈 거다. 내 랩톱은 맥북프로니까.
처음에는 애들이 못 건드리게 하려고 사과 농장에서 샀었는데 말이지. 미래를 내다본 아주 현명한 판단이었구만!
하지만 학생 할인을 받아서 사려고 했더니 학생증이며 뭐며 요구하는 게 너무 많고, 서류 인증 기간이라는 것도 필요하다고 해서 그냥 일반 판으로 앱스토어에서 24만 9천 원에 질러 버렸다.
사용법을 검색해 봤더니 마우스만으로 작곡을 하기에는 시간이 너무 많이 걸려서 마스터 키보드나 신시사이저라는 게 거의 필수라는 모양인데….
어떻게 해야 하지? 잠깐 상상을 하다가 내 방에 악기처럼 생긴 무언가가 들어온다는 생각을 하니 닭살이 돋아 버렸다. 일단 마스터 키보드라는 놈은 보류.
요즘에는 인터넷에 널린 강좌들이 많아서 사용법을 익히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프로툴스나 큐베이스는 사용하기가 조금 더 어렵다고 했으니 로직으로 선택한 게 옳은 선택일지도?
‘기본이자 핵심이 되는 것은 가상 악기를 선택하고 트랙이란 것을 만들어서 가상 피아노로 연주를 하거나 마우스로 연주한다는 것.’
여기에서 트랙이라는 것이 하나의 악기라고 보면 되는 것 같다.
설치는 생각보다 금방 되었다. 필요한 용량이 72기가 바이트라고 나와 있어서 오래 걸릴까 봐 살짝 긴장했는데 프로그램 자체는 금방 설치되었다. 프로그램에 6기가바이트, 샘플 설치가 66기가바이트였다.
나는 샘플 설치를 기다릴 만한 인내심이 없었기에, 메인 프로그램 설치가 완료되자마자 쏟아내기 시작했다.
딸깍…. 딸깍….
마우스를 클릭하며 작업을 시작한 지 한 시간, 두 시간, 세 시간, 네 시간….
네 시간이 지나서야 겨우겨우 하나를 배출할 수 있었다. 아, 이게 쏟아낸다는 것인가. 아주 후련하다.
하지만 아직까지 들리는 걸 봐선 이걸 한번 들어 봐야 하는 걸지도 모르겠다.
나는 음악의 플레이 버튼을 눌렀다.
음…. 아주 좋아. 머릿속에서 들려 오던 그 음악과 흡사하다. 볼륨 같은 게 조금 달라서 조절해 주었다.
소리가 머릿속에서 들리던 것보다는 조금, 아주 조금 미세하게 가볍지만 그래도 아주 좋아. 만족감에 휩싸여 있는 와중에 음악이 종료되었다.
“어….”
사라졌다. 조금 전 만들었던 음악들을 들어 보기 전까지 끊임없이 들려 왔던 음악들 중의 하나가 이제는 들리지 않는다.
“우와!”
나도 모르게 기쁨의 환호성을 질러 버렸다. 그 환호성을 지르는 사이에 섞여 나온 기쁨의 눈물도 찔끔.
벌컥!
“뭐야, 무슨 일이야?”
“뭔데?”
어머니와 누나들이 문을 열고 들어오더니, 책상에 앉아 있는 나를 미친놈 쳐다보듯 바라본다.
“아… 아무것도 아냐.”
“무슨 일 있는 줄 알았잖아. 왜 갑자기 소리를 지르고 그래.”
거실에서 TV를 보다가 내가 소리를 쳐서 달려왔다고 한다. 걱정해 줘서 아주 고맙군.
하지만 이제 걱정할 일은 없다. 머릿속에서 지워 버리는 법을 알아냈거든. 투덜대면서 문을 닫고 다시 TV 앞으로 향하는 세 모녀.
“하하하하!”
이제 소리가 들릴 일이 없겠군!
나는 행복한 마음으로 두 번째 배출을 시작했다.
음악이 싫은 음악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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