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musical genius who hates music RAW novel - Chapter 50
049화
에릭이 생각할 땐, 지금까지 이 세상에 없던 음악이었다. 장르를 확정할 수가 없었다.
처음 도입부에서 들려 오는 경찰차의 사이렌 소리를 들을 때까지만 하더라도, 흔하디흔한 갱스터 스타일의 음악이라고 생각했다.
사부가 래퍼가 필요하다고 말했었으니까.
그건 착각이었다.
“어? 어?”
뭔가 이상했다. 옆에서 사부는 뭐가 좋은지 낄낄대며 웃고 있지만, 이 곡은 자신에게 만들어 준 두 개의 곡보다 더 느낌이 좋았다.
힙합의 그루브를 타는 리듬 앤드 블루스라고 해야 할까. 존재할 수 없는 느낌의 음악이었다.
해변의 분위기와 묘하게 잘 어울리는 곡. 부드러운 선율과 중간중간 때려 주는 그루브가 몸을 들썩이게 했다.
자신도 모르게 리듬을 타고 있었다. 그루브를 느끼고 그에 따라 어깨와 몸, 그리고 발을 움직이고 있음을 뒤늦게 깨달았다.
“사부님, 이 곡 녹음 언제 해요? 가사가 막 떠올라요.”
에릭의 눈이 불타올랐다.
***
“녹음? 조금 있다가 래퍼 온다고 했으니까, 내일모레?”
큰일 났다. 내 계획은 이게 아니었는데.
에릭을 놀려 주려고 이것저것 다 때려 박아서 만든 곡이었다. 이게 뭐냐면서 둘이 함께 깔깔대며 웃기를 바라고 만든 곡이었다.
원래 계획은 오늘 저녁에 래퍼가 도착하기 전에, 처음 떠올랐던 곡을 만들어서 녹음하러 갈 생각이었다.
“저 이거 음원으로 빼 주세요. 들으면서 가사 쓰게.”
에릭이 USB 메모리에 음원을 가져간 뒤, 호텔 방에 홀로 남겨져서 생각했다.
“망할. 이게 아닌데….”
에릭이 떠난 자리에 남아 있는 랩톱을 바라보았다. 이 곡이 왜 좋은 거지?
만들어진 곡이 머릿속에서 흘러나오던 곡보다 좋았다.
비슷한 구성이었지만 그 곡은 갱스터 랩에 가까웠고, 멜로디보다는 그루브에 초점을 맞춘 곡이었다.
거기에 이것저것 R & B의 요소들을 더 얹었을 뿐이었다.
당연히 어울리지 않는 것들이 섞이며, 엉망이 될 것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나중에 고칠 것까지 염두에 두고 만들었다.
“아, 몰라.”
머리에서 김이 올라오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 침대로 다이빙했다. 내가 부를 것도 아닌데 내 알바냐.
낮잠을 자기에는 조금 이른 시간인 것 같지만, 아침부터 집중해서 그런지 조금 지쳤다.
똑똑, 벌컥-
노크를 하든지, 들어오든지, 둘 중의 하나만 해야지 둘 다 하는 건 뭐야.
“리! 점심시간이야!”
크리스는 해변에 오더니, 애가 활기차졌다. 활동 영역이라고는 집과 사무실밖에 안 되던 애가, 산타모니카에 오고 나서 자발적으로 무언가를 하려는 게 많아졌다.
“뭐 먹지. 뭐 먹을까?”
“타코 엄청나게 잘하는 집이 있대. 오늘은 거기 가 보려고.”
휴대폰 지도 앱에 나오는 음식점들의 평점을 보며 고민을 했나 보다. 아직 손에 쥐어진 휴대폰에 지도가 켜져 있는 걸 보니 말이야.
“그래. 그래.”
멕시코 음식점에서 점심을 먹고 바다가 보이는 해안가를 따라 걸으면서, 문득 이런 곳에 사는 것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기 언덕 위에 보이는 집은 가격이 얼마나 할까?”
***
“1,100만 달러입니다.”
헐. 싸잖아! 런던의 그 집보다 싸다고!
해안이 바로 보이는 집인 데다가, 파티를 줄기차게 해 대는 그 위험한 주택가에서도 거리가 있다.
부동산의 아저씨는 1,100만 달러를 말하며 이 일대에서 가장 비싼 집이라고 말했지만, 그 돈이면 런던 시내의 아파트도 사기 힘들다.
“계약하죠. 제가 사겠습니다.”
산타모니카 해변이 바로 보이는 방 일곱 개의 3층 집. 뒷마당에는 바다와 이어지는 느낌의 인피니티 풀까지 있는 하얀색 집이 곧 내 것이 된다.
솔직히 충동구매였다. 관광 비자로 미국에 놀러 왔는데 집을 산다니.
그렇지만 크리스도 내가 이곳에 집을 산다는 걸 긍정적으로 보는 것 같았다. 집 안 여기저기를 구경하느라 정신이 없었으니까.
이 집을 사면서 정산금으로 들어왔던 내 몫의 돈을 거의 다 써 버렸지만, 두 달 뒤면 9월. 또다시 정산금이 들어올 테니까.
집을 사면서 부동산과 연결된 변호사와 이야기를 했을 때, 그는 사업자를 먼저 내고 그 사업자로 집을 사면 세금 감면이 될 것이라고 했다. 당연히 그러면 사업자 먼저.
이렇게 전혀 생각지도 못한 일로 3개월짜리 관광 비자를 5년짜리 사업 비자로 바꿀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회사를 두 개 거느린 회장님이 되어 버렸다. 둘 다 회사 소재지로 등록된 건 집이지만.
계약을 하고 나서 여기저기 돌아다닌 뒤에 저녁이 되어 호텔에 돌아오자, 금발로 염색한 짧은 스포츠머리를 한 파란 눈의 여자가 내 방 앞에서 쪼그려 앉아 있었다.
“누구… 시죠?”
“앗! 만나 뵙게 되어서 영광이에요! 저는 마커스 사장님이 보낸 제이드입니다!”
래퍼… 여자였냐? 설마 걸 그룹은 아니겠지?
벌떡 일어나며 인사를 하는 제이드의 얼굴은 귀까지 빨갛게 물들어 있었다.
곧 데뷔할 그룹의 멤버라고 하지 않았던가. 래퍼라고 하기에 남자일 거로 생각했는데 여자였을 줄이야.
래퍼의 세계에서는 여자가 굉장히 드물기 때문일까, 조금은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나저나 매니저도 없이 혼자 왔네?
“런던에서 여기까지 혼자 왔어요?”
“네! 혼자 왔어요!”
대체 무슨 생각인 거냐. 내가 급하다고는 했지만 이렇게 집어 던지듯이 보내는 건 아니지.
“도착해서 전화는 왜 안 했어요? 방은요? 호텔 체크인은 하셨고?”
“…그게…. 제 휴대폰이 방전되어서요. 그리고 방이 없다고 해서…. 오늘만 같이 지내면 안 될까요?”
당연하게도 한 여름의 해안가 호텔은 무조건 예약을 해야 방을 잡을 수 있다.
아직 방에 들어가지 않고 서 있던 크리스를 지긋이 바라보자, 크리스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제이드를 자신의 방으로 데리고 들어갔다.
이번에 산 집을 들어갈 수 있는 건 서류 작업이 끝나야 해서 며칠은 있어야 한다고 했으니, 그때까지는 호텔에서 지내야 한다는 소리.
방문을 열고 들어가 샤워를 마치고 침실로 돌아오자, 어느 틈에 왔는지 에릭이 나를 향해 활짝 웃으며 말을 했다.
“사부님! 저 가사 다 썼어요!”
빨리 시간이 지나가서 오늘 계약한 그 집으로 옮겼으면 좋겠다. 내 호텔 방이 점점 공공장소가 되어가고 있으니까.
이틀이 지나서 녹음을 하기 위해 녹음실로 향하기 전에 마크에게 전화했다. 제이드가 도착했을 때 전화를 해야 했는데 깜빡한 것도 있고.
[해안가의 주택을 원하셨다면, 차라리 말리부에 사지 그러셨습니까.]산타모니카에 집을 샀다고 말을 해주자 마크는 아쉬워하는 듯한 말투로 말했다.
마크는 이곳보다 말리부가 조금 더 고급 주택가이고, 연예인들과 상류층 사람들이 많이 산다고 말해 주었다.
“괜찮아요. 여기가 공항에서 가깝기도 하고. 언제 한번 놀러 와요. 진짜 마음에 들 거예요.”
이게 한국 사람의 특징인 것 같기도 하다. 역세권이 좋은 느낌이랄까. 역에서 가까운 곳을 좋아하는 그 마음을 이쪽 사람들은 절대 이해 못 할 테지만.
크리스와 함께 녹음실의 문을 열고 들어가자 에릭과 제이드 그리고 레코딩 엔지니어로 보이는 처음 보는 남자가 있었다. 매니저들이 안 보이는 걸 보면 다른 곳에 간 것 같았다.
“안녕하세요. 이정현입니다.”
“처음 뵙겠습니다. 저는 유니버설 뮤직의 엔지니어 테드라고 합니다.”
남자가 일어나서 인사를 했다. 특이한 것은 성을 말해 주지 않았다는 것. 이 바닥에 특이한 사람이 한둘이 아니지만, 영국에서 예의가 가득한 사람들만 만나다 왔더니 미국에 왔다는 실감이 들었다.
“오늘 녹음 잘 부탁드립니다. 곡 완성이 아직 안 된 상태에서 보컬 먼저 녹음하는 거거든요.”
아직 세션들이 도착하지 않아서 내가 생각한 수준보다는 떨어지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에릭과 제이드가 가사를 만들어 놓고 기다리며 재촉했기 때문이다.
에릭을 녹음실에 밀어 넣고 콘솔에 붙어있는 컴퓨터에 내가 만든 곡을 넣었다.
“에릭, 처음이니까 가볍게 불러 봐, 가볍게.”
토크 백 마이크의 버튼을 누르며 에릭에게 말했다. 이번이 세 번째 녹음이라 긴장을 하고 있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첫 녹음부터 긴장을 하면 안 되니까.
[걱정 마세요, 사부. 연습 많이 하고 왔으니까.]녹음 작업을 처음 해 보는 제이드가 긴장을 너무 많이 한 것 같아서 에릭부터 녹음실에 넣었지만, 에릭도 초보자인 것은 마찬가지. 겨우 두 번의 녹음을 경험했을 뿐이니까.
자동차 경적과 경찰의 사이렌 소리가 들려 오며 음악이 시작된다.
사이렌이 멎는 타이밍에 시작되는 비트와 멜로디.
닫혀 있던 에릭의 입이 열리고, 가사를 내뱉는다.
내가 생각하던 바로 그 목소리. 이 곡을 만들면서 생각했던 그대로의 목소리가 곡에 덧씌워지고 있었다.
모니터 스피커로 들려 오는 음악과 목소리를 들으며 나름 괜찮다 싶었지만, 몇 군데에서 들리는 이질적인 부분이 들려 녹음을 멈춘 뒤 토크 백으로 피드백을 주었다.
“지금 거 괜찮았어. 괜찮았는데 중간에 그루브를 너무 타. 그러지 마, 너는 너대로 나가야 해. 목소리랑 그루브는 별개라고. 알아들어?”
[네, 다시 한번 해 볼게요.]완성도라는 건 사실 별것이 아니다. 얼마만큼 자신이 신경을 쓰고 있는가에 달린 거니까.
녹음을 몇 번 반복해서 에릭의 파트가 끝이 났다.
녹음실에서 나오는 에릭을 붙잡고 필요한 부분을 이야기했다.
“아직 화음 쌓는 거랑 코러스 남았으니까 목 좀 더 풀고 있어. 아직….”
“예이~ 아직 녹음 안 끝났으니까~”
특유의 환한 웃음을 보이며 에릭이 내 말을 따라 한다. 귀여운 자식.
제이드가 녹음실로 들어갈 때도 크게 걱정이 되지는 않았다. 마크가 칭찬했던 래퍼인 것도 있었고, 그만큼 수준이 높을 것으로 생각했으니까.
하지만 그 생각은 첫 녹음부터 무너져 내렸다.
“아니, 멜로디를 타지 말고 비트를 타라고요. 지금 자꾸 랩이 멜로디를 타잖아.”
[…죄송합니다…. 저도 모르게 그만….]이 노래를 만들면서 원했던 랩은 진중한 경찰 같은 랩이었다. 멜로디는 도망자의 몫. 이 두 개가 분할되어야 했다.
전설적인 래퍼들의 음악을 들어 보면 대부분 피해를 입고 복수를 하거나, 자기를 과시하는 가사들이 많은데 그런 클리셰를 뒤집고 싶었다.
보통의 갱스터랩 안에서 보여 주는 역할을 정반대로 뒤집어 놓았다고 할까. 전설적인 래퍼들은 모두 도망자에 자신들을 대변해 놓았지만, 이 노래 안에서 래퍼는 경찰이 되어야만 했다.
열 번이 넘어가는 데도 여전히 멜로디에 랩을 하는 제이드를 바라보며, 나는 특단의 조치를 내리기로 했다.
“테드, 멜로디 파트를 모두 뮤트시켜 주시겠어요?”
“…멜로디가 안 들리면 제이드가 진입부를 모르게 될 텐데 그게 될까요?”
“멜로디에 신경이 쓰인다고 하니까, 신경 쓰이는 부분을 없애고 해 보죠. 제이드, 내가 토크 백으로 신호를 줄 테니까 그거대로 해 봐요.”
[네…. 알겠습니다.]녹음실 안에서 한참 주눅 들어 있는 제이드를 바라보며 엔지니어에게 신호를 주었다.
그리고 내 머릿속에서도 똑같은 음악을 틀어놓는다.
내가 만든 음악이 모니터 스피커와 머릿속에 동시에 흘러나오고 있었다.
우, 우, 후~
보컬의 파트가 끝나고 내가 만든 코러스로 시작되는 비트. 토크 백을 누르고 신호를 준다.
“지금!”
[I will get you anyway, You can not run away….]멜로디가 없이 랩을 하는 제이드는 수준급의 랩을 보여 주었다. 아직 녹음하는 경험이 부족했기 때문이겠지.
이후 몇 번의 신호를 더 주고받으며 녹음을 끝낼 수 있었다. 엔지니어와 상의해서 쓸 것은 쓰고 버릴 것은 버리며 다듬어 나가는데, 제이드가 와서 사과했다.
“…죄송합니다….”
제이드는 아직 데뷔도 하지 못한 어린애다. 내가 화가 났을 거로 생각했는지 주눅 들어서 고개를 들지 못하고 있었다.
“죄송할 게 뭐가 있어요. 원래 녹음 이렇게 하는데.”
“…다른 프로듀서분들도 이렇게 하신다는 건가요…?”
갑자기 제이드의 얼굴이 창백하게 변해간다.
“그건 모르겠는데? 나는 에릭밖에 녹음해 보질 않았거든….”
나는 에릭을 제외하면 대중가요를 위한 녹음을 해 본 경험이 없었다. 그런데 이 정도가 보통이지 않을까? 어차피 노래라는 건 다 비슷한 거잖아. 사람 입과 목에서 나오는 소리를 녹음하는 건데 크게 다를 것이 없지 않을까.
에릭은 내 녹음 방식에 매우 익숙해서 그런지 크게 신경을 쓰지 않고 소파에 앉아 있었다. 프레스턴 집의 마당에 있는 녹음실에서도 이렇게 반주를 끈 상태로 녹음한 적이 몇 번 있었기 때문이다.
“에릭, 너는 화음 쌓을 수 있게 목 다시 풀어 놓고 있어. 화음하고 코러스만 하면 되니까 금방 끝날 거야.”
“네, 사부님.”
이렇게 에릭이 녹음실에서 화음과 코러스를 녹음하며 오늘의 일정은 끝이 났다.
그렇지만 그냥 돌아가도 된다고 했음에도, 에릭과 제이드는 완성곡을 들어 보고 싶다며 기다리고 있었다.
“야, 아직 세션 안 넣었잖아. 이게 어떻게 완성곡이야.”
“제 데뷔곡에는 세션은커녕 유료 가상 악기도 안 쓰고 만드셨잖아요.”
“그건 대체 무슨 논리야. 그건 애초에 그렇게 만들어야지 하고 만든 거고, 이건 세션을 넣을 거를 계산해서 만든 건데. 엄연히 다르지.”
“괜찮아요. 사부님~ 한 번만 들어 보고 갈게요. 진짜 궁금하단 말이에요.”
애가 점점 더 어려지는 것 같다. 에릭도 내년이면 이제 성인인데.
“어휴. 알았다.”
나는 세션 녹음과 마스터링도 되지 않은 1차 녹음의 결과물을 모니터 스피커를 통해 들려 주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나는 몰랐다. 이 노래 때문에 차트 전쟁이 벌어질 줄은.
음악이 싫은 음악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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