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musical genius who hates music RAW novel - Chapter 51
050화
[이번에 들으실 곡은 요즘 정말 핫한 곡이죠. 8월의 무더위를 잊게 해줄 거예요. 에릭과 신인 래퍼 제이드가 함께 부릅니다. Sunny Side.]뚝.
자동차의 라디오를 꺼 버렸다.
음원 발표 후 한 달. 어디를 가더라도 산타모니카 해안가에 있는 모든 상가에서는 단 하나의 음악만이 들려 왔다.
바로 내가 만든 .
“이런 걸 원했던 건 아닌데….”
더 안타까운 일은 해가 져도 어딘가에서 들려 온다는 것이다.
파티하는 곳에서까지 내가 만든 음악이 들릴 거라는 것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설마 파티를 싫어하는 내가 만든 곡이 파티 피플의 핫 셀렉션이 될 줄이야….
차고에 차를 넣고 올라와 내 방 침대에 누웠다.
똑똑똑.
방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 온다. 대답하고 싶지가 않다.
분명히 에릭이다. 같이 파티에 가자고 온 거겠지. 하도 파티에 가자고 귀찮게 하는 바람에 집 열쇠도 빼앗았지만, 어떻게 해서든 들어온다.
분명 음악을 만들 때 시끄럽지 않은 곡을 생각했다.
비트를 강렬하게 내리치는 평범한 힙합곡이나 EDM이 아닌, R & B와 힙합의 끔찍한 혼종을 만들었다고 생각했다.
실제로도 시끄럽지 않은 곡이었다. 적당한 베이스 부스트를 주고 적당한 멜로디를 넣은 딱 그 정도의 곡.
거기에 색소폰이나 트럼펫을 넣은 것은, 이번에는 가상 악기가 아닌 진짜 악기로 만들어 보고 싶었을 뿐이었다.
어쩌다 이렇게 되어 버린 걸까. 나는 그냥 에릭을 놀려먹고 싶었을 뿐이었는데….
만들어진 것을 들은 뒤에 보여 줄 에릭의 웃긴 표정을 기대했다.
그런데 그 곡이 이렇게 크게 히트를 할 줄이야. 이미 내 의도와는 너무 많이 어긋나 버렸다.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곡이 너무 좋았다.
똑똑똑.
– 저, 제이드예요. 안에 계세요?
에릭인 줄 알고 없는 척하고 있었는데 아니었군. 문으로 다가가 열어 주며 물었다.
“무슨 일이에요.”
“만들어 주신 곡이 너무 좋아서 다시 한번 감사 인사드리러 왔어요!”
“그런 건 괜찮아요. 내가 래퍼가 필요해서 마크에게 보내 달라고 했던 거니까. 그나저나 이 노래 때문에 그룹으로 데뷔하는 게 늦어지는 거 아닌가요? 다른 멤버들이 싫어하겠는데.”
“다른 애들도 오늘 여기에 왔어요! 조금 있다가 같이 인사드릴게요!”
연예인이 되면 일단, 시간 감각이 없어진다. 항상 매니저에 이끌려 여기 갔다 저기 갔다 하며 바쁘게 지내게 되기 때문이다.
지금이 저녁 여덟 시라는 것도 얘는 모르고 있는 것 같았다.
“내일 봐요. 내일. 나는 곧, 잘 것 같으니까.”
“어? 주무신다고요? 에릭이 오늘 여기에서 파티한다고 하던데요?”
어? 여기에서 파티를? 왜지?
한 시간 뒤 내 집 뒷마당에서는 바다가 보이는 자리에 DJ 부스가 차려졌다. 그 앞에는 에릭이 마이크를 들어 MC를 자처하고 있다.
[MC 에릭이 보내드리는 빌보드 HOT 100 차트 1위! 기념 파뤼!]뿌뿌뿌뿌잉~
타이밍 좋게 울리는 전자음이 파티의 시작을 알리고 있었다.
내 집에서 파티가 열리게 될 줄이야. 고2 이후로는 생일 파티도 열어 본 적이 없건만.
뒷마당의 물을 채운 수영장을 중심으로 파티가 펼쳐졌다.
그나저나 사람들이 왜 이렇게 많은 거야.
“지나갑니다. 지나갑니다.”
뒷마당을 가득 채운 인파를 가로질러 도착한 DJ 부스 앞의 간이 무대 위에는, 에릭과 제이드가 마이크를 들고 있었다.
“얌마, 1위는 1위고, 파티를 왜 내 집에서 여는 거야?”
에릭이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나를 보며 대꾸한다.
“네에? 저는 크리스가 사부님이 허락했다고 해서 하는 거예요. 설마 제가 사부님이 허락도 안 했는데 혼자서 이랬겠어요.”
크리스가 뭔가 기념행사 같은 걸 하겠다고 하는 것에 그러라고 지나가듯 대답했지만, 그게 파티일 줄은 몰랐네.
에릭이 파티파티 노래를 부르던 것도 1위를 한 것 때문이었나?
“크흠. 그래, 축하한다.”
할 말이 없었다. 내가 허락했다는 데 뭘 어쩌겠어.
나는 얌전히 얼음이 가득 채워진 상자에 들어 있던 맥주병을 들고 간이 무대 앞을 떠났다.
파티 때문에 구석으로 옮겨진 선베드에 누워 맥주를 한 모금 마실 때쯤, 간이 무대 위에서 음악이 흘러나왔다.
[Yo! Yo! Santa Monica!]“와아아아아! 제이드! 제이드!”
콘서트장을 방불케 하는 뒷마당 1열이 뿜어내는 소리가 이 도시를 채우는 것만 같았다.
제이드의 사인에 맞춰 시작되는 .
자동차의 추격전을 연상케 하는 소리가 지나가고, 트럼펫 소리가 울려 퍼지며 에릭의 목소리가 겹쳐진다.
흘러가는 음악과 파티에 모여든 사람들의 함성이 귀에 들어와 꽂혔지만, 그럭저럭 괜찮은 여름의 공기들이 느껴지는 밤.
“여기에서 뭐 해?”
어떻게 알았는지 내가 있는 곳에 크리스가 찾아왔다.
“뭐 하긴, 맥주 마셔.”
나는 크리스를 바라보며 손에 쥐어진 맥주병을 들어 보여 주었다.
“그래도 기쁘지? 에릭이 1위 한 거.”
미묘하다. 기뻐야 할 것 같은데 엄청나게 기쁘지는 않고, 싫으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잘 모르겠네. 이게 뭐 앨범 차트도 아니고 Hot 100에 싱글 한 곡이라.”
“빌보드 차트가 여러 개야? 그냥 빌보드 차트라고 부르는 거 아니었어?”
“여러 개야. 이번에 에릭이 1위 한 Hot 100은 곡만 올라가는 차트야. 그것 말고도 앨범이 올라가는 차트도 있고, 장르별로 나눈 차트도 있지.”
이 말을 하고 간이 무대를 바라보며 맥주를 한 모금 마셨다.
에릭과 제이드는 얼굴에 환한 웃음을 지으며, 밝은 분위기로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크리스는 옆에 있는 선베드에 누워 내가 바라보는 무대를 함께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에릭도 콘서트 하고 그러면 엄청나게 바빠지겠지? 지금도 엄청 바쁜데. 사실 오늘도 일정 억지로 빼서 내가 파티하자고 한 거거든.”
“너였냐, 범인이.”
미안하다, 에릭. 난 그런 줄도 모르고 네 열쇠를 빼앗았네.
“처음이잖아. 빌보드 차트에서 1위를 했다는 거.”
“UK 차트도 1위는 했잖아. 그때는 파티 같은 거 안 했으면서, 이게 뭐가 대단해.”
사실 UK 차트는 조금 한쪽으로 치우친 차트다.
세계적으로 밴드 음악이 죽어가고 EDM이나 힙합들이 대세가 되어가고 있는 시점에, 아직도 차트 위에 밴드 음악들이 널려 있었다.
다들 런던에서 잠들었던 스물일곱 살의 지미 헨드릭스를 기억하고 있는지, 여전히 밴드 음악이 강세를 보이는 곳이었다.
“그러네, 그랬었네. 그런데 난 말야. 그게 먼 옛날처럼 느껴져. 겨우 두세 달 전 일인데.”
“몇 달 전이면, 아직 펍에서 서빙하고 있을 때 아냐?”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크리스의 서빙하던 모습이 기억났기 때문이다. 지금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지.
가볍게 묶은 머리와 체크무늬 셔츠 위로 입은 앞치마. 언제나 아슬아슬한 것처럼 보이던, 크리스의 손에 얹어진 쟁반 위의 흘러넘친 맥주잔이 생각났다.
“만약에 내가 그때 팔이 부러지지 않았더라면, 지금 이 자리에 리와 함께 있을 수 있었을까? 난 그때 그 일을 생각하면 콘라드에게도 고마워.”
“만약이란 건 없어. 이미 벌어진 일을 갖고 이러쿵저러쿵해 봐야 바뀌는 건 없는 거야.”
내가 선베드에서 몸을 일으켜 세울 때쯤 음악이 끝났다.
쏟아지는 사람들의 함성 사이에서 에릭과 제이드는 여유 있는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리고 콘서트라는 건 최소 열다섯 곡은 가지고 있어야 할 수 있는 거야. 겨우 세 곡 내놓은 에릭이 할 수 있는 건 아니지.”
오늘 파티의 주인공들이 부른 노래가 끝나자 DJ의 주도로 뒷마당은 클럽이 되어 가고 있었다.
그 시끄러운 분위기가 싫어서 집으로 들어가려는데, 짧은 금발 머리를 가진 여자애가 무대에서 뛰어왔다. 제이드다.
“PD님! 어때요? 잘 불렀죠?”
조금 전까지 이 자리에 머무르고 있던 과거를 회상하는 분위기는 온데간데없이, 톡톡 튀는 여자애가 자신의 분위기로 주위를 물들여간다.
“네, 괜찮네요. 이 정도면 빌보드 1위도 할 수 있겠어요.”
“히히. 이미 1위라고요! 1위! 얘들아, 인사해. 이번 곡 써 주신 이정현 PD님이셔!”
““안녕하세요!“”
세 명의 여자애들이 어느새 주위를 둘러싸고 인사를 한다.
짙은 갈색 머리에 갈색 눈을 가진 아이.
“케이트예요.”
분홍색으로 물들인 머리와 파란 눈을 가진 아이.
“루이스입니다.”
검은 레게 머리와 검은 눈을 가진 아이.
“헤나라고 합니다.”
뭐가 그렇게 좋은지 자신들의 이름을 말하고 깔깔대는 여자애들.
“안녕하세요, 이정현이에요. 이쪽은 내 매니저 크리스틴 로저스.”
“잘 부탁해요. 크리스라고 합니다.”
보통 그룹에서 멤버 한 명이 튀는 인기를 갖게 되면 다른 멤버들이 시기와 질투를 한다고 하던데, 다행스럽게도 그런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그나저나 뒤늦게 깨달았는데, 네 명 다 여자네? 걸 그룹을 준비 중이었던 거냐?
그 점잖은 마크의 이미지를 생각했을 땐 걸 그룹은 떠올리지도 못했는데, 설마 걸 그룹이었을 줄은….
“오늘은 같이 놀아요. PD님!”
“앗, 잠깐만! 나는 춤을 춰 본 적이 없다고!”
나는 제이드의 손에 이끌려 무대 앞으로 끌려갔다. 덩치도 작은 애가 힘은 왜 이리 센 거야.
이날 파티는 밤새도록 계속되었고, 다음날엔 숙취로 앓아누웠다.
해외에서 사는 대부분의 한국인이 공감하는 것은 해장국의 필요성이다. 나야 십 대에 한국을 떠나서 한국의 해장 문화를 경험해 볼 일은 없었지만, 드라마 같은 데에서 자주 보이는 해장국 문화는 알고 있었다.
영국뿐만이 아니라 미국에서도 해장은 그냥 진한 커피 한 잔으로 끝내는 경우가 많으니까. 온종일 속이 울렁거리고 더부룩한 것은 그냥 술을 마신 사람이 감당해야 할 부분인 거다.
“어흐, 죽겠다.”
“일어났어? 어제 술 많이 마시는 것 같던데 괜찮아? 커피 한 잔 줄까?”
크리스는 언제 일어났는지 거실에서 나를 보고 반겨 주었다.
“응. 진하게 부탁해. 우유 없이 블랙으로.”
원래 커피는 항상 내가 만들어서 마시는 편이었지만, 오늘만큼은 움직일 기운이 없다.
에릭이나 제이드가 미성년자라 술 대신 음료수로 건배를 해 대는데, 그 틈바구니에 있다가 평소보다 많이 마시게 되었기 때문이다.
뜨거운 커피를 한 모금 마시다가 문득 집 안에 다른 사람이 보이질 않는다는 걸 알게 되었다.
“애들은?”
“오늘 공개 방송 있다고 아까 나갔어.”
“어디인데? 케이블?”
“아냐. CBA일 거야. 오늘 할리우드에서 꽤 큰 행사가 있다고 했었어. 지금쯤 시작했겠다.”
할리우드라. 톱스타들이 총출동하는 건가? 술기운이 아직도 남아 있는지 몸이 만신창이였다.
거실에 놓인 소파 위에 엎드려서 리모컨을 조작해 TV를 틀었다. CBA는 공중파라서 다행이다. 케이블 신청 안 해 놨는데.
“오, 시작한다.”
타이밍을 딱 맞게 틀었나 보다. 기다리는 시간 없이 음악 프로그램이 시작되는 타이밍에 틀었다.
[지금 빌보드를 강타하고 있는 이 시대 최고의 가수죠, 안젤리나 던슨이 보내 드립니다. Dreaming.]에릭이랑 제이드는 언제 나오는 걸까. 듣고 싶지도 않은 수준 낮은 음악들이 들리는 것을 버틸 수가 없었다. 그 후 한참을 기다려 드디어 우리 애들의 차례가 왔나 싶었다.
[에릭과 제이드가 부릅니다. Sunny side.]뭐야. 빌보드 1위잖아. 그런데 왜 그 1위 밑에 있는 애들보다 소개가 부실한 거지? 데뷔한 지 얼마 안 되어서 인지도가 낮으니까? 그건 말도 안 되는 거지. 빌보드 1위면 그만한 대우를 해 줘야 하는데.
이건 방송사에서 대놓고 먹이겠다는 건데.
노래를 시작하려던 바로 그때. 무대 위에 누군가가 뛰어올라 제이드의 마이크를 빼앗았다. 공중파 안전 요원이 너무 허술한 거 아니냐?
정신을 차리고 TV를 바라보니 제이드는 울상을 짓고 있었고 에릭은 경악하는 표정이었다.
마이크를 빼앗은 남자가 최고의 힙합 프로듀서라고 불리는 ‘드자’였기 때문에.
그 ‘드자’가 관중석을 향해 소리친다.
[이건 진정한 힙합도 진정한 R & B도 아니지. 그저 너희들의 귀를 틀어막을 쓰레기지.]고개를 돌려 제이드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한다.
[그리고 쓰레기를 내뱉는 넌 래퍼도 아니지.]그리고 마이크를 집어 던진 뒤, 무대에서 사라졌다.
뭔데? 그게 랩이 아니면 굿거리장단이냐?
하아…. 오랜만에 열 받게 하네.
음악이 싫은 음악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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