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musical genius who hates music RAW novel - Chapter 54
053화
재지는 레이블을 만든 뒤 힙합 음반을 판매하여 수십 년이 지나도, 힙합으로 그보다 많은 수익을 올릴 수 있는 사람은 다시 없을 거라는 소리를 듣는 사람.
지금의 재지는 음악보다는 사업가로서의 이미지가 훨씬 강했지만, 음악계의 모든 기록을 모두 통틀어서 최고를 기록한 ‘비틀쥬스’ 다음가는 앨범 판매량을 기록한 음악계의 전설이라고 할 수 있었다.
“하하하하. 뭐 드시겠어요? 코냑으로 드릴까요?”
“좋은 물건 좀 가지고 있나? 내가 말하는 물건이 뭔지는 알고 있지?”
자기 소유의 럭셔리 코냑 회사를 갖고 있고 맥주, 샴페인 등 다양한 주류 회사의 주주로 있는 그를 위해 농담을 던지자, 그는 웃으며 농담을 받아 주었다.
“미안해요, 지금 집에는 맥주랑 물밖에 없어요.”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놀리는 것은 아니었기에 재지도 함께 웃으며 떠들 수 있었다.
“괜찮아. 맥주면 충분해.”
“크리스, 여기 맥주 두 캔만 부탁해~”
크리스에게 맥주를 부탁하면서도 재지에게 무슨 말을 해야 할지를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지금 나의 기분은 드자가 그 어떤 카드를 꺼내놓더라도 무조건 이길 수 있을 것 같은 느낌, 게임에서 무적 아이템을 얻은 것 같은 그런 느낌이었다.
배관공 게임에서 별을 먹었을 때처럼.
“어떻게 여기까지 오신 거예요? 정말 저랑 팀을 짜고 싶어서 여기까지 오신 거예요?”
LA에도 집을 몇 채나 갖고 있기에 LA에 있다고 하더라도 이상할 것은 없지만, 그는 뉴욕 출신이고 그의 회사들의 본사도 전부 뉴욕에 있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나는 그저 LA에 NBA 선수들과 대화를 하러 왔었던 것뿐이야. NBA는 지금 오프 시즌이니까 한창 계약을 해야 할 때거든.
그런데 LA에 와 있는데 드자와 네가 재밌는 일을 꾸민다는 소리를 들었어. 그래서 선수들과 만날 약속도 다른 직원에게 미루고 달려온 거야.”
“영광이네요, NBA 스타들보다 제 가치가 높다고 말해 주는 것 같아서.”
“하하하하! 브로, 너 진짜 웃기는구나! 내가 다른 사업들에 신경을 많이 안 쓰고 아직 음악에 올인하고 있었다면, 당연히 너와 함께하고 싶어서 먼저 연락을 했을 거라고. 이런 이벤트가 없어도 말이야.”
크리스가 가져다준 맥주 캔을 뜯어 한두 모금을 하며 살아가는 이야기를 하다, 그의 입에서 본론이 나왔다.
“그렇게 하기 싫어하는데 어떻게 그렇게 좋은 음악을 만들 수 있는 거지?”
내가 삶에서 느끼듯 음악에서도 느꼈던 권태. 나는 열심히 숨기며 살아 왔지만, 그의 귀에는 그게 들렸었나 보다.
“어떻게 알았어요…? 다른 사람들은 눈치채질 못하던데….”
“솔직히 말해 주자면 이번에 만들었던 음악을 들을 때는 귀가 참 즐거웠어. 이전에 네가 발매했던 클래식이나 R & B들과는 다르게 말이야.
그 곡들이 좋지 않았다는 말은 절대로 아니야. 네가 내 말을 믿어 줄지는 모르겠지만, 정말 환상적인 곡이라고 생각하니까.
하지만 이번 곡은 별개라고 봐야 하지 않아? 설마 내가 래퍼라고 힙합만 들을 거로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맞아요. 다른 때와 다르게 만든 곡이었어요.”
여태까지 만들어 왔던 것과는 다르게 머릿속에 떠오르는 대로만 만들지 않고, 머릿속에 떠오르기 전에 먼저 이것저것 집어넣으며 즐기면서 만들었던 첫 노래였다.
“그걸 알아챈 건 재지가 처음이에요. 그 곡을 만들 때는 정말 즐거웠었거든요. 이번에는 곡을 만들 때 정말 아무 생각 없이 에릭을 놀려주려고 만든 거였어요. 아, 에릭은 알죠?”
“맞아, 생각하기 전에 감각으로 느끼는 것이 더 중요할 때가 많다고. 내 경험을 토대로 말해 주자면, 그렇게 만든 곡이 열심히 생각하며 만들었던 곡보다 더 잘 팔렸어. 그런 곡들이 나에게 그래미 트로피와 전용 제트기를 선물해 줬지.”
그는 사람을 들었다 놓았다 하는 환상적인 화술을 갖고 있었다. 이렇게 말을 잘하는 사람이니까 사업도 그렇게 잘하는 거겠지.
또 내가 무슨 말을 하기 시작하면 그 말에 숨어 있는 의도를 모두 파악하고 대답해 줄 수 있는 사람. 이런 사람은 처음이었다.
“사람은 말이야. 자신이 잘하는 것에는 쉽게 싫증을 내게 되어있어. 자신이 잘 못하는 것에 재미를 느끼지. 재능이 있어서 잘한다고 거기에서 재미를 느끼는 것은 아니거든.”
“나도 음악을 만드는 게 재밌다고 느꼈던 건 이번이 처음이었어요.”
“진지하게 말해서 만약에 내게 네가 가진 재능이 있었다면, 나는 사업 같은 것에는 손도 대질 않았을 거야, 리. 네가 내일 노래를 불러 앨범을 만든다면, 장담하지. 내가 만든 기록들은 순식간에 깨져 버릴걸. 하하하하.”
“농담도. 비틀쥬스만 아니었으면 당신은 기네스북에도 올랐을 텐데요.”
재지는 맥주 캔을 다 마시곤 손으로 구기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너와 대화를 하는 건 즐겁지만, 오늘은 이만 돌아가야 할 것 같아.”
“나를 이렇게 잘 알아주는 사람을 만난 건 정말 태어나서 처음이에요. 지금까지는 내가 무슨 말을 해도 주변에 있는 사람들은 믿어 주질 않았거든요.”
그리고 내가 이렇게 말을 많이 할 수 있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재지와 나눈 대화는 너무 즐거웠다.
재지는 그의 이름과 전화번호가 쓰인 금장으로 화려하게 수 놓인 명함을 내밀며 말했다.
“내일, 이쪽으로 와서 내게 전화를 줘. 우리 한번 신나게 놀아 보자고!”
“좋아요. 내일 내가 찾아갈 테니까, 모르는 척하면 안 돼요!”
“하하. 너도 농담을 좀 할 줄 아는군?”
재지는 현관문을 나서면서도 웃음을 잃지 않았다. 그는 지금까지 살아오며 만났던 수많은 사람 중에 가장 나와 잘 맞는다고 느껴진 사람이었다.
배웅하려 현관까지 나와 그의 뒷모습을 보며 처음으로 삶이라는 게 즐겁다고 느낄 수 있었다.
“재지가 함께하는 거야?”
뒤에서 들려 오는 크리스의 목소리에 정신을 차리고 그녀를 바라보았다.
다른 사람들을 만날 때와는 다르게 흥분하며 얼굴이 살짝 붉게 달아오른 것 같았다.
“재지를 알아?”
“알지! 최고의 디바 지젤의 남편이잖아!”
아, 재지를 아는 게 아니라 금세기 최고의 디바라고 불린 ‘지젤’을 아는 거였군.
크리스가 재지를 아는 줄 알고 살짝 놀랐다. 프레스턴에서 힙합 음악이 들려 오는 가게는 거의 없었으니까.
“힙합계에서 가장 많은 앨범을 판 남자야.”
“리가 힙합의 전설이라고 말했던 드자보다도 더 많이 팔았어?”
“훨씬 더. 드자의 성향은 상업적이라기보다는 좀 매니악한 편이었거든. 재지는 상업과 마니아의 절묘한 경계선에서 줄타기하던 남자야.”
크리스의 얼굴이 안심으로 물들어간다. 드자의 선전 포고 때문에, 아닌 척하더라도 걱정을 했을 테니까.
물론 차트 전쟁은 승자와 패자가 따거나 잃는 그런 도박 같은 승부는 아니었다. 양쪽 모두 걸었던 것은 없으니.
어떻게 보면 일종의 자존심 싸움 같은 거라고나 할까.
“다행이네. 그런 사람이 우리 편을 들어준다고 해서.”
“그러게 말이야, 벌써 이긴 기분이야. 지는 걸 좋아하는 사람은 없잖아.”
내가 활짝 웃으며 대답하자, 크리스도 환한 웃음을 보여 주었다. 그 웃음을 정말 오랜만에 보는 것 같았다.
***
“브로, 가장 잘하는 걸 하려고 하지 말고 가장 즐거운 걸 해야 해. 만드는 우리가 즐거워야 들어 주는 사람도 즐거운 법이거든.”
“알았어요, 재지.”
내가 조금이라도 즐거워 보이지 않는다면 재지는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말해 주어, 즐겁게 작업할 수 있었다. 이런 경험은 지금까지 살아 오며 처음이었다.
내가 하는 것들에 감탄만 하고 지켜보기만 하던 사람들과는 다르게, 재지는 나와 많은 의견을 주고받으며 작업을 할 수 있었다.
나는 그와 함께 지금껏 시도하지 않은 새로운 것들을 시도하는 것이 좋았다.
재지는 힙합의 대부답게 이곳저곳 뻗어 있는 인맥을 통해 최고의 연주자들을 모아왔다.
뉴욕에서 데려온 블루스 밴드와 아프리카의 전통 악기 봉고 아티스트까지.
DAW 프로그램으로 먼저 베이스 음을 만들어 낸 뒤 실제 연주를 통해 음악을 만들었던 방식이 아닌, 실제 연주를 먼저 하고 그것으로 음악을 만들어 내는 것은 처음 경험해 보는 일이었다.
그렇게 지금까지 해 보지 않은, 지금껏 존재하지 않은 음악을 만들어 낼 수 있었다.
치잉~ 징, 지징~ 칭, 뚜룻~ 뚯뚜~
기타리스트가 연주하는 블루스 멜로디가 메인 선율을 담당하고, 그 반주의 위에 트럼펫이 추임새를 넣으며 음악이 되어가는 것을 옆에서 지켜보는 것은 정말 즐거운 일이었다.
얼마 전 힙합곡을 만들기 위해 구매했던 드럼 머신은 이번에는 나설 곳이 없었다. 우리는 라이브 연주를 통해 음악을 만들었으니까.
퉁둥, 타당~ 퉁두, 타당~ 통, 퉁둥, 타당~
한 명이 봉고를 두드리는 그 리듬이 단 하나의 악기를 두드리는 것인데도 정말 다양하게 들려 왔다.
내가 즉흥적으로 떠올리는 느낌을 따라 사람들에게 주문했던 것들이 뭉쳐져 하나의 곡이 되었다.
“거봐, 여럿이 모여서 즐겁게 하는 게 뭐든 더 좋다니까? 네가 만들어 낸 이 예술보다 더 예술 같은 곡을 좀 들어 봐.”
“날 부끄럽게 하고 싶은 거예요? 우리라고 해야죠.”
“하하. 날 부끄럽게 만들지 말라고, 브로. 이 곡은 90% 이상 네가 만든 거니까. 알잖아. 나는 옆에서 지켜보기만 했다는 걸.”
그 느낌들을 나 혼자서 떠올렸다고는 생각할 수 없었다. 그것들을 떠올릴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 준 것은 재지였으니까 말이다.
“우리가 함께 만든 거예요.”
“좋아. 그러면 우리들의 이름을 함께 넣자고. 재지 앤 리 어때. 내가 앞에 등장하는 건 이해해 주겠지? 한국은 나이가 많은 사람이 얻는 것이 많은 나라라고 들었거든.”
장난스러운 웃음을 지으며 하는 재지의 말에 나도 웃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하죠. 할아버지. 하하. 재지 앤 리 좋네요.”
“오 갓. 내 딸은 이제 겨우 스무 살이라고. 할아버지가 될 때까지는 멀었단 말이야.”
큰 굴곡이나 고민 없이 모두 즐기면서 만들어진 이번 전쟁의 가장 큰 무기가 될 곡은, 재지의 녹음이 끝난 며칠 뒤 마스터링 스튜디오로 보내질 수 있었다.
재지와 함께 이름을 올려 발매한 싱글은 9월 두 번째 주에 유니버설 UK을 통해 발매할 수 있었다.
내가 재지와 함께 곡을 만들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마크가, 전화상으로도 기뻐하는 것을 확연히 느낄 수 있을 정도로 기뻐했다.
“이건 무조건 내 레이블로 내고 싶었지만, 이번에는 내가 양보하는 거야. 알지?”
“고마워요. 이번에는 제 레이블로 발매해야 대결이 되니까요. 이 곡 말고도 너무 많은 도움을 얻은 것 같네요. 정말 고마워요.”
“나도 즐거웠어. 내 도움이 필요할 땐 언제든지 전화해, 브로.”
재지가 차트 전쟁에 참여한 소식이 알려지고 나서 여론은 불타올랐다.
처음만 하더라도 힙합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나를 무시하며, 내가 주도하는 쪽은 절대로 이길 수가 없다는 분위기가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자 다들 어디가 이길지 알 수가 없다는 쪽으로 기울었다.
나는 제이드와 에릭을 데리고 몇 곡을 더 발표하며, 이 차트 전쟁에 연료를 가득 채워갔다.
그리고 시간은 벌써 10월의 막바지에 접어들어 심판의 날이 다가왔다.
음악이 싫은 음악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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