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musical genius who hates music RAW novel - Chapter 55
054화
내가 만든 음악에 재지의 목소리가 얹어진다.
이윽고 커다란 스피커에서 나오는 비트와 멜로디.
[제트기에 올라 펜 없이 가사를 써 내려가.나보다 더 쩌는 놈이 이 바닥에 있던가?
마약 팔던 브루클린 소년이 뉴욕에 돌아왔어.
너희들 어서 두 손을 들어 그 소년을 반겨 줘.]
확실히 재지의 랩은 최고였다. 괜히 30년간이나 이 바닥에서 최고라는 소리를 듣던 것이 아니었다.
물론 음악보다 사업에 더 매진하면서 욕을 많이 먹기도 했지만, 음악적으로는 깔 것이 없다는 평을 듣던 사람이니까.
나는 목소리와 비트만을 강조하는 것보다 풍성한 소리를 만들고 싶었기에, 블루스를 가미한 멜로디를 추가했다.
그 멜로디가 기타리스트의 기타에 연결된 앰프에서 뿜어져 나온다.
기계적인 샘플링이 아닌 라이브 연주로 이루어진 힙합곡.
지잉~ 징~ 지지징~ 징~ 칭징~
손가락의 밴딩만으로 만드는 소리인데도 너무 풍성하게 느껴지는 떨림음.
봉고 특유의 소리가 중간중간 비어있는 곳을 자연스럽게 채워간다.
간간이 들려 오는 피아노 건반과 트럼펫 소리가 잇따르며 분위기를 고조시킨다.
그 사이를 파고드는 재지의 랩.
[나는 지금 매디슨 스퀘어에 서 있어.리가 만든 음악 위에 가사를 끼얹어.
누군지 모르는 네게 소개할게.
우릴 다시 한번 네게 소개할게.
나는 우물에 물을 파는 세일즈맨.
리는 지옥에 불을 파는 세일즈맨.
세일즈맨 둘이 만나 힙합을 팔아.
너희에게 우리들의 꿈들을 팔아.]
재지의 가장 큰 특징인 딕션과 라임이 내 귀에 꽂혀 왔다. 무대 앞에 모여 있는 수만 명의 관중에게 우리가 만든 음악을 들려 주고 있었다.
이들은 손을 들어 재지의 랩에 호응하며 그의 랩 한마디 한마디에 귀를 기울였다.
이 자리까지 온 것을 보면 분명히 이 곡을 최소 몇 번은 이미 들었겠지만, 라이브는 라이브의 맛이 있어서 다른 음악으로 느껴지기도 하니까.
[남자도 여자도 거짓말을 하지,하지만 숫자는 거짓말을 안 하지.
지금 여기 무대 위의 우리가 누구?]
““재지!””
[빌보드 제일 위에 있는 사람 누구?]““재지 앤 리!””
애드리브로 꽉 찬 가사들까지 내뱉으며 승자가 될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 재지.
한마디를 내뱉을 때마다 마이크를 관객석으로 향하며, 자신의 이름을 듣는 것을 마치 즐기듯이 무대를 압도해 나아간다.
““재지! 재지! 재지! 재지!””
[모두 소리 질러!]““우와아아아아아아아아!””
뉴욕 맨해튼에서 가장 큰 공원 매디슨 스퀘어. 그 안에 만들어진 공연장을 가득 채운 수만 명의 함성이, 땅을 울리게 만들었다.
10도 안팎의 추운 가을 날씨에도 사람들은 추운 줄도 모른 채, 마치 한여름에 나와 있는 것처럼 열기를 내뿜는다.
중간중간 반소매를 입은 사람들도 눈에 들어왔다.
[올롸잇, 올롸잇! 오늘 밤! 승자가 결정될 거야! 바로 오늘!]““와아아아아아아아아!””
사실 승자는 이미 결정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재지가 나의 음악에 랩을 얹은 곡은 빌보드의 1위에 박혀 지난 한 달 동안 내려오질 않았다.
나는 무대 바로 아래, 모니터 스피커 바로 옆의 특등석에서 재지의 말들을 들으며 승리자의 미소를 짓고 있었다.
음악이 끝나가는 그 관중들의 함성이 나에게 안기는 트로피 같았다.
재지는 나와 함께 만든 곡들을 자신의 고향인 뉴욕 사람들과 나누고 싶어 했다.
그래서 그것을 위해 승부의 마지막 날인 오늘, 이곳에 무대를 만들어 공연을 할 수 있었다.
[Hold on, Hold on. 잠깐만.]음악이 끝나고 재지가 관중들을 향해 말을 한다.
[너희들, 이 쩌는 노래들 누가 만들었는지 보고 싶지 않아?]““와아아아아! 리! 리! 리! 리!””
재지가 나를 보며 손짓한다. 나는 못 이긴 척 무대로 오르는 계단으로 향했다.
성악을 그만두고 무대에 올라보는 것이 얼마 만인가. 기억도 나질 않았다.
무대 위로 비치는 조명이 눈을 뜰 수도 없게 강했다. 관객들은 보이지도 않았다.
[랩은 한마디도 못 하지만, 최고의 음악을 만들어 준 프로듀서에게 소리 질러!]““리! 리! 리! 리! 리!””
너무 커다란 소리가 온몸을 흔들어 정신을 차릴 수가 없다. 조명이 익숙해져 무대 앞에 모여든 수많은 사람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셀 수도 없이 모여든 사람이 모두 무대를 향해 손을 뻗고 함성을 지르고 있었다.
[모두 기억해 둬! 힙합뿐만이 아니라 음악의 전설이 될 남자니까!]재지는 내 어깨에 손을 두르고 관중들을 향해 소리쳤다. 이날의 라이브 영상은 전설로 남게 되었다.
***
“내가 졌네.”
“졌다고 말하는 것 치고는 그리 아쉬워하는 것 같지는 않네요.”
뉴욕 맨해튼의 어느 바에서 만난 드자와 나, 우리 둘은 이 전쟁을 시작하던 때와는 다르게 웃고 있었다.
그때는 호승심에 웃었다면, 지금은 모든 것을 다 털어냈다는 웃음이었다. 둘 다 만족했으니까.
그 때문인지 처음 얼굴을 마주하는 것이었지만, 오랫동안 알고 지낸 사이처럼 어색하지 않았다.
아마도 곡을 만들면서 그의 얼굴을 많이 떠올렸었기 때문일 거다.
최종 스코어는 이견이 있을 수가 없을 정도로 차이가 났다. 1위와 2위 사이에는 그만큼 큰 간극이 벌어져 있었으니까.
하지만 그는 여전히 자신이 건재하다는 것을 보여 주듯 한 곡을 2위에 올려놓으며, 내가 만든 다른 곡들을 물리치는 기염을 토했다. 전설이라는 타이틀을 그냥 얻어낸 것은 아니었다.
그 짧았던 한 달 반이라는 시간 동안 출시되었던 곡은 수백 곡이 넘었고, 그중에 나와 드자가 발매한 싱글 역시 열 곡은 되었다.
“솔직히 말하지. 난 내 전성기 시절보다 더 열심히 만들었어. 만약 이 곡을 그때 발매했었다면, 나는 그래미에서 올해의 앨범 트로피를 들고 있었을 거야.”
전성기의 그도 받질 못했었던 그래미의 가장 큰 상인 올해의 앨범. 그 올해의 앨범상까지 이야기하는 것을 보면, 그가 자신이 만든 곡에 정말 크게 만족했다는 것이 느껴졌다.
“나도 당신이 만들었던 곡 좋았어요. 최근에 나오는 다른 음악들처럼 지나가듯 가볍게 만들지 않았다는 것도. 사실 우리가 전쟁이라고는 했지만, 즐거웠잖아요. 그러면 된 거죠.”
위스키 잔을 들어 올리며 말을 하자 그는 아무 말 없이 건배하곤 한 모금을 마셨다.
“음악은 즐거운 놀이지. 만드는 사람도 즐겁고, 듣는 사람도 즐거운 놀이.”
드자는 그렇게 말하곤 고개를 숙이며 말을 이었다.
“제이드에게는 미안하다고 전해 줘. 나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거든. 돈을 위해서가 아니라 수많은 후배에게 기회를 주기 위해서였어. 제이드를 희생양으로 삼으려 했던 거지.
다즈니가 지원해 준다면, 슬럼에서 사는 힙합 하나에 목숨 건 멍청이들이 더 좋은 삶을 살 수 있다고 생각했었으니까.”
“한 가지 제안이 있는데 들어줄래요?”
나는 무거운 분위기로 향하는 것에 제동을 걸듯, 이 차트 전쟁을 시작할 무렵부터 생각해 오던 것들을 말했다.
“제안?”
“네.”
“말해 봐. 우리 승부에서 패자의 조건은 없었지만, 승자가 하는 이야기 정도는 들어 주지.”
드자는 씨익 웃으며 나를 바라보았다.
“우리가 만들었던 곡들 모아서 공동 앨범으로 발매하죠. 곡들을 조금씩 더 다듬어서.”
“미친놈. 리, 넌 확실히 나보다 더 미쳤어.”
그는 낄낄 웃더니 남아 있던 위스키 잔을 단숨에 들이켜곤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뭐 해, 일어나지 않고? 앨범 안 만들 거야?”
나는 그렇게 드자와 함께 공동 앨범 작업을 시작했다.
***
드자와 함께 만든 앨범은 얼마 지나지 않아 발매할 수 있었다. 이미 곡 대부분은 마스터링까지 되어 싱글로 발표가 되어있었으니까.
다만 드자의 욕심이 조금 더 들어가 미발표되었던 곡들을 넣느라, 2장의 CD로 발매되었다.
앨범을 발매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12월이 되었다.
적당한 후드티를 입고 마트에서 식료품들을 사고 차를 향해 걸어가고 있던 그 순간, 어디선가 입으로 내뱉는 비트박스와 랩이 들려왔다.
[메모장 한 장과 볼펜만 있으면 돼.한 구절 라임과 녹음기 있으면 돼.]
차트 전쟁이 힙합 판에 새로운 불을 질렀다는 것은 어디에 가더라도 느껴졌다.
힙합뿐만이 아니라 다른 차트에도 신곡들이 넘쳐났지만, 힙합은 다른 차트보다 더 전쟁터였다.
상점이 늘어선 산타모니카의 아케이드에도 이렇게 길거리 랩 배틀이 이뤄질 정도였다.
“여기는 이제 낮에도 못 오겠네. 너무 시끄러워.”
“저기 좀 봐 봐, 길거리 래퍼가 있어. 이런 거 정말 너무 멋지지 않아?”
나는 크리스를 바라보았다. 크리스는 나와 전혀 다른 세상을 사는 느낌이었다.
“미쳤어, 크리스? 이게 뭐가 멋지다는 거야?”
“우리가 처음 여기에 왔을 때를 생각해 봐. 네가 여기를 이렇게 바꾼 거잖아, 리.”
크리스의 말에 주변을 다시 둘러보았다.
식료품을 사러 상점에 다녀오는 길에 보이는 길거리 래퍼들. 비트박스를 하는 사람들과 그들이 만든 비트 위에서 랩을 하는 래퍼.
그리고 몸을 흔들며 함께 즐기고 있는 사람들.
드자가 공개적으로 선언했던 차트 전쟁 이전에는 볼 수가 없는 광경이었다.
길거리에 간혹 보이던 마약쟁이들과 시비를 거는 양아치들이 있던 곳에는, 이제 그들을 대신해 길거리 래퍼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사람들이 인상을 쓰며 피해가야 했던 곳이, 구경하는 사람들도 함께 웃고 즐길 수 있는 그런 분위기로 바뀌었다.
“내가 사람들을 바뀌게 할 수 있다고?”
그렇게 생각하니 조금 다르게 보였다.
그저 시끄럽고 불량하게만 보이던 광경이 사람들이 즐겁게 모여 노는 것처럼 보였다.
“바뀌게 할 수 있는 게 아니야, 리. 이미 바꿨어.”
내가 세상을 바꾸고 있었다.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난 지금까지 그렇게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난 그저 내가 만들어 낸 음악들이 대중적인 유흥거리의 단편, 그 이상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으니까.
“젠장.”
“갑자기 왜 그래, 리?”
지금까지 매번 음악을 만들면서 정말 아무 생각도 하지 않았었다.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한다는 생각뿐이었는데, 지금은 음악이 조금 무서워지기 시작했다.
심장이 두근거리고 손이 떨려왔다.
내가 만든 음악이 누군가에게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과 내가 음악이 가진 힘을 너무 모르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 좋은 음악을 만들 수 있을까?”
“글쎄, 지금까지도 좋은 음악을 만들어 왔잖아.”
“아니, 그런 거 말고. 세상을 바꿀 만큼 진짜 좋은 음악을 말이야.”
“세상을 바꾸고 싶은 거야?”
살아간다는 것은 혼자 걸어가는 것과 같다고 생각했다. 누구에게도 영향을 주지 않고 받지도 않는 삶.
세상을 바꾸고 싶다는 생각은 단 한 번도 해 본 적 없었다. 지금까지 권태로운 세상에서 그냥 되는 대로 살아 왔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세상을 바꿀 수 있다면 조금 더 좋은 세상으로 바꾸고 싶어졌다. 내가 그걸 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으니까.
“내가 할 수 있다면.”
그 말이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대답 전부였다.
음악이 싫은 음악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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