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musical genius who hates music RAW novel - Chapter 57
056화
“여보세요.”
[사부님, 저예요. 생방송 중에 전화를 드려서 정말 죄송해요. 그래도 욕이나 험한 말은 하시면 안 돼요.]전화기의 저편에서 걱정하는 에릭의 목소리가 들려 왔다.
“…너 이 씨….”
욕이 나오려 했지만, 초인 같은 인내력으로 멈출 수 있었다.
에릭이 무슨 죄냐. 이런 강요를 한 방송국 놈들이 나쁜 거지.
전화를 받고 싶지는 않았지만 받지 않을 수가 없었다. TV를 꼭 봐달라고 해서 보고 있다는 걸 에릭도 알고 있었으니까. 안 받으면 서운해했겠지.
어쩌면 이해해 주었을 수도 있겠지만, 이미 받아 버렸다.
[안녕하세요, 이정현 씨. 미국 넘버 원 토크쇼, 토니 브라이언 쇼를 진행하는 토니 브라이언입니다.이렇게 갑자기 전화를 드리게 되어 죄송하다는 말씀 먼저 드리고요, 시청자분들께 인사 부탁드립니다.]
“아, 네. 안녕하세요. 이정현입니다. 저를 기억하는 분이 계실지는 모르겠지만, 최근에 발매했던 에릭의 곡들 그리고 앨범의 작곡과 프로듀싱을 했습니다. 만나 뵙게 되어서 반갑습니다.”
대중을 향한 말들은 속으로는 아니더라도 친절한 말투를 사용해야 한다. 좋은 소문은 느리지만 나쁜 소문은 그 무엇보다 빠르다는 걸 나는 경험상 아주 잘 알고 있다.
전화의 소리와 TV의 소리가 약간의 시차를 두고 들려 왔다. 그 겹치는 소리가 거슬려 자리에서 일어나 거실을 벗어났다.
어디 앉을 곳이 없기 때문에, 평소에 자주 머무는 마당의 선베드에 누워 통화하기로 했다.
[어휴, 저희 방송 시청자분들 중에 이정현 씨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텐데요.먼저 앨범 발매 후 차트 통합 1위를 축하드립니다. 이미 알고 계시겠지만 Hot 100 차트와 200 차트 1위에서 내려오질 않고 있는데요, 소감 한 말씀 들어 볼 수 있을까요?]
“…어…. 갑자기 들어온 질문이라 조금 당황스럽기는 합니다만, 즐겁게 작업했습니다.
많은 분과 즐겁게 작업했기 때문인지 들어주시는 분들도 즐거워해 주시는 것 같아서 만족합니다. 구매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갑자기 소감을 물어봐서 당황해 버렸다. 내 주변 사람들은 차트에 올라가는 것을 너무 당연하게 여겼기에, 이런 걸 물어봐 주는 사람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럴 때 구매해 주셔서 감사하다고 하는 게 맞나?
[기존에 발표하셨던 클래식 곡과 R & B 곡의 반응도 굉장히 좋았었는데요, 그런데 아시다시피 힙합은 음악이라고 하더라도 전혀 다른 분야 아니겠습니까?마치 수학과 물리가 다른 것처럼 말이죠. 이렇게 전혀 다른 장르의 곡을 쓰는 데 어려움은 없었는지요?]
“음, 제 생각을 물어보시는 거라면 음악은 음악입니다. 똑같다는 거죠. 감자 칩의 양파 맛과 바비큐 맛 정도의 차이라고 생각합니다. 맛은 전혀 다르지만 둘 다 감자 칩이라는 것은 같죠.
물론 교향곡을 작업하는 시간이 조금 더 오래 걸리기는 합니다, 아시다시피 클래식은 악기 종류만 수십 개가 넘게 있어야 하니까요. 하지만 큰 차이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음악과 감자 칩을 비유하는 것이 조금 이상한 느낌이 들기도 했지만, 준비된 인터뷰가 아니었기에 질문에 대답할 말들이 잘 떠오르질 않았다.
[양파 맛과 바비큐 맛이라니, 취향 문제일 뿐이라는 거겠죠? 자, 마지막 질문입니다.현재 저희가 극비리에 입수한 그래미 시상식의 예비 참석자 명단에 이정현 씨의 이름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는데요, 참석하시는 게 맞나요?]
“…초대장은 받았지만 사실 아직 고민 중입니다. 그 자리에 제가 나가도 되는지를 잘 모르겠거든요.”
가장 중요한 상금에 대한 말이 턱 밑까지 차올랐지만 말할 수 없었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토니 브라이언은 마지막이라고 했으면서 한 번의 질문을 더 했다.
[그러면 이곳 토니 브라이언 쇼는 어떠십니까? 이정현 씨가 나오시기를 저희 관계자 모두가 원하고 있거든요. 한번 와 주실 생각이 있습니까?]“마지막 질문이라고 하시더니 갑자기 훅 들어오시네요. 많은 분이 저를 원한다는 것이 느껴지면 나가도록 하겠습니다.”
일부러 조금 애매하게 대답했다.
조건을 걸어야 무조건 나오라고 우길 수는 없을 거라는 생각이었다.
[시청자 여러분, 지금 이정현 씨가 하신 말 들으셨죠? 여러분들이 원하신다면 그 어디에도 노출되지 않았던, 이정현 씨의 이야기를 저희 토니 브라이언 쇼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지금 바로 저희 웹사이트에 접속하셔서 그 증거를 남겨주세요!]토니 브라이언이 흥분하며 외쳤다. TV가 보이지 않는 곳에 나와서 전화를 받고 있기 때문에 표정을 볼 수는 없지만, 아마 표정도 아마 쇼핑 채널의 호스트 같지 않을까.
그러고 보니까 이거 생방송이잖아. 생방송에서 저런 말을 해도 되는 거야? 내가 안 나가겠다고 하면 허위 광고로 잡혀가는 건 아니겠지? 사기 같은 거로 혐의가….
[물어보고 싶은 말은 많지만, 전화 인터뷰는 여기까지 하도록 하겠습니다. 다음에는 스튜디오에서 뵐 테니까요. 감사합니다. 이정현 씨!]“아, 네. 감사합니다.”
뭐라고 대답을 해야 할지를 몰라서 그냥 고맙다고 말하고 끊어 버렸다.
끊긴 전화를 바라보며 멍하니 있었다. 다시 TV 앞으로 돌아가자니 뭔가 낯 뜨거운 소리를 하고 있을 것만 같았다.
대체 왜 나에 대해 궁금해하는 걸까? 그걸 이해할 수 없었다.
이제 적당히 인터뷰도 하고 그래야 할 것 같은데? 몇 번 하다 보면 그다음에는 알고 싶어 할 것도 없을 테니까. 어쩌면 실망을 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난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특별한 것만 있지는 않으니까.
그냥 평소와 다르지 않은 밤이라고 생각했다. 미국에서 시청자가 두 번째로 많다는 토니 브라이언 쇼에서 전화가 오지만 않았더라면 말이지.
멀리 바다에서 불어오는 차가운 바닷바람이 뺨을 스치며 지나갔다.
***
1월 중순에 열리는 그래미 시상식까지 3주가 남은, 참석 여부를 알려 줘야 하는 12월 23일.
왜 미리 알려 주어야 하느냐고 물었더니 자리를 준비해야 하기 때문이란다.
조금 가 보고 싶기는 했다. 내가 경험해 본 적이 없기 때문에 궁금했으니까.
그래미의 분위기는 콩쿠르의 분위기와는 아주 다를 것 같았다.
내가 경험했던 콩쿠르의 우승자 발표회장은 항상 숨죽여서 기도하는 사람들로 가득 찬 곳이었다.
수상자를 발표할 때 이름이 불린 누군가는 소리를 치며 기뻐하고, 때로는 기쁨의 눈물도 흘렸다.
그렇게 기뻐하는 한 사람의 뒤로 훨씬 더 많은 사람이 다음 기회를 기약하는 수밖에 없었다.
기쁨의 눈물과 절망의 눈물이 함께 흐르는 곳이었다.
다들 독주자가 되기 위해서 우승자라는 타이틀이 절실했다.
클래식계에서 우승자와 준우승자의 대우는 하늘과 땅 만큼이나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그렇게 순위에 따라 살아가는 곳에서 치열하게 지내다 보면, 다른 사람들을 대하는 것이 자연스럽게 날카롭게 바뀐다.
나를 제외한 참가자가 모두 적이라는 생각을 하며 살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는 아니었던 사람도 신경질적으로 변해갈 수밖에 없다.
유치원에 들어가기 이전부터 콩쿠르를 준비하는 삶을 살아 왔던, 그들의 세계는 절대로 편안하지 않다.
결국 사람들이 기억하는 것은 우승자 한 명밖에 없으니까.
그런데 검색해 본 그래미의 분위기는 축제 같은 분위기였다. 내가 경험했던 콩쿠르의 시상식과는 다르게 재밌을 것으로 보였다.
“그래서 갈 거야? 알지? 안 가더라도 오늘까지는 알려 줘야 해.”
“간다고 해 놓고 안 가면 어떻게 되는 건데?”
나의 일정을 관리해야 하는 크리스가 다시 한번 확인한다. 하지만 마지막까지 고민이 되었다.
“그건 모르겠는데, 전화해서 물어볼까?”
“야, 그렇게 대놓고 물어보면 안 가겠다고 하는 것 같잖아. 그러면 차라리 오지 말라고 하겠지.”
의자 하나 갖다 놓는 게 그렇게 힘든 일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그래도 나간다고 해 놓고 안 나오면 주최 측이 싫어할 테니까.
“편하게 에릭이랑 가서 놀다 온다고 생각해. 에릭이랑 제이드도 가잖아.”
“그럴까? 걔네들이랑 있으면 그래도 괜찮겠지? 간다고 해. 지난번 토크쇼 진행자 그 누구더라 음…. 기억이 안 나네.
아무튼, 그 사람이 참석자 명단에서 나를 봤다고 했으니까. 그냥 이번에는 참석한다고 하자.”
방송에서 이미 참석한다고 알려졌다고 하는데 안 가는 것도 웃기고.
어차피 갈 거라면 기분 좋게 간다고 미리 알려 줘야지.
그렇게 기분 좋게 넘기려고 하던 때였다.
“저기, 지난번 그 토크쇼에서 연락이 왔는데 출연할 거야?”
“일주일밖에 안 됐는데 벌써 섭외 전화가 온 거야?”
“그게…. 그 토크쇼 웹사이트 한번 들어가 볼래? 투표하는 창이 나올 거래.”
크리스가 말한 토크쇼를 검색해서 들어갔다. 이름을 까먹어서 찾는 데 조금 복잡하기는 했지만, 어찌어찌 찾을 수는 있었다.
웹사이트는 화면의 반을 가리는 공지 사항이 보였고, 그 안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토니 브라이언 쇼에 부르고 싶은 게스트 투표에 참여해 주세요.’
그리고 그 공지 글을 눌러 들어간 곳에는 네 군데에 투표 칸이 있고, 각각 다른 사람의 이름이 있었다.
결과는 어디에서 보는 거지? 투표해야 결과를 볼 수 있는 건가?
결과가 보이질 않았다. 후보로 올라온 네 명의 사람들의 이름 중에 4번이 내 이름.
나머지 세 명의 이름에는 유명작가, 대기업의 CEO와 유명한 헐리우드 여배우의 이름이 있었다.
일단 대충 유명한 배우의 이름이 쓰여 있는 3번을 찍고 투표하기 버튼을 눌렀다.
로딩 시간이 지나가고 투표 결과가 보였다. 역시 투표를 해야 볼 수 있는 것이었나.
“잠깐만, 크리스 이게 맞는 거야?”
결과가 이상하다.
“나는 전화로 이미 투표 결과를 들었어.”
투표의 참여자는 총 1,207만 명. 99.9 퍼센트라고 쓰여 있는 곳 옆에 나의 이름이 쓰여 있었다.
“이거 사기 아냐? 1,207만 명이나 나를 보고 싶다고 할 이유가 없잖아.”
“리를 보고 있으면 의심이 너무 많은 것 같아. 좀 믿어. 지난 일주일 동안 진행한 투표래.”
투표하게 만들어 놓고 안 나간다고 하면, 혹시나 고소하는 건 아닐까.
“그래, 나가지 뭐. 어차피 그래미도 가기로 했는데. 토크쇼 날짜는 언제래?”
“참석한다고 한다? 날짜는 전화하면서 물어볼게.”
매니저가 있을게 이렇게 편하다.
요즘에는 전화를 거의 꺼내 볼 일이 없어서 자주 두고 다니는 편이었다. 어차피 연락 올 만한 곳도 거의 없지만.
“아무 때나 상관없다는데? 언제 하고 싶어?”
크리스는 전화기의 마이크 부분을 손으로 가린 채 물어보았다.
“최대한 빠르게 하지 뭐. 나 언제 일정 있어?”
“…일정 같은 걸 잡은 적은 있고? 일단 내일은 햄버거 먹으러 가는 날은 아니야. 그리고 나는 그냥 자동응답기처럼 거절만 하는 사람이잖아.”
크리스는 원래 거절 같은 걸 거의 못 하던 애였는데, 나 때문에 거절의 달인이 되었다.
좋은 걸 배웠다고 생각하라고. 세상에 거절을 못 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
내 생에 첫 토크쇼 출연을 확정 지으며 별다른 생각을 하지는 않았다. 겨우 토크쇼인데 뭐 얼마나 대단하겠어, 라는 생각을 했다.
그랬다. 토크쇼 장소에 도착할 때까지는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음악이 싫은 음악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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