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musical genius who hates music RAW novel - Chapter 58
057화
“안녕하세요. 토니 브라이언 쇼의 토니 브라이언입니다. 오늘은 정말 특별한 손님을 모셨습니다. 매번 특별하다고 하지 않았었느냐고요?
여러분들이 앉아 있는 주위를 한번 둘러보세요.
여기가 어딥니까? 바로 LA가 자랑하는 최고의 극장, 돌비 극장입니다. 만약 오늘의 게스트가 특별하지 않았다면, 평소처럼 저희의 좁쌀만 한 스튜디오에서 쇼를 진행하고 있었을 겁니다.
오늘의 게스트는 바로 이정현 씨입니다!”
““와아아아아!“”
토니 브라이언이 오프닝 멘트를 하자, 3,400석의 돌비 극장을 가득 메운 관중들의 함성과 박수 소리가 들려 왔다.
나는 옆에서 헤드폰을 쓰고 진행하는 PD의 신호에 걷어지는 커튼 사이로 걸어 무대로 나갔다. 긴장되는 것은 아니었지만, 극장 안에 울려 퍼지는 소리가 너무 커서 위압감이 느껴졌다.
그리고 이 커다란 돌비 극장에서 토크 쇼를 진행하게 될 줄은 몰랐다. 지난번에 TV에서 봤던 100석 정도의 공간일 줄 알았었는데 내 예상이 틀렸다.
이곳은 배우들에게 가장 높은 가치를 갖는다는 아카데미 시상식을 하는 곳으로 유명한 곳이니까. 만약 나를 위해 이곳을 빌린 것이라면 특별하게 대우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출연 요청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제 와서 하는 이야기지만, 요청하면서 사실 크게 기대하지는 않았습니다. 이미 수도 없이 했었지만, 항상 거절을 당했거든요.”
“하하. 설마 일주일 만에 출연을 하게 될 줄 몰랐습니다. 기본적으로 제 일정은 미디어에는 노출되지 않는 방향으로 잡습니다. 그리고 거절은 제 일정을 보고 매니저인 크리스틴이 하는 거니까요.”
소파가 대각선으로 길게 놓인 곳으로 걸어가 토니와 악수를 했다.
토니는 지난번에 에릭이 출연했을 때처럼 자신의 붉은 머리를 단정하게 빗어 넘기고, 푸른 셔츠 위에 푸른 넥타이를 한 정장 차림이었다.
“당신을 보기 위해 이곳에 찾아와주신 3천 명이 넘는 관중들과 시청자 여러분께 인사 부탁드립니다.”
나는 무대 정면의 관중들을 바라보며 정중하게 말했다.
“안녕하세요. 이곳까지 찾아와주신 관중 여러분 그리고 집에서 시청하고 계실 시청자 여러분 반갑습니다. 이정현입니다.”
고함에 가까운 관중들의 함성과 함께 손을 흔들며 자리에 앉았다.
토니는 내가 자리에 앉자마자 능숙하게 질문하며 쇼를 진행했다.
“실물로 만나 뵙는 것은 처음입니다만, 워낙에 신문과 TV에서 많이 봐서 처음 뵙는 것 같지가 않네요. 공식적으로 마지막 인터뷰를 하셨던 게 10년 전이었나요?”
“미국의 미디어를 물어보시는 거라면 11년 전 일 겁니다. 벨기에의 뮤직 샤펠에서 했던,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우승 인터뷰가 마지막이었죠.”
“오, 저도 기억납니다. 이렇게 울면서 누나를 안아주셨던 그때 맞죠?”
토니는 익살스럽게 내가 울면서 양 주먹을 꽉 쥐었던 그 포즈를 따라 하며 말했다.
그의 키가 커서 동작이 역동적이기도 하고, 울먹이는 듯한 표정이 워낙 이상해서 관중들이 모두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 맞습니다. 제가 살아오면서 가장 기뻐했던 순간이었죠. 눈물이 나올 정도로 기뻤던 때는 그때 말고는 없었습니다.”
여러 가지 이야기들이 오가다 내가 무대에 올라가던 시절의 이야기를 주고받다 토니가 물었다.
“저를 비롯한 수많은 사람이 이정현 씨가 직접 부른 노래를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앨범을 내는 대신 사라지셨죠. 그래야 하는 이유가 있었습니까?”
“아마 사라지지 않았어도 앨범을 내는 일은 없었을 겁니다.”
나는 그때를 떠올리며 대답했다.
“아니, 대체 왜죠?”
“그 당시에 저는 성악 아니 음악에 지쳐서 그만둘 마음을 먹고 있었거든요.”
원래 토크 쇼는 과거를 들추는 쪽이 많다. 아픈 부분이나 감추고 싶은 것들을.
미국의 토크 쇼는 밤에 방송하는 곳은 유쾌한 이야기를 많이 하고, 오전에 방송하는 곳은 눈물을 짓는 휴머니즘에 기댄 곳이 많았다. 토니 브라이언 쇼는 굳이 따지자면 유쾌한 쪽에 속했다.
그리고 이번 토크 쇼에서 과거의 이야기를 꺼내는 일은 하지 말아 달라고 했던 터라, 아마도 깊은 곳까지 꺼내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랬었군요, 무거운 분위기는 제가 썩 좋아하는 편이 아니라서요. 그 이야기는 그 정도만 해 두고 이번 앨범 이야기를 한번 해 볼까요?
이번에 발매하신 앨범 에는 정말 많은 분이 참여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일종의 프로젝트 앨범이라고 할 수 있죠.
그 앨범에서 정확하게 어떤 일을 하신 겁니까? 랩을 하신 겁니까?”
“어떤 일이라…. 대답하기가 어렵네요. 하하. 꽤 많은 일을 했습니다. 주로 작곡을 하고, 지난번에 여기에 나왔었던 에릭에게 보컬 레슨도 해 줬었죠. 래퍼인 제이드도 저에게 꽤 많이 혼났습니다. 그리고 코러스도 넣었고…. 믹싱에도 참여했었습니다. 더 말할까요?”
사실 랩을 하는 래퍼들이 하는 것들을 제외한 거의 모든 것에 참여했다고 봐야 했다. 악기 세션에도 일일이 모든 작업에 참견했으니까.
앨범 작업을 하면서 내가 만든 곡이 아닌 드자 쪽이 만들었던 곡들에 부족한 부분이 보여 편곡도 했다.
모든 곡에 내 손이 닿아 있었다.
“이번 앨범이 공식적으로는 이정현 씨의 목소리가 들어간, 그러니까 보컬로서 참여한 앨범은 아닙니다. 다시 말하자면 작곡가 겸 프로듀서로서 참여한 앨범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첫 번째였던 클래식 앨범은 작곡가와 성악가로서 참여했었죠. 그런데 두 번째 앨범은 힙합이군요?”
“아시다시피 저는 힙합을 주로 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아마 주 무대라고 말할 곳이 있다면, 클래식 쪽에 더 가까울 겁니다. 힙합은 이번에 앨범을 만들면서 재지에게 아주 많은 부분을 배워야 했습니다.
그러니까 의도적으로 ‘두 번째 앨범은 꼭 힙합이라는 장르로 내야겠다.’ 하고 만들었던 것은 아닙니다.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된 것뿐입니다.”
“그렇게 어쩌다 만든 앨범으로 그래미의 올해의 앨범에 후보로 올라갔다고 말하고 싶으셨던 겁니까?”
토니는 특유의 익살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그의 붉은 눈썹을 여덟 팔자로 만들며 바라보았다.
“아뇨, 아마 조금 더 열심히 만든 다른 앨범으로 후보에 갔겠죠. 힙합은 이번에 많이 배워서 만들었던 거고, 주력으로 삼을 수 있는 에릭을 내세운 R & B로 갈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사실 원래 계획도 에릭의 앨범을 만들려고 했었으니까요. 아직은 곡의 수가 부족하니까 단독 콘서트를 할 수가 없어서….”
“잠깐만요, ‘에릭의 앨범을 만들 계획이 있었다’라고 말씀하시는 거 오피셜인가요? 저는 처음 들어 보는 것 같은데요.”
젠장. 말하다 보니까 실수로 말해 버렸다. 아직은 계획일 뿐이긴 하지만.
토니가 나를 바라보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무언가 비밀을 이야기하는 듯한 톤이었지만, 마이크에 들어간 목소리는 돌비 극장 안을 가득 울리고 있었다.
“저기, 오늘은 생방송 아니죠? 지난번에는 월요일에 방송했던 것 같은데 오늘은 토요일이니까요. 이 부분 편집 좀….”
“편집을 원하시는 이정현 씨에게는 미안하지만, 특별 편성으로 토요일 밤인 오늘 생방송으로 보내드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저희 토크쇼는 원래 생방송을 하지 않습니다. 그날만 생방송을 했던 거지요. 혹시라도 이정현 씨의 인터뷰를 따기 위해서 말이죠.
여러분! 이정현 씨가 에릭의 앨범을 만들고 있다고 합니다! 이것을 토니 브라이언 쇼에서 최초로 공개했습니다!”
““와아아아아아아!“”
사람들은 토니의 말에 갑자기 손뼉을 치며 환호를 했다.
와. 이 인간, 사람들 선동하는 데 진짜 일가견이 있다. 정말 아무 생각 없이 있다가는 나조차도 휩쓸려갈 것 같은 언변.
역시 토크쇼 진행자라서 그런지 말을 진짜 잘하는구나.
그나저나 나를 전화로 인터뷰하고 싶어서 녹화 방송을 생방송으로 한 거였다니. 정말 치밀하게 계획했잖아? 역시 방송국 놈들은 무섭다.
“그러고 보니까, 한 가지 조금 이상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지난번에 있었던 영국 국왕 윌리엄 5세의 대관식 음악을 이정현 씨가 만들었다는 이야기를 말이지요. 이것이 사실입니까?”
“대관식에 쓰일 곡을 만들었던 것은 맞습니다. 당시에 현재 교향악단 편성에는 들어가 있지 않은 구조로 만든 음악이라 꽤 많은 고생을 했던 기억도 납니다.”
“그 대관식의 한 장면 지금 한 번 보고 오도록 하죠.”
토니는 진짜 정신을 차릴 수 없게 들었다 놨다 하는 진행을 선보이고 있었다.
자료 화면으로 대관식의 몇몇 부분들이 보이는 도중에, 나는 옆에 놓여 있는 물을 마시며 숨을 돌릴 수 있었다.
“정말 환상적인 곡이네요! 이 곡을 들으면 누구나 다 가슴이 뜨거워져서 화상을 입을 것만 같은데요. 이 곡을 만들 때의 비하인드 스토리 같은 것이 있나요?”
“솔직히 말해서 고생을 많이 해서 만든 곡입니다. 아까도 말했지만 원래 교향악단에는 들어가지 않는 악기들이 꽤 있습니다. 제가 너무 무리해서 만들었는지, 중간에 한 번 쓰러져서 병원에도 한번 갔었고요.”
“음악을 만들 때 그 정도로 무리를 할 일이 있습니까?
스포츠와는 다르게 곡을 만드는 중간에는 마음대로 쉴 수도 있고, 산책도 할 수 있는 거 아닙니까? 여자 친구와 데이트도 할 수 있고 말이죠.”
“작업하면서 집중을 하게 되면, 열 시간이고 스무 시간이고 정말 다른 건 하나도 보이질 않고 음악 작업만 하게 되거든요. 의사 말로는 탈진했다고 하더라고요. 저도 놀랐습니다. 병원에 입원했던 일이 처음이라.
그리고 여자 친구가 있느냐고 돌려서 물어보시는 것 같은데, 없습니다.”
정색하며 대답을 하자, 토니는 조금 무안했는지 다른 질문으로 바로 넘어갔다.
“이번에 그래미에 후보로 노미네이트된 부문이 제너럴 필드의 올해의 앨범을 비롯한 총 다섯 개 부문인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수상할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잘 모르겠습니다. 그래미에 오를 만한 상업 앨범을 만들었던 것도 올해가 처음이고, 참석하는 것도 올해가 처음이니까요. 예상하기가 쉽지 않네요.”
여기에서 내가 수상할 것 같다고 말을 하는 것도 웃기다. 만약에 ‘받을 수 있을 겁니다’라고 했다가, 못 받으면 그 부끄러움은 나의 몫이 될 테니까.
“정말 참석하시는 겁니까? 공식적으로는 어디에도 확정 짓지 않은 거로 알고 있는데요.”
“네. 며칠 전에 전화해서 참석하겠다고 했습니다. 의자를 미리 준비해 놓아야 한다고 해서 말이죠. 혹시라도 제 의자를 빼놓을까 봐 걱정되어 전화해 놓았습니다.
연말이라 옷가게가 다 닫는 바람에 새 옷을 사질 못할 테니, 오늘 입었던 옷을 빨아서 입고 나가야 할 테지만요.”
옷이 없다는 것처럼 농담 식으로 이야기했다. 옷이 없는 것은 사실이었으니까. 돈이 없다고 했으면 거짓말이었겠지만.
영국도 그렇지만 미국도 크리스마스 때부터 연초까지 거의 모든 상점이 휴가에 들어갔다. 여는 곳은 커다란 백화점들이나 몇몇 상점들뿐.
대형 식료품점을 제외한 거의 상점이 모두 문을 닫아 옷을 살 수가 없었다.
“제가 옷을 사 드리고 싶지만, 저도 오늘 방송을 마치고 일주일 동안 휴가를 가거든요. 미안합니다.”
“괜찮습니다. 그래미에 꼭 정장을 입고 가야 하는 건 아니잖아요.”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조금 더 하다 보니 PD가 토니를 향해 손짓했다.
“토요일 밤 11시에 이곳까지 모셔서 제가 주말 계획을 망친 건 아닌지 모르겠네요. 오늘 방송은 어땠나요. 관중 여러분 즐거우셨습니까?”
““예!“”
“이정현 씨는 어땠습니까? 10년 만의 토크 쇼는?”
“10년 만의 토크 쇼가 아니라 태어나서 처음 나와보는 토크 쇼였습니다. 뉴스는 나가봤어도 토크 쇼는 나갔던 적이 없거든요. 첫 경험이었는데 덕분에 즐거웠습니다.”
“오, 제 와이프가 오해할 만한 단어는 안됩니다. 집에서 두 눈을 시퍼렇게 뜨고 있거든요. 어쨌든 제 토크 쇼가 처음이셨다니, 영광입니다.
다음에 또 뵐 수 있기를 바라면서 여기에서 인사드리겠습니다. 토니 브라이언이었습니다!”
“안녕히 계세요!”
나와 토니는 관중들의 기립 박수를 끝으로 무대에서 내려갈 수 있었다.
이 토크 쇼에서 화제가 된 이야기는 의외로 대관식의 음악이었다. 대관식이 끝난 것이 5개월인데 왜 이제 와서 그것이 화제가 되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미디어에 얼굴을 드러내자 인터뷰를 요청하는 곳이 갑자기 많아졌다.
마음 같아서는 모두 무시하고 싶었지만, 어디는 받아 주고 어디는 받아 주지 않는다면 문제가 생길 수가 있어서 어쩔 수 없이 받아 주곤 했다.
문제는 미디어가 아니었다. 사람들이 집에 찾아오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찾아왔던 수많은 사람 중에서도, 다즈니의 차세대 디바라고 불리던 안젤리나 던슨이 찾아온 것은 정말 의외의 일이었다.
음악이 싫은 음악천재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