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musical genius who hates music RAW novel - Chapter 59
058화
“차세대 디바라고 불리던 안젤리나 던슨 씨가 저에게 무슨 용무가 있어서 찾아오셨나요? 듣기로는 이번에 그래미 올해의 신인상 후보에 올라갔다던데.”
“후보에는 올랐어도 수상은 하지 못할 거예요.”
안젤리나 던슨은 얼음처럼 차가워 보이는 파란색 눈으로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이렇게 확신하며 말할 수 있다는 건, 결과를 미리 알고 있다는 것과 같은 느낌이었다.
수상을 하지 못하는 것은 당연하다. 자신의 앨범 발매를 한 회사가 물의를 빚으며 없어져 버렸기 때문이다.
그래미가 그런 물의를 일으킨 회사의 앨범을 굳이 뽑으면서 위험을 감수할 필요가 있을까?
정답은 아니오.
그래미는 물의를 일으킨 사람 혹은 회사의 앨범에 표를 던지며 화제를 일으키는 노이즈 마케팅을 할 필요가 없다.
이미 전 세계 대중 음악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상이었기 때문이다.
노이즈 마케팅은 대중을 위한 상을 수여하는 심사위원으로서, 그리고 그 자리를 보전하기 위한 방법으로는 고려할 수 있는 방법이 아니었다.
“그래미는 후보에 오르기만 해도 영광인 자리라고 하지 않던가요? 앨범 판매량도 훨씬 많아지고 말이죠.”
“…일주일 전쯤에 다즈니의 새 애니메이션을 담당하는 성우가 바뀌었다고 들었어요…. 이미 녹음을 마쳤던 제 목소리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 연기를 하게 되었다는 거죠. 저는 이제 다즈니의 공주님이 아니라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 된 거예요.”
지금까지는 자신이 다즈니의 공주였다고 생각했던 건가? 꿈이 야무진 아가씨다.
다즈니는 자신들이 만드는 애니메이션의 핵심 인물들 중 한두 명을, 꼭 그 시대에 가장 인기가 많은 가수나 배우로 녹음을 하곤 했다.
안젤리나의 말에 옛날에 한창 욕먹던 다즈니의 애니메이션이 떠올랐다.
그 방법을 한국에서도 써먹으려고 했으나 연기력이 부족해서 더빙판이 오히려 더 안 팔리게 되는 역효과를 일으켰었다.
“내가 다즈니의 사장도 아니고 그 이야기를 나에게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는데요.”
“방송에서 당신에게 노래를 배웠다고 하는 에릭의 말을 들었어요. 저에게도 음악을 가르쳐 주세요.”
응. 안 돼, 돌아가.
“던슨 씨.”
“안지라고 불러주세요.”
“그러죠. 안지. 아무튼 에릭이 내 옆에 있던 기간이 얼마나 되는지 아세요? 2년이에요. 이제 곧 있으면 3년이 됩니다. 그 3년 동안 걔가 한 거라고는 내가 하는 걸 따라 한 것밖에 없어요. 내가 가르친 게 아니라 걔가 배운 거죠.”
내가 직접적으로 가르친 것은 호흡법과 발성법뿐이다. 그것도 딱 한 달 동안.
“아실지는 모르겠지만, 저…. 진짜 죽고 싶었어요. 약도 먹었죠. 결국 다른 사람 손에 다시 깨어났지만, 제가 꿈꾸던 세상은 이미 없어졌어요.”
안지는 그 빨갛고 작은 입술로 자신이 차세대 디바에서 밑바닥 인생이 되었다고 직접 말하고 있었다.
자신이 최고의 가수라고 불리는 세상을 꿈속에서 보았던 걸까. 그나마 다행인 것은 그걸 내 탓이라고 하지는 않는다는 거였다.
“꼭 가수 말고도 할 수 있는 게 많을 거예요. 아직 술도 못 마시는 나이잖아요. 무엇이든 할 수 있는 가능성은 열려 있죠.”
이곳에서 성인의 기준은 만 21세. 술을 살 수 있는 나이다. 물론 서양인들의 특성상 열네 살 정도만 되면 이미 성인의 몸으로 성장하지만, 법적으로 21세가 되어야 술을 마실 수 있었다.
그리고 내가 목수가 되었었던 것처럼, 이 여자애도 충분히 다른 것을 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했다.
“저는 꼭 가수가 돼야겠다고 하는 게 아니에요. 어느 곳에 있든 그런 건 상관없어요. 하지만, 세상에서 가장 빛나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그러면 학교에 가서 공부하세요. 뭐가 되고 싶은지 잘 생각해 보고 공부해서 그 되고 싶은 사람을 잘 연구해서….”
“내가 사는 세상에서 가장 빛나는 사람은 바로 당신이에요. 그래서 여기에 온 거고요. 나도 당신처럼 빛나고 싶으니까….”
더티 블론드의 화려한 금발 머리를 가진 이 아가씨는 지중해의 바닷물처럼 파란 눈으로 나를 바라보며, 산호초처럼 붉은 입술 사이로 보이는 새하얀 이를 악물고 말했다.
“난 솔직히 왜 그런 마음을 갖게 된 건지는 잘 모르겠는데, 일단 차분하게 생각해 봐요. 나는 학교 선생님이 아니에요. 던슨 씨가….”
“안지예요.”
“…안지가 그런 마음을 갖게 되었다고 해서 내가 마음대로 가르쳐 줄 수는 없어요. 미성년자라 보호자의 동의도 필요하고, 그리고 가장 중요한 건 내가 그러고 싶지 않으니까.”
한국말은 끝까지 들어 봐야 한다. 물론 내 입에서 나오는 것은 영어였지만, 마지막에 반전을 주는 한국식 화법을 쓰고 있는 것은 왜인지 모르게 바뀌지 않았다.
중간에 보호자의 동의를 이야기할 때까지만 하더라도 희망을 품고 있던 눈은, 나의 마지막 말에 흔들리기 시작했다.
버림받은 강아지 같은 눈 하지 마라. 아무리 불쌍한 척해도 나는 강아지를 기르지는 않아. 애완동물이 얼마나 손이 많이 가는데.
나는 울먹이는 금발 머리 소녀를 집에서 내보내고 오후의 따듯한 햇살을 맞으며, 3층에 있는 다락방에서 커피를 마셨다.
그냥 아무런 생각을 하고 싶지 않았다. 일주일 뒤에 있을 그래미 어워드도, 조금 전에 내 집에 들어와서 울먹이던 파란 눈의 소녀도 전부 나와는 상관없는 세상의 이야기 같았다.
“내 눈에 보이는 세상이 그렇게 대단해 보이지는 않는데, 다들 내가 보는 세상은 엄청 대단할 거라고 생각한단 말이지….”
햇살이 들어오는 창가의 턱에 걸터앉아 하얀 모래사장이 펼쳐진 해변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그리고 그 생각의 뒤에 어김없이 따라오는 음악소리를 느끼며 창가에서 멍때리고 있었던 그때, 아래층에서 크리스가 외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리~! 옷 사러 가야지. 일주일 남았다구. 오늘 안 맞추면 그날 못 입어.”
“금방 갈게.”
방금 올라온 것 같았는데 3층에 올라온 지 한 시간이나 흘러있었다. 잔 속의 커피는 따뜻한 산타모니카의 날씨만큼이나 딱 좋게 식어있었기에 나는 단숨에 마시고 계단으로 향했다.
***
[제75회 그래미 어워드! 이번에 노미네이트된 곡들이 정말 화려한데요.] [네, 그렇습니다. 그만큼 음악을 듣는 우리들의 귀가 행복했다는 것 아닐까요? 특히 클래식 아티스트에서 팝 작곡가로 변신한 이정현 씨도 이번 그래미에서 만나 보실 수 있습니다.]닭살 돋는 진행자들의 말들로 행사가 시작되었다. 진짜 시상식은 아직 두 시간이나 남았지만, 그들은 이미 시작된 것처럼 입구 근처에 깔린 레드 카펫을 바라보며 말했다.
LA의 스테이플스 센터 앞에는 카메라를 들고 있는 기자들과 스타들을 보고 싶어 나온 팬들로 가득 차 있었고, 나와 재지는 하얀색 리무진 안에 앉아 그 모습을 모니터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냥 뒷문으로 들어가서 앉아있으면 안 되는 건가요?”
“맨~! 주인공은 마지막에 등장하는 법이라고! 그나저나 선글라스는 안 가져왔나?”
나의 물음에 재지는 만화 주인공이나 할 것 같은 대사를 읊었다.
“선글라스는 됐어요. 눈앞에 뭐가 있으면 답답해서. 그건 그렇고 굳이 순서를 지켜서 들어가는 것에 이유가 있어요? 그냥 상만 받으면 됐지….”
“팬서비스라고 생각해, 팬서비스. 우리가 스테이플스 센터로 들어가면, 저기에 모인 팬들은 우리를 TV 화면으로 봐야 한다고. 자신이 좋아하는 스타와 한 공간에 있다는 느낌을 받을 수가 없단 말이지.”
입장 순서는 주최 측이 정해 준다. 우리가 타고 있는 리무진의 운전기사는, 무전기를 손에 들고 주최 측이 보내주는 등장 신호만 기다리고 있었다.
나와 재지의 입장 순서는 마지막. 시상식이 시작할 때까지 남아 있는 시간을 이렇게 주차장에 세워진 차 안에서 보내야만 했다.
“샴페인이라도 마실까? 아직 한 시간이나 남아 있어.”
“나는 에릭이랑 같이 가고 싶었는데, 에릭과 제이드는 지금 들어가네요.”
최우수 듀오, 그룹 퍼포먼스 부문에 후보로 올라간 에릭과는 같이 들어갈 수가 없었다. 주최 측에서 정한 입장 순서가 시작과 끝으로 떨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재지는 마지막에 올라갈 만한 자격이 있다고 생각했다.
내 이름이 올라간 곳은 다섯 부문이지만, 옆에 앉은 재지는 무려 여덟 개에 올라 있었으니까. 아무래도 작곡가가 오를 수 있는 부문과 가수가 오를 수 있는 부문에 차이가 있기 때문일 거다.
그게 억울하다거나 불공평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그랬으면 이 자리에 있지도 않았겠지.
분명 올해의 앨범의 수상 대상은 앨범에 참여한 모든 사람이다. 물론 무대에 올라가는 사람은 가장 대표 아티스트 한 명만 올라가지만, 상은 앨범 스태프 롤에 이름이 올라간 모든 사람에게 주어진다.
만약 내가 올해의 앨범상을 받게 된다면 에릭과 제이드도 받게 되는 것이다. 이들이 부른 노래도 앨범에 들어 있으니.
그런데 쟤네들의 입장 순서는 처음에 가까웠고, 나와 재지는 마지막이었다.
퐁~
1만 달러짜리 최고급 샴페인의 뚜껑이 날아가는 소리는 10달러짜리 마트 표 샴페인과 큰 차이는 없었다.
얼굴을 반쯤 가린 커다란 선글라스를 쓴 재지. 그의 손에 쥐어진 샴페인 병에서 흘러나온 황금빛 액체가 기다란 잔을 채우고 있었다.
“Cheers~! 하하! 오늘 같은 축제에는 마시지 않을 수가 없지!”
내가 입은 옷보다 비싼 샴페인이 내 입으로 흘러들어왔다.
상금도 안 주는데 이렇게 비싼 샴페인을 마셔도 되는 걸까 하는 생각을 잠깐 해 봤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이 정도의 대단한 일은 아닌 것 같다는 느낌.
“지금 별것도 아닌 일에 이렇게 비싼 샴페인을 뜯어도 되나 하는 생각을 하고 있나, 브로?”
“…어떻게 알았죠? 새로 나온 뇌파 탐지기 같은 걸 갖고 있나요?”
내 말에 재지는 크게 웃음을 터뜨리더니 말했다.
“크크크크, 잠시도 방심할 수가 없군. 뇌파 탐지기 같은 게 아니야. 단지, 내가 이곳에 처음 왔을 때와 똑같은 얼굴을 하고 있어서 물어봤던 거야. 나도 그런 생각을 했었거든.”
“그런 생각이요?”
“‘이런 곳에 오느니 차라리 음악 작업을 더 하는 게 낫지 않을까? 시간 낭비 같다.’ 이런 생각.”
“솔직히 말하자면 맞아요.”
음악 작업을 해야겠다는 생각보다는 빨리 끝내고 집에 가서 쉬고 싶다는 생각에 가깝지만.
“조금 뒤에 그 문을 열고 레드 카펫을 밟게 되면 내가 하는 말을 이해할 수 있을 거야.”
이때까지만 해도 나는 재지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레드 카펫을 밟아야 이해할 수 있다는 말에도 도무지 신빙성이 느껴지지 않았다.
[…치이익. 재지, 이정현. 다음 순서입니다.]“예, 알겠습니다.”
운전사의 말소리가 들리고 운전석과 연결된 창문이 천천히 올라가며 닫혔다.
차가 조금씩 앞으로 가기 시작했다.
“벌써 시간이 되었나? 얼른 마시라고. 조금이라도 더 취해야 하니까.”
재지는 남아있던 샴페인을 모두 마시고 들어가야 한다는 듯이 내 얼굴 앞에서 병을 손에 쥐고 흔들었다.
솔직히 나는 시큰둥한 마음이 더 컸다. 콩쿠르의 시상식을 떠올렸기 때문이겠지.
나를 둘러쌌던 기자들, 혹시라도 답변해 줄까 하는 마음에 서로 외쳐 대던 질문들. 그곳은 혼란의 결정체였다.
차가 레드 카펫의 앞에 멈추고 누군가가 문을 열어 주고 나서야 알 수 있었다. 내가 생각했던 것과 그래미는 전혀 다른 곳이었다는 것을.
드드드드드드-
겨우 차의 문이 반 정도 열렸을 뿐인데, 사람들이 소리치며 구르는 발로 차가 떨려왔다.
“뭐 해, 얼른 나가서 얼굴을 보이라고.”
귀를 막고 있는 함성에 바로 뒤에서 재촉하는 재지의 말도 잘 들리지 않았다. 활짝 열린 문을 향해 발을 내디뎠다.
[이번 그래미 어워드의 최다 노미네이트 아티스트 재지 씨와 최다 노미네이트 프로듀서 이정현 씨가 나란히 모습을 보였습니다!]나는 차 안의 모니터에서 들려 오는 진행자의 말들도 제대로 들을 수 없었다.
사람들의 환호성과 기자들이 들고 있는 카메라의 플래시에, 들리지 않았고 보이지 않게 되었으니까.
시간이 조금 지나 눈이 불빛에 익숙해지고 나서 현실을 마주할 수 있었다.
셀 수 없을 정도로 모여 있는 사람들과 그 틈에서 레드 카펫 바깥에 줄지어 있는 기자들. 그리고 이들이 넘어올 수 없도록 그 앞을 막고 있는 보안 요원들까지, 내가 생각하던 시상식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차 안에서 작은 모니터로 보던 곳과 내가 서 있는 곳이 같은 장소라는 것을 믿을 수가 없었다.
리무진의 열린 문 앞에 서서 멍하니 있던 내 어깨에 재지는 손을 올리며 내 귀에 가까이 다가와 말했다.
“내가 말했지? 선글라스가 필요할 거라고 말이야.”
음악이 싫은 음악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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