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musical genius who hates music RAW novel - Chapter 6
005화
실패하고 말았다.
결과만 말하자면 하루 만에 모든 것을 쏟아내는 것은 무리였다. 들려 오던 음악들을 모두 쏟아내면 또 다른 음악이 들리기 시작했다.
쏟아내고 쏟아내기를 몇 주 동안 반복했을 때, 그제야 비로소 나의 머릿속은 말 그대로 텅 비어 버렸다.
4월 두 번째 주에 시작한 작업이 5월 첫 번째 주 중간고사 기간이 되어서야 끝이 났으니까 대략 3주 정도 걸린 것 같다.
학교만 아니었어도 조금 더 일찍 쏟아낼 수 있었을 텐데, 시험을 봐야 하니까 학교는 빠질 수 없었다.
그렇게 시험 기간의 마지막 날인 금요일이 되었다.
“아오…. 죽겠네, 진짜.”
시험이 끝나자마자 책상에 엎드리며 나도 모르게 입에서 나온 말.
머리가 비워져서 후련한 마음과 동시에 시달려서 중간고사 공부를 못했다는 점이 맞물려서 나도 모르게 방언이 터져 버렸다.
“공부 열심히 했나 봐?”
수원이가 내 앞자리에 앉아서 엎드린 나를 보며 물었다.
“공부는 개뿔…. 머릿속에서 들리는 소리들 때문에 아주 미치는 줄 알았다.”
“시험을 보면서 소리가 들렸다고?”
“아니, 시험 공부하려고만 하면 자꾸 뭐가 떠오르잖아, 짜증 나게. 안 그래도 아는 게 없는데….”
“아~ 그럴 수 있지 그럴 수 있어. 공부만 하려고 하면 방해하는 게 생기지.”
혼자서 키득대며 헛소리를 하는 수원이를 보며 나는 어이가 없었다.
얘는 또 뭔 소리를 하는 거야. 내가 머리에서 음악소리가 떠오른다는 이야기를 하질 않았으니, 내가 어떤 상황이었는지 이해를 못 하는 것 같다.
대답할 말이 생각나질 않아서 무시하고 있으려니 다시 말을 걸어왔다.
“아, 그럼 네가 만든 거 들려 줄 수 있어?”
내가 만든 거? 그걸 왜 듣고 싶어 하는 거야. 니 꺼 들어.
“귀찮아…. 나중에. 일단 자고 싶다.”
시험이 끝나서 집에 돌아가야 하는 시간이지만 움직이고 싶지가 않다. 지금도 움직일 수 없지만 더욱더 맹렬하게 움직이고 싶지가 않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교실 문을 잠그는 경비 아저씨에게 걸려 쫓겨나게 되었다.
지친 몸을 이끌고 흐느적거리며 버스를 타고 오랜만에 집 앞에서 내렸다.
시험 마지막 날인 오늘은 과목이 두 과목밖에 되질 않았기 때문에, 집에 도착해서도 점심시간 정도밖에 되질 않았다.
하루 종일 아무것도 먹질 않아 배가 고플 법도 하지만 미친 듯이 몰려오는 졸음에 씻지도 않고 침대로 뛰어들었다.
아무런 소리도 들려 오지 않고, 뺨에 닿은 푹신한 거위 깃털 베개와 이불에서 느껴지는 포근함이 꿀잠을 잘 수 있게 만들어 줄 것만 같은 느낌적인 느낌이 느껴지던 그 순간.
지이이잉~
“으아아아아아아악!”
바이올린 현에 닿은 활이 소리를 들려 주기 시작했고, 나는 울었다.
아주 다행스럽게도 바이올린 독주곡이었다. 트랙을 두 개밖에 안 잡아먹었지. 러닝 타임이 25분이라는 게 함정이었지만.
곡에 어울리는 가상 악기를 사용하지 않으면 소리가 계속 들리게 된다는 것을 몇 번의 시행착오 끝에 알아냈기에, 가상 악기 골라내는 데 시간을 많이 써서 결국 저녁을 먹고 밤 열 시가 넘어서야 잠들 수 있었다.
토요일 아침이라는 게 너무 행복하다.
늦잠을 자도 괜찮다는 게 너무나 좋다.
포근한 이불을 껴안으며 잠에 취해 있는 이 행복한 시간을 만끽하고 있을 때, 불청객이 찾아왔다.
“아! 진짜! 왜! 주말 새벽부터 찾아오는 거야!”
“전화했었잖아…. 그리고 새벽 아니야….”
부재중 전화가 8통. 문자도 수십 개.
“아니 전화를 해서 안 받으면, ‘바쁘구나’ 아니면 ‘다른 뭔가를 하고 있구나’ 하고 받아들여야지, 그냥 무작정 찾아오면 어떻게 해!”
뭐, 항상 그렇지만 방해꾼의 대명사 김수원이다. 내가 만들어 놓은 게 궁금하다고 찾아왔단다.
게다가 새벽이 아니고 이미 점심시간에 가까운, 지금 밥 먹으면 브런치가 아니라 점심이라고 말해야 할 것 같은 시간이었다.
호기심이 고양이를 죽인다고 했던가. 내가 그 고양이였던 모양이다.
나는 랩톱의 전원을 켜고 지문 인식으로 잠금을 해제한 뒤, 작업물 폴더를 열어 주며 말했다.
“귀찮게 하지 마, 좀! 그리고 꼭 이어폰 써라.”
방 안에 사내자식 둘이 같이 있으면 텁텁한 냄새가 밸까 봐, 거실 소파에 얼굴을 파묻었다.
수원이가 그 옆에서 이어폰을 연결해 내가 쏟아낸 것들을 듣기 시작하는 걸 보고 나는 정신을 놓았다.
얼마나 지났을까, 누군가가 나를 흔들어 깨운다.
“현아, 일어나 봐. 얼른.”
뭐지, 왜 수원이가 아니라 큰누나 목소리지? 몇 시야?
우리 가족들은 어릴 때부터 나를 정현이라고 부르지 않고, 현이라고 불러 왔다.
내가 잠에 취해 정신을 못 차리는 와중에 고개를 들어 거실 쪽을 바라보니 온 가족과 김수원이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얼굴 옆에 두었던 휴대폰으로 시간을 확인해 보니, 아직 세 시도 되지 않았다. 오늘 저녁에 들어온다고 했던 집안사람들이 왜 죄다 여기 있는 거야?
나는 순간적으로 내 휴대폰이 망가진 줄 알았다. 벽에 붙은 아날로그 시계도 3시 근처를 가리키고 있어서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지.
“뭔데, 뭔 일 났어?”
4쌍의 눈이 바라보고 있는 것에 살짝 압박감을 느껴 나도 모르게 몸을 추슬러 앉았더니, 큰누나가 물었다.
“이거 전부 현이 네가 만든 거라고 들었는데 진짜야?”
“…뭘 말하는 거야. 내가 뭘 만들어?”
“음악.”
뭘 말하고 있는 건가 싶어서 봤더니, 내 랩톱에서 내가 만든 음악이 흘러나온다.
“아, 이어폰 끼랬지!”
어제오늘 푹 잤다 싶었더니, 김수원 저 악마 같은 놈이 결국 일을 치는구나. 내가 이럴 줄 알았지.
저 십상시처럼 간사한 놈이 내 잠을 깨우려 우리 가족들을 불러 모았구나.
내가 버럭 소리를 지르며 쿠션을 던지자 일시 정지를 눌러 소리가 나지 않게 하는 얄미운 놈.
“아니, 난 정희 누나한테만 말했는데….”
확 쪼그라든 김수원의 변명으로 미뤄볼 때 사건의 전말은 이랬다. 수원이가 혼자서 이어폰을 꽂은 채로 내 작업물을 듣는데, 그게 너무 마음에 들어서 큰누나인 이정희에게 전화해서 말을 했다.
뭐 어릴 때부터 친하게 지낸 놈이라 누나의 번호를 갖고 있다는 게 이상한 건 아니니까.
그런데, 그 전화를 받은 큰누나는 서둘러 집으로 돌아와 결과물을 직접 들어 보더니, 작은누나인 이정화에게 전화를 했다.
그리고 작은누나는 집으로 돌아와 어머니인 김지숙 여사를 부른 거지. 이게 무슨 다단계도 아니고….
“내가 만든 거 맞아. 그래서 뭐. 그게 그렇게 궁금했어? 그럼 그냥 들어. 나 잠 좀 자게 내버려 두고.”
“100개가 넘는 곡을 전부?”
“맞다니까…. 대체 왜, 뭐가 문젠데?”
지난 3주 동안 100개 정도를 만들고, 시험 기간에는 대충 20개 정도를 만든 것 같다. 아니, 배출한 것 같다.
이제 머릿속이 울리지 않아서 잠 좀 편하게 잘 수 있겠구나 했는데 왜 자꾸 나를 괴롭히는 거야. 난 행복할 수가 없어!
“어머니, 얘 이거 발표해야 돼요, 진짜.”
나에게 말을 하려다 욕먹을 것을 예감한 김수원이 우리 엄마한테 바람을 넣는다.
우리 엄마한테 진지한 목소리로 바람 넣지 마라. 귀 얇은 분이라 네 가벼운 헛소리도 믿는다고.
“나 여기 77번이랑 80번 주면 안 돼? 아직 다 들어 보지는 않았는데 이거 두 개는 진~ 짜 마음에 들어서 그래.”
요즘 피아노 독주회를 열고 있는 큰누나는 내가 만든 피아노 독주곡에 욕심을 부린다. 그러고 보니 피아노 작품 번호 같네. 제목 없이 곡 전부 숫자만 붙어있으니까.
어쩔 수 없지, 제목 같은 건 써 붙이지 않아도 머릿속이 비워졌으니까. 제목 같은 쓸데없는 건 생각할 필요가 없었다.
“우리 아들, 엄청 대단하네. 이제 음악 작곡도 하는 거야?”
“야, 이거 앨범 내서 잘되면 나 새로 나온 32인치 액정 타블렛 사줘.”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김칫국 원샷하고 계신 울 엄마와 그 와중에 욕심부리는 작은누나.
“아, 마음대로 해. 몰라.”
나는 신경질을 부리며 내 방으로 돌아왔다. 이제야 머릿속이 잠잠해져서 살 만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이제는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나를 못 자게 난리를 친다. 씁쓸하구만.
그날 저녁 우리 집에서는 내가 모르는 가족회의가 열렸었다고 했다.
그리고 일요일 아침이 밝아올 무렵 나는 깨어났다.
그제 밤 10시부터 잠들었다가 점심 무렵 깨서 다시 자고, 오후 3시쯤 5분 정도 잠깐 눈뜬 뒤 그 후로 깨지 않고 쭈욱 잤으니 아마 30시간 정도 잔 게 아닐까?
여태까지 제대로 잠들 수 없었던 것을 보상받는 느낌.
이렇게 잘 수 있던 게 얼마 만인지 너무나 감격스럽다. 잘 잔다는 게 이렇게나 행복한 일이었구나.
그 감격스러운 마음에 주방에 들러, 잠시 동안 끊었었던 커피를 내리며 한 잔의 여유를 가져보기로 했다.
“음, 스멜~”
커피 향을 맡으며 거실을 향해 뒤돌아서는데 거실에 있던 큰누나와 눈이 딱 마주쳤다. 나도 모르게 놀라는 바람에 잔 속에서 살짝 커피가 넘쳤다.
“아이, 깜짝이야. 기척 좀 내.”
큰누나의 몰골은 내가 한창 불면증에 시달리던 시기의 몰골에 가까웠다. 밤을 새웠다는 증거지. 눈 밑이 퀭하다. 판다가 친구 하자 그러겠어.
“커피 한 잔 줄까?”
“현아.”
“으, 응? 왜?”
“너 이 곡들 팔 거야? 계약했어?”
그게 걱정되어서 못 잔 건가? 나도 그렇지만 큰누나도 참 민감한 것 같다. 그런 게 뭐가 중요하다고 밤까지 새고 말야. 잠은 잘 수 있게 해 줘야겠지.
“계약은 무슨. 나 미성년자야. 혼자 계약 못 해.”
역시 커피는 인텐소 캡슐이 가장 맛있다. ‘이게 바로 커피다’ 요런 맛이지. 이 보편적인 향과 강도는 딱 평범….
“나랑 해, 계약.”
아이 깜짝이야. 뜬금없게 무슨 계약이야.
“가족끼리 무슨 계약이야. 나 그런 거 안 해.”
“나, 현이 네가 만든 곡들 너무 좋아. 피아노 독주곡 여섯개 있는 거 그거 나 주라…. 응?”
피아노 독주곡이 여섯개 있었다고? 세어 보질 않아서 모르겠다.
독주곡보다는 확실히 협주곡이 많았던 것 같은데, 기억하고 싶지는 않다. 기억하려고 하면 다시 머릿속에서 피아노 소리가 울려 댈 것 같으니까.
“갖고 싶으면 가져.”
“정말?”
“어.”
나는 그것들을 쏟아내고 나서 잠을 잘 수 있게 된 것만으로도 만족한다.
“엄마, 현이가 계약해 준대. 얼른 와 봐.”
큰누나가 바라보며 소리친 내 등 뒤쪽 구석진 곳에서 엄마와 작은누나가 훔쳐보고 있었다.
어젯밤, 내가 잠든 사이 가족회의에서 나온 계획은 과연 치밀했다. 계약 역시 순식간에 이뤄졌다.
계약금 같은 건 없었지만, 저작권 때문에 계약서가 필요하다고 했다. 계약은 무슨 계약이냐며 손사래 치는 나에게, 앨범을 만들 때 협회에 제출해야 한다며 사인을 받아 갔다.
엄마의 사인은 이미 되어 있었다. 뭐야 이거. 모녀 사기단이야?
그리고 나를 귀찮게 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받았다. 다른 거 만들어 달라고 하면 나는 뚝딱뚝딱 만들어 줄 수가 있는 그런 사람이 아니니까.
그리고 이날 오후, 기대하지 않았던 전화가 걸려왔다.
음악이 싫은 음악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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