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musical genius who hates music RAW novel - Chapter 64
063화
“이정현 씨, 한국에 귀국하신 이유는 뭔가요?”
“외국 국적을 취득하셨다는 소문이 있는데 사실입니까?”
와, 이 하이에나 같은 인간들. 귀국한다고 아무에게도 말한 적이 없는데, 인천 국제공항에 기자들이 나와 있네. 대체 어떻게 알았지?
플래시를 먹어 눈이 반쯤 멀어 버린 상태에서, 몸으로 밀어붙이는 사람들을 마주하니 경호원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끼게 되었다.
여태까지는 주변에 누가 있는 것이 싫어서 경호원을 고용하라는 말을 웃어넘겼는데, 이제야 필요성이 느껴졌다.
“나중에 이야기하겠습니다. 저는 오랜 비행으로 피곤해서 이만.”
대한민국이라고 쓰여 있는 녹색 여권을 들어 보이며 기자들에게 손을 흔들었다.
“크리스, 우리 경호원 고용하자. 기자들이 글은 안 쓰고 운동만 하나, 힘이 왜 이리 좋아.”
“어디에서 고용할 건데? 미국? 영국? 아니면 한국?”
“미국에서. 아무래도 총기 휴대가 가능한 나라니까 조금 더 낫겠지. 돈 아끼지 말고 실력 좋은 사람으로.”
공항의 출구로 향하며 전에는 갖고 있지 않았던 차에 대한 욕심도 좀 생겼다. 이럴 때 누가 나와서 기다리고 있으면 좋으련만….
인천 공항의 출구로 빠져나와 냄새를 맡았다. 한국 특유의 냄새.
“한국 냄새가 난다….”
지역마다 특유의 냄새가 있다. 공항에서 빠져나올 때 느껴지는 냄새.
다른 나라에 비해 엄청나게 특이하거나 그런 것은 아니지만, 내가 18년 동안이나 맡아 왔던 익숙한 냄새가 느껴졌다.
“이 거지 같은 땅에 돌아와 버렸네.”
택시 정류장에 서 있는 차로 발걸음을 옮기며 나도 모르게 한국어로 혼잣말을 해 버렸다. 다행히도 아무도 듣지 못한 것 같았다.
크리스는 바로 옆에 있어서 내 말을 들었지만, 한국어를 몰라서 고개만 갸우뚱하고 있었다.
차의 문을 열고 크리스에게 말했다.
“크리스, 타.”
“응.”
“아저씨, 양재역이요.”
“예에~ 어느 쪽으로 가 드릴까? 올림픽대로?”
전형적인 한국 택시 기사 아저씨도 반가운 느낌이 들었다. ‘오랜만이네’ 이런 느낌.
“그냥 아무 데나 빠른 쪽으로 가주세요.”
“예예~ 그나저나 외국 처자랑 만나시나 봐? 아주 미인이시네? 엇! 이정현….”
백미러로 뒷자리를 힐끔힐끔 보던 아저씨는 내 얼굴을 알아봤는지 말을 하다 멈췄다.
“그런 사이 아니고 한국에 일 때문에 온 겁니다.”
“험험.”
창밖으로 스쳐 지나가는 한국의 풍경들이 낯설게 느껴지는 것은 내가 그만큼 오랜 시간 동안 떠나 있었기 때문이겠지.
올림픽대로의 오른쪽으로 목동의 아파트들이 보이는 풍경을 지나고 성산대교와 양화대교를 지나며, 수원이 그리고 유자와 함께 홍대 입구역에 갔었던 기억이 흘러들어왔다.
그때는 참 어렸었는데.
“왜 웃어?”
옆에서 크리스가 나를 바라보며 물었다.
“어릴 때 자주 가던 곳이 저 다리 건너에 있거든.”
“재밌는 곳이야?”
“아니, 그냥 바보 같은 짓거리하던 곳.”
길거리에 있는 음식점들과 장난감 상점, 만화책을 사러 갔던 서점들이 떠오른다. 수원이와 유자는 라이브 클럽에 가고 싶어 했었지. 결사반대하던 나 때문에 못 갔지만.
“나는 이번이 두 번째지만 이렇게 높은 건물들이 많은 게 신기해. 런던은 이렇게 높은 건물들이 많지 않으니까.”
“런던은 개발 제한 구역이니까.”
런던은 한국과는 다르게 도심 전체에 개발 제한이 걸려 있어서 건물을 부수고 다시 지을 수 없다. 그래서 건물의 가격은 엄청 비싸지만, 내부는 물이 새기도 하고 외풍이 심하게 들어오기도 한다.
버킹엄궁도 너무 오래되어서 빗물이 샐 정도지만, 유적 같은 곳이라 함부로 손을 댈 수 없다고 했던가.
올림픽 대로를 빠져나가 강남역을 지나 양재역에 도착할 때까지도, 택시 기사 아저씨는 처음에 나를 보고 했던 말이 무안했는지 한마디도 하지 않으셨다.
“저…. 사인 좀 해 주시겠소? 우리 애들이 팬이거든.”
“종이랑 펜 있나요?”
택시 기사 아저씨에게 사인해 주고 차에서 내리자 내가 살던 집이 보였다.
주변의 풍경은 높은 아파트들이 올라가고, 상가들이 늘었는데, 우리 집은 예전과 변한 것이 전혀 없었다.
나는 그리웠던 재산 1호의 현관 비밀 번호를 누르고 문을 열며 외쳤다.
“엄마, 아들 왔어요!”
10년 만에 맡아 보는 우리 집의 냄새가 온몸으로 느껴졌다.
“응, 아들. 왔어?”
“누나들은요?”
“걔네들이 집에 오니. 다들 자기일 하랴 남자 친구 만나랴 바쁘지.”
누나들은 모두 독립해서 나가고, 어머니 혼자 사는 집. 예전의 그 느낌을 잃어버린 집에 들어오자 너무 쓸쓸한 느낌이 들었다.
예전에는 누나들과 어머니가 거실에 앉아 함께 TV를 보며 왁자지껄한 분위기였었는데.
내 뒤로 들어온 크리스가 어머니에게 인사를 했다.
“Glad to meet you, Mrs. Lee. Christine Rogers. (만나 뵙게 되어서 기쁩니다, 리 부인. 크리스틴 로저스입니다.)”
“…이 아가씨는 누구야? 여자 친구야? 여자 친구를 데려올 거면 미리 말을 했어야지! 엄마 지금 화장도 안 했는데!”
크리스를 마주한 어머니는 당황해서 나의 등을 때리며 말했다.
“아우, 아파! 여자 친구 아니에요. 내 매니저. 여자 친구 아니라고요.”
갑자기 나를 때리는 어머니를 보며 크리스는 당황했고, 어머니는 정말 여자 친구가 아니냐며 나를 추궁해댔다.
어머니는 이렇게 10년 만에 한국으로 돌아온 아들에게 등짝 스매시를 날리는 대단한 분이다.
“배고프지? 엄마가 금방 밥해 줄게.”
오랜만에 집밥을 먹을 수 있었다. 식당의 밥보다 맛있지는 않지만, 집밥은 의리로 먹는 거라고 했다.
크리스도 식탁에 함께 앉아 우리 집밥을 먹게 되었다. 미안해, 간이 좀 싱겁지? 우리 집은 조미료를 쓰지 않는 집이라서 맛이 좀 심심해.
숟가락과 젓가락을 놀리며 열심히 밥을 먹고 있는데 어머니가 말했다.
“누나들한테는 전화했니?”
“아뇨.”
“어릴 때부터 귀여운 구석 하나 없는 너지만 그래도 동생이잖니. 가끔은 누나들한테 어리광도 부리고 해야지. 걔들 또 서운해한다.”
“어리광은 무슨 애도 아니고. 두 달 정도 있다가 나갈 거예요. 그사이에 보겠죠.”
한국의 일정은 두 달을 예상하고 왔다. 공사가 두 달 정도 걸릴 거라고 했으니 그사이에 해치울 수 있는 일들은 해치워야 한다고 생각했다.
***
[1급입니다.]신체검사 1급이 나왔다. 몸이 튼튼하니 나올 만도 하지. 군대를 가야 한다면 아마 급수가 낮았으면 좋겠다고 바랐을지도 모르지만, 나는 내 몸이 튼튼하다는 것에 만족했다.
보라매역에 있는 서울 지방 병무청에서 신검을 위해 나눠준 옷을 반납하며, 1층에 있는 수납 창구에 가서 물었다.
“예술 체육요원 대상자인데요. 훈련소 입소 신청은 어디에서 하죠?”
“어머, 이정현 님 한국에 오셨다는 이야기는 뉴스에서 봤었는데…. 저, 주민 등록 번호 먼저 알려 주시겠어요?”
“네. 주민 등록 번호가….”
주민 등록 번호를 알려 주고 훈련소 입소 날짜를 잡았다. 가장 빠른 입소는 한 달 뒤. 사실 훈련소에 갈 필요는 없었다. 외국 거주자로 분류가 되면 군대에 가지 않더라도 병역이 주어지지 않는다.
그런데도 굳이 한국까지 와서 훈련소를 가려고 하는 이유는, 미국과 영국의 국적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한국은 여러 가지 예외가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다중 국적을 허용하지 않는 나라다. 외국의 국적을 얻으면 자동으로 한국의 국적은 없어진다.
병역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다른 나라의 국적을 얻을 때 자동으로 한국의 국적이 없어지며, 다중 국적을 가질 수 없게 되는 것.
한국의 법은 그렇게 군대를 피해갈 수 없게 되어있었다.
그렇게 외국인이 되었다가 나중에 한국의 국적을 다시 얻고 싶어질 때, 군대를 다녀오지 않으면 국적을 돌려주지 않는 경우가 있었다.
30년 전에 어떤 연예인이 군대에 갈 것이라고 하다가 미국으로 도망가듯 귀화하는 바람에 생긴 법이라고 했던가.
어쨌거나 한국에 돌아오기 위해서도 이 문제는 해결하고 넘어가야 했다. 군대에 다녀오면 외국 국적 불이행 서약만으로 외국의 국적을 얻을 수 있으니까.
영국과 미국의 국적을 얻을 생각인데, 건물을 구매하면서 외국인이라 융자를 받지 못하는 등의 불이익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융자를 얻을 필요는 없었지만, 그것이 일종의 외국인에 대한 차별점이라고 생각했다.
어느 나라 건 자국민에 비해 외국인이 불편한 것은 어쩔 수 없다. 외국인과 똑같은 대우를 받는다면 자국민들이 싫어할 테니까.
그래서 본격적으로 일을 벌이기 전에 국적의 정리는 필요한 일이었다.
서울 지방 병무청에서 나와 종로에 있는 미국과 영국 대사관에 들러 국적 신청을 했다.
한국 국적을 포기하는 것도 생각해 보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가족들이 사는 곳이니 언젠가는 돌아올 것이라는 생각 때문에 차마 포기하질 못했다.
외국에 나가 있을 때 통일이 되었으면 좋았을 텐데, 안타깝게도 통일은 아무런 소식도 없었다.
군대 역시 여전히 징병제. 기간은 1년으로 줄었지만.
국적 신청을 하고 나서 윤주란 교수를 만났다.
“한국에 들어왔다는 소식은 뉴스로 들었어. 건강하게 보이니까 좋네.”
“교수님도 건강해 보이셔서 좋네요.”
“무슨 일이야?”
“제 이름으로 된 회사와 웹사이트, 이제는 정리해야겠다 싶어서요.”
훈련소 입소까지 한 달. 내 이름으로 되어 있던 법인을 청산하기로 했다.
법인명으로 되어 있던 은행 계좌의 잔액을 유일한 주주인 내 계좌로 옮기는 과정에서 확인한 법원의 징벌적 손해 배상 지급 명령에 들어온 돈만 수백억.
“가난한 음악가들을 위한 재단을 하나 만들어 주세요. 이 돈은 그 재단에서 쓰도록 할게요.”
“한두 푼도 아닐 텐데 그 돈을 전부?”
“네. 전부요. 저는 제 저작권으로 들어온 돈만 가져갈게요.”
내가 아무리 돈의 화신이라고 해도 그 돈에 손을 대는 것은 내키지 않았다.
그저 남들을 욕하는 것으로 벌어먹던 놈들의 더러운 돈이다. 수백억이라는 엄청난 금액이지만 갖고 싶다는 생각이 정말 0.1mg도 들지 않을 만큼 더럽게 느껴졌다.
그놈들이 부르짖던 ‘가난해서 어쩔 수 없이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저작권을 헐값에 팔아야 하는 작곡가’가 정말 있다면, 그 사람들을 위해 쓰는 게 좋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웹사이트의 폐쇄를 결정하면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사이트를 확인할 수 있었다.
이제는 거의 폐간된 신문과 잡지들이 나열된 웹사이트. 나를 욕하는 기사를 올렸던 기자 중 아직도 기자를 하는 사람은 없었다.
대부분은 일용직 근로자가 되었거나 백수가 되거나 자영업자가 되었다고 쓰여 있었다.
특히, 지속해서 악플을 올리며 ‘이정현에게 진실을 요구하는 모임’의 멤버들은 전원 법정 구속이 되어, 교도소에 몇 년간 수감되었었다는 글을 보며 조금은 기분이 좋아졌다.
게다가 거대 신문사들의 사과문을 올렸던 캡처 사진을 보면서, 그 시절의 억울했던 마음들이 조금은 가시는 느낌이 들었다.
“그 사이트 없어지면 내 하루 시작이 조금 바뀌겠네.”
법인 청산과 웹사이트 폐쇄는 며칠이 걸렸고 혼자 하기는 힘든 일이었기에, 도와주겠다고 찾아온 수원이 말했다.
“뭐가 좋다고 저걸 매일 본 거냐. 재밌는 것도 없더만.”
“좋아서 본 게 아니야, 인마. 혹시라도 기자나 언론으로 복귀하는 사람이 있으면 동네방네 소문내서 막으려고 한 거지.”
“그래, 아~ 주 고맙다. 네 덕분에 기레기들 퇴치했네. 조금은 깨끗한 나라가 되었겠어?”
“너 갑자기 없어지는 바람에 혼자 남겨졌는데 그 정도 복수는 해 줘야지.”
어릴 때 내 가슴에 만들어진 상처는 나에게만 남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상처가 사라지면 흉터는 남겠지만, 더는 아프지 않겠지.
이제 꿈에서 깨어나 현실을 마주 볼 때가 되었다.
음악이 싫은 음악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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