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musical genius who hates music RAW novel - Chapter 66
065화
히스로 공항을 나오자 갑자기 비가 왔다.
8년 동안 이 우중충한 나라에서 살아 왔는데, 고작 아홉 달을 다른 곳에 있다 왔다고 런던의 날씨가 적응이 안 되었다.
“여기는 왜 이렇게 갑자기 비가 오냐.”
“나는 감자 튀김에 버거 소스 뿌려서 먹고 싶어. 이제 케첩은 질렸어.”
나는 한국에서 한식만 먹으니까 좋던데, 크리스는 진짜 영국인이었다.
한국 햄버거집의 감자 튀김이 좀 심심하긴 하지만, 설마 피쉬 앤 칩스를 그리워할 줄이야.
아서는 오랜만에 런던에 돌아옴에도 차를 준비시키는 센스를 보여 주었다.
“런던에 돌아오신 걸 환영합니다. 이정현 님.”
“오랜만이에요, 아서. 잘 지냈죠?”
월급은 왕실에서 나갔을 테니까. 내가 걱정할 필요는 없지.
9개월 만에 만난 아서의 얼굴은 여전히 주름이 많았다. 얼굴의 주름이 처음부터 그의 얼굴에 있었던 것이 아니었나 싶을 정도로 자연스러운 모습.
그가 준비한 검은 색 롤스로이스를 타고 다시 돌아온 저택은 관리가 잘되어 잔디나 조경들은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 마치 이곳만 시간이 지나지 않은 것처럼.
반짝거리는 대리석이 깔린 입구와 다른 이가 열어 주는 두꺼운 나무문을 지나 저택의 안에 들어오는 기분이 처음과는 다르게 위압적이지는 않았다.
나를 향해 길게 서 있는 사용인들의 모습들조차도 이제는 자연스럽게 느껴졌다.
““다녀오셨습니까.“”
“다들 잘 지내셨죠?”
아니지? 내가 잘못 느끼고 있는 것 아니겠지?
여름에 나가 봄에 돌아왔음에도 이곳의 사람들은 전혀 변한 것이 없었다. 처음 왔을 때와 똑같았다.
자연스럽게 내가 지내던 방으로 돌아가 옷을 갈아입고, 1층의 거실로 내려와 소파에 앉아 알버트에게 전화를 걸었다.
[런던에 돌아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이정현 님.]“네, 환영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알버트 경. 일정은 잡혔습니까?”
[예. 조만간 제가 찾아뵙고 말씀을 드리겠습니다.]일정만 알려 줄 것이지 굳이 찾아올 필요는 없는데. 항상 중요한 이야기는 전화로 하지 않는다.
어느새 내 옆에 다가와 앉은 크리스에게 물었다.
“우리 돈 얼마나 있어?”
“지금? 잠깐만.”
크리스는 지갑을 열어 가진 돈을 확인하려 했다.
“계좌에 말이야.”
급하게 지갑을 찾는 모습이 웃겨서 피식하며 말을 했더니 기분이 나빴는지, 볼이 빨갛게 부풀어 올라 귀여운 햄스터 같았다.
“이제 곧 정산금 들어올 거야. LA에서 건물을 사서 많이 남지는 않았어. 인테리어 공사비로 들어가는 돈도 있고. 한 8백만 달러 정도.”
8백만 달러를 많지 않다고 말하는 크리스가, 작년 이맘때만 하더라도 집세를 걱정하며 하루하루를 살아가던 웨이트리스였다는 건 지금은 나만 알고 있다. 많이 변했네, 얘도.
런던 건물 가격은 상상을 초월하니까, 역시 본사는 프레스턴으로 가야 할까. 지금 가진 8백만 달러 갖고 런던에서 무얼 하기에는 턱도 없이 부족하다.
Rrrrrrrr-
크리스의 손에 쥐어진 전화기가 울렸다. 왜 소리라면 그렇게 싫어하는 내 앞에서 진동이 아니라 벨 소리로 해 두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오랜만에 들어 보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네, 여보세요.”
전화기에서 작게 들리는 소리가 귀에 거슬려 정원에 있는 선베드에 누우려고 나갔다가 깨달았다.
“아씨. 아직도 오잖아.”
아직도 비가 그치지 않고 있었다. 마당으로 연결된 문 앞에서 멀리 나무들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본사는 영국에 두고 싶었다. 이제 막 시작하는 입장에 본사와 지사를 따로 둔다는 것은 웃기지만, 그래도 영국에서 더 오래 지냈으니까.
미국보다 영국이 더 낫거나 부족하거나 그런 것은 아니고, 처음에 이곳에 왔던 그때의 기분을 잊고 싶지 않았다. 뿌리라고 할까.
한국을 떠나던 날 느꼈던 화가 나고 악에 받치고 무서워 이곳에 오던 날을 잊고 싶지 않았다. 잊으면 안 될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비록 좋은 일은 아니었지만.
문 앞에 쪼그려 앉았더니 다리가 살짝 저렸다. 운동이 부족해서 그런지 아니면 살이 찐 건지 확실하게는 모르겠지만, 찌릿찌릿한 느낌이 다리에 퍼졌다.
벌컥-
문이 열리고 크리스가 다가와 말했다.
“마커스 씨가 전화 왔는데, 이번에 우리 회사로 저작권 옮겨지는 음악들 등록됐다고. 그거 발매할 거냐고 묻던데?”
“그거 겨우 세 곡이잖아.”
한국의 법인을 청산하며 공연 실황으로 발매했던 음악들을 지금의 회사로 옮겼다. 그곳에 남아 있어도 크게 상관은 없겠지만 법인세가 나가니까 굳이 유지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윤 교수 말로는 법인세보다 은행 이율이 더 커서 그게 신경 쓸 필요는 없다고 했지만, 아예 안 나가면 모를까 아깝잖아.
“세 곡이라도 스트리밍 사이트에만 등록되어 있고 CD로는 여기에서 발매를 안 했으니까. 물어보는 거잖아.”
크리스가 아는 것이 늘어갈수록 되물어오는 것들이 많았다. 처음에는 모르는 것들을 잔뜩 물어보더니 지금은 그래도 아는 것이 늘어나면서 물어보는 것들이 조금은 줄었다.
“차라리 실황 말고 스튜디오에서 새로 녹음을 하자. 그거 악보 판매도 했던 거니까.”
“교향곡을 스튜디오에서 녹음하겠다고? 녹음할 수는 있는 거야? 연주하는 사람만 해도 백 명은 될 텐데.”
“뭐 어때. 듣는 사람은 깨끗하게 듣고 좋지. 실황은 잡음 같은 거 끼어 있는 느낌이라 싫단 말이야.”
개인적인 취향일 수도 있지만, 실황 곡에서 느껴지는 것과 스튜디오 녹음의 차이는 음질에 있다고 생각한다. 현장감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실황이 더 좋겠지만 스튜디오는 또 스튜디오만의 맛이 있는 법.
그리고 새로운 시작을 처음에 했던 곡과 같이하는 것도 나쁘지는 않다고 생각했다. 그 곡들을 새롭게 리마스터해서 발매를 하는 것으로 시작을 알려야지.
“그리고, 그 곡들 말고 다른 곡들도 추가해서 내자. 그 곡들은 너무 우울하니까. 조금 신나고 즐거운 곡들도 넣어서.”
“나는 뭐, 리가 하자고 하면 하는 거로 생각하는데 시간이 있겠어? 저쪽에서 바라는 건 바로 내는 것 같던데.”
“실황 앨범은 그냥 내라 그래. 음원 자료는 이미 갖고 있을 테니까 실물 앨범 디자인만 어떻게 새로 하고. 내 계획을…. 아니다 내가 전화해서 말할게. 전화기 줘.”
굳이 크리스를 거쳐서 말할 필요가 없었다. 나중에 내가 다시 설명하는 것도 귀찮으니까 직접 전화해서 말하는 게 낫겠지.
전화를 하자 만나서 직접 이야기하자고 말한 마크는 한 시간도 안 되어서 집으로 찾아왔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어서 오세요, 마크. 조금 어수선하네요. 돌아온 지 얼마 되질 않아서.”
뒷마당에 차려 놓은 티 테이블에서 마주 보고 앉아 내가 생각한 이야기를 했다.
“실황 앨범과 스튜디오 앨범을 따로 내고 싶으시다는 겁니까?”
“네. 예전 실황 앨범의 음질이 조금은 마음에 들질 않아서요.”
“그렇다면 차라리 실황도 스튜디오도 새로 녹음을 하는 것은 어떻습니까? 런던 필하모닉의 주 레퍼토리가 된 것 같던데요.”
런던 필하모닉의 소리는 들었던 적이 있었다. 연습한 지 한 달 만에 공연했던 서울의 곡보다 더 발전한 것 같은 느낌의 음색을 들려 주었었지.
“그것도 괜찮겠네요. 런던 필하모닉과 하는 것도 좋겠어요. 그런데 그 두 곡만 하려는 것이 아니라 몇 곡 더 하려고 하는데 괜찮겠죠?”
“저희야 언제나 환영이죠. 더할 나위 없이 좋습니다.”
“그런데 교향악단 스튜디오 녹음을 할 만한 곳이 있나요?”
보통 교향곡의 스튜디오 녹음이라고 말하는 것은 실황 녹음과 큰 차이가 없다.
실황 녹음과 한 가지 다른 점이라면 관객이 없다는 것. 그리고 연주자들 사이에 마이크가 많이 들어간다는 것 정도의 차이다.
일반적인 공연은 관객들에게 보이지 않도록 마이크를 보이지 않게 가리지만, 관객이 없으면 그럴 필요가 없으니까.
실황 앨범은 현장감을 느낄 수 있다는 점이 장점이지만 잡음이 엄청나게 들어간다.
사람들이 움직일 때마다 들리는 부스럭거리는 소리, 기침하는 소리 같은 것들이 들어간다.
이걸 공연장에서 듣는다면 크게 신경 쓰이지 않는 부분이지만, 음원이나 CD로 듣게 된다면 생각보다 크게 신경이 쓰이지.
후처리를 하면서 아무리 없애려고 해도 기침 소리 같은 것은 없앨 수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말 그대로 실황이라 안 좋은 부분이 있다고 해서 멈추고 다시 녹음할 수는 없다. 관객들이 돈을 주고 들으러 온 공연이니까.
그래서 앨범의 구매자들은 실황 앨범의 장점인 현장감과 스튜디오 앨범의 음질 중에 선택을 하게 된다.
“장소는 전혀 신경 쓰실 필요가 없습니다. 그런 것은 저희가 다 알아서 할 테니까요.”
“알겠습니다. 신경 써 주셔서 감사합니다, 마크.”
너털웃음을 짓는 마크를 바라보며 고맙다고 말하자, 오히려 그는 자신들을 통해 새로운 음반을 내주어서 고맙다고 말했다.
“아…. 그리고 지난번에 말씀드렸던 부탁 말입니다만.”
“레코딩 스튜디오 만들 때 하셨던 말씀 말이로군요. 네, 하세요. 제가 들어드릴 수 있는 건 들어드리겠습니다.”
마크는 내 말을 듣고 티 테이블에 있는 찻잔을 들어 한 모금 마신 뒤 말을 시작했다.
“혹시, 소속 아티스트를 늘리실 계획은 없습니까?”
“직원은 더 고용할 생각이지만 아직 소속 아티스트를 늘릴 생각은 없는데, 왜 그러시죠?”
“어험…. 제이드 기억하시죠?”
“기억을 못 할 리가요. 제이드 덕분에 그래미도 다녀왔는데.”
정확하게는 에릭과 제이드 덕분이지만.
“그 아이가 있는 그룹의 프로듀서가 되어 주실 수 없을까 해서 말입니다.”
“아직도 데뷔를 못한 거예요? 그때 곧 있으면 데뷔할 거라고 하셨던 것 같은데.”
분명 제이드를 처음 만났을 때 나에게 곧 있으면 그룹의 곡이 나올 거라고 말을 했었다.
“정현 님의 곡을 듣고 나니 기존에 녹음 중이던 곡은 영 수준이 낮다는 생각에 아직….”
아이돌 데뷔를 하기 위해 몇 년간을 연습 중이었던 애들인데, 곧 데뷔를 할 거라고 말한 뒤에도 계속 대기를 시키다니.
게다가 제이드는 무대가 주는 뽕 맛을 한번 보았다. 그러면 지금 데뷔를 기다리는 시간이 더욱 힘겹게 느껴질 텐데.
“그래서요?”
“아시겠지만 저희는 퍼블리셔입니다. 레이블이 아니죠. 직접적으로 작업에 관여하는 일은 드문 편입니다.”
퍼블리셔에서 직접 음원을 내는 일이 없는 것은 아니다.
크리스마스 연금을 타 먹는다는 머라이어 캐리만 하더라도, 처음에는 퍼블리셔와 직접 계약을 했으니까.
지금은 그 회사가 전업 레이블로 바뀌기는 했지만, 그래도 소미와 1988년에 합병하고 나서도 한참 동안 퍼블리셔와 레이블을 겸하던 회사였다.
공장에서 물건들을 만들 때 분업하는 것처럼 음반사들이 분업 체제로 바뀐 2000년대부터, 퍼블리셔가 레이블과 레코딩 스튜디오를 보유하는 형태로 바뀌게 되었을 뿐.
“원래는 산하 레이블에 위탁하는 방식으로 데뷔를 시키려고 했는데, 정현 님이 데려가서 키워 보시는 건 어떤가 해서….”
아예 흥미가 없지는 않았다. 오히려 직접 재능 있는 애들을 찾아보는 시간을 줄였으니 개이득이지. 연습도 시킬 만큼 시켰을 테니 데뷔라는 말이 나왔을 테고.
내가 무슨 유치원 보모도 아니고 애들을 키워, 다 큰 애들을 넘겨준다니 아주 고맙구만.
“좋아요. 그래서 애들은 언제 보내주실 수 있나요?”
좋아! 우리 회사 2호 아티스트는 걸 그룹이다!
음악이 싫은 음악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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