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musical genius who hates music RAW novel - Chapter 67
066화
“원하신다면 지금 바로 보내드릴 수도 있습니다. 배정된 매니저들과 함께 말이죠.”
“LA로 보내주세요. 거기에서 작업을 할 테니.”
미국에서 발매하면 자연스럽게 영국으로도 들어올 거다. 영국에서 발매하면 미국으로 보내는 데 시간이 걸리지만 반대로는 쉽게 움직인다.
미국이 대중문화 트렌드의 중심이기 때문이지.
물리적인 음반 시스템에서 인터넷 스트리밍으로 시장이 바뀌게 되었다.
그로 인해 전달되는 속도가 더 빨라졌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현지에서 데뷔하느냐 해외에서 유입되느냐는 판매량에 큰 차이를 보일 수 있다.
“알겠습니다. 맡아 주신다고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럴 리가. 내가 뽑아다가 키우려고 하면 더 많은 시간이 걸릴 텐데, 이미 연습 기간을 거친 즉시 데뷔 할 수 있는 걸 그룹을 공짜로 준다는데 내가 더 고맙지.
“별말씀을요. 혹시 기존 레이블에서 잡음이 나오지는 않겠죠?”
“잡음이 나올 리가요. 사실 지금 프로젝트가 완전히 멈춰 버린 것이나 다름없거든요.”
마크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말을 했다.
아이돌을 키우는 데는 꽤 많은 투자금이 필요하다. 투자금을 들여 열심히 키웠는데 빼갔다는 소리를 들으면 안 되니까 확인을 해 봐야지.
“좋아요, 좋습니다. 이번 교향곡 앨범 작업 마치면 바로 미국으로 넘어가서 한번 시작해 보도록 하죠. 그때까지 애들은 휴가라도 보내주세요.”
걸 그룹보다 일단 먼저 손대야 할 것은 런던 필하모닉과의 협업.
그래야 미국으로 다시 넘어갈 수가 있으니까.
“리처드 경을 먼저 만나 보죠.”
본격적인 작업에 앞서 런던 필하모닉의 상임 지휘자, 리처드를 만나야 할 시간이다.
***
“사무국과 이야기를 나눠 봐야 일정이 확실하게 나올 것 같습니다만, 4월에는 시간을 낼 수가 없습니다. 5월 이후라면 모를까….”
런던 필하모닉이 상주하는 사우스뱅크센터. 이곳에서 오랜만에 만난 리처드는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정말 하고 싶지만 일정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말과 함께.
교향악단은 보통 사무국이라는 곳이 전담해서 연주 일정 등을 조율한다.
크게 보면 별로 대단치 않은 일을 하는 것 같지만, 실제 연주를 하는 연주자들의 사정과는 별개로 사무국의 결정에 따라 연주 일정이 정해진다는 것.
만약에 사무국이 공연 일정을 잡았다고 한다면 연주자들에게는 거부할 권한이 없다.
그 사무국과의 일정 회의에 참여할 수 있는 것은, 실무진이라고 할 수 있는 연주자 중에서는 보통 콘서트마스터와 수석 지휘자뿐.
“흠…. 제 신곡 작업도 런던 필하모닉과 함께하고 싶었는데 아쉽네요. 제가 시간이 없어서.”
“신곡이요? 신곡을 쓰신 겁니까?”
신곡이라는 말에 리처드의 눈이 반짝하고 빛났다.
“곧 작업에 들어갈 겁니다. 전에 발매했던 곡과 신곡을 합쳐서 두 장의 CD로 발매하려고 하고 있어요. 제 곡을 가장 많이 연습하셨던 리처드 경과 함께한다면 시간을 조금 더 아낄 수 있지 않을까 해서 먼저 찾아오게 되었는데 아쉽게 됐네요.”
“험험. 제가 사무국장과 이야기를 한번 나눠 보도록 하겠습니다.”
나라를 대표하는 지휘자로 훈장까지 받은 리처드 정도의 거장이라면, 사무국장도 큰소리를 치지 못할 게 분명하다.
이미 만들어 놓은 곡은 없지만 산타모니카 해변의 나른한 오후, 그리고 그래미의 레드카펫에서 사람들을 만나며 느꼈었던 뭉클함이 내 안에 남아 있었다.
브루노 메이저의 곡처럼 가벼운 어쿠스틱 기타 하나로도 표현하려면 할 수 있겠지만, 내가 느꼈던 것을 고스란히 담으려면 부족하다.
그래서 나는 교향곡으로 만들고 싶었다. 깊이와 감정을 담아서.
그 외에도 내 안에는 많은 음악이 있지만, 연주자들이 연습할 수 있는 물리적인 시간에는 한계가 있으니까.
무슨 이야기를 하고 온 건지는 모르겠지만 리처드는 오래 걸리지 않아 전화로 답변을 주었고, 두 곡의 녹음은 빠르게 진행될 것으로 보였다.
남은 것은 새로 만들 곡의 악보와 연습 시간뿐.
새로 만들 곡의 이미지를 떠올리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붉게 물든 노을이 찾아오기 전의 해안가가 보이는 창가에 앉아, 맥주 한 병을 마시던 그때를 떠올리면 바로 들렸으니까.
잔잔한 하프의 소리가 들린다.
디리리링-
가벼운 손놀림으로 하프를 어루만지면, 파도 소리처럼 조용하게 다가오는 첼로.
지이이잉-
하프와 첼로를 중심으로 짜여진 분위기가 가장 그때와 비슷한 것 같았다.
“도착했습니다.”
열심히 떠올리고 있던 그때, 운전기사가 집 앞에 도착했음을 알렸다.
“고마워요.”
차에서 내리며 크리스를 찾았다.
“크리스! 나 며칠간 작업할 테니까 전화 오는 거 있으면 며칠 뒤에 받을 거라고 전해 줘.”
“그래 알았어. 일은 잘 이야기된 거야?”
“이야기가 잘되지 않았으면 작업할 일도 없었을 거야. 한참 동안을 묵혀 뒀어야 하니까.”
급할 필요가 없었다. 천천히 작업해도 크게 상관은 없다. 하지만 빨리 끝내고 싶었다. 생각났을 때 단숨에.
여전히 1층에 자리한 내 작업실을 향해 걸어갈 때 아서가 말했다.
“아시죠? 무리하지 않는 게 가장 중요합니다. 일단 의사를 대기시키도록 하겠습니다.”
“무리하는 일은 없을 거예요. 만약에 제가 무리하는 것 같으면 억지로라도 말려 주세요.”
지난번처럼 쓰러질까 봐 걱정하는 아서를 뒤로하고 나는 작업실로 들어갔다. 무리할 생각은 전혀 없지만, 이것은 내가 제어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니까.
붉은색의 노을이 크림색 구름에 번져가는 해안가를 파도 소리를 떠올리며, 의자에 앉아 등받이에 등을 기대고 눈을 감았다.
다시 하프 소리가 들려오며 깊은 바닷속에 잠겨 들어간다.
***
지난 몇 번의 작업 때처럼 단숨에 끝내지는 못했다. 솔직히 그때의 고통은 떠올리고 싶지도 않을 만큼 너무 아팠으니까.
하지만 괜찮은 음악이 되었다고 생각했다. 분위기도 마음에 들었고, 기존에 내가 뽑아냈던 음악들과는 달리 느슨한 느낌이라 듣기에도 편한 것 같은 느낌.
일주일이 지나자 휴가지에서 듣기에 딱 좋은 음악이 나왔다.
“이정현 님, 진단할 시간입니다. 잠시 작업을 멈추시지요.”
“네, 아서. 안 그래도 작업이 끝났네요.”
무슨 중세 시대 귀족도 아니고 하루에 한 번씩 의사가 와서 진단한다. 간호사에게 팔을 내밀어 혈압을 재고 의사가 청진기로 가슴을 체크했다.
“정상이십니다.”
의사의 말에 옆에 있던 아서가 숨을 내쉬었다. 주변에 걱정해 주는 사람이 많다는 것은 귀찮지만 좋은 것 같다.
내 상황을 정확하게 알지 못했던 크리스는 왜 의사가 내 옆에 상주하는지 알지 못했지만, 말해 주고 싶지는 않았다. 얘도 걱정이 너무 많으니까.
“연락 온 곳은 있었어?”
“알버트 경하고 리처드 경 그리고 마크.”
딱 걸려 올 곳만 걸려 왔네.
“고마워.”
일주일 동안은 말하지 말아 달라고 했더니, 지난 일주일간 정말 아무것도 말해 주지 않았다. 밥 먹을 때조차도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내가 말한 거라면 우직하게 지켜 주는 것이 크리스의 장점이자 단점이다.
일단 가장 먼저 마크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유는 할 말이 가장 없을 것 같았기 때문에.
[1차 녹음이 끝났습니다.]“잘됐네요. 며칠만 있으면 신곡의 악보가 나올 거예요.”
[오, 벌써 두근두근하는군요.]전화를 끊고 메건에게 연락하면서 악보 만드는 방법을 좀 배워 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악보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 부탁을 해야 한다는 것이 조금 귀찮기도 했고, 다른 용무가 전혀 없는데 악보만을 위해서 부탁하는 것도 미안했으니까.
메건은 고맙게도 학생이라 시간이 많은 건지 바로 작업해 주기로 했다.
그렇게 메건을 기다리며 정원에 나와 있을 때 조금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미국과 한국 모두 기자들이 항상 집 앞에 진을 치고 있었는데, 영국의 집 앞에는 아무도 없었다는 것.
공항에서도 단 한 명의 기자를 만나지 못했다.
“내가 영국에서는 인기가 없나 보네.”
웃으며 혼잣말을 했는데 그 말에 반응하는 사람이 있었다.
“다른 곳보다 더 많으면 많았지 적지는 않을 겁니다.”
바로 아서였다.
“그래요? 다가오는 사람이 하나도 없던데요. 사인해 달라는 사람도 없고, 기자들도 없고.”
“얼마 전에 영국 국적을 획득하지 않으셨습니까?”
“신청해 두기는 했는데 아직 획득했다 안 했다 말은 없었어요.”
미국 대사관에서는 획득했다고 직접 직원이 찾아와서 말도 해 주고 광고도 했는데, 영국 대사관에서는 아무런 반응이 없어서 시간이 조금 더 걸리나 보다 했다.
“이정현 님은 이미 영국인이십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저택을 저렇게 지켜 주고 있을 리가 없지 않습니까.”
“지켜요? 누가?”
“언제 한번 주의 깊게 주변을 한번 둘러보십시오. 이정현 님에게 다가오는 사람들을 막아서는 사람들이 보이실 테니까요.”
아서의 말을 듣고 나서야 이상함이 좀 해소가 되기는 했다. 근데 이 영감님은 그냥 집사 이런 사람 아니었나? 어떻게 그런 걸 아는 거야?
수상한 점이 한두 군데가 아니었지만, 그냥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기로 했다. 그런 데 신경 쓰면 지는 거다.
“안 그래도 경호원들을 고용하려고 했는데 잘됐네요. 영국에서는 고용할 필요가 없겠네.”
“준비 중인 걸로 알고 있습니다. 자세한 이야기는 알버트 경에게 들으실 수 있을 겁니다.”
돌아다니면서 전혀 위화감을 못 느꼈는데, 내가 둔해서 그런 건가. 주변에 관심을 좀 두어야겠다고 생각할 때쯤 메건이 도착했다.
“잠깐 놀러 갔다 오신다더니 반년이 지나서 오셨네요?”
“원래는 한두 달만 있다가 오려고 했는데,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네요. 잘 지냈어요?”
“이제 곧 졸업이에요. 졸업 공연 때문에 정신없죠. 뭐.”
영국의 학교는 가을인 9월에 시작한다. 학교마다 차이가 있긴 하지만, 겨울 방학이 대략 크리스마스를 낀 2~3주 정도와 부활절 기간 2주 정도. 1년에 방학이라고 부를만한 기간은 여름 방학뿐이다.
“바쁠 텐데 여기에 와도 되는 거예요?”
“졸업 작품은 이미 제출했어요. 공연만 남았죠. 정현 님이 작년에 작업하시는 모습을 보면서 영감을 받아 이런저런 것들을 만들어 두었었거든요.
아무래도 작곡과다 보니 제 작품이 완성되어도, 공연에서 실제로 연주하는 사람들은 연주과 학생들이거든요. 지휘과랑 연주 과에서 실력 좋은 사람을 찾기가 조금 힘들었는데 섭외를 끝내고 지금은 공연 연습을 하고 있어요.”
안 보던 사이에 메건은 수다쟁이가 되어 있었다. 자랑하고 싶었는지 물어보지도 않은 것들에 대한 정보를 잔뜩 늘어놓는다.
졸업 공연에 올 거냐고 물어보는 메건에게 나는 그저 웃음으로 대답해 줄 수밖에 없었다.
대부분의 일정은 내가 결정하지만 그걸 정리해서 말해 주는 크리스가 옆에 없었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악보 그리는 걸 옆에서 보고 좀 배웠으면 해요. 매번 귀찮게 하는 것 같아서.”
“배우시고 나면 저는 더는 불러 주지 않으실 건가요?”
부를 일이 있을까. 귀찮을 텐데 내 일을 도와주겠다고 오는 것도 고맙다.
“심심하면 가끔 놀러 오세요. 그런데 제가 한 번에 배울 수 있을지는 모르겠네요.”
“제가 배워가는 게 더 많거든요. 악보를 그리는 건 규칙에 따라서 그리기만 하면 되니까요. 학교에서는 이론만 배우니까 실제로 작업하시는 걸 지켜보면 저에게도 도움이 많이 돼요.”
그런 건 몰랐네. 다행이다, 내가 일방적으로 도움만 받는 입장이었으면 부를 때 미안했을지도 모르는데.
“이번에는 작업을 다 끝내 둔 거라, 직접 작업하는 걸 보지는 못하실 텐데.”
“그런 건 괜찮아요. 제 작업이 막힐 때마다, 지난번에 촬영해 놓은 정현 님 작업 영상을 보거든요.”
아. 영상이 있다는 걸 이제야 떠올렸다. 별로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겠지.
“그러면 한번 들어 볼까요?”
우리는 잡담을 마치고 작업실로 향했다.
음악이 싫은 음악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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