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musical genius who hates music RAW novel - Chapter 69
068화
[이곳은 영국의 국왕 윌리엄 5세가 왕위에 오른 이후 처음으로 기사 서훈식이 진행될 버킹엄궁입니다.잠시 뒤 이곳에서 이정현 씨에게 기사 작위가 주어지게 되는데요, 작위와 동시에 받게 되는 3급 대영 제국 훈장은 과거 몇 차례 한국인이 받은 기록이 있습니다.
하지만 영국의 기사 작위를 받는 것은 한국 출신의 인물로서는 최초의 기록이 됩니다. 이는 영국과 영연방의 국적을 갖지 않은 사람에게는 작위가 주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번에 그가 받게 되는 대영 제국 훈장에 대한 사유로 기록된 것은 ‘영국 예술에 지대한 공헌’을 하였다고 되어 있습니다만, 전문가들의 의견은 그의 현재까지의 업적보다 앞으로의 업적을 생각하여 주어지는 것이라는 평이 지배적입니다.
이로써….]
한국은 해외에서 태어난 선천적인 복수 국적자, 그리고 외국인과 결혼하여 복수 국적자가 된 사람 외에는 복수 국적을 인정하지 않는 나라다.
그래서 외국의 국적을 획득한 정현은 이제 공식적으로 한국인이 아니게 되었다.
한국계 영국인이 되어 버린 것.
그런데도 한국계 최초로 영국의 기사 작위를 받는 사람이기에 한국의 TV에서 보도되고 있었다.
저녁에 식당에서 밥을 먹다 뉴스를 보게 된 사람들은 당연히 이정현이 기자들에게 시달림을 참지 못해 외국의 국적을 획득했다고 믿었다.
“뭐야, 지난번에 그 기레기들 때문에 진짜 한국 국적 버린 거야?”
“대체 얼마나 시달렸으면 군 문제 해결하자마자 외국으로 가겠냐?”
지금껏 수많은 유명인이 군 문제로 국적을 버리거나 비리에 연루되었었지만, 군 문제를 해결하자마자 국적을 바꾼 사례는 없었다.
그래서 오히려 더 언론이 행패를 부렸기 때문에 이정현이 한국인임을 포기했다는 여론이 지배적이었다.
“괜히 기레기라고 하는 게 아니라니까. 옛날에 있던 사명감 넘치는 진짜 기자들은 이제 없어. 다 인터넷 클릭으로 돈 벌어먹으려는 쓰레기들만 남았지.”
한국의 사람들은 징벌적 손해 배상으로 이미 수많은 언론사들로부터 엄청난 보상을 받았다고 알려진 이정현이지만, 한국의 국적을 버린 것에 대한 부정적인 사람은 거의 없었다.
정현이 외국인이 되었다는 것에 부정적인 의견이 담긴 기사를 내었던 언론사가 몇 있었으나, 이는 많은 사람의 항의로 금방 꼬리를 내릴 수밖에 없었다.
정현이 출국하기 전에 가난한 음악가를 돕고자 수백억 원을 들여 만들었다고 알려진, 비영리 재단이 그를 향한 비난의 방패가 되어 주었기 때문이다.
“가난한 음악가를 돕겠다고 그런 엄청난 돈을 내서 재단을 만든 사람을, 대체 얼마나 괴롭혔으면 나갔겠느냐고요!”
라며 재단의 지원을 받게 된 가난한 음악가들이 앞장서서 변호하였기에, 여론은 정현에게 전보다 더 호의적으로 바뀌었다.
***
“무슨 행사 시간이 두 시간이나 되는 거야. 지루하게.”
훈장을 준다고 해서 런던에 올 때 만들어 준 파란색 제복을 입고 버킹엄궁에 왔더니, 두 시간 동안 곡을 연주하고 연설을 하면서 시간을 끌었다.
훈장이 달린 목걸이를 받고 기사의 충성 서약을 하는 데에는 겨우 20분 남짓의 시간이 걸렸는데, 기다리는 시간이 몇 배는 더 길었던 것 같았다.
행사가 끝나고 버킹엄궁 별관 응접실에서 차를 마시며 윌리엄 5세를 알현하기 위해 조금 더 대기를 해야 했다.
지난 2주간 두 개의 곡을 더 만들어 리처드에게 넘긴 다음에 바로 오게 된 행사였기 때문에, 피곤함이 온몸으로 느껴졌다.
똑똑-
노크에 이어 문을 열고 알버트가 들어왔다.
“오래 기다리게 해서 미안합니다, 이정현 경. 저를 따라오시지요.”
어두운 붉은색의 제복을 입은 알버트는 평소보다 위엄이 넘치는 느낌이었다. 처음 이곳에 왔을 때와 비슷하게 복도를 따라 걷다 근위병이 서 있는 문 앞에 멈춰 섰다.
지난번과 다른 것은 이곳이 침실이 아니라 정무를 보는 곳이라는 것.
“북쪽 에든버러의 왕자이자 랭커스터의 공작이신 알버트 공작과 이정현 경이 드십니다!”
알버트의 이름에 붙는 글자는 과장 조금 붙여서 책 한 페이지만큼 긴데, 내 이름에 붙는 것은 겨우 경(Sir)뿐이었다.
이게 귀족과 기사의 차이인가. 어차피 아무런 혜택은 없다고 하지만 말이야.
방의 안쪽에서 누군가의 손에 열린 문을 통해 안으로 들어가자, 진한 갈색의 커다란 마호가니 책상 앞에 앉은 윌리엄 5세의 얼굴이 보였다.
“오래 기다리게 해서 미안합니다. 일이 좀 밀려 있는 터라.”
“아닙니다, 폐하.”
그의 손짓에 따라 책상 앞에 놓인 소파에 앉았다.
“지난번에 알버트 경을 통해 물어왔던 저택의 판매 여부에 대해 들으러 오셨죠?”
“네, 그렇습니다. 폐하.”
입헌 군주라 정치적으로는 법령 승인 거부권 외에 큰 힘이 없지만, 내 앞에 있는 사람은 진짜 왕이었다.
그래도 말 뒤에 폐하를 붙이는 게 은근히 오글거린다. 중세 시대도 아니고 우주선이 우주에 날아가는 시대에 폐하라니.
“저택은 런던의 거처로 삼아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이번 훈장에 따르는 선물이라 생각하시면 됩니다.”
“감사합니다.”
“그 저택이 왕가의 재산으로 등록되어 거래를 할 수가 없기에 그에 상응하는 금액을 드리게 될 텐데, 한 가지 부탁드릴 것이 있습니다.”
응? 부탁? 이런 건 듣지 못했는데. 왕이 하는 부탁이라….
꿀꺽.
분위기가 조금 이상해져서 나도 모르게 침을 삼켰다.
“영국의 문화 발전을 위해 힘써 주세요. 특히 앞으로 만드는 음악들을 영국의 회사를 통해 발매해 주었으면 합니다. 대중음악이 아닌 교향곡들만이라도.”
생각보다 쉬운 조건이었다.
“당연합니다, 폐하. 이번에 작업하는 음반도 런던 필하모닉과 유니버설 UK를 통해 작업하고 있습니다.”
“좋습니다. 아주 좋아요! 영국의 문화를 융성하게 만드는 것만이 제 시대에 이루어야 할 사명이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정현 경의 음악들은 그 문화의 중추가 될 것입니다.”
내 말에 기분이 좋아져 활짝 웃는 윌리엄 5세를 보면서 나는 조금 양심에 찔렸다.
어차피 내 회사는 영국 회사인 유니버설 UK와 계약되어 있는 상태라, 계약 파기가 되기 전에는 다른 곳을 통해서 유통할 수 없으니까.
계약 조건이 좋아서 파기하고 다른 회사로 옮길 이유가 없기도 하고.
그래도 뭐 이 정도로 1천억을 더 당길 수 있다면야, 감사하게 받아야지. 여전히 팔 수 없는 것은 유감이지만.
그렇게 기분이 좋아진 윌리엄 5세와 이야기를 마치고 알버트와 버킹엄궁을 빠져나오는데 알버트가 입을 열었다.
“왕국을 위해 큰 결정을 내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알버트 경.”
영국을 위한 결정이었다기보다는, 나를 위한 결정이었다. 집을 안 팔았는데 집을 판 만큼의 돈을 준다니 완전 이득이니까.
이게 바로 윈윈이지!
영국 국적의 앨범으로 만들어서 판매하더라도, 손해를 보는 것도 아니고 똑같이 이득이 남는 건데.
나는 속으로 함박웃음을 지으면서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축하드립니다. 이정현 경.”
“아, 네. 감사합니다.”
문을 열고 들어가는데, 집 안에 있는 사람들이 모두 이렇게 축하한다고 한마디씩을 하니 부끄러운 것이 없는데도 부끄러움이 느껴졌다. 기사 작위라는 게 원래 부끄러운 건가.
“축하해. 저기…. 이정현 경.”
“크리스, 너는 제발 그냥 부르던 대로 불러 줘. 너까지 그러니까 이상해.”
항상 붙어 있는 사람이 호칭을 바꾸니까 너무 어색하다.
“휴. 다행이네. 그거 안 붙이면 혼날까 봐 걱정했거든.”
걱정할 게 얼마나 많은데 그런 걸 걱정하니.
“녹음실 공사는 아직 안 끝났나? 왜 전화가 안 오지. 이제 슬슬 LA로 돌아가야 하는데. 저녁이 되면 나한테 전화 걸어 보라고 말해 줄래? 공사 얼마나 됐는지 확인해 봐야겠어.”
“알았어. 돌아가야 하는 일정이 잡히면 말해 줘. 비행기 티켓 예매해야 하니까.”
크리스에게 말을 한 뒤 내 방으로 돌아가 누웠다. 4월 한 달간 나답지 않게 너무 바쁘게 살았더니 피로가 몰려오는 기분이었다.
리메이크 앨범도 스튜디오 버전은 5월 안에 발매할 수 있다고 했고, 초연은 6월에 한다고 했으니 영국에서 할 일은 이제 모두 끝났다.
이제 슬슬 미국으로 넘어가야 하는데 두 달이면 끝난다던 공사가 끝났다는 연락이 오질 않았다.
[연습실은 작업이 끝났는데, 녹음실에 들어갈 장비들이 아직 오질 않아서요. 시간이 한 달 정도 더 걸릴 것 같습니다.]“네, 알겠습니다. 시간은 급한 거 없으니 완벽하게만 해주시고, 마무리되기 전에 저에게 연락해주세요. 연락처는….”
저녁이 되어 전화를 걸자 한 달 정도 공사가 지연될 것 같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녹음실을 당장 써야 할 일도 없으니 급하게 만들 필요도 없지. 지금쯤 미국에 도착했을 유자 말고는 딱히 걱정되는 부분이 없었다.
걱정되는 마음에 전화를 걸어 확인했더니, LA의 한인 타운에서 방까지 알아서 구하고 잘 지내고 있으니 걱정 말고 일들을 마치고 돌아오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생활 반경이 한인 타운이라는 걸 잊고 있었네.
영어 못한다고 걱정한 내가 바보였다.
다음 날부터 알버트 경이 붙여 준 경호원 두 명이 공식적으로 나와 함께 다니게 되었다. 한 명씩 번갈아 가며 12시간씩 밀착 경호를 하게 될 거라고 해서 살짝 부담되기는 했는데, 그래도 이제는 안전에 신경을 써야 할 것 같아서 어쩔 수 없었다.
집에서 벗어날 일이 없었기에 경호원들은 쉬는 시간이 더 많았지만.
그렇게 한 달 가까이 빈둥대다 보니 어느새 리메이크 앨범을 발매할 시간이 왔다.
[내일부터 온라인과 오프라인으로 CD와 스트리밍 음원 판매가 시작됩니다.]“그래요? 녹음은 잘 되었던가요?”
[제 비서인 에디가 오늘 CD를 가져다드릴 겁니다. 직접 확인해 보시는 게 제가 말씀을 드리는 것보다 나을 겁니다. 오늘은 제가 유통사와 만나야 해서 이정현 경과 함께 들어 볼 수 없는 게 너무 아쉽습니다만….]나이도 지긋하신 아저씨가 너무 풀 죽어 있으니까 기분이 이상한데?
“너무 아쉬워하지 마시고, 초연할 때는 같이 가보도록 해요, 마크.”
달래는 듯한 말로 마크와의 전화를 마무리 짓고 점심을 먹을 때쯤 마크의 비서인 에디로부터 CD를 전달받을 수 있었다.
그런데 이 저택에는 프레스턴의 집과는 달리 CD로 된 음반을 들을 수 있는 오디오가 갖춰 있질 않았다.
그렇다고 이제 와서 비싼 하이파이 오디오 시스템을 만들기에는 한 달 뒤에 LA로 떠날 거라는 생각에 손이 가질 않고.
차라리 보름 뒤에 런던 필하모닉이 사우스뱅크 센터에서 보여 줄 초연을 기다리기로 했다.
내일 시작되는 스트리밍으로 들어도 큰 문제는 없겠지만, 밋밋한 소리만 들려 주는 작업실의 모니터 스피커로 듣고 싶지는 않았으니까.
그렇게 보름간의 휴가를 더 얻었다고 생각했다. 일주일 뒤, 크리스가 말을 꺼낼 때까지는.
“저기 인터뷰 요청이 많이 들어오는데, 어떻게 하고 싶어?”
“인터뷰? 갑자기?”
“이번에 발매한 음반에 관해 물어보고 싶은 게 많다고 하는데?”
“아, 리메이크 앨범 때문인가? 인터뷰는 귀찮긴 한데, 부탁받은 게 있어서 거절하기도 애매하네.”
무려 왕이 부탁한 거라. 안 들어줄 수도 없잖아.
음악이 싫은 음악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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