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musical genius who hates music RAW novel - Chapter 7
006화
부르르르르.
“여보세요.”
[응, 나야.]요즘은 발신자 번호가 보이는 게 기본인 세상이다. 누가 걸었는지 어디에서 걸었는지 심지어 앱을 사용하면 모르는 번호까지 발신자를 보여 준다.
하물며 어제 나의 단잠을 방해하려 시도했던 녀석이다. ‘나’가 누구인지는 당연히 알고 있다는 거다.
“안다. 빨리. 용건만. 간단히.”
[엄마가 너 보고 싶다는데, 노트북 들고 와 줄 수 있어?]“랩톱, 랩톱! 노트북은 공책이고!”
[그래, 랩톱. 아무튼 와 줄 수 있어?]일요일 아침부터 아주 그냥 대차게 꼬이는 느낌이다.
***
“안녕하세요.”
내가 돈을 벌기 위해 콩쿠르를 지원할 때 권위가 있는 ‘누군가’의 ‘추천서’를 얻기 위해 수도 없이 방문했던 곳이다.
게다가 한 달 전에도 피자를 먹기 위해 방문했던 곳이다. 나의 행복하고 고요한 주말을 방해받을 만한 일은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어쩔 수 없다.
일반적으로 콩쿠르, 즉 경쟁 대회에 나서는 사람들은 아주 어릴 때부터 그 부문에 목숨을 건 사람들이다.
콩쿠르에서 우승을 하기 위해서는 대략 4~5살부터 악기에 손이 닿아 있어야 한다. 물론 연습도 진짜 미친 듯이 해야 하지.
단, 이 음악 콩쿠르에 관련된 거의 모든 분야에서 예외가 되는 분야가 한 가지 있는데 바로 성악이다.
성악은 일정 이상 재능을 타고나야 하는 것도 있지만, 인간에게는 누구든 찾아오는 변성기라는 것을 지난 후에야 본격적인 훈련이 가능하다.
즉, 어린 시절부터 손끝으로 만지며 연습하는 악기들과는 전혀 다른 메커니즘이라는 거다.
변성기는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라도 찾아온다. 남자와 여자를 가릴 것 없이.
다만, 남자에게 더 강하게 오기 때문에, 우리는 변성기라는 말을 들으면 남성의 목소리 변화만을 떠올리지만, 그게 남자에게만 찾아온다는 소리는 아니다.
그래서 여성도 변성기가 지나갔을 중,고등학교 시절에 성악을 시작하는 경우가 많다.
게다가 이 신이 주신 악기는 다른 물리적인 악기들과는 다르게, 박 터지도록 연습할 수도 없다.
성대라는 것은 가혹하게 다루면 다룰수록 잘 망가지기 때문이다.
야구를 하는 투수에게 어깨가 소모품이라고 말하는 것과 같은 거다. 한번 망가지면 몇 달 동안 회복되기만을 기다려야 한다.
나에게 주어진 이 ‘악기’가 남들이 가진 것보다 좋은 것이라는 걸 알려 준 사람이 바로 이분이다.
말 그대로 실적 같은 건 쥐뿔도 없는 내게 돈을 벌 수 있는 기회를 준 사람.
월세 낼 돈도 없어 나락에 떨어지기 직전까지 갔었던 우리 가족이, 양재동에 집을 사고 단란하게 지내는 것에 대한 은인이라고 할 수 있겠지.
내가 성악 콩쿠르에 나설 수 있었던 것은 크게 대단한 것이 아니다. 대회라는 것은 누구나 도전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지니까.
단지 내가 나가고 싶다고 해서 그냥 받아 줄 리 없는 ‘큰 상금이 걸린’ 국제 대회에 나설 수 있었던 것은 전적으로 이분 덕분이라고 할 수 있다.
은혜와 원수는 갚아야 하는 거라 믿어 왔기 때문에 나는 여기에 왔다.
어머니의 친구, 그리고 내게는 유치원 때부터 함께 붙어 있던 친구의 어머니. 대한민국 최고의 대학교라고 불리는 한국 대학교 교수.
윤주란. 대한민국 최고의 소프라노이자 내 사정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이다.
“안녕~ 우리 정현이 오랜만에 보네? 여기 앉아.”
윤주란 교수가 여유 있는 웃음을 지으며 길게 웨이브진 머리카락 사이로 보이는 안경을 탁자 위에 벗어 놓는다.
주말에 집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옅게 드리워진 화장품의 흔적 사이로 세월이 묻어난다.
손에 쥐어져 있던 나와는 상관없을, 알아볼 수 없는 문서 더미를 탁자 위에 올려놓는다.
이런 과정이 물 흐르듯 자연스러워, 마치 원래부터 계획된 것이 아니었나 싶을 정도다.
나는 살짝 긴장되는 몸을 이끌고 그녀가 가리킨 자리에 가서 얌전히 앉는다.
“무슨 일로 찾으셨나요, 교수님?”
“교수님이라니, 안 하던 짓 해서 거리감 느끼게 하지 말고 하던 대로 아줌마라고 불러.”
우아한 몸짓으로 가사 도우미 아주머니를 불러 나에게 줄 음료수를 부탁하고는, 다시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본다.
음료수가 도착할 때까지 잠시 동안의 정적. 음료수가 도착한 다음에야 한 모금을 마시고 입을 열어 나에게 말을 건넨다.
“그래, 작곡을 시작했다고?”
작곡이라. 그걸 ‘작곡’이라고 부를 수 있나? 나는 그저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머릿속을 뛰어다니는 것들을 끼워 맞춰 꺼내 놓았을 뿐이다.
“아뇨. 작곡 같은 거 아니에요.”
정직하게 말하자. 이 사람은 내가 나의 어머니보다 나라는 사람을 많이 보여 준 사람이다.
우리 집이 가장 어려울 때 별다른 대가 없이 나를 도와준 사람이다. 거짓말을 해서는 안 되는 사람이다.
이 사람은 내가 음악을 싫어한다는 걸 알고 있다.
“수원이 말로는 곡을 만들어서 들려 줬다고 하던데?”
들려 주기는 개뿔. 지가 와서 제멋대로 들었던 거지, 내가 들려 준 것은 아니다.
“제가 그러지 않았을 거라는 거 잘 아시잖아요.”
그나저나 수원이는 어디 있지? 타는 듯한 목에 음료수를 조금 끼얹고 눈을 굴리며 수원이를 찾아보지만, 보이지 않는다.
“수원이는 없어. 지금 여기엔 너랑 나 둘뿐이야.”
수원이가 없다? 내가 이 집에 수도 없이 많이 왔었지만 수원이가 없었던 적은 없다.
그는 어떻게 보면 윤주란 교수와 나 사이의 일종의 완충제 역할을 해 왔다고 볼 수 있으니, 그가 없다는 말에 더 몸이 움츠러드는 느낌이다.
내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은 채로 가만히 있자, 윤주란 교수는 그 특유의 미소를 보이며 나에게 말을 다시 건넨다.
“한번 들어 봐도 될까?”
나는 대답을 하는 대신, 가방에서 랩톱을 꺼내 전원을 올렸다.
큰누나에게 주었던 6곡을 따로 폴더에 빼 두고, 화면을 돌려 윤주란 교수를 향하게 해 둔 뒤에 말을 했다.
“여기요.”
이 집에는 커다란 음악 감상실이 있다. 개인적으로는 영화관에 가깝다고 생각하지만 명칭이 음악 감상실이다.
몇억 원이라고 했던 내 키만 한 스피커가 정면 양옆 구석에 2동. 그 비싼 스피커보다는 조금 싸다고 하는 스피커가 주변을 둘러싼 공간이다.
그리고 3명이 앉을 수 있는 안락한 의자가 방 한가운데 놓여 있는 곳.
윤주란 교수는 내게 함께 음악 감상실에 가서 들어 보자고 했지만, 나는 거절했고 그녀는 랩톱을 들고 그 방으로 혼자 들어갔다.
“후우….”
나도 모르게 나오는 한숨.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로 오랜 시간 동안 봐온 친구의 어머니지만, 근처에 가면 나도 모르게 긴장하게 만드는 무언가가 있다.
게다가 이 집에서는 콩쿠르를 위해 수십 수백 곡을 들어 왔던 기억이 있기 때문에, 의도하지 않았음에도 조건 반사처럼 그 음악들이 머릿속을 채워간다.
얼마나 지났을까?
가사 도우미 아주머니가 가져다준 슈크림과 우유를 마시며 핸드폰으로 웹 소설을 보며 낄낄대는데 윤주란 교수의 목소리가 들렸다.
“뭐가 그렇게 재밌니?”
나는 나쁜 짓을 하다가 들킨 아이처럼 살짝 얼어 버렸다.
“요즘에 읽는 소설이에요. 재밌어요.”
또다시 뿌려지는 정적. 윤 교수는 가사 도우미 아주머니가 가져다준 따듯한 차를 한 모금 마시고 나에게 다시 말을 걸었다.
“아쉽네….”
아쉽다? 뭐가 아쉽다는 걸까? 마음에 들지 않았다는 말인가?
“뭐가… 요?”
다시 한번 차를 한 모금.
“소리가 조금 아쉬워. 진짜 악기였으면 더 듣기 좋았을 텐데 말이야.”
“…저 악기 못 다루는 거 잘 아시잖아요. 다루고 싶지도 않고.”
윤주란 교수가 자세를 고쳐 앉는다. 등을 등받이에 기대고 다리를 살짝 꼬며 말을 이어간다.
“알지. 알아서 더 큰 일이야. 이거 어떻게 할 거야?”
꼴깍.
나도 모르게 침을 삼켰다. 뭘 어떻게 하냐는 말일까? 문제가 있는 건가? 표절인가?
“뭘 어떻게 해요? 아무것도 안 할 거예요.”
표절이면 뭐 어떠냐. 내가 이걸 어디에 발표할 것도 아닌데.
“지숙이는 알아?”
지숙. 김지숙은 울 어머니의 이름이다. 어머니와 대학교 동창이신 윤주란 교수는 어머니를 지숙이라고 불렀다.
“알죠. 아까 누나들이랑 같이 계셨어요.”
잠시 동안의 정적이 흐른다. 윤주란 교수는 뭔가 골똘히 생각하는 듯이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말을 이었다.
“네가 아니라 네 엄마를 보자고 했어야 하는데, 내가 생각을 잘못했나 보다.”
살짝 미소를 짓더니 이내 전화기를 들고 통화를 시작한다.
“응, 나야. 어디긴, 집이지. 네 아들 여기 있어. 후후.”
대략 3분 정도가 지났을 무렵 나는 통화를 엿듣는 몰상식한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아, 접시에 놓인 슈크림에 집중을 하기로 했다. 그 달콤함에 빠져 있을 때쯤 통화가 끝났다.
“지숙이 여기 온대. 같이 저녁 먹고 가. 그리고 수원이 들어오라고 전화 좀 해 줄래?”
그리고 그녀는 어딘지 모를 홀가분함을 띤 채로 일어나 거실에서 벗어났다.
저녁 식사를 하기 전부터 시작되었던 어머니와 윤 교수의 대화는, 내가 없는 곳에서 밤 10시가 되어서야 끝이 났다.
어머니는 대화를 마친 뒤 나에게 다가와 물었다.
“현이 너, 네가 만든 곡들 팔려고 만든 거야?”
당연히 팔려고 곡을 만든 것은 아니다.
“아니, 내가 무슨 음악가도 아니고 팔려고 곡을 만들어요. 그런 거 아니에요.”
어머니는 뭔가 심각한 느낌으로 고개를 살짝 숙이며 말이 없어졌다. 조금 전 보다 약간 심각해진 듯한 분위기. 그리고 다시 윤 교수와 대화를 몇 마디 했다.
결론이 난 건지 아닌 건지는 모르겠지만, 이번에는 윤 교수가 나에게 와서 물었다.
“정현아, 여기 있는 곡들 아줌마한테 팔래?”
“예? 팔긴 뭘 팔아요. 마음에 드는 거 있으면 가져가세요.”
진심이었다. 적어도 은혜 갚은 까치처럼 머리를 커다란 종에 부딪혀 가며 줄 수는 없지만, 이 정도야 기꺼이 줄 수 있다.
“얘가, 얘가. 그러면 안 되는 거야. 큰누나랑도 계약서 썼잖아. 주란 아줌마하고도 계약서를 써야지.”
“아! 아퍼! 우리 엄마 맞아?”
어머니는 내 등을 찰싹찰싹 때려가며 말을 했다. 나보고 사기당하기 딱 좋을 것 같다며 혀를 차는 것은 덤.
그런 마음으로 오늘 아침에 모녀가 사기를 쳤나 보다.
큰누나와도 곡 한 곡당 두 장씩 계약서를 썼다. 여섯곡이었으니 총 열 두장의 계약서에 사인을 해야 했다.
이게 지적 저작권과 협회에 올라가는 작곡가 정보 때문에 뭉뚱그려서 ‘무슨 무슨 곡 외 5곡’ 이렇게 표시를 할 수가 없다고 했던가.
구체적인 정보가 담겨 있어야 한다고 했다. 절차를 잘 모르지만 그래도 총 몇 곡 이렇게 계약을 할 수 있다면 좋을 텐데 말이지.
사인 몇 번 더 하는 건 어려운 일은 아니지만, 계약서의 내용을 확인하는 게 너무 귀찮다.
이걸 누가 확인해 주는 사람이 따로 있었으면 좋겠다. 사인도 대신해 주면 좋겠지만 그건 안 되겠지.
그나저나 생활력 빵점이었던 우리 어머니가 계약서 같은 민감한 것에 반응을 하는 걸 보면 우리 엄마가 맞나 싶다. 암흑기에 보험 외판원이 되었던 것이 나의 어머니를 이렇게 바꿔 놓은 듯했다.
윤주란 교수는 깔깔대며 웃기 시작했고, 우리 어머니의 얼굴은 빨개졌다.
“둘이 화요일에 학교에 한 번 와. 노트북 갖고.”
‘랩톱이라구요! 노트북이라고 하면 공책이랑 헷갈리잖아요.’라고 속으로만 말했다. 윤 교수는 나에게 아직 큰 사람이니까.
“네….”
화요일에는 과외를 못 하겠구나. 미리 전화를 해야겠다.
음악이 싫은 음악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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