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musical genius who hates music RAW novel - Chapter 70
069화
인터뷰를 하기로 한 날짜는 런던 필하모닉의 초연 날이었다. 적어도 한 번은 들어 보고 나서 인터뷰에 나서야 할 것 같았기 때문에.
그렇게 잠시간의 휴가를 보내고 오게 된 초연일의 사우스 뱅크 센터 콘서트홀.
“사람이 많이 없네.”
“오늘은 이상하네, 사람 많은 거 싫어하면서.”
나에게 말을 걸며 가까이 다가온 크리스는 클래식 공연장에 어울리는 보라색에 가까운 원피스를 입고 내 옆에 서 있었다.
어깨에는 크림색의 숄을 둘렀고, 항상 부스스해서 묶고 다니던 머리카락도 단정하게 정리한 상태. 단화만 고집하던 발에는 하이힐을 신고 있었다.
“사람이 많은 장소는 항상 혼란스럽거든. 그나저나 오늘 평소랑 아주 다르네? 평소에도 그렇게 입지 그래? 잘 어울리는데.”
“…클래식 콘서트에 오려면 옷을 정중하게 입어야 한다고 해서….”
정중한 옷을 입어야 한다는 크리스의 말과는 다르게 나의 복장은 격식 없는 편이었다. 흰색 V넥 티셔츠에 회색 재킷을 입고, 진한 카키색의 치노 바지를 입었다.
이것도 나름 인터뷰를 한다고 해서 차려입은 편이었다.
교향악단의 공연을 보러 오는 관중들은 대부분 정장을 입는다. 문제는 공연을 온전히 즐기기에는 복장이 엄청 불편하다는 것.
아이돌 콘서트장이면 몸을 쉴 새 없이 움직일 수 있겠지만, 클래식 콘서트는 의자에 몸을 고정해야 하고 움직일 수 있는 것은 박수를 때밖에 없기 때문이다.
옷도 불편한데 몸도 움직일 수 없다. 그렇지만 대부분의 관객은 그것을 감수하고 연주를 듣기 위해 공연장을 방문한다.
사실 어떤 공연이건 아무 복장이나 입고 가도 상관없다. 콘서트홀이 복장을 규제하는 곳은 아니니까.
그런데 이걸 대체 누가 만든 불편함이냐고 묻는다면, 클래식이 대중문화의 중심이던 중세 시대부터 이어져 오는 쓸데없는 전통이라고 답할 수 있겠다.
옷 잘 입는 상류층이 즐기는 문화가 클래식이었고, 그들의 옷이 정장이었던 것뿐이니까.
아이돌 공연에 아이돌 굿즈로 나온 옷을 입고 가는 것 같은 거랄까. 애니메이션 보러 가면서 애니메이션 캐릭터의 옷을 입는 느낌과 비슷하다.
“복장이 지정된 것도 아닌데….”
“그래도 클래식이라고 하면 이렇게 입어야 할 것 같단 말이야….”
“…그래, 잘 어울리니까 됐네.”
대부분 보통의 서양인들은 동양인들과 다르게 꾸미는 데 큰 관심을 두지 않는다. 특별한 날이 아니면 화장도 하지 않을 정도니까.
그래서 K팝 붐이 일어났을 때, 한국식 메이크업이 유행한 적이 있었다. 꾸민 듯 안 꾸민 듯 한다고 했던가.
어렸을 때 봤던 한국의 직장인들은 버스 안에서도 화장하던데, 그런 것을 생각해 보면 서양과 동양은 정말 많이 다른 것 같다.
공연장에 들어가 초대석에 지정된 자리를 찾아 앉았더니 옆에 부담되는 사람들이 있었다. 바로 알버트와 그의 손녀 메건.
둘을 최근에 워낙 자주 봤기에 가볍게 인사를 하고 무대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옆에서 들려 오는 말소리까지 듣지 않을 수는 없었다.
“할아버지, 이정현 경이 이번에 만드신 곡은 지금까지의 음악과는 달라요. 얼마나 듣기 편안한데요.”
“하하하. 메건 이 할애비가 음악에 대해 뭘 알겠느냐. 그저 듣는 것뿐이지.”
그래, 다르다고 느낄 수도 있지. 내가 세상에 꺼내놓았던 많지 않은 곡 중에 교향곡이라는 딱지가 붙은 음악은 한결같이 무거운 분위기였었으니까.
오보에의 소리가 홀 안에 울려 퍼지며 악단의 연주자들이 악기의 튜닝을 시작한다.
이것만 보면 어디의 어떤 교향악단이라도 연주를 시작하기 전까지는 항상 똑같은 느낌이라니까.
그들이 연주하는 곡이 밝건 어둡건 그런 것과는 상관없는 일종의 루틴.
어릴 때부터 수도 없이 많이 봐 온 특별할 거 없는 교향악단의 모습이 눈앞에 보인다.
정장을 입고 이들이 연주하는 곡을 듣기 위해 이곳에 오는 다른 사람들과 다를 바 없는, 오랫동안 이어져 온 전형적인 교향악단의 모습이다. 클래식이라는 것을 사람으로 표현한다면 딱 이 모습이 아닐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무대의 옆에서 리처드가 지휘봉을 들고 등장했다.
온갖 악기들의 소리와 대화하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한순간에 잦아들고, 무대 위에 집중되는 시선이 느껴진다.
무대 위의 시간이 멈춰 버린 듯 정적에 잠기고 무대 위에 앉은 연주자들의 눈은 리처드의 손에 쥐어진 지휘봉을 향하는 그 순간.
가장 먼저 구석에 있어야 하는 악기 소리가 장내로 퍼져 갔다.
디링, 디리리링~
하프의 가벼운 소리를 첼로의 선율이 덮어 간다.
언제 시작되었는지 느끼지도 못한 바이올린과 비올라의 멜로디가 모래사장에 남기는 발자국들처럼, 한 걸음씩 걸어 흔적을 남기듯 그 위를 걸어간다.
그렇게 무대에서 퍼져나오는 선율은 콘서트홀 안에 자리 잡은 사람들을 노을이 번지는 바닷가로 안내했다.
음악소리는 어느 순간 멀리서 들려 오는 파도 소리가 되어 들려 온다.
발이 파이는 모래사장을 걸으며 그 파도가 밀려오는 바닷물이 발을 덮쳐오는 평화로운 순간.
“하아….”
그 순간을 맞이할 때 한숨을 얕게 내뱉는 소리가 주변에서 들려왔다.
긴장이 풀리며 온몸에 힘이 빠지는 것이 느껴진다.
그리고 영원할 것 같은 평화로운 멜로디가 귀에서 떠나가는 그 순간이 찾아왔다.
리처드가 손을 멈추고 뒤를 돌아 관객석을 향해 인사를 하고 나서야 음악이 끝났다는 것을 알아챈 사람들의 박수 소리가 홀을 채웠다.
사람들이 뒤늦게 손뼉을 치는 그때 크리스가 내게 말했다.
“이 곡 너무 좋다…. 해지는 산타모니카에서 바다를 바라보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야.”
“맞아. 그 풍경을 생각하며 만든 거니까.”
“자주 갔었지.”
“응.”
파티하는 집들만 아니었어도 조금 더 오래 바라볼 수 있는 풍경이었을 거라는 아쉬움에 만든 음악이었다.
매번 그 평화로움을 맞이하기 직전에 평화를 깨뜨리는 파티 음악이 들려 와서 오래 볼 수 없는 풍경이었으니까.
내가 이번에 만든 곡들은 모두 ‘듣고 싶고 보고 싶은 풍경’들을 생각하며 만들었다.
리처드가 다시 교향악단을 향해 돌아서며 다음 곡을 연주하기 위해 두 손을 들어 올리자, 끝나지 않을 것 같던 박수 소리가 잦아들었다.
그리고 오늘의 두 번째 곡이 들려 왔다.
***
만족스러웠다. 확실히 런던 필하모닉의 실력이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의 교향악단이 했던 연주를 들었을 때는 내가 생각하던 소리와 조금 다른 소리를 들려 주던 부분도 있었으니까.
공연이 끝나고 알버트와 함께 리처드를 방문해 감사 인사를 한 다음, 인터뷰 장소에 도착할 때까지 만족감에 취해 있었다.
“안녕하세요, 이정현 경. 이렇게 뵙게 되어서 영광입니다. 오늘의 인터뷰를 하게 된 클레어 번즈라고 합니다.”
“안녕하세요. 이정현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인터뷰를 하는 곳은 영국의 지역 방송국을 통해 송출되는 민영 TV 방송국인 iTV.
“1주일 전에 클래식 앨범을 발매하셨는데요, 사람들의 반응이 아주 좋은 것 같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짧게 대답을 하자 기대하던 것보다 더 짧아서 당황한 기색이 보여서 조금 더 늘여 대답하기로 했다.
“제가 발매한 두 번째 교향곡 앨범입니다. 첫 번째 앨범의 곡을 조금 다듬어서 이번 앨범에 넣은 리메이크곡, 그리고 이번에 새로 만든 세 곡을 비교하며 들으신다면 아마 큰 차이점을 발견할 수 있을 거로 생각합니다. 그 부분을 즐겨 주셨으면 좋겠네요.”
“사실 그 차이점 때문에 전문가들의 말이 많았었는데요, 과거에 만드셨던 음악들보다 중후함이 적어져 음악이 가볍게 느껴졌다는 전문가들의 평이 있습니다. 이것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전문가들이 누구인지 모르겠는데, 아주 눈이 정확하구먼.
“의도적으로 가볍게 만들었다고 생각하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들어 보셨다면 알 수 있겠지만, 음악들의 주제가 힐링이거든요.”
“의도적으로 가볍게 만드셨다는 거군요. 제 개인적으로는 굉장히 좋았다고 생각합니다. 항상 클래식이라는 음악을 들을 때는 딱딱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거든요.”
클레어는 굉장히 원활하게 진행하는 편이었다. 발음도 좋아서 알아듣기 편했기에 인터뷰를 하겠다고 큰마음을 먹고 왔음에도 편안하게 마칠 수 있었다.
“그러면 마지막으로 저희 iTV를 보고 계시는 시청자분들에게 한마디 해 주시겠습니까?”
“iTV 시청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이정현입니다. 이번에 제가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느꼈던 감정들을 담아 음악을 만들었습니다. 편안한 마음으로 즐겨 주세요. 감사합니다.”
반짝거리던 카메라의 빨간 불빛이 꺼지자, 인터뷰어인 클레어 번즈가 의자에서 일어나 다가오며 말했다.
“이정현 경, 인터뷰에 응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원래 인터뷰를 하지 않으신다고 들어서 긴장을 많이 했는데, 전혀 긴장할 필요가 없었네요.”
“별말씀을요. 만나서 반가웠어요, 미스 번즈.”
영국에서의 공식 일정은 이렇게 마무리가 되었다. 영국을 떠나기 전에 이곳에서 사용할 건물을 알아보고 다시 LA로 가야지.
***
정현은 미국에 넘어가기 전 런던 외곽의 서튼(Sutton)에서 회사로 사용할 건물들을 보러 다니느라 전혀 알지 못했지만, 부정적인 의견을 담은 글들이 인터넷에 공개되고 있었다.
정현에 대한 부정적인 견해가 담긴 칼럼이 올라오기 시작한 것은, 인터뷰를 하고 일주일이 지나지 않았을 무렵.
거짓말로 비난하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주장을 담고 있는 ‘칼럼’의 형식을 보였지만, 그 칼럼들이 담고 있는 주장은 명확했다.
이정현이 만든 새로운 곡에서는 ‘과거에 보여 주던 압도적인 재능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
이러한 주장을 하는 곳은 클래식의 본고장이라는 말을 하는 독일이나 오스트리아가 아니었다.
아시아의 클래식 선진국이라는 말을 듣는 일본도 아닌, 한국만큼 클래식의 변방이라는 평가를 받는 중국이라는 점이 조금은 특이한 점이라 할 수 있었다.
오히려 모차르트가 만들었던 아기자기한 곡인 작은 별 변주곡을 이야기하며, 정현을 의심조차 하지 않는 유럽과는 확연히 다른 주장을 펼쳤다.
중국은 자신들만의 논리로 이정현보다 자국의 젊은 음악가가 더 대단하다고 주장하고 있었다.
그리고 자국의 음악가들이 최근 국제 콩쿠르에서 상위권에 입상한 기록들로 자신들의 주장을 뒷받침하려 했다.
“피아노의 건반을 처음 눌렀을 때부터 이정현의 등을 보며 달려 온 기분이지만, 지금 내 앞에는 그의 등이 보이질 않네요. 그를 보면 내가 기억하는 것과 같은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예요. 지금 그는 전혀 빛나지 않아요.”
그렇게 중국의 언론이 지핀 모닥불에 화약을 넣어 터뜨린 사람은 바로 2033년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피아노 부문 우승자인 창샤오위였다.
음악이 싫은 음악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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