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musical genius who hates music RAW novel - Chapter 71
070화
“그가 남긴 기록이 전설처럼 남아있지만, 이제는 시간이 너무 지나서 큰 의미가 없지 않을까요? 제가 한때 정말 존경했던 사람이지만 전설은 전설일 뿐인 거죠.”
창샤오위는 자신감에 찬 목소리로 자신을 둘러싼 기자들을 향해 말했다. 그럴 만도 한 것이 그녀는 17세의 어린 나이에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를 우승했기 때문이다.
정현이 우승했던 만 16세보다 한 살이 많았지만, 충분히 피아니스트로서의 미래가 보장되어 있다고 볼 법한 나이. 클래식계에는 20대 후반이 될 때까지도 콩쿠르의 우승을 노리는 참가자들이 숱하게 널려 있었으니까.
국제 콩쿠르에서 가장 이름값이 높은 쇼팽, 차이코프스키 그리고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이름값 높은 국제 콩쿠르 중에서는 쇼팽 콩쿠르처럼 성악 부문이 없는 국제 콩쿠르가 몇 곳 있었다. 성악은 타고난 재능이 연습량보다 크다고 여겨지는 거의 유일한 부문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악기의 왕이라 여겨지는 피아노 부문은 없는 곳이 없었기에, 이 콩쿠르들을 모두 휩쓸어 버린다면 정현보다 더 많은 우승 기록이 남게 되는 것. 중국의 클래식계 인사들이 샤오위에게 기대하는 것은 바로 그것이었다.
그래서 그들이 클래식과 대중음악 모두에서 초신성이라고 불리는 이정현에게 맞춰 중국에서 붙인 창샤오위의 별명은 작은 별이라는 의미가 있는 샤오싱싱.
지금까지 중국 내에서 거론되는 정현에 대한 부정적인 기사들은, 중국이 아닌 다른 나라에서는 아예 신경조차 쓰지 않았다. 클래식계에서 중국을 보는 시선은 그리 곱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자신들만의 기준으로 국제 콩쿠르를 열어, 우승하는 사람들은 한결같이 자국민. 외국인들은 순위권에 넣어주지도 않았기에 참가하는 사람도 없어, 국제 대회라는 이름이 붙었어도 이제는 중국인 외에 참가자가 없었다.
그런데도 그들이 외국의 대회에 참가해 우승하는 일은 몇 번 있었기에 중국은 더 다른 나라에서 소외당하고 있었다.
그러나 창샤오위의 발언은 클래식을 대표하는 국제 대회 중의 하나인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를 우승한 뒤에 하는 말이기에, 영향력이 없을 수가 없었다.
평소처럼 그들만의 헛소리라고 치부하기엔 샤오위의 실력은 보잘것없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더는 클래식의 초신성이라 불리던 때의 이정현이 아닙니다. 제가 그보다 더 많은 우승 기록을 남기도록 하겠습니다!”
물론 성악계의 전설과 피아노계의 신인, 누구도 깰 수 없는 기록으로 남을 거라고 하는 전설의 인물과 이번에 처음 상을 받은 인물의 인지도는 태양계와 안드로메다 정도로 거리가 멀었다.
그런데 갑자기 벨기에에 나타난 피아노계의 작은 별은 현재 음악계에서 가장 빛나는 초신성을 자신이 넘어서겠다고 말하고 있었다.
중국 언론들의 이정현을 향한 부정적인 평가를 무기 삼아서.
***
런던 남부 서튼의 상가 지역을 돌아보며 쓸 만한 곳을 찾아보고 있는데, 갑자기 귀가 간지러웠다.
“귀가 간지럽네. 누가 내 욕을 하나?”
“어디 봐 봐, 벌레 같은 거 들어간 거 아냐?”
이 한국식 영어를 이해하지 못한 영국 처자 크리스는 귀에 벌레가 들어간 것 아니냐며 호들갑을 떨었다.
내가 누군가가 나에 관해 이야기를 하고 있을 때 한국에서 쓰는 표현이라고 하자, 영국의 문화에서는 ‘내 귀가 불타오르고 있어(My ears are burning)’가 비슷한 의미로 쓸 수 있다 말해 주었다. 이렇게 일상에서도 여전히 배울 수 있는 말들이 많다.
영어를 학교에서 배우지 않고 그냥 대화로 배워서 그런 것 같았다.
평소랑 다를 것 없는 하루라고 생각했다. 적당히 부동산을 돌아다니며, 매물로 나와 있는 건물이나 임대하는 곳을 찾는 시간.
어쩌다 보니 서튼역 언덕배기까지 와 버려서 일행들과 자판기에서 음료수를 꺼내 먹고 있는데, 마크에게 전화가 걸려 왔다.
“무슨 일이세요?”
[중국 측 언론들이 이정현 경에 대한 부정적인 기사들을 유포하고 있습니다.]중국은 내가 어릴 때부터 그랬다. 자신들이 입상도 하지 못한 대회에서 내가 우승을 할 때마다, 소국이 어쩌고저쩌고. 그렇게 소국보다 나은 대국이라면서 내가 나선 국제 콩쿠르에서 내 위에 선 사람은 없었다. 항상 말만 앞섰지.
“걔네는 항상 그래요. 신경 쓰지 마세요. 무시하는 게 답 이에요.”
그들이 하는 말에 기분이 나빠져서 대응하면 더욱 난리를 친다. 마치 지나가는 들개에게 눈이 마주치면 달려드는 것처럼. 그냥 신경 쓰지 않는 것이 답이다.
말이 통하는 사람에게 말을 하는 법이다. 말이 통하지 않는 짐승에게는 먹이도 주어서는 안 되지.
[지금까지도 그래왔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이번에는 조금 다른 것 같습니다. 창샤오위라고 들어보셨습니까? 이번 퀸 엘리자베스 피아노 부문 우승자인데 이정현 경을 저격하는 발언을 했습니다.]“영어로 된 이름도 기억하지 못하는데, 중국어 이름을 어떻게 알겠어요. 신경 쓰지 마시고 그냥 무시하세요.”
[그래도 저희가 어떻게 무시를 하겠습니까. 이정현 경은 영국을 대표하는 음악가신데요.]“그러면 이렇게 하죠.”
마크가 너무 신경을 쓰는 것 같아서, 그들이 한마디도 대꾸하지 못할 답변을 해 주었다.
자존심이 엄청나게 상할 만한 답변을 내가 한 공식 발언이라 전해 달라 했다. 아마도 직접 전달하지 않고 잡지나 신문에 실리게 되겠지만.
‘나보다 더 많은 우승을 하지 못했으면 나에 대해 발언할 자격이 없다. 일단 내가 우승한 곳에서 모두 우승한 다음에 말을 하라. 아니면 최소한 쇼팽 콩쿠르를 우승하면 대답은 해 주겠다.’라고.
나에게 그런 말을 하고 싶었으면 퀸 엘리자베스가 아니라 쇼팽 콩쿠르를 우승하고 왔어야지. 내가 죽었다가 깨어나도 우승할 수 없는 곳이 거기인데.
쇼팽 콩쿠르의 정확한 명칭은 ‘쇼팽 국제 피아노 콩쿠르’이다. 피아니스트만 뽑는 대회니까 내가 나가서 우승할 수 있을 리가 없지.
거의 모든 콩쿠르에서 피아노 부문에 상을 주지만, 아무리 누가 뭐라고 하더라도 쇼팽 콩쿠르가 피아노에서는 가장 권위가 있었다.
긴 역사를 가진 이 쇼팽 콩쿠르를 우승했던 유일한 중국인이 있었는데, 우승에 취했는지 이후로는 제대로 연습도 안 하고 완전히 망가져 버렸었다. 오케스트라 협연도 망치며 공개 사과까지 해야 했지.
그가 망가져 가는 모습을 실시간으로 보이며, 클래식계에서 중국인에 대한 평은 바닥으로 떨어졌다. 불성실의 대명사라고 할까.
이후 쇼팽 콩쿠르에서 중국인들이 상위권에 입상하는 일은 없었다. 아마도 괘씸죄 같은 거 아닐까? 쇼팽 콩쿠르의 권위를 상하게 했다는.
전화를 끊고 캔에 남아 있던 콜라를 모두 마셨다. 재활용품 쓰레기통에 찌그러진 빈 캔을 넣고 뒤를 돌아서는데, 크리스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말을 걸었다.
“무슨 일이야? 누가 뭐라고 했대?”
“누가 대회 하나 우승하고 나를 저격해서 말한 게 있나 봐. 자기가 뭐라도 된 줄 알았나 본데?”
비웃음을 섞어 대답했다. 정말 퀸 엘리자베스 하나 우승했다고 뭐라도 되는 줄 알았던 걸까? 아닐 것 같은데. 원래 겁이 많은 개가 크게 짖게 마련이거든.
그렇게 내 안에서 중국에 대한 일은 잊혔다.
***
크리스가 하도 난리를 쳐서 회사의 이름을 LJH 뮤직 컴퍼니로 바꾸고 LA로 돌아온 지 3개월. 내리쬐는 햇살이 8월의 산타모니카를 비추고 있었다.
“헉, 헉. 진짜 에어컨 만든 사람은 상 줘야 돼.”
LA의 날씨는 30도가 넘지 않았지만, 최근에 목수 일을 할 때와 비교해서 살이 쪘다. 운동량이 적기 때문이겠지. 그래서 사무실에 스핀 바이크를 가져다 타고 있었다.
사무실에 놓인 에어컨을 틀고 한참 동안을 달리며 운동을 한다.
문제는 이곳의 음식들이다. 죄다 튀기고 볶은 음식들이라 기름기가 많아서 살이 찐단 말이지.
회사가 커졌다. 런던에 3층짜리, LA에는 5층짜리 건물. 사람들도 늘었다. 지금은 일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내가 없어도 너무 잘 돌아갈 것 같았다.
이런 거라면 내가 자리를 조금 비워도 상관없지 않을까 싶어 전문 경영인을 고용하고 여행이나 다니려 했다.
하지만 다들 회사의 상징이 나라고 말을 해서, CEO의 자리에 앉을 수밖에 없었다. 운영 실무는 다른 사람들이 하고 나는 최종적인 결정만 하는 편이지만.
벌컥.
“앗! 에어컨 틀지 말라니까! 땀을 흘려야 운동이 되는데 온도를 낮추면 어떻게 해!”
“…헉, 헉. 안 틀면…. 헉, 헉. 너무 덥단 말이야….”
“더워지라고 하는 거라고.”
시어머니 같은 크리스가 들어와서 에어컨을 껐다. 예전에는 노크하는 척이라도 하더니 이제는 노크도 하지 않는다. 이럴 거면 문은 왜 달아 놨어!
“오늘 A & R 팀이랑 사운드 엔지니어 면접 봐야 하는 거 알지? 그리고 한국의 유지현 씨 방문해서 유통 계약할 거고, 오후에는 에릭 앨범 제작 컨셉 회의. 마지막으로 아이돌 그룹명 정해 줘야 해.”
편하게 살고 싶어서 사람들을 고용했는데 일이 오히려 늘었다.
아침 아홉 시에 사무실에 있는 운동 기구에 앉아 있는 것도 기가 막히는데, 하루의 일정이 모두 짜여 있다. 도망도 갈 수 없는 것이 이 회사 사장이 나거든. 직원이면 도망갈 수 있을 텐데.
회사가 유명해지면서 면접을 보겠다고 보내온 서류가 너무 많아 하루에 쓱싹 볼 수 있는 그런 면접이 아니었다. 광고를 올리고 석 달 동안 진행한 서류 전형을 통과한 사람들만이 오늘 면접 장소에 올 수 있었는데, 그 숫자만 백 명이 넘었다.
삐비비빗-
드디어 기다리던 알람이 울려 스핀 바이크에서 내려올 수 있었다.
30분 동안 자전거를 타느라 힘이 빠져 후들거리는 다리를 잡고 크리스에게 물었다.
“헉, 헉…. 면접을 내가 꼭…. 헉, 헉…. 들어가야 해?”
“리. 다른 직원들 면접은 그렇게 말해서 나랑 다른 사람이 뽑았지만, A & R이랑 사운드 엔지니어는 리의 옆에서 일할 사람들이야. 면접에 들어갈 사람이 리 말고는 없어. 지금 우리 회사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음악 하는 사람들이 아니잖아.”
경영, 회계와 경비. 회사 운영에 급하게 필요한 사람들만 뽑은 상태였다. 그 이유는 단 한 가지. A & R 팀과 사운드 엔지니어 지원자가 너무 많았다. 그들의 면접 서류로 1차 합격자를 거르는 데 두 달이나 걸릴 만큼.
뽑는 인원은 열 명인데 지원자가 수만 명.
A & R 팀은 의미 그대로 아티스트 앤 레퍼토리. 작곡하는 곳이 아니라, 아티스트와 음반의 기획을 하는 곳이다.
작곡이 가능한 사람을 뽑으려 했던 것은 아니었는데, 지원자 중에 자작곡을 보낸 작곡자가 90퍼센트가 넘었다. 왜지? 작곡자는 따로 뽑으려 했는데.
“여기 오늘 면접 볼 사람들 서류 놓고 갈 테니까, 한번 훑어보고 면접장에 올 때 가져와야 해. 알았지?”
크리스는 책상 위에 거대한 서류 뭉치를 두고 사장실에서 등을 돌려 밖으로 나갔다. 저걸 언제 다 보냐.
그래도 한 번은 봐야 한다. 이번 한 번만 같이 일할 사람들이라면 싫어도 그냥 눈 딱 감고 넘어갈 수 있겠지만, 고용해 버리면 쉽게 자르기가 어려워지니까.
사전보다 더 두꺼워 보이는 이력서 더미를 보며 나도 모르게 한숨이 나올 것 같았다. 항상 서류 작업은 모두 크리스가 해 주었었는데, 이 서류 작업도 이미 수만 명의 몫을 보고 난 다음에 나에게 넘겨주는 것일 테니까.
이력서의 뭉치를 반쯤 훑어보고 반쯤 남았을 때 어디선가 들어 보았던 이름이 보였다.
“어? 얘는 왜 여기 왜 있지?”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인물이 입사 지원서를 넣었다.
음악이 싫은 음악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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