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musical genius who hates music RAW novel - Chapter 74
073화
아이돌은 일반적인 가수와는 다른 포지션에 있다. 그저 노래를 잘하는 음악을 잘 아는 아티스트와는 다르다.
노래와 춤 그리고 비주얼을 파는 종합 선물 세트 같은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그런데,
“시에스타가 그룹명이라고?”
*(Siesta : 스페인어로 낮잠.)
“네! 낮잠처럼 달콤하게 다가간다는 뜻을 담았어요!”
어질어질하다.
‘향신료 같은 여자들(스파이스 걸스)’, ‘운명의 아이들(데스티니스 차일드)’ 같은 강한 그룹명을 가졌던 서구권 걸 그룹 계보에서 낮잠이 등장했다.
전통적으로 서양의 걸 그룹은 한국처럼 아기자기한 여자아이들을 모아 놓은 것이 아닌 센 언니들의 모임이다.
아이라인을 짙게 하고 붉은 립스틱에 가죽 재킷을 입은 모습이랄까. 여차하면 리터급 바이크도 탈 수 있는 느낌이 드는.
한국의 아이돌처럼 하늘하늘한 옷을 단체로 맞춰 입는 아이돌은 인기가 없다.
그래서 센 언니 스타일의 K팝 그룹이 서양권에 진출했던 경우도 있었지만, 하늘하늘한 경우에는 크게 인기를 끌지 못했다.
이쪽 사람들은 청순가련보다는 섹시 여전사 아이돌을 좋아하는 편이거든.
그런데 그런 곳에서 시에스타라는 이름이 먹히려나? 나는 내가 더 좋은 이름을 생각할 수 없으니 그냥 떠넘기려고 했는데 먹힐지 안 먹힐지 판단이 서질 않았다.
내가 생각한 그룹명은 기껏해야 허니 비즈(Honey Bees : 꿀벌들) 정도였으니까.
“너희 내가 첫 곡으로 생각하는 게 정열적인 라틴 팝 음악이라고 말했었지?”
“그래서 스페인어로 팀 이름을 정한 거예요!”
아주 장하다. 내 말을 듣고 스페인어로 팀명을 정하다니. 그건 또 생각 못 했네. 그런데 의미는 생각을 안 한 거니?
그때 회의실의 문을 열고 A & R 팀 나머지 아홉 명이 들어왔다. 나는 그들을 자리에 앉히고 그들에게 물었다.
“지금 이 자리에 앉은 아이들이 이번에 우리 회사에서 준비 중인 여자 아이돌 그룹입니다. 그룹명을 시에스타로 하고 싶다는데 다른 의견 있으신 분?”
입사한 지 얼마 안 되어서 그런가? 다들 패기 없이 우물쭈물하는 느낌이 들었다.
“여기에서 정해진 이름이 향후 수십 년 동안 쓰이게 될 겁니다. 이름은 신중하게 골라야 해요. 그러니까 다들 의견을 말해 보세요.”
그렇게 말하고 나서야 사람들이 웅성대며 신중하게 고민하는 느낌을 주었다.
이번이 첫 회사인 사람도 있지만 이 중에 반은 원래 음악을 하던 사람들이라 사회성이 조금 부족했기 때문에, 의견을 모으는 데 쉽지 않았다.
“저는 시에스타라는 이름의 발음이 ‘스타’로 끝나기 때문에 나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장기적으로도 괜찮을 것 같고요.”
“저도 괜찮을 것 같아요.”
“의미가 썩 좋지는 않지만, 발음상으로는 괜찮다는 것에 동의합니다.”
그룹명에는 대체로 우호적인 반응이었다.
네이밍 센스가 전혀 없는 내가 판단하는 것은 무리라는 생각이 들어, 사람들을 불러 확인한 건데 생각보다 반응이 나쁘지 않았다.
내가 예전에 유튜브 채널 이름을 만들 때를 생각해 보면, 신이 나에게는 이름을 짓는 능력을 빼앗은 것이 틀림없으니까.
“좋아요. 그러면 팀 이름은 시에스타로 합시다. 지금 제가 생각하고 있는 첫 번째 싱글은 라틴 음악인데 이에 대해 홍보 방향을 정하는 게, A & R 팀의 첫 번째 업무가 될 것 같습니다.”
팀 이름이 확정되었다. 이름 다음에 정해야 하는 것은 안무. 곡도 안 나왔는데 무슨 안무냐 라고 할 사람도 있겠지만, 안무를 할 사람을 구하는 것은 생각보다 오래 걸린다.
미리 구하려고 하지 않으면 구하기가 어렵다는 소리다.
물론 지금까지 함께 안무를 연습해 온 시간이 있겠지만, 노래에 맞춰서 안무를 짜는 것은 별개의 문제니까.
“여름이 다 끝나가는데 라틴곡이 인기를 얻을 수 있을까요? 지금 준비를 시작하더라도 두 달은 걸릴 텐데요.”
두 달 뒤면 10월. 더위가 끝나고 가을이 시작될 무렵이다. 일반적으로 라틴곡에 대한 이미지는 여름에 가깝기 때문에 타당한 의견이라고 생각했다.
한 명이 입을 열자 다른 사람들이 모두 의견을 말하기 시작했다.
“그러면 한 곡을 더 준비하죠. 크리스마스 시즌을 바라보고 캐럴 곡도 하나 만들어 보는 건 어떻게 생각해요?”
“캐럴 곡은 인지도 비중이 큽니다. 알려진 사람이 부르는 것이 알려지지 않은 사람이 부르는 것과는 완전히 다릅니다. 아직 데뷔도 하지 않은 걸 그룹이 캐럴을 부르는 것은 조금 무리수가 아닐까 싶습니다.”
“맞아요. 캐럴보다는 차라리 겨울을 바라본 따듯한 러브송을 준비하는 것이 더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호오. 나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는데, 모든 게 알아서 진행되고 있었다. 이게 바로 브레인스토밍인가. 내가 던져 준 것은 그룹명뿐인데 알아서 잘 굴러가는 것 같았다.
테이블에 앉아서 보고 있으려니 다양한 생각을 들을 수가 있어서 재밌었다. 살짝 팝콘이 필요한 기분이랄까.
분위기가 너무 달아올라서 싸움이 날 것 같은 분위기가 되었을 때쯤 내가 끼어들었다.
“지금 곡도 나오지 않은 상황이에요.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일은 생각하지 마시고, 첫 곡을 나왔을 때 홍보를 위해서 장르를 알려 드린 거니까 그것만 생각해 주세요. 라틴계통 안무가 섭외해 주시고.”
““네, 알겠습니다.“”
아직 성과가 나온 상황이 아니라서 다들 욕심이 앞선 것 같은 느낌이야. 적당히 해야지 탐욕스럽게 모두 손댈 수는 없다고.
장기적으로는 열 명의 인원을 다섯 명씩 두 팀으로 나눌 생각이지만, 아직은 다들 일에 적응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래서 지금은 하나의 일에 모두 투입했지만, 이번 걸 그룹의 싱글 활동을 하는 동안에 에릭의 정규 앨범을 준비할 생각이라 아직까지는 시간이 많았다.
“앞으로 회의실은 자유롭게 이용해 주시고, 지금 A & R 팀의 팀장이 있나요?”
“부사장님 말로는 사장님이 팀장이라고 하시던데요.”
“아, 내가 직접 이끌 거라고는 했지만 그게 팀장이라는 소리는 아닙니다. 당장은 에릭의 매니저인 마리 시미아노비츠 씨가 임시로 팀장을 맡도록 하겠습니다. 지시하는 일을 잘 따라주시길 바랄게요.”
나는 회의실을 나가면서 이 자리에 없던 마리를 호출해 팀장을 맡겼다.
지금은 이렇게 주먹구구식으로 일을 할 수밖에 없는 체계가 전혀 잡히지 않은 상태이지만, 아마 한두 차례 앨범 발매와 활동이 휩쓸고 지나가면 자신들이 해야 할 일들을 잘 알게 되겠지.
홍보나 여러 가지 것들은 저들에게 맡기고, 나는 이제 음악을 만들자.
회의실의 문을 닫고 바로 옆에 있는 사장실로 들어갔다. 사장실이라고 해도 비서실이 딸린 그런 커다란 대기업의 사장실이 아니라 그냥 보통의 사무실이지만.
방안에 놓인 것은 운동 기구 몇 개와 컴퓨터가 얹어진 책상뿐이다. 전혀 특별할 것 없는 곳.
만약 크게 욕심을 냈다면 더욱 화려한 인테리어를 갖고 회사를 꾸릴 수도 있을 만큼의 돈을 벌었다. 그런데 크기만 키운다고 회사가 잘 돌아가는 것은 아니니까.
지난번에 다즈니 사건에서도 보았듯이 처음에는 그저 단순한 욕심에서 시작된 일이 한 번 두 번 반복되면서, 시가 총액 순위권에 있는 회사를 한 방에 침몰시킬 수도 있는 게 이 바닥이다.
결국 음악을 만들어 아티스트의 이미지를 덧씌워 파는 것. 그게 음악 회사가 해야 하는 일이다.
그러니까 내가 이 의자에 앉아서 해야 하는 일도 음악을 만드는 일인 거지.
그래서 나는 자리에 앉아 평소에 하던 대로 눈을 감았다.
띠리링~ 띠리링~ 딩딩~ 띠리링~
도입부에서는 클린 톤의 플라멩코 기타로 시작해서 가볍게 네 명을 뒤에서 따라가며 헌팅을 하는 남자가 등장.
조금 더 빠르게. 빠르고 정열적으로.
빨라지는 기타 음에 맞춰 눈앞에 떠오르는 뜨거운 태양 아래 길을 걸어가는 네 명의 모습.
길거리에서 이들에게 헌팅을 시도하는 남자를 거절하며 음악이 이어진다.
탕탕탕, 탕탕, 탕탕탕~
거절당한 남자를 바라보는 주위의 비웃듯이 사람들이 손으로 두드리는 테이블.
테이블을 두드리는 높낮이가 없는 플라멩코의 리듬으로 베이스를 잡아 주고 라틴 기타로 멜로디를 시작한다.
통통통, 통통, 통통통~
치키치키, 치키치키, 치키치키~
콩가 드럼 특유의 통통 튀는 소리와 멕시코 전통 악기 마라카스의 소리로 테이블 두드리는 소리를 이어가며 리듬을 타주고 이 위에 기타 소리를 흘려내면 중간 부분은 된 것 같은데….
중간중간 플라멩코의 리듬을 타주는 건 괜찮은데 여기에 캐스터네츠까지 하면 너무 과할 것 같으니 박수로 대체하자.
클라이맥스의 기타 소리가 조금 고민이 되었다. 시작을 클린 톤으로 했으니 클린 톤으로 이어갈지 아니면 정통파 라틴이 아니니까 텔레캐스터의 앵앵대는 소리가 나으려나.
이건 기타리스트에게 물어봐야겠다. 일단 우리 회사에 텔레캐스터가 없는 것 같거든.
나는 전화를 들어 리카르도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번 곡은 리카르도와 함께 만들겠다고 생각했으니까.
[네, 사장님.]“연습실에 있니?”
[아뇨, 지금은 유 선생님과 밖에 나와서 아이스크림 먹고 있어요.]“그래. 그러면 아이스크림 다 먹고 들어오면서 내 것도 사다 줄래? 초콜릿 아이스크림으로.”
[네. 알겠습니다.]이제 연습실을 작업실로 꾸밀 시간이다. 내가 작업하는 것에는 랩톱 한 대만 필요하지만, 여러 명이 작업하려면 모니터 스피커는 필요하다.
나는 창고에 있는 여분의 모니터 스피커를 들고 연습실로 향했다.
아이스크림이 배달 오기 전에 먼저 세팅을 하고 작업을 할 수 있게 만들어 놓아야 하니까.
연습실에 준비되어 있는 신시사이저에 랩톱을 연결하고 모니터 스피커도 연결했다.
땀이 운동할 때만큼 흘러내릴 때쯤, 아이스크림을 든 리카르도와 유자가 등장했다.
“사장님, 이거 드세요.”
“너 여기서 운동했냐? 와. 땀 냄새….”
연습실이나 녹음실은 기본적으로 방음 처리되어 있기 때문에, 환기가 그리 좋지 못하다. 보통은 공기 청정기를 설치하는 편인데 아직 나는 공기 청정기를 준비하질 못해서 그런지 방 안에 땀 냄새가 남을 수밖에 없었다.
“고맙다. 역시 리카르도밖에 없네. 운동은 무슨 운동이야. 노래 만들려고 장비 갖고 온 거지.”
“일단 환기부터 시키자.”
“모니터 스피커가 좀 무거워야지. 너도 한번 날라 봐라. 운동 된다.”
스피커는 기본적으로 무겁고 커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어서, 대부분 내가 가진 것은 무거운 스피커니까.
작업실의 문을 열고 환기를 좀 시키면서 아이스크림을 먹는데, 열린 문으로 안젤리나가 들어왔다.
“곧 음악 작업 시작하신다는 이야기 듣고 왔어요.”
“아직 안 하는데, 아이스크림 먹을래요?”
“괜찮습니다. 유당불내증이 있어서 우유 들어간 건 잘 못 먹거든요.”
다행이다. 내가 먹을 것도 부족한데 남에게 줄 수는 없지. 세상에는 은근히 우유 못 먹는 사람이 많아.
다 먹은 아이스크림 포장을 치우고 본격적인 작업을 시작하기로 했다.
“일단 내가 기본 베이스는 구상해 왔어. 이걸 일단 만들어서 들어 보고 이야기하자.”
머릿속에서 들리는 대로 마우스로 하나 둘씩 찍고 신시사이저로 연결음을 만들어 준다.
기본 리듬은 129 BPM으로 조금 빠르게 가고 박자는 정박으로 떨어지다가 중간에 플라멩코 분위기로 바뀌는 훅 파트에서는 65 BPM으로.
사용할 악기들을 최대한 줄여서 심플하게. 원하는 악기들의 가상 악기가 별로 없어서 가진 것들로 표현하느라 제대로 된 소리는 아니지만, 대충 어느 정도는 만들어졌다 싶었을 때 고개를 들었다.
“어우, 목 아파.”
목덜미를 부여잡고 목을 스트레칭하기 위해 조금씩 돌리는데 갑자기 느껴지는 시선들.
아, 오늘은 혼자 작업하는 게 아니었지.
“어때, 잘 봤어? 난 이런 식으로 하면 될 것 같은데? 너희들 생각은 어때?”
““…….“”
“왜 다들 말이 없어?”
“이게…. 어떻게 한 번에 돼요?”
안젤리나가 물었다.
“만들면서 생각하는 게 아니고, 생각한 걸 만드는 거니까요. 그러면 한 번에 나오던데? 아, 참. 유자 너 텔레캐스터 있냐?”
“…….”
“야! 유자!”
“어, 어?”
“텔레캐스터 있냐고.”
“없어. 그거 쓸 일이 별로 없어서 돈 없을 때 팔았어. 프로그레시브 락하는 사람들이나 쓰지, 나처럼 세션 뛰는 사람들은 특별히 요구하는 악기 아니면 안 사잖아.”
“그거나 사러 가자. 내 생각에는 그게 있어야 이 노래 완성될 것 같아.”
간만에 플렉스 하러 가야지. 그거 말고도 필요한 게 좀 있으니까.
벌었던 돈을 쓰러 간다는 것 때문인지 내 마음은 조금 들뜨기 시작했다.
음악이 싫은 음악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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