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musical genius who hates music RAW novel - Chapter 75
074화
악기점에서 ‘여기부터 저기까지 모두 주세요’를 시전해도 금전적으로 부족하지는 않았지만, 회사 안에 악기를 보관할 공간이 부족하다.
그렇다고 더 큰 건물을 사려면 아예 땅을 사서 직접 지어야 하니까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고.
“고르는 거 귀찮은데. 어차피 나중에는 다 쓸 것 같다고.”
한 번이라도 들어 본 악기여야 머릿속에 떠오른다는 것을 경험상 알고 있었다.
그래서 내가 악기들을 둘러보며 한마디 하자, 옆에서 유자가 태클을 걸었다.
“뭐야, 텔레캐스터 사러 왔다고 하더니 다른 악기도 갖고 싶은 거야?”
“소리가 다 다르잖아. 애초에 플라멩코 기타도 사야 한단 말이지.”
악기는 비슷하게 생겼어도 소리가 모두 다르다. 적당히 가공해서 비슷한 소리로 만들 수는 있지만, 쉬운 길을 두고 어려운 길로 가는 건 비효율적이니까.
스트라토캐스터의 픽업을 개조하면 텔레캐스터의 소리를 낼 수 있다.
그런데 그 소리를 내기 위해서 기타 뒤판을 뜯어내어 픽업을 교체하는 시간을 감당하는 것은 솔직히 비효율적이다.
그래서 가격이 비싸도 새로운 악기를 사는 거다. 어차피 개조해서 똑같이 소리를 내는 시간을 들이는 것보다 사서 쓰는 게 결국에는 훨씬 싸게 먹히니까.
악기점을 방문해서 이것저것 살펴보다 결국에는 두 개의 기타만 들고나왔다. 콩가 같은 건 전문가를 불러서 연주를 해야 하니 내가 미리 사 놓는 게 의미가 없을 테니.
회사로 돌아와서 인터넷으로 마라카스를 주문했다.
어렸을 때, 영화 을 보았던 기억에는 주인공이 사람들과 마라카스를 흔들면서 줄줄이 춤추던 장면이 일상적으로 표현이 되었다.
그래서 미국이라면 여기저기에서 다 팔 것 같았지만, 동네에서 파는 것들은 모두 조악한 품질이라 연주보다는 아기들이 갖고 노는 장난감 같은 가벼운 소리를 내었기 때문이다.
어찌 되었건 오늘은 일단 기타의 녹음부터 시작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것을 위해 기타를 사 왔으니.
4층에 있는 1호 녹음실 엔지니어 룸의 콘솔 앞에 앉아서, 토크 백 마이크로 유자에게 먼저 주문을 했다. 내 옆에 있는 엔지니어는 이번에 고용된 스티브.
스티브는 원래 사운드 엔지니어를 하던 사람이 아니라, 유니버설 스튜디오에서 마스터링을 하던 사람이었기에 밸런스를 굉장히 중요시했다.
“오케이, 보스. 준비됐어.”
디지털 악기로 만들어진 음원을 먼저 콘솔에 연결된 컴퓨터에 옮기는 것이 완료되었다. 이제 해야 하는 것은 녹음실에서 녹음하는 것뿐.
“유자, 네가 기준을 잡아 줘야 해. 속주 같은 것도 없이 코드만 반복되어서 재미없기는 하겠지만 너무 기교를 넣지는 말라고. 알았지?”
[오케이. 그러면 세컨드 기타 역할을 해 주지.]유자가 녹음실 안에서 대답했다.
세컨드 기타가 기준이 된다는 것은 사실 말이 안 되는 주문이기는 하다. 퍼스트 기타가 실력으로 우위에 있는 것이 일반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타 솔로잉을 맡겨도 테크닉은 유자가 훨씬 뛰어날 거라고 생각을 하면서도 그에게 맡긴 것은, 라틴 특유의 리듬감이나 멜로디 그리고 애드리브는 한국인의 정서와 맞지 않는 부분이 있기 때문이었다.
그 부분은 워낙 타고나야 하는 부분이 있기 때문에, 연습을 아무리 하더라도 티가 날 수밖에 없다. 티가 나면 사람들에게 가짜라는 소리를 들을 수도 있겠지.
그래서 한국의 재즈나 블루스 아티스트들은 해외에서 대접을 제대로 받지 못한다. 그들과 비슷한 환경에서 자라지 않았기 때문에.
반대로 그들도 한국인의 국악을 평생 이해하지는 못할 거다. 따라 하라고 하더라도 비슷하게는 할 수 있겠지만 어딘지 모르게 이상하다고 느낄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번의 메인 멜로디는 리카르도에게 맡기기 위해서 라틴계 음악을 택한 것이기도 하기에, 유자에게 세컨드 기타를 맡아 달라고 했다.
아직은 완벽하지 않은 전자 드럼 소리에 이끌려 기타 소리가 따라 나온다. 정확하게 박자를 맞춰 가는 유자의 기타 음은 깔끔함의 극치를 보여 주었다.
키이잉~ 팅팅~
먼지가 풀풀 날리던 동아리방에서 누군가가 버린 소파 위에 앉아 치던 기타 입문자가, 이렇게 베테랑 기타 세션이 되어 녹음실에 앉아 있는 걸 상상이나 했을까?
함께 낙원상가의 온 상점들을 뒤져가며 조금이라도 싼 기타를 찾아다니던 날. 결국 몇 시간이나 걸려 다른 곳보다 1, 2만 원 싼 중고 스트라토캐스터를 찾아내고, 상가 건물 앞에 있던 2천 원짜리 시래기 해장국을 사 주며 같이 와 줘서 고맙다고 말했던 것을 나는 아직 기억한다.
그 기억을 떠올리며 더 열심히 굴려야겠다는 마음을 먹을 수 있었다. 내 황금 같은 시간을 국밥으로 퉁치려던 놈이니까.
“좋아 이번에는 됐고. 비슷한 느낌으로 한 번 더 가 보자.”
토크 백 마이크의 버튼을 내리자 옆에 있던 스티브가 말을 걸었다.
“이번에 괜찮지 않았어? 원본하고 비슷한 느낌인 것 같던데?”
응 아니야. 아직 모자라. 녹음된 건 나도 만족스럽지만 저놈은 더 굴려야 한다.
“지금 녹음된 건 일단 저장해 두자고, 몇 번 더 녹음하면 조금 더 괜찮은 느낌이 나올 수 있으니까.”
웃으면서 스티브에게 대답해 주자 그는 알았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대여섯 번 정도 녹음을 반복하면서 내가 원하던 느낌과 비슷한 결과물이 나왔다. 이 정도면 멜로디를 받쳐 줄 배킹이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괜찮게 녹음이 되었다고 생각할 무렵 나는 또 다른 주문을 했다.
“좋아. 내가 원하는 방향하고 가깝게 나왔어. 그러면 이번에는 네가 생각한 대로 쳐 봐. 조금 전에 했던 것처럼 내가 만든 걸 따라 하려고 하지 말고.”
[오키도키~!]그렇게 기타 노예 1호기를 열심히 굴려 주었다. 나중에 더 굴려 줘야지. 연봉도 비싼 놈이니까.
“좋아. 이번에는 리카르도. 유자랑 교대하자. 아까 사 온 플라멩코 기타랑 텔레캐스터 들고 들어가.”
“예!”
“어깨에 힘 빼고. 너무 잘하려고 하는 것 같아. 잘하려고 하지 말고, 내가 항상 하는 말 있지?”
“즐기라고요?”
“그래, 즐겨. 즐겁게 해야 해. 악기에 네 감정이 묻어나온다고.”
긴장하면 긴장이 묻어나오고 즐거우면 즐거운 감정이 묻어나오는 것이 악기다. 수준이 높은 연주가일수록 연기자 뺨치는 연기력이 필요한 것이 악기 연주라고 할 수 있지.
내가 연기를 해 본 적도 없고 연주를 해 본 적도 없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녹음실 안으로 리카르도가 들어가고 본격적인 녹음이 시작되었다.
***
“지금 필요한 게 녹음에서는 콩가 연주자예요. 콩가 연주자는 뉴욕 쪽에 많이 거주하니까 그쪽에서 찾아보세요. 콩가만 녹음이 완료되면 그다음에는 보컬 녹음에 들어가죠.”
연주공연이 LA에 비해 조금 더 보편화한 곳은 뉴욕. 브로드웨이에서는 뮤지컬이나 연극만 공연하는 것이 아니라 음악 공연을 위한 라이브 클럽도 수두룩하게 존재했기에, 실력이 좋은 재즈 혹은 블루스 연주가들은 뉴욕에 살고 있었다.
“사장님, 안무가는 어떻게 할까요?”
“안무가는 한국에서 섭외하죠. 그쪽이 아이돌 군무는 최고라고 생각하거든요. 안무가가 도착하기 전까지는 보컬 레슨을 받게 해 주세요.”
A & R 팀의 누군가가 내게 이렇게 물었을 때, 네 명을 내가 데려가서 데뷔시키겠다고 말했을 때가 떠올랐다.
나는 마크가 네 명을 맡긴다고 했을 때, 한국의 아이돌처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다.
한국처럼 아기자기하고 예쁘장한 아이돌 그룹을 만들고 싶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칼군무를 추면서 라이브를 할 수 있는 실력파 아이돌.
아이돌 그룹 문화를 가장 잘 만든 나라는 한국이다. 이건 뭐 내가 한국인이라서가 아니라, 이미 증명이 된 거니까.
그렇지만 한국의 아이돌 시스템을 그대로 해외로 가져가면 성공할 수 있느냐고 한다면 그건 아니다. 이쪽 사정에 맞게 조금은 가공을 해야 한다.
다들 각자의 문화와 환경이 다르기 때문이다. 받아들이는 것이 다르기에 이쪽에서 다가가기 쉬운 형태로 만들어 주어야 한다.
내가 한국식 아이돌과 접합된 완성체를 떠올리고 있을 때, 마리가 사람들을 닦달하기 시작했다.
“공개까지 얼마 남지 않았어요. 뮤직 비디오 촬영 일정은 나왔나요?”
“네, 9월 10일부터 촬영 들어갑니다.”
“그러면 쇼케이스를 뮤직 비디오 완성 일에 맞춰서 해 주세요. 날짜는 영상 스튜디오 쪽에 문의해 주시고.”
이제 이 시에스타가 데뷔하기 전에 내가 할 일은 거의 끝났다. 나머지는 내 눈앞에 있는 사람들이 대신해 주겠지.
“그럼 수고들 하세요.”
나는 시장통처럼 바쁜 움직임을 보이는 2층 A & R 팀의 사무실에서 빠져나왔다.
***
혼돈의 도가니탕의 한가운데 같았던 준비 기간이 지나가고 쇼케이스가 열리는 날이 되어, 매니저 팀과 A & R 팀까지 모조리 함께 쇼케이스를 라스베이거스까지 함께 보러 왔다.
“무대에 올라가는 것이 긴장은 되겠지만 틀려도 괜찮아. 마음을 편하게 먹고, 사람들의 시선을 즐겨. 알았지?”
““네!“”
제이드가 리더가 된 시에스타는 평소에 네 명이 워낙에 친하게 지내서인지 불화 같은 것이 없었다.
내가 생각하는 수준까지 올라오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다른 사람들이 괜찮다고 했으니까 괜찮지 않을까 하는 마음.
이 과정에서 내가 ‘이 정도 수준으로 될까?’라고 했다가 ‘사장님은 너무 완벽주의자예요’라는 말을 들었다. 나처럼 대충 사는 사람이 세상에 어디 있다고 그런 말을 하는 건지 이해가 되질 않아.
어찌 되었건, 급한 불은 껐다.
“마리. 지난번에 보니까 A & R 팀을 정말 잘 이끄는 것 같던데, 그쪽으로 전향할 생각은 없어요?”
무대 옆에서 팔짱을 끼며 지켜보던 마리에게 나는 매니저 말고 다른 것을 하고 싶지는 않냐고 물었다.
“저는 현장이 좋아요. 현장의 열기나 그런 것들을 보면 힘이 나거든요. 그래서 매니저를 하는 겁니다. 의자에 앉아서 이런 것들을 준비하기만 한다면 아마 금세 질려 버릴 거에요.”
워낙 사람들을 적재적소에 효율적으로 부리길래 사람들을 부리는 걸 더 좋아하지 않을까 싶었는데, 전혀 의외의 대답이 돌아왔다.
역시 사람은 겉모습만으로 판단할 수는 없는 것 같아. 겉모습만 보면 정말 커리어우먼인데, 내면에는 엄청난 열정이 숨어 있었나 보다.
“알겠어요. 사람은 하고 싶은 걸 하고 살아야 하니까. 그러면 A & R 팀을 두 개로 나눠 주고 각 팀의 팀장들을 따로 뽑아 주세요. 그건 가능하겠죠?”
“알겠습니다. 에릭은 제가 계속 맡는 거죠?”
“네, 에릭도 곧 정규 앨범을 내야 하니까, 바쁠 거예요.”
[둥둥둥둥-]“아! 시작하나 봐요.”
악기 소리가 들리며 준비해 두었던 네 명의 소개 영상이 시작되자 마리는 무대로 고개를 돌렸다.
[레이디스 앤 젠틀맨! 소개합니다!]영상이 지나가고 사회자의 멘트와 함께 시에스타 멤버들이 무대 위로 올라왔다. 이런 한국식의 쇼케이스를 이곳에서 처음으로 시도하는 건데 잘 먹힐까? 조금 긴장이 되기 시작했다.
최초라는 것에 큰 욕심이 없음에도 이쪽에서는 생소할 한국식 아이돌 쇼케이스를 하기로 한 것부터가, 지금 내가 가고 있는 길이 이쪽에서는 아무도 밟아 본 적이 없는 길이니까.
[4인조 걸 그룹 시에스타입니다!]긴장을 했는지 아직 시에스타가 모습을 보이고 있지도 않은 무대를 바라보며 나도 모르게 침을 삼켰다.
음악이 싫은 음악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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