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musical genius who hates music RAW novel - Chapter 77
076화
울프 TV는 서바이벌 경연 프로그램을 많이 만드는 곳 중에 하나다.
내가 최근 1년 사이에 빌보드 상단에 위치하는 음악을 여러 곡 만들었기에, 여기에 심사 위원으로 나를 부른다는 것도 충분히 괜찮은 이유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딱 한 가지. 이곳이 다즈니의 자회사라는 게 마음에 걸렸다. 내가 바로 작년에 다즈니 주식을 반 토막 내 버린 범인이니까.
솔직히 그렇잖아. ‘도둑이 제 발 저린다’고, 내가 한 일에 대한 보복이 들어올 수도 있으니까. 내가 거기에서 무언가를 훔쳐 간 것은 하나도 없지만.
옛날 영화의 명대사가 떠오른다.
“모히토에서 몰디브 한 잔….”
“뭐라고 하셨나요?”
“엇? 흠흠….”
뻘쭘하게 누가 듣고 있는 줄은 몰랐네. 아무리 한국어로 말했어도 모히토랑 몰디브는 알아들었을 텐데…. 살짝 부끄러워졌다.
고개를 돌려 말소리가 들린 곳을 바라보니 마리가 와 있었다.
“무슨 일이신가요, 마리? 제가 부른 기억은 없는 것 같은데.”
“내일부터 공연 참가 일정 때문에 한동안 오지 못할 것 같아서 지금까지 있었던 것들을 보고하러 왔습니다.”
“언제 돌아오는 거죠?”
“2개월 후, 크리스마스 시즌 전으로 예상합니다. 한 곡뿐이라서 월드 투어를 할 수는 없겠지만 유럽에서 수요가 많은 편이라서요.”
뭐야, 이거. 곡을 더 내놓으라고 돌려 말하는 건가. 한 곡에 뭔가 강세가 높은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이 기세를 이어가기 위해서는 2개월 후에 신곡을 바로 발표할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내 느낌이 맞았구먼. 왜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는지….
“우리 새로운 작곡가들 뽑기로 하지 않았었나요?”
“지난번에 A & R 팀 지원자 중에 작곡 경험자가 많다고 따로 뽑지 말자고 하신 것은 대표님이었습니다만?”
아, 안 돼! 과거의 나! 대체 무슨 짓을 저지른 거지? 일거리를 넘기다니.
“그, 그래요. 그러면 A & R 팀 인원 중에 쓸 만한 작곡가는 있는 것 같던가요?”
“잘 모르겠습니다. 만든 음악을 들어 본 것은 이력서와 함께 이메일로 왔었던 음원들뿐이라서요.”
“일단, 지금부터는 외부 음원 수집도 해 달라고 해 주세요. 다음 곡을 확정 짓는 건 유럽에서 돌아오기 전에는 끝내 놓을게요.”
하나를 끝내서 이제는 좀 놀러 다닐까 싶었는데 이렇게 또 발목이 잡혀 버리네.
그렇게 마리를 내보내고 한숨을 돌리게 되어 창밖에 펼쳐지는 LA 시내를 바라보고 있었다.
벌컥-
“리, 안에 있어?”
“험험, 회사입니다. 크리스틴 부장.”
“아, 네 대표님. 울프에서 답변이 왔는데요.”
“그래? 울프에서는 뭐래?”
“내일 담당자가 직접 방문해서 설명해 주겠대. 일단 다즈니와 관계가 있는 건 아닌 것 같아.”
“다행이네. 솔직히 나 미국 와서 다즈니랜드도 가 보질 못했잖아. 오자마자 그런 일이 터져서….”
“나도 가 보고 싶다, 다즈니랜드.”
우리는 내일 방문한다는 담당자에 대한 생각은 뒤로한 채, 난데없이 다즈니랜드에 대한 환상으로 이야기꽃을 피웠다.
둘 다 이야기만 들어 보고 가 보질 못해서 환상에 과장이 좀 많이 섞이기는 했지만, 그래도 언젠가는 가 보겠다고 웃으며 이야기할 수 있었다.
***
“안녕하십니까, 저는 울프 엔터테인먼트 최고 경영자인 찰스 콜리어라고 합니다. 만나 뵙게 되어서 반갑습니다.”
“아, 예. 안녕하세요. 저는 이정현입니다.”
담당자라고 해서 PD가 올 줄 알았더니, 느닷없이 사장급이 와 버렸다. 옆에는 비서 한 명만 데리고 온 걸 보면 이 사람이 모든 것을 결정하는 건가.
“저희가 이번에 30년간 전통을 이어오던 아메리칸 아이돌의 종영을 앞두고, 새로운 프로그램을 런칭하는 자리에 이정현 님을 모시고 싶어서 이렇게 찾아왔습니다.”
“그게 벌써 30년이나 되었었나요?”
“인기가 많은 프로그램이었으니까요. 게다가 아마추어들의 등용문으로도 이용되던 곳이었기에 저희도 종영하는 것에 대해 아쉬움이 많습니다.”
그냥 30년이 되었다는 것에 벌써 그렇게 되었나 싶었는데, 이렇게 말을 많이 하는 것을 보니 은근히 아쉬운 점이 많았나 보다.
“클래식 연주자 서바이벌 프로그램으로 모티브를 바꾸신다고 들었습니다.”
“우리 회사 내부에서는 아메리칸 아이돌을 이어가느냐 아니면, 새로운 프로그램을 런칭하느냐로 여전히 이야기가 많습니다. 하지만 어느 쪽이 되더라도 이정현 님은 섭외 1순위이십니다. 두 분야에서 모두 활약하고 계시니까 말이죠.”
“아시겠지만, 제가 다즈니와 그렇게 사이가 좋은 편이 안 됩니다. 그래서 조금 걱정이 되는 면이 있어요.”
“물론 그것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비즈니스는 비즈니스죠. 감정적으로 처리할 수 없는 문제 아닐까요? 특히 저희 울프 엔터테인먼트의 경우에는 다즈니의 직접적인 경영 간섭은 이루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그저 대주주인 정도죠.”
비즈니스. 그 단어로 모든 게 풀릴 수 있는 건가? 모회사에 꽤 큰 타격을 입혔는데 말이지.
“그리고 다즈니 내부에서도 이정현 님을 원망하기보다는 조엘 뮬러에게 책임을 묻는 쪽이 더 많은 편입니다. 그런 점은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다행이네요. 만약에 제가 나가게 된다면 어떤 일을 하게 되는 건가요?”
“심사 위원과 멘토 두 가지를 담당하게 되실 텐데, 사실 아주 어렵지는 않으실 거라고 생각합니다.
심사 위원도 그저 생각하시는 대로 점수를 주거나 통과를 시키시면 되고, 멘토의 경우에는 정해진 회차가 될 때까지 다른 이들을 가르쳐 주시면 되거든요.”
찰스는 상당히 말이 많은 남자였다. 30년간이나 이어오던 장수 프로그램을 끝내고, 새로 시작하는 프로그램에 대한 성공 여부에 무언가가 걸려 있는 건가?
굉장히 의욕적으로 설명을 하는 모습이 마치 신입 PD가 입봉하는 것 같은 느낌을 주었다.
“제가 누구를 가르치는 건 잘 못 하는 편입니다만…. 어쨌거나 참가하게 된다면 언제부터, 어디에서 촬영하게 되나요?”
“촬영은 LA에서 있는 저희 울프 플라자 스튜디오에서 한 달 정도 뒤부터 진행하게 되고 촬영팀 한 팀 따라붙게 됩니다. 아마 이 방에도 촬영용 카메라가 설치되겠죠. 울프 플라자는 여기에서 멀리 떨어져 있지 않습니다. LA 시내를 통해서 오면 약 30분 정도일까요.”
“제가 이 방에서 따로 하는 일이 없어서 그건 좀 제외해 주셨으면 좋겠네요. 이 방에서는 거의 쉬거나 서류 작업 정도밖에 하질 않거든요.”
“전달해 두겠습니다. 그러면 참가 의사가 있으신가요?”
“네. 사생활을 촬영하지 않는다면 괜찮을 것 같습니다.”
이 방에서 내가 빈둥대고 의자에 앉아서 멍때리는 모습을 촬영하지 않는다면 괜찮다. 그리고 집까지 따라오지 않는다면 촬영하는 것도 큰 무리가 없을 거로 생각했다.
“그러면 서류와 계약서를 들고 재방문하도록 하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조심히 들어가세요.”
그렇게 정신없이 말이 많았던 울프 엔터테인먼트의 경영자인 찰스를 보내고 나서 생각이 났다.
“아, 젠장. 마리가 두 달 뒤까지 신곡 준비해 달라고 했는데….”
하나를 끝내서 여유가 생겼다고 생각했는데 다시 여유가 없어져 버렸다.
요즘에 계속 정신없이 바쁘기만 한 것 같은데 이상하다. 내 삶의 모토는 그냥 잘 먹고 잘사는 것뿐이었는데.
***
“만나서 반갑습니다. 이번 프로그램의 프로듀서를 맡은 캐서린 도벡입니다.”
“이정현입니다.”
이번에는 사장이 아니라 프로그램의 프로듀서가 방문했다. 사장이 방문하는 게 이상한 거지.
“프로그램의 티저와 포스터 촬영이 있는데 저희 스튜디오에 잠깐 방문해 주시겠어요?”
“언제 방문하면 되나요?”
“아무 때나 편하실 때 미리 연락하고 방문해 주시면 됩니다. 부담 갖지 않으셔도 돼요. 사진 몇 장 찍고 광고용 영상 몇 분짜리 만드는 거니까요.”
“그러면 지금 방문해도 되나요? 지금 한가한데.”
“그러면 제가 돌아갈 때 같이 가시죠. 촬영이 끝나면 모셔다드리겠습니다.”
캐서린이 내민 계약서에 사인을 하고 울프 플라자에 방문을 했다.
어제 사장이 하던 말로는 울프 플라자가 30분 정도의 거리라고 했지만, 시내를 통과하면서 교통 체증에 막혀 한 시간이나 걸려 도착했다.
“자, 여기 보시고요. 하나, 둘.”
펑-
“다시 한번 갈게요. 턱을 살짝 내리시고 눈은 카메라를 향해서. 하이.”
펑-
눈앞에서 터지는 카메라 플래시를 참 오랜만에 느끼니 어질어질하다. 눈앞에 하얀색 잔상이 남아 있었다.
다음으로 이동한 곳은 영상을 촬영하는 스튜디오였다. 아무래도 영화도 촬영하는 회사다 보니 배경을 리얼하게 잘 만들긴 하네.
“얼굴에 약간 여유 있는 미소만 지어 주세요. 눈동자는 카메라를 직접적으로 바라보시고. 갑니다.”
“네.”
“대답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다시, 액션!”
대본도 대사도 없는데 액션을 외친다. 자세를 잡아 준 대로 팔짱을 끼고 여유 있는 표정을 지으며 카메라를 바라보자 제멋대로 액션을 외친다.
카메라를 든 남자들이 내 주변을 둘러싸고 움직이며 촬영하는 것이 느껴졌지만, 시킨 대로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있었다.
“좋습니다. 한 번 더 갈게요. 같은 포즈에서 약간 더 미소를 주시고. 갑니다, 액션!”
아니, 아니 그러니까. 뭐가 좋으냐고, 이 사람아!
영화 촬영장 같은 느낌의 세트에서 촬영까지 마친 것은 울프 플라자에 도착한 지 세 시간 정도가 지났을 무렵이었다.
그중에 한 시간은 메이크업 시간이었지만.
촬영이 끝나자 울프에서 회사까지 차를 태워 주었다.
“리, 어떻게 하기로 했어?”
“한 달 뒤부터 본격적으로 촬영이래. 오늘은 포스터랑 광고용 영상 촬영.”
생각보다 더 지쳐서 집에 갈지 말지 고민을 하고 있는데, 크리스가 내게 다가와 프로그램에 대한 것을 물었다.
“일정이 많이 겹치네, 한 달 뒤면.”
“또 뭐가 있어?”
“에릭 앨범 내기로 했잖아, 가을에.”
“아! 그것도 있었나.”
내가 일정을 모두 기억하지 못하다 보니 일이 엄청나게 겹쳐 버렸다. 이번 가을이 끝나기 전에 에릭의 앨범을 만들자고 했었는데 벌써 10월이잖아!
“이제 내 옆에서 떨어지지 말고 있어 줘. 가끔 일정도 좀 말해 주고.”
“언제는 귀찮으니까, 붙어 있지 말라고 하더니.”
그때의 나는 이렇게 바쁘지 않았던 나라고!
“내가 일정을 기억 못 하니까 이렇게 바빠지는 것 같아서 말이야. 좀 느긋하게 가고 싶은데 정신이 없네.”
“알았어. 안젤리나랑 함께 붙어 있을게.”
“걔는 또 왜?”
“잊었어? 안젤리나가 붙어 있기로 했었잖아.”
왜 점점 일이 불어나는 것 같지? 내가 너무 의식의 흐름대로만 살아와서 그런 건가…? 산 넘어 산이라는 말이 왜 나왔는지 알 것 같았다.
“알았어. 어쨌거나 한 달 뒤부터 촬영이라고 하니까, 지금부터는 에릭 앨범에 총력을 기울여야 할 것 같아.”
“뭐부터 하면 될까?”
“A & R 팀을 일단 회의실로 모아 줘. 에릭하고 매니저도.”
마리가 없는 것이 좀 아쉽다. 이쪽 산업이 돌아가는 것을 잘 알고 있는 마리가 있었다면 아마 알아서 모든 것을 준비해 주었을 텐데.
그렇게 관련된 사람들이 모두 회의실에 모인 것은 이날 오후. 에릭은 휴식을 취할 겸해서 활동을 쉬고 있었기에, 조금은 활동할 때보다는 살이 찐 상태였다.
“사부님 오랜만이에요!”
“그래, 일단 자리에 앉고, 지금부터는 네 앨범에 대한 이야기를 할 거니까 집중해. 그런데 너 살 빼야겠다? 나도 요즘 다이어트하느라 자전거 빡세게 타는데….”
“네…. 요즘에 잘 안 나가고 배달 음식만 먹어서 그런가 봐요.”
이곳의 음식들은 영국과 비교해 가격이 싼데도 양을 많이 주는 편이라, 자신도 모르게 많이 먹게 되어있었다.
특히 타코. 한국 사람의 입맛에도 괜찮다고 생각할 만한 매콤달콤한 맛. 타코와 햄버거는 정말 최고.
거기에 한인 타운까지 있으니 나까지 살이 찌고 있었다. 괜히 여기에서 콜라에 설탕 세를 물리는 게 아니라니까. 순식간에 돼지가 되는 식문화를 가진 무서운 나라다.
“음원 수집은 어떻게 되고 있나요?”
“마리 팀장님이 어제 지시하시고 뉴욕으로 가셔서 아직은 그저 공지만 올라간 상태입니다.”
“그러면 알려진 유명 작곡가들에게 음원 수집한다고 알려 주시고, 샘플을 받는 대로 저에게 가져다주세요. 제가 듣고 판단할게요.”
“네, 알겠습니다.”
내가 모든 곡을 일일이 듣고 판단하기에는 너무 할 일이 많아지지만, 어쩔 수가 없다. 오히려 만드는 것이 더 쉬울 수도 있지만, 그렇게 된다면 회사가 나에게 의존하는 것이 너무 많아져서 내가 자리를 비우면 돌아가질 않게 될 테니까.
“그리고 작곡가를 하고 싶다던 분들도 저에게 음원을 제출하세요. 제가 들어 보고 쓸 만하다 싶은 것들은 채택하고 작곡가로 보직을 변경하도록 하겠습니다.”
이 중에 반 이상이 작곡가를 노리고 들어온 사람이기 때문일까, 회의실 안이 조금 소란스러워지기 시작했다.
“정말 직접 들어 봐 주시는 건가요?”
“제가 직접 참여하는 것은 한두 곡만 할 생각이에요. 나머지 곡들은 모두 다른 사람이 만든 곡으로 채울 겁니다. 타이틀곡이 되는 것도 투표로 진행할 거고요.”
그 말에 회의실 안에 모인 수십 명의 눈이 빛나기 시작했다. 마치 아프리카에서 먹잇감을 노리는 하이에나처럼. 뭐야, 이거 무서워.
음악이 싫은 음악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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