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musical genius who hates music RAW novel - Chapter 78
077화
[올겨울 당신의 마음을 두드릴 최고의 프로그램이 찾아옵니다.]광고가 시작됐다. 아메리칸 아이돌을 폐지하더니 정말 대대적으로 광고를 하고 있었다.
일반적으로 프라임 타임이라고 부르는 저녁 황금 시간대가 광고료가 가장 비쌀 텐데, 아무리 자사 프로그램 광고라도 저녁 시간대에 이렇게 광고를 하다니.
[이번 겨울 당신의 가슴을 두드릴 ‘바이브’가 찾아옵니다.]“뭐지? 내 얼굴 쓸 거라고 엄청 찍어 가더니, 그냥 까만 그림자만 나오잖아?”
“정말 갔다 온 거 맞아? 햄버거 먹으러 갔던 건 아니고?”
“정말이야! 그때 그 프로듀서라는 사람이랑 같이 나가는 거 봤잖아. 아무리 내가 햄버거를 좋아한다고 해도, 요즘에는 자제하고 있다고.”
“흐음. 리가 사장이니까. 놀러 다녀도 상관없지만.”
광고가 나온다고 해서 일부러 TV까지 틀어서 봤는데, 정작 내 모습은 까만 그림자처럼 처리가 되어 있었다.
“아, 맞다! 사진도 촬영했으니까, 인터넷 홈페이지 가 보면 있을걸?”
“그래? 프로그램 이름이 ‘바이브’라고 했지?”
“응.”
크리스가 휴대폰으로 검색을 하더니 대답을 했다.
“없는데?”
“뭐? 프로그램 이름이 없다고?”
“아니, 홈페이지에도 리의 얼굴이나 이름은 없다고.”
홈페이지의 정보란에 있는 다른 사람들은 모두 제대로 된 사진이었는데, 내 모습으로 추정되는 부분만 까만색 실루엣으로 표현되어 있었다.
“이럴 거면 대체 촬영은 왜 한 거야. 바쁜 사람을 데리고 말야. 그냥 까만 종이나 찍을 것이지.”
광고에 내 얼굴이 보이질 않아, 크리스에게 일과 시간에 놀러 다녔다는 오해만 사고 말았다.
이럴 거면 왜 광고를 한다고 연락을 한 거냐고, 울프 놈들아!
당분간 햄버거 먹으러 갈 때 눈치 보게 생겼다.
***
“쓸 만한 게 별로 없네.”
일주일이 지나 나에게 온 음원은 수십 곡. 이 중에 열 곡이 넘는 곡이 우리 A & R 팀에게서 나온 곡들이었다.
외부 작곡가들에게 받아 온 곡들까지도 들어 보았지만, 수정 없이 바로 쓸 수 있을 만한 곡은 없었다.
다들 눈에서 레이저를 쏠 것 같은 기세로 말을 하더니, 쓸 만한 것은 기껏해야 대여섯 곡 정도. 나머지는 내가 만들어서 채워야 하나?
“무슨 걱정 있으세요?”
내 자리에 앉아서 혼자 생각에 빠져있을 때, 어느 틈에 내 방 안에 들어온 안젤리나가 말을 걸었다.
깊게 생각하느라 노크하는 것을 듣지 못했던 모양이다.
“아니에요. 일은 좀 어때요. 익숙해졌나요?”
“네. 다들 친절하시고 열정적이셔서 배울 게 많아요.”
그렇겠지. 항상 놀고 싶은 내가 이 회사에서 내가 가장 이상한 사람일 지도 모르니까.
“이번 에릭 앨범부터는 외부에서 작곡가들도 섭외했는데, 지난번에 작곡을 배우고 싶다고 했었죠? 한번 들어 보세요. 배울 점이 많을 거예요.”
“…제가 만들어 놓은 것들이 있긴 한데, 혹시 들어 봐 주실 수 있나요?”
곡을 벌써 만들었다고?
애초에 얘는 외모도 스타성이 있다고 스타 프로듀서로 키우자는 이야기를 하다가 뽑았으니, 곡 만든 것을 봐주는 건 문제가 없다.
사실 겉모습만 보면 할리우드 스타들 뺨을 양손으로 갈겨 버릴 정도의 외모니까.
다만, 내가 걱정하는 것은 내 평가를 듣고 애가 꺾여 버리지는 않을까 하는 것.
“들어 봐 주는 건 문제가 없는데, 내가 좋은 평가를 할 거라고 기대하면 안 돼요. 그런데 왜 다른 사람들이 음원을 제출할 때 같이 보내지 않았어요?”
“그런 걸 기대하지는 않아요. 어릴 때부터 작곡은 꾸준히 해 왔는데, 전에 있던 회사에서는 제 곡을 쓰지 못하게 했었거든요. 이번에도 그렇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가수가 작곡한 곡을 쓰지 못하게 하는 것은, 회사의 수익이나 이미지와 관련된 부분이라고 할 수 있는 거라서 내가 해 줄 말이 하나도 없었다.
어느 정도 수준에 올라간 가수라면 자신이 원하는 음악을 하겠다고 장르도 바꾸고 스타일도 바꾸겠지만, 아직 회사에서 키우고 있는 단계에서 자기주장을 할 수 있을 정신 나간 사람은 없으니.
“이제 좀 한숨 돌릴 수 있을 것 같으니 한번 들어 보도록 하죠. 만들어 둔 것은 어디에 있죠?”
“집에 있는 컴퓨터에 있어요.”
“오늘이나 내일 여유 있을 때 가지고 와요. 같이 들어 보죠.”
안젤리나를 방에서 내보내고 크리스가 가져올 울프에 대한 정보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안젤리나가 돌아왔다. 그 여려 보이는 몸으로 컴퓨터 본체를 힘겹게 들고.
“…가져왔어요…. 어디에 놓으면 되나요?”
곱게 빗어넘겼던 금발 머리는 이미 산발이 되었고, 머리카락 사이로 보이는 이마는 이미 땀으로 홍수가 나기 직전. 옅게 했던 화장도 땀이 흘러 벗겨지며 눈 밑에 주근깨가 살짝 보였다.
“아무 데나 내려놔요. 그걸 왜 들고 왔어요?”
“이 컴퓨터로 만들어서….”
음악 파일의 용량은 디지털 음원의 최종 버전이라고 할 수 있는 MP3에서 10메가바이트 내외로 작아지지만, 소스 상태에서는 작게는 수백 메가바이트에서 크게는 기가바이트 단위로 커진다.
CD의 용량인 650메가 안에 녹음한 것을 집어넣는다면 열 곡이 넘게 담을 수 있지만, 소스 상태로는 한 곡이면 끝난다는 소리다.
그래서 음원 소스 파일을 옮기기 위해서는 용량이 큰 외장 하드를 주로 이용하게 되는데, 안젤리나는 컴퓨터를 통째로 자신의 차에 실어 왔다.
“그냥 복사만 해 오면 되는데….”
“할 줄 몰라서요….”
설마 그런 것도 몰랐을 줄이야….
이래서 사람이 하나에만 관심을 두고 살면 안 되는 법이다.
나도 예전에는 다른 것에 신경을 쓸 여유가 없었기에 상식이 부족하다는 소리를 많이 들었었는데, 이런 부분에서 안젤리나는 내가 어렸을 때와 정말 비슷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설마 집에서 쓰던 컴퓨터를 통째로 들고 올 줄은 몰랐지만. 그것도 데스크톱 컴퓨터 본체와 모니터, 키보드 그리고 마우스까지 전부.
“랩톱을 하나 사서 그걸로 작업해요. 음악 만드는 데에 필요한 성능보다 훨씬 좋은 제품들이 많으니까, 지금은 랩톱도 음악 만드는 데에는 쓸 만해요.”
“집에 오래된 랩톱이 있는데 그걸로도 되나요?”
랩톱의 사양이고 뭐고 듣기 시작하면 끝이 나질 않을 것 같은 느낌이라 거기에서 끊어야 했다.
음악을 컴퓨터로 만들 때 필요한 성능은 사용하는 채널의 개수와 비례한다.
악기를 많이 쓰면 많이 쓸수록 더 높은 사양을 필요로 한다는 건데, 수백 개의 채널을 동시에 사용하지 않는 한 요즘 컴퓨터는 대부분 쓸 만하다.
그렇지만 나는 컴퓨터를 파는 사람은 아니니까.
“컴퓨터 상담은 전자 상가에 가서 하시고…. 일단 연결부터 하죠.”
“아, 넵!”
컴퓨터를 연결하고 내 방에 있는 스피커를 연결해서 들어 보기로 했다.
그럭저럭 나쁘지는 않지만, 좋다고도 말할 수 없는 느낌의 멜로디를 중시한 팝 음악이 흘러나온다.
전형적인 미디사운드와 약간의 오토튠이 들어간 신스팝. 이런 유형의 음악은 꽤 오래전 90년대쯤에 유행하고 지나간 스타일이기는 한데, 어느 정도 잘 만들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레트로는 항상 수요가 있으니까 이 정도면 먹히지 않을까 싶은 마음에 꽤 쓸 만하다는 느낌.
“이거 가상 악기는 어떻게 구성한 건가요? 기본으로만?”
“네. 기본 악기만 사용했어요.”
아무래도 일반적인 팝 음악만 해 왔기 때문일까. 나와 비슷하게 배우지도 않고 지금까지 자신이 불러 왔던 음악과는 조금 다른 음악들.
하지만, 나와는 다르게 화음이나 여러 가지 것들을 놓치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안젤리나의 예쁘고 화사한 생김새나 분위기와는 다르게 상당히 암울한 느낌을 주는 음악이었다.
“이거 만들고 나서 누구에게 들려 준 적이 있었나요?”
“…아뇨. 제가 친구가 없어서 들려 줄 사람은 부모님밖에 없었어요.”
그래도 내가 얘보다 나은 점이 하나는 있었네. 친구는 있었잖아.
어릴 때부터 연예인 생활을 하면 친구가 생기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들어 본 적이 있었다. 친구가 될 사람을 만날 수가 있어야 친구가 생기는데 일단 주변에 비슷한 나이를 가진 사람이 없으니까.
자신의 친구가 되어 줄 사람이 없어서 망가지는 아역 출신 배우가 있었지. 와 이 두 영화의 주인공들이 가장 널리 알려진 아역 출신 몰락의 대표적인 케이스랄까.
안젤리나를 보면서 친구가 없어 마약과 술에 의존하다, 결국에는 거의 폐인이 되어 버린 아역스타 두 사람이 떠올랐다.
“친구라도 좀 만들고 그래요. 여기에는 비슷한 나이인 사람들이 많잖아. 무언가를 만드는 데에는 경험이 가장 중요해요.”
“안 그래도 시에스타 애들이랑은 친해졌는데 다들 너무 바빠서요….”
다즈니의 공주라는 말을 듣던 여자애가 친구가 없다고 말하는 걸 보면, 세상이 꼭 불공평한 것만은 아닐지도?
어릴 적에 들었던 서양에 대한 환상 중에 ‘영어에는 존댓말이 없어서, 나이에 상관없이 친구가 된다더라.’라는 말이 있었다.
와서 직접 겪어 보니 전혀 아니었지. 오히려 말에 존댓말이 없으니 더 규칙이나 위, 아래를 더 많이 따지는 느낌이랄까.
“이걸 상업적으로 사용하려면 손을 좀 많이 대야 할 것 같아요. 메인 멜로디가 바뀌지는 않겠지만, 부족함이 좀 보여.”
“저도 부족하다고 생각했어요. 뭐가 부족한지는 잘 모르겠지만.”
“편곡하면 음반으로 만들 수는 있을 것 같은데, 혹시 직접 부를 생각이에요?”
“아뇨…. 이제는 노래를 하고 싶지는 않아요. 사람들이 저를 바라보던 눈이 아직도 잊히질 않아서….”
선망의 눈이 의심의 눈으로 바뀌는 그 순간을 봐 버린 것이 트라우마로 남았나. 나와는 다른 이유였지만 그렇지만 내 안에도 그 눈들은 여전히 기억에 남아 있다.
나는 싸움닭이 되어 맞서 싸웠지만.
그나저나 얘도 외모와는 다르게 참 안타까운 사연이 있었구나.
나야 더는 노래를 부르지 않아도 먹고살 만하니까 부르지 않는다고 쳐도, 아직 FA 한 번 거치지 않은 가수에게 정산금을 비율대로 챙겨 주는 곳은 없으니 돈도 많이 못 벌었을 텐데.
배우는 작품별로 계약을 하니 한 작품이 뜨면 그다음에 가져가는 올라간 개런티로 금세 돈방석에 앉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가수는 초기 투자금에 대한 회수가 이루어지고 난 다음 정산이 된다. 배우와 비교해 초기 투자금이 높은 가수는 상대적으로 늦게 정산이 시작될 수밖에 없다.
보컬이나 안무 트레이닝 비용을 모두 투자금으로 지정하는 것이 일반적이니까.
“그러면 이 곡들은 조금 다듬어서 에릭에게 주는 거로 하죠. 분위기가 걸 그룹이 부를 분위기는 아닌 것 같으니. 곧 에릭 정규 1집 작업에 들어갈 테니 그때 같이 작업해요.”
“쓸 수 있나요?”
갑자기 눈을 반짝거리기 시작하는 안젤리나. 일주일 전 회의실에서 보여주던 다른 사람들의 눈과는 다른 감동의 눈빛이었다.
“한두 곡 정도는 쓸 만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편곡해서 소울풍으로 장르를 바꿔야 할 것 같기는 하지만.”
“감사합니다!”
고맙다고 말하며 안절부절못하는 모습이 꽤 귀여웠다. 평소에는 도도하고 시크하다는 이미지였는데, 지금은 엄마 고양이 앞에서 재롱을 부리는 아기 고양이 같달까?
눈가에 살짝 맺힌 눈물이 보였다.
“밖에 나가서 에릭 좀 불러올래요? 아마 2번 연습실에 있을 거예요.”
“네!”
안젤리나가 씩씩하게 나가고 얼마 지나지 않아 에릭이 들어왔다.
“목 좀 풀었어? 트레이닝은 하루도 빼먹지 말고 해야 해. 성대도 근육이라서 조금만 게을러지면 바로 풀려 버리거든.”
“에이, 제가 사부님이 말한 걸 지키지 않을 사람은 아니잖아요. 집에서 놀고 있을 때도 호흡이랑 발성 연습은 꼭 했어요.”
“지금 추려진 곡은 대충 열 곡 정도야. 내가 만든 곡까지 넣는다면 아마 열세 곡일 텐데, 13은 좀 불길한 숫자니까 열네 곡이나 열두 곡으로 가도록 하자. 일단 한번 들어 봐.”
자리에 앉아서 추려진 곡들을 듣고 고개를 끄덕이는 에릭.
“이거 아직 완성된 곡들은 아니죠? 좀 부족함이 보이는 것 같은데….”
“이제 그런 것도 알아? 손대야 해. 그냥 쓸 수 있는 곡은 하나도 없어. 너한테 맞춰서 편곡하고 그다음에 녹음할 거야.”
“저기, 그러면요….”
“뭔데, 무슨 말을 하려고 그렇게 뜸을 들여?”
에릭이 조금 망설이다 말을 이었다.
“저도 곡 써 놓은 게 몇 개 있는데…. 그것도 쓸 수 있을까요?”
오잉? 얘는 언제 곡을 만들었대? 수준만 괜찮으면 일이 편하게 흘러가겠는데?
좋은데? 에릭이 싱어송라이터가 된다면, 다음 앨범부터는 내가 할 일이 줄어드는 거잖아?
“그래, 가져와 봐. 한번 체크해 보자.”
경연 프로그램 촬영으로 자리를 비우는 시간이 길어지면 어쩌나 걱정을 했는데, 이제는 마음 편하게 회사를 비워도 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음악이 싫은 음악천재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