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musical genius who hates music RAW novel - Chapter 79
078화
어두운 빈 무대 위에 놓여 있는 두 개의 의자.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고 두 명의 남자가 무대 위로 올라가 의자에 앉는다.
카메라를 등진 담당 프로듀서가 무대 위로 올라온 두 명을 향해 인사를 건넸다.
“이렇게 만나 뵙게 되어서 영광입니다. 저는 연출을 맡은 캐서린 도벡입니다.”
“아, 예. 반갑습니다. 이번에 심사 위원을 맡게 된 로베르토 디아즈입니다.”
“페르디난트 뢰베입니다.”
두 명의 남자는 전혀 긴장도 하지 않은 채 카메라 앞에 있는 캐서린과 눈을 맞추며 인사에 답한다.
“흔쾌히 심사 위원을 맡아 주신다고 하셔서 너무 감사드립니다. 사실 걱정했거든요. 다들 너무 굉장한 분들이라.”
“저야 뭐 늘 하는 것이 학생들을 지도하고 점수를 매기는 일이라서요. 평소와 크게 다르지 않을 거로 생각합니다.”
미국 최고의 명문 음악 학교인 커티스 음악원의 총장인 로베르토 디아즈는 별것 아니라며 손사래를 친다.
“마에스트로 뢰베는 어떻게 저희 프로그램의 심사 위원을 맡게 되셨나요?”
“지휘자라고는 하더라도 어디 한 곳의 상임이 되지 않는 이상 프리랜서입니다. 정말 실력이 좋은 사람을 만나게 된다면, 제가 지휘를 했던 빈 필하모닉에 추천을 할 수도 있을 거라는 생각으로 맡게 되었습니다.”
유럽 최고의 명문 교향악단이라는 빈 필하모닉의 지휘자 페르디난트 뢰베는 사람 좋은 웃음을 지으며 답했다.
“시간 되시면 우리 학교에서 강연도 한번 해 주시죠, 마에스트로. 그러면 우리 지휘과 학생들이 아주 좋아할 것 같습니다.”
“그럴까요. 하하하.”
두 거장의 만남을 중심으로 짧게 편집된 도입부가 지나가고, 뒤에서 누군가가 걸어오는 소리가 들려온다.
무대 위의 두 명은 뒤를 돌아 바라보았다.
“오, 이정현 씨 아니십니까! 심사 위원으로 참여하시는 건가요?”
“안녕하세요. 이정현입니다. 어쩌다 보니 심사 위원이라는 무거운 직책을 맡게 되었네요. 잘 부탁드립니다.”
“지난번 신보의 초연을 런던 필하모닉에 맡기셔서 조금 서운했었는데, 이렇게 만나 보게 되었군요. 다음에는 빈 필하모닉에도 맡겨 주시지요.”
“기회가 닿는다면 언제든지요.”
세 명의 심사 위원이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보이며 화면이 전환되며, 2차 예선을 위해 모여든 사람들이 카메라에 잡혔다.
“어디에서 오셨나요?”
아주 짧은 질문. 하지만 대답하는 사람 수백 명의 답은 모두 달랐다.
“뉴욕이요.”
“일본 도쿄에서 왔습니다.”
“파리에서 왔어요.”
그렇게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모여든 2차 예선의 대기실은, 몰려든 인원수에 맞지 않게 떠드는 사람 한 명도 없이 조용했다.
탁, 탁, 탁, 탁.
어디선가 규칙적으로 다리를 떠는소리가 들려왔다.
푸우-
누군가가 입으로 풍선껌을 부는 소리.
누군가의 헤드폰에서 새어 나온 음악 소리가 작게 들려 온다.
그 음악을 듣고 있던 사람의 가까이에 앉은 사람이 그의 어깨를 살짝 건드려 눈을 감고 음악을 듣던 헤드폰의 주인을 깨웠다.
짜증이 난다는 듯한 표정의 헤드폰 주인에게 옆에 있던 사람은 말을 꺼냈다.
“조금 볼륨 좀 낮춰 줄래요. 소리가 밖으로 새어 나와서 다들 불편해하고 있어요.”
“내가 왜 그래야 하죠? 음악을 듣고 싶어서 듣는 것도 안 되나요? 여기는 왜 콩쿠르 우승자에게 대우가 이 모양인 거야. 대기실도 따로 주지 않고.”
그때 들려 오는 담당 PD의 목소리.
“메이저 국제 콩쿠르 우승자들에게는 모두 본선 진출 티켓을 줬어요. 여기 계신다는 건 국제 대회 우승 경력이 없으시다는 거죠.”
그 말을 들은 헤드폰의 주인은 새빨개진 얼굴로 씩씩대다 대기실 밖으로 나가 버렸다.
“저 사람 부끄러워서 참가 안 하려나?”
소란을 틈타 경쟁자가 줄었다며 조금은 격앙된 말투로 이야기하는 사람.
“예선 통과하면 본선에서 그 사람들하고 만나는 거예요?”
“통과했다는 메일을 받고 정말 좋아했었는데, 아직 시작도 안 한 거였네요.”
이렇게 PD에게 질문을 던지는 사람도 보였다.
“지금 이 자리에 계신 백 명의 사람 중에 열 명만 본선에 올라가게 될 겁니다.”
담당 PD의 말에 대기실은 한순간에 얼어붙었고, 다시 그 누구도 말을 하지 않았다.
“괜한 말씀을 하신 것 같은데요. 이래서는 촬영이 안 되겠어요. 다들 너무 얼어붙어서.”
“한 명씩 개인 인터뷰를 하는 게 낫겠어.”
그렇게 화면이 전환되며 어두운 방 안을 비춘다.
방 안으로 문을 열고 들어오는 예선 참가자.
“안녕하세요. 이름과 나이. 그리고 어디에서 오셨는지 말씀해 주시겠어요?”
“아, 안녕하세요. 저는 김시욱이고 나이는…. 스물여섯입니다. 한국에서 왔습니다.”
자기소개를 하고 나서 시욱이 침을 삼키는 소리가 잡히자, 촬영 현장은 살짝 웃음이 돌았다.
“긴장 많이 하셨나 봐요?”
“아. 네, 이런 데 나와보는 건 처음이거든요.”
“콩쿠르 같은 곳에 경험이 많으신 분들은 대부분 긴장을 하지 않으시던데, 콩쿠르도 나간 적이 없으신 건가요?”
“저는 바이브에 참가하는 게 첫 대회예요. 제가 바이올린을 스물두 살에 시작했거든요. 아, 여기 나이로는 스무 살이요. 너무 늦게 시작해서 콩쿠르 같은 데에는 나가 볼 수도 없었죠.”
“아무래도 그럴 수밖에 없죠. 주니어 대회를 통해서 일반 대회로 올라가게 되는 시스템이라, 어릴 때부터 시작하지 않으면 콩쿠르에는 나갈 수가 없으니까요.”
화면이 클로즈업되며 얼굴을 비춘다.
***
“야! 시욱아! 여기 시멘트 한 포 가져다주고, 물도 좀 가져와.”
“예!”
타일 시공 기술자의 말에 대답한 것은 방금 공사 현장에서 이름이 불린 김시욱.
대학교 졸업 후 반년이 넘게 직장을 구하지 못하고 아르바이트를 전전한 끝에, 오늘 처음으로 타일 데모도 (보조) 일을 하게 되었다.
그는 나무 팔레트에 놓인 시멘트 한 포와 생수 한 병을 들고 자신을 부른 기술자에게 가져다주었다.
“이거 웃기는 놈이네. 야, 인마. 누가 마실 물 가져다 달래? 노릿물 (시멘트와 물을 섞어 만든 타일을 붙이기 위한 풀) 만들 물을 가져오라고!”
“죄송합니다!”
시욱은 원래 편의점 야간과 택배 상하차 아르바이트를 했었지만, 집주인이 이번 달부터 월세를 올려받겠다고 말해서 돈을 조금이라도 더 받는 일을 해야 했기에 이곳에 나와 있었다.
초보 인부인 시욱에게 공사 현장의 사람들은 친절하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오늘 하루 열심히 가르쳐도 내일 나오지 않는 사람들이 많았으니까. 타일은 그만큼 힘든 일이었다.
40kg짜리 시멘트 한 포를 들고 옮겨도 두 포를 나르지 못한다며 욕을 먹기 일쑤고, 한 박스에 30kg짜리 타일 박스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알아듣기도 어려운 온갖 건설 현장 용어들을 아무도 설명해 주지 않았다.
“아…. 평소에 운동도 좀 해 둘걸….”
택배 상하차도 힘들다고 생각했지만, 타일 시공은 정말 상상을 초월하는 강도였다. 그것보다 더 힘든 것은 시멘트 가루를 들이켜는 것.
한 포를 뜯을 때마다 가루들이 날리는데 이걸 맡지 않겠다고 고개를 돌려도, 숨을 쉴 때마다 들어오는 것이 느껴졌다.
이렇게 뜯은 시멘트가 오전에만 대략 20~30포.
시멘트를 모래 위에 올려두고 삽으로 갈라내어 둘을 섞은 뒤, 물을 뿌려 조금 더 섞어내어야 한다. 단순한 작업이라 저 옆에 있는 기계를 사용해도 될 것 같은데, 삽을 사용해서 섞으라며 삽자루를 쥐여 주었다.
물이 섞인 시멘트와 모래는 따로 들고 나르는 것보다 훨씬 무거웠고, 이렇게 섞여진 ‘사모래’를 빈 통에 넣어 시공을 준비 중인 곳에 나른다.
단순한 일인 것 같지만 그렇게 나르는 한 통의 무게가 상상을 초월했다. 시욱은 욕실 하나에 들어가는 모래의 양이 어마어마하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되었다.
오후에는 잔소리를 들어가며 현장 앞 나무 팔레트 위에 놓인 타일들을 모두 실내로 옮겼다. 한 팔레트의 양이 보통 1톤이 넘는다는 이야기를 들었으니, 시욱이 날랐던 양은 대충 2톤이 조금 넘는 모양.
“야, 너 일을 왜 이렇게 못하냐. 아무리 못해도 네 팔레트는 날라야지, 인마!”
“죄, 죄송합니다.”
“됐고. 내일부터 나오지 마. 아, 재수 옴 붙었네.”
“네….”
항상 일손이 모자라서 힘들다는 노가다 현장이지만, 당연하게도 일을 못 하는 사람은 환영받지 못한다.
이렇게 열 시간을 일하고 시욱이 받은 일당이 10만 원.
돈이 들어 있는 봉투를 손에 쥐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어느 건물 벽 유리창에 비친 자기 자신이 너무나 초라하게 느껴졌다.
“이 개 같은 세상….”
대학교에 다니며 군대를 제대하고, 졸업을 하고 나서 취업을 하려 했지만 어디에서도 받아 주는 곳이 없었다.
그렇게 스물일곱 살에 얻게 된 타이틀 ‘취업 준비생’.
자신은 그저 취업하고 싶었을 뿐이었는데, 그 어떤 기업에서도 철학과를 졸업한 사람을 받아 주지 않았다.
구인 구직란을 뒤져봐도 경력직만 구하고 있어 이력서를 넣을 곳도 거의 없었고, 신입을 구하는 곳은 관련 학과 졸업생뿐.
– 철학과 졸업하느니 고졸인 게 낫지.
– 대학교 졸업했다고 이력서에 쓰지 말고 차라리 고졸로 쓰는 게 취업이 잘될 듯.
– 대학교 학비 모아서 창업하는 게 나았을 텐데, 졸업은 왜 함?
– 대학원을 가서 교수를 노리는 게 취업하는 것보다 더 빠르지 않음?
취준생들이 모여 있는 취업 커뮤니티에서도 철학과는 정말 말 그대로 헬 중의 헬. 다들 취업 가능성이라는 것이 0.1mg도 없어 보이는 것이 철학과라는 말을 했다.
차라리 돈을 모아서 자영업자가 되는 것이 빠를 거라며.
아르바이트로 돈을 모을 수라도 있으면 좋을 텐데, 당장 월세나 식비 등을 내고 나면 남는 돈도 거의 없을 지경이라 모을 수도 없었다.
군데군데 시멘트가 묻어 있는 옷을 입고 터덜터덜 걸어서 반지하 원룸 자취방에 들어가자, 가을이 시작되는 계절임에도 곰팡내가 코를 찔렀다.
방 안 모습을 바라보자 자신도 모르게 터져 나오는 한숨에 도리질을 치면서 화장실에 들어가 몸을 씻고 나왔다.
그렇게 취업 준비생인 김시욱은 대학교를 졸업한 뒤 아르바이트 현장을 전전하며 살아가고 있었다. 그의 삶의 유일한 위안은 시간이 남을 때마다 취미로 연주하는 바이올린.
언젠가는 취업이 될 것이라는 희망도 이제는 거의 남아 있지 않았지만, 아무도 없는 방에서 혼자 연주하는 바이올린은 마치 그런 마음을 위로해 주는 것 같았다.
지친 몸을 이끌고 방 한구석에 놓인 바이올린을 들어 현을 살짝 튕겨 음을 맞추고, 활대를 들어 최근에 연습 중이었던 곡을 켜 보려 하는 순간.
쾅쾅쾅!
“학생! 월세 언제 줄 거야!”
집주인 아주머니가 문을 두드렸다. 초인종을 눌러도 되는데 꼭 직접 문을 두드리는 아주머니.
시욱이 현관문을 열어 아주머니를 바라보며 말했다.
“저 지금 들어와서 막 씻었어요.”
“월세는 언제 줄 건데?”
“오늘 안에만 보내드리면 되잖아요. 조금 있다가 보내드릴게요.”
“내가 지금 급하게 쓸 데가 있어서 그래. 지금 빨리 줘. 밤에 보내줄 거면 지금 보내줘도 상관없잖아.”
이쪽의 입장은 생각도 하질 않는 집주인 아주머니의 일방적인 통보가 끝나고 다시 현관문이 닫혔다.
이런 것을 기대하며 대학교를 졸업한 건 아니었는데, 닫힌 문을 통해 서러움이 밀려 들어왔다.
띵~
어딘가에 놓아둔 휴대폰에서 메시지가 오는 소리가 들려왔다.
“휴…. 또 돈 내라는 고지서가 날아왔나.”
자신에게 오는 연락이라곤 가족들의 안부 인사나 친구들의 자랑, 그리고 고지서뿐이었다.
휴대폰을 들어 어떤 메시지가 도착했는지 확인하는 순간, 시욱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
[김시욱 님의 바이브의 1차 예선 통과를 축하드립니다. 2차 예선은 다음 달인 11월부터 LA의 울프 플라자 스튜디오에서 진행될 예정이오니….]영화 제작사로 널리 알려진 울프에서, 전 세계적으로 대대적인 홍보를 하던 클래식 서바이벌 경연 프로그램 바이브의 1차 예선 통과를 알리는 영어로 된 이메일이었다.
예선을 시작한다고 하던 한 달 전에 취미 삼아서 연습하던 바이올린 연주 영상을 보냈었는데, 그 영상이 통과되었다는 말에 시욱은 감격할 수밖에 없었다.
아직 취업은 되질 않았어도, 우승해서 상금을 탔다는 말이 아님에도, 세상 어딘가에 자신을 알아주는 곳이 있다는 거니까.
울컥하는 가슴을 쓸어내리며 맺힌 눈물을 닦고 메일을 다시 읽어 보니 장소가 미국의 LA.
“어…? 여기 가려면 방세를 내는 게 아니라 보증금을 빼야겠는데?”
시욱은 집주인에게 급하게 전화를 걸었다.
음악이 싫은 음악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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