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musical genius who hates music RAW novel - Chapter 8
007화
한 주의 시작은 일요일일까, 아니면 월요일일까?
일요일인 어제는 참 좋았었던 것 같은데, 월요일인 오늘은 참 힘들다.
보통 한 주의 시작을 알리는 월요일의 1교시는 HR. 보통은 홈룸이라고 하는데, 어릴 때부터 느낀 거지만 홈룸이 무슨 뜻인지는 모르겠다.
살고 있는 것은 대한민국이지만, 이 대한민국 땅에는 한국어가 아닌 말들이 너무 많다.
한국어만 해서는 이해 안 되는 것들이 많다는 거지. 그건 뭐 옆 나라 일본도 마찬가지라고는 하지만.
HR 시간은 특별한 전달 사항이 없는 경우에는 자습으로 채워지는데, 오늘은 지난주의 중간고사 때문에 성적에 관해 이야기를 했다.
우리 반의 담임선생님의 경우에는 내 성적이 전교 꼴찌를 하건 말건 그런 건 그다지 신경 쓰는 사람이 아니라서, 나는 창피를 당하거나 하지 않았다.
다른 애들의 경우에는 성적표가 나오지도 않았는데, 담임인 김용덕 선생이 교실에 OMR 객관식 점수만 채점된 가채점 결과를 갖고 들어와 여러 가지 의미에서 아이들을 볶고 있었다.
산뜻한 봄 냄새가 가득해야만 하는 5월의 두 번째 주가 이렇게 홀아비 냄새와 함께 시작되고 있었다.
한 달도 채 안 된 과외 수업으론 여전히 학교 수업을 따라가기 어려웠다.
그래도 나는 나름 외우기만 하면 된다고 하는 암기 과목 사탐, 과탐은 열심히 외우면서 노력하고 있었다.
“흐아…. 사는 게 왜 이렇게 힘드냐….”
평소랑 똑같이, 쉬는 시간이 시작되자마자 한숨을 토해내며 절망에 빠져들며 책상에 엎드렸다.
남들은 공부가 가장 쉬웠다면서 책도 쓴다는데, 나는 공부가 너무 어렵다.
솔직히 말해서 수학 공식을 볼 때마다 토할 것 같은 느낌.
뉴스에서 보았을 때는 이해할 수 없었던 ‘수포자’라는 게 괜히 있는 게 아니라는 걸 이제야 깨달았다.
2교시인 수학 시간이 끝난 오전 10시. 월요일의 수업은 아직도 5교시나 남아 있었다.
솔직히 내가 지금 수업에서 빠지더라도 나를 결석으로 처리할 선생님은 없지만, 그래도 수업은 들어야 했다.
아니, 듣고 싶었다. 알아들을 수 있는 건 얼마 안 되지만….
나는 학교에서 웹 서핑을 안 하기 시작했다. 아침에 휴대폰을 제출하고 랩톱도 집에 두고 나와서 어차피 할 방법도 없다.
다른 것보다 이제는 머릿속에서 음악소리가 들리지 않게 하는 방법을 알았기 때문에, 굳이 이것저것 해야 할 필요가 없었다.
‘세수라도 하고 오자….’
시그마(Σ)의 사용법도 모르겠고 인테그랄(∫)이 왜 필요한 건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왜 선택 과목은 물리 II고 나는 이과인 것인가.
1학년 말에 주어진 선택지에서 나도 모르게 음악에서 가장 거리가 멀다고 생각한 이과를 골랐던 것 같다.
문과 할걸…. 그럼 그냥 수포자로, 토익이나 토플, 아이엘츠, 텝스 같은 영어 점수만 받아도 대학교에 들어갈 수 있을 텐데…. 수능만 문과로 볼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화장실에서 세수를 하고 나왔더니, 그나마 좀 정신이 깨어나는 것 같은 느낌이다.
그냥 고졸로 살아도 상관없을 것 같은데….
돈 많은 백수 느낌으로 펜션 한두 개 사서 운영진은 따로 고용하고, 캠핑카 하나 사서 여기저기 여행 다니면서 낚시나 하며 살아가는 베짱이 같은 삶. 나쁘지 않은 것 같다.
이런저런 상상을 하며 혼자서 헤실헤실 웃음을 띠고 교실에 돌아와 내 자리에 앉았다. 창가에 붙은 내 자리에 돌아오니 기분 좋은 잔잔한 바람이 날아와 내 몸에 닿는다.
좋구만…. 이것이 평화….
3교시가 뭐였더라. 칠판의 복도 쪽에 붙은 시간표를 확인하고, 서랍에서 다음 수업인 영어 교재를 꺼냈다.
나는 영어가 좋다. 그나마 할 줄 아는 영어가 유일한 휴식처라고 할 수 있으니까.
영어 선생님은 수업 시간에 나를 부르지도 않는다. 겨울 방학 때 본 토익 점수가 꽤나 높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고등학교에서는 대학교처럼 토익 점수 같은 걸 학교에 제출해도 가산점이 없다. 내가 고등학교 제도를 잘 몰라서 누나에게 물어보았을 때, 누나는 영어 수업을 받고 싶지 않아 토익 점수를 제출했다고 했는데 누나는 대학생이었다.
고등학생에게는 가산점이나 수업 열외 같은 건 없었다. 그냥 뻘짓했다고 보면 된다. 토익 점수의 유효 기간은 2년밖에 안 되는데….
그래도 따로 공부한 건 아니니 괜찮다는 생각을 했다.
수업 시작종이 울리고 아이들이 자리에 앉았을 무렵 교실 앞문이 열렸다. 그리고 들어오는 선생님과 처음 보는 누군가.
“자. 오늘부터, 교생 선생님들이 나와 함께 수업을 진행할 거다. 여기 계신 교생 선생님은….”
자기소개 뒤에 박수를 보내게 하는 영어 선생님 옆에 선 교생 선생님은 단정한 회색 투피스 정장에 블라우스와 단화를 신은 단발머리의 여성이었다.
애들이 휘파람을 불고 소리를 쳐대며 외쳤다.
“선생님~ 첫사랑 이야기해 주세요.”
90년대 청춘 드라마도 아니고 이게 뭐냐…. 어떻게 시대가 바뀌어도 이런 건 바뀌는 일이 없다.
나는 이런 청춘 이벤트에는 관심이 없어서 그냥 고개를 돌려 창밖을 보고 있는데, 영어 시간에는 절대 들릴 리가 없는 내 이름이 칠판 쪽에서 들려 왔다.
“이정현…. 성악가 이정현이에요? 진짜?”
뭔데? 이럴 때는 일단 부정하는 게 국룰.
“아닙니다. 동명이인입니다.”
“앗…. 그렇구나. 죄송합니다.”
교생 선생은 재빠르게 사과를 했다.
“오늘이 첫날이시니까 교실 뒤편에서 참관만 하도록 하죠. 본격적인 수업은 다음 시간부터 하시고.”
“네, 선생님.”
얼굴이 토마토처럼 새빨개진 교생은 교실 뒤에 있는 사물함 앞에 서서 수업을 참관했다.
이따금 느껴지는 그 시선이 나를 귀찮게 했지만 일부러 무시했다.
딩~ 동~ 댕~ 동~
종이 울리고 쉬는 시간이 시작되자, 교생 선생은 다시 내게 다가와 물었다.
“…진짜 성악가 이정현 아니에요…?”
“성악가 아니구요, 그냥 이정현입니다.”
“아…. 네…. 죄송합니다.”
사람들의 관심을 싫어하는 나는 누가 오더라도 얼굴에 철판을 깔고 아닌 척하는 것에 달인이 되어 있었는데, 이때는 그러지 않았어야 했다.
왜냐하면….
이날 저녁, 우리 작은누나와 과외 선생 박재경이 함께 집에 왔고, 거기에 교생 선생이 끼어 있었던 것이다. 교생 실습 기념 파티라고….
알고 보니 친구(1)의 친구(2)라고 하던 과외 선생님과 작은누나의 사이에 끼어 있는 친구(1)였다.
자기가 맞았다고 길길이 날뛰던 교생 선생은 눈가에 눈물까지 고여있었다. 억울했던 모양이다.
“죄송합니다. 사람들이 관심 주는 게 부담되어서 그랬어요.”
‘이젠 성악가 아니에요’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하지 않았다.
“그래도 그렇지…. 팬이었는데….”
“죄송합니다….”
작은누나의 친구인 줄은 꿈에도 몰랐지…. 게다가 졸업 작품 준비한다고 집에 잘 들어오지도 않던 누나가, 친구라며 데리고 올 줄은 더더욱 몰랐고.
“내 동생이 진짜 팬이란 말이에요…. 걔 예고 다니는데….”
“야, 넌 다섯 살 차이 나는 친구 동생한테 왜 존댓말을 해.”
걸 크러쉬의 정점인 우리 집안 폭력배 작은누나가 태클을 시작했다.
그 태클은 너무 강력해서 주변 사람들이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동조하기 시작했다.
“으응…. 그래서 나는 성악가 이정현이 맞으면 내 동생 소개시켜 주고 싶어서 그랬지….”
이건 거절해야 한다. 느낌이 싸하다. 옳지 않은 방향으로 세상이 움직이려 하는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건너편에서 폭력배가 나를 향해 눈을 부라리고 있다. 친구 울려서 속상한 폭력배는 나에게 강제 만남을 주선했다.
“언제 데리고 와, 내가 밥 한번 사 줄게. 그때 현이도 같이 보면 되겠네.”
5살 차이. 툭하면 내가 너의 기저귀를 수도 없이 갈았다는 거짓말이나, 이불에 오줌싸던 것도 기억하네, 하는 협박으로 나를 번번이 제압하는 작은누나 이정화.
오늘도 나의 의지는 누나의 눈빛이 말하고 있는 협박에 굴복할 수밖에 없었다. 사인 두 장을 해 준 것은 덤.
아, 수업 시간에는 관심이 없었기에 기억을 못 했는데 이름은 유지혜라고 한다. 동생은 유지현. 사인하면서 들었다. 재욱이랑 관련 있는 건 아니겠지 설마… 재욱이도 유 씨인데.
설마가 사람 잡는다는 말과 대한민국 사람은 한 다리 건너면 다 아는 사람이라는 말. 이건 진짜였다.
화요일이 되어 확인한 유재욱과 유지혜의 관계는 사촌. 역시 대한민국은 좁다, 좁아….
어쨌거나 오늘은 윤주란 교수와 약속을 한 날이다. 한국 대학교에 가야 하는 날.
장롱 면허인 어머니는 차를 끌고 혼자서 한국대 입구 역에서 버스를 갈아타고 가려던 나를 데리러 와 주셨다.
목숨이 위협받는 이 느낌을 받고 싶지 않아서 혼자 가려고 했던 건데, 어떻게 귀신같이 알고….
롤러코스터보다 위협적이었던 드라이빙을 끝내고 우여곡절 끝에 한국 대학교 예술 대학 주차장에 발렛파킹으로 차를 댄 뒤(경비 아저씨 감사합니다), 윤 교수를 만나러 건물로 들어갔다. 미리 이야기한 대로 오늘은 랩톱을 가져온 상태.
똑똑똑.
“네에~ 들어오세요.”
내가 아는 목소리다.
문을 열고 교수실에 들어가자 내 예상과는 달리 방 안에 윤 교수 외에도 두 명이 더 있었다.
“여기 앉아, 여기 이분은 장재열 변호사. 오늘 계약의 공증인이 되어 주실 거고.”
“반갑습니다. 장재열이라고 합니다.”
“안녕하세요. 이정현입니다.”
“안녕하세요. 정현이 엄마, 김지숙입니다.”
나와 어머니가 같이 인사를 드렸다. 왜 그런지는 모르겠는데, 꼭 사람들에게 정현이 엄마라고 말한다. 다들 이미 알고 있을 텐데.
“이쪽 분은 이덕형 세무사. 정현이 사업자 발급 문제랑 이런저런 것들 해 주실 분이야.”
“아 네, 안녕하세요.”
“이덕형이라고 합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전혀 뜬금없는 조합. 교수와 변호사 그리고 세무사. 이 조합에 살짝 벙쪄 있는 나와 어머니에게 윤 교수가 설명을 시작했다.
“내가 볼 때는 이게 맞다고 봐. 정현이가 하자는 대로 하면 이건 인류의 큰 손실이라니까.”
항상 여유로운 느낌을 주던 분이 답지 않게 정색을 해가며 설명했다.
핵심만 짚어 보자면.
첫 번째. 세무사와 법인 사업자를 만들어서 세금을 줄여야 한다.
개인 사업자로 하면 연 매출 5천만 원(순수익이 아닌 매출 기준) 이상이 발생할 경우 법인보다 세금을 많이 내야 하기 때문에 꼭 법인이어야 한다고 했다.
개인 사업자가 최고 38%, 법인의 경우 최고 22%. 16% 차이면 엄청난 차이다.
게다가 연간 2억 원 이상의 수익을 낼 경우에는 10%.
와, 대한민국 법이 법인에 유리하다고는 들었는데, 이거 너무 심한 거 아닌가?
두 번째. 믿을 수 있는 직원 한 명을 고용해서 내가 만든 것들을 관리해야 한다.
개인 저작물이기 때문에 만약에 관계자가 빼돌려 표절 소송에 휘말릴 경우 100% 이길 수 있다는 장담을 할 수 없다는 것.
이 믿을 만한 사람을 찾을 때까지는 윤 교수님이 관리해 주기로 했다.
세 번째. 사업자를 등록하면 바로 저작권 협회에 이름을 올려야 한다.
저작권 협회에 등록하지 않을 경우, 내가 만든 곡들에 대한 저작권을 보장 받을 수 없어서 돈을 받을 수 있는 방법이 없다고 했다.
이게 길고 길었던 설명의 요약이다. 세 줄 요약을 하고 싶었지만 아쉽게도 세 줄보다는 길게 나왔다.
세무사와 법인 신청 서류를 작성하고 오늘 동사무소에 가서 어머니가 등록해 가져온 내 인감 도장과 인감 증명서, 내 이름으로 1억을 넣어 새로 만든 자본금 증명용 은행 계좌 잔고 증명서, 주민 등록 등본 등을 이용하여 서류를 작성했다.
미성년자라 법정 대리인이 어머니이기 때문에 이런 건 편하구만. 이건 어차피 사인이 아니라 동사무소에 등록된 인감 도장으로 진행되는 거라 옆에서 지켜보기만 했다.
어머니는 잊지 않고, 서류 작성이 끝났을 때 나에게 웃으며 말했다.
“이제 이 사장님이라고 불러야겠네?”
그리고 내가 예상했던 ‘곡 계약’이 아닌 매니저 계약을 윤 교수와 맺었다. 옆의 변호사가 공증인이 되었고. 세무사가 입회인이 되었지.
또, 세무사와 세무 담당 계약도 맺었다.
내가 더 이상 크게 손댈 것이 없게 만들어 준다고 들었는데 진짜 손이 엄청나게 많이 가는 것들뿐이었다. 서류 작업이란….
이런 거 하나도 안 하고 다 묻어 버리고 편히 살고 싶었지만, 윤 교수가 말해 준 예상 수익은 그냥 묻어 버리기에는 너무나도 큰돈이었다.
음악이 싫은 음악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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