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musical genius who hates music RAW novel - Chapter 80
079화
시욱은 혼자 살던 원룸을 정리하며 갖고 있던 물건들은 대부분 처분했다. 어차피 중요한 것은 하나도 없었으니 크게 상관은 없었다.
‘갑자기 왜 방을 빼려는 거냐, 월세가 문제냐’며, 집세를 원래대로 받겠다는 집주인 아주머니의 말에도 필요 없다고 강경하게 집을 빼겠다고 말하고 보증금을 돌려받았다.
그리고 생에 처음 여권도 만들었고, 인터넷으로 미국 관광 비자를 신청했다.
그렇게 받은 돈과 갖고 있던 짐들을 처분한 돈으로 비행기를 타고 LA 국제공항에 도착한 것은 2차 예선이 며칠 남았을 무렵.
“확실히 공항은 인천 공항이 훨씬 좋네. 인터넷에서 하던 말이 거짓말이 아니었구나….”
TV나 인터넷에서 인천 공항이 세계에서 손꼽히는 공항이라는 말도, 해외에 나가 본 경험이 없어서 국뽕 유도 게시물이라 생각하며 믿지를 못하던 시욱이었다.
2차 예선에서 떨어지게 되면 어차피 하룻밤의 꿈이 될 테지만, 그래도 상관없었다.
대학 졸업반부터 준비했던 취업도 지금까지 되질 않았으니까.
이것도 혹시 이력서에 써넣을 스펙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철학과는 전혀 상관없는 악기 연주지만, 그래도 대회 출전 경력을 이력서에 넣을 수는 있다.
“그러니까, 여기에서 택시를 타고 시내에서 내린 다음에 백 패커스로….”
시욱이 머물기로 한 곳은 배낭여행을 하는 사람들을 위한 단체 숙소인 백 패커스. 게스트하우스나 호스텔이라고도 불리는 곳이었다.
한 방에 많게는 열 명씩 지낼 수 있는 2층 침대로 가득 찬 가격이 싼 숙소.
“우리나라나 미국이나 사진으로 사기 치는 건 똑같네. 사진에서 볼 때는 정말 좋아 보였는데….”
관리자가 안내해 준 허름한 방에 가방을 내려놓으며 드는 생각은, 누가 물건을 훔쳐 가지는 않을까 하는 것이었다.
중요한 물건이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혼자서 쓰는 방이 아니었기에 걱정이 될 수밖에 없었다.
어설픈 영어로 손짓과 발짓을 섞어가며 관리자에게 이야기하니, 중요한 물건은 꼭 몸에 지니고 다니라는 말만 해 주었다.
일부러 2차 예선 직전에 오지 않고 며칠의 여유를 갖고 비행기에 올랐다.
그때까지 처음 해 보는 해외여행의 여유를 느껴 보고자 시욱은 LA 시내로 나가보았다.
한국 사람들이 많이 살기로 유명한 LA라서 그런지 지나가는 사람 사이에 동양인이 많이 보였지만, 그래도 외국에 나왔다는 느낌은 확실히 들었다.
한국에는 없는 햄버거 프랜차이즈 ‘아웃 앤 아웃’에서 주문하는 메뉴판이 영어였으니까.
“어…. 더블더블버거 세트 플리즈.”
“You mean Double double burger combos right?”
“예스! 예스.”
“6 dollar 70 cents.”
영어를 잘 못하는 사람들이 많이 오는 지역이었기 때문인지, 개떡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듣는 것이 느껴졌다.
빠르게 나온 메뉴를 받아들고 창가에 있는 자리에 앉아 밖을 바라보며 먹는데, 그저 흔하디흔한 햄버거가 아니었다.
두꺼운 패티와 그 사이에 배어든 소스. 큼지막한 양파와 양상추까지 정말 환상의 하모니가 따로 없었다.
“와. 어떻게 이렇게 햄버거를 만들지? 너무 맛있다.”
햄버거를 한 입 베어 물고 콜라를 마시는데 평소에 마시던 콜라의 맛이 아니었다.
한 입만 먹어도 살이 찔 것 같은 찰진 칼로리 덩어리가 느껴지는 맛에, 다이어트 콜라의 밍밍한 맛이 섞여 마음에 들지 않았다.
“다이어트 콜라야? 왜 이걸 말을 안 해 주지?”
시욱은 미국은 설탕 세 때문에 일반 콜라를 시키려면 따로 말하고 돈을 더 내야 한다는 것을 몰랐기에, 속으로 투덜대며 햄버거를 먹었다.
창밖에 보이는 영어 간판들과 지나다니는 외국인들. 그제야 시욱은 자신이 ‘바이브’에 참가하기 위해 미국에 왔다는 실감이 들었다.
남들은 보통 처음에는 여행으로 해외에 나가 본다고 하던데, 자신은 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이곳에 와 있다는 것.
그 대회에서 탈락하게 된다면 다시 이전의 삶으로 돌아가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조금은 압박감이 느껴졌다.
이렇게 여행하는 기분을 느낄 때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안 되겠어. 숙소에 돌아가면 바로 연습부터 해야지.”
누구도 대답해 주지 않는 외국에서 느끼는 불안감에 혼잣말로 다짐하며 햄버거 가게를 나섰다.
그리고 시욱은 바이올린을 들고 숙소에서 가까운 공원에서 자리를 잡았다. 지나가는 사람도 거의 없고 조용한 것이 연습하기는 딱 맞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한국인에게 가장 많이 알려진 클래식 곡 중의 하나인 사랑의 인사를 2차 예선에서 연주하기로 했기에, 평소에 하던 것처럼 조율을 하고 활을 오른손에 쥐었다.
처음에는 조율기를 사용해서 음을 맞췄지만, 지금은 조율기가 없이 맞춰도 어긋나는 일이 없을 정도였다.
대학교 1학년을 마치고 군대를 다녀온 뒤 음악에 관심을 두기 시작했던 시욱.
그의 손에 쥐어진 것은 연습을 하려고 홍대 길거리에 있는 악기상에서 구매한 20만 원짜리 연습용 바이올린과 활 세트.
바이올린을 시작한 지 벌써 6년이 되어가지만, 이것보다 좋은 바이올린을 구매하지는 못했다.
항상 삶에 치여 먹고사는 것도 버거웠기 때문에.
카앙, 카캉-
너무 긴장한 탓인지 연습인데도 활을 잘못 그어 이상한 소리가 들리기도 했지만, 시욱은 오히려 눈을 감으며 계속 연습을 했다.
3분의 연주 시간인 사랑의 인사를 얼마나 반복해서 연주했는지 기억도 나지 않을 때.
짤랑-
연주하는 자리 옆에 내려놓은 가방에 누군가가 넣어주는 동전 소리가 들려 왔다.
‘아차. 버스킹하러 온 것이 아닌데. 가방을 열어 뒀었나?’
주로 버스킹을 하는 사람들이 악기의 가방을 열어 두고 연주를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적이 있었다.
시욱은 속으로 그런 생각을 하며 그제야 눈을 뜨고 주변을 바라보았다.
저녁 공원에서 가던 걸음을 멈추고 자신의 연주를 들어 주고 있던 열 명 정도 되는 사람들.
그들이 자신을 위해 가던 길을 멈추고 이 자리에 서서 들어 주고 있다는 것을 알아채고, 시욱은 자신도 모르게 연주를 멈추었다.
휘이익~
“Go ahead~! (더 해 줘!)”
“Keep going! (계속해!)”
연주를 멈추자 들려 오는 박수와 휘파람 소리, 계속 연주를 하라는 말소리. 상상 속에서도 전혀 본 적이 없는 광경.
자신이 태어났던 곳에서는 어디를 가더라도 짐 덩어리 취급만 받던 시욱이, 지구 반대편에 와서 사람들에게 환호를 받고 있었다.
“고마워요. 고마워요….”
영어로 대답해야 한다는 것도 잊고 한국어로 고맙다고 말을 하는 시욱에게 다가와 손을 내미는 사람.
“You damn good! (너 진짜 잘하는구나!)”
계속하라는 말에도 연주하지 않자, 끝났다고 생각했는지 다가와서 인사를 건네는 사람들과 악수를 하며 시욱은 얼떨떨했다.
그리고 가슴속에는 사람들에게 건네받은 찡한 울림이 남아, 바이브의 2차 예선까지 남은 기간 동안 시욱은 공원에서 매일 쉴 새 없이 연습을 했다.
내일은 드디어 2차 예선이 시작되는 날.
연습을 들어 주며 친해진 사람들은 각자 한마디씩 응원의 말을 하며 잘될 거라는 말을 해 주었다.
“Yo, Bro. You invited for Vibe right? Get a prize, man! Hit’em up! (너 바이브에 나간다며? 상 타라고! 모두 부숴 버려!)”
“땡큐, 땡큐!”
그들의 말을 모두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시욱은 용기를 얻을 수 있었다.
게다가 이곳에서 사람들과 친하게 지내며 나눈 대화로 영어에 대한 자신감도 조금 얻을 수 있었다.
***
“참가번호 96번, 96번.”
“네!”
“다음 차례입니다. 미리 준비하시고 신호가 들릴 때 앞으로 나오시면 됩니다.”
시욱의 번호인 96번이 불렸다. 커다란 헤드폰을 쓰고 있는 조연출은 준비하고 있으라 말하며, 시욱의 손에 쥐어진 바이올린에 무선 마이크를 장착해 주었다.
두근, 두근, 두근-
가슴 속에서 뛰고 있는 심장이 입 밖으로 튀어나올 것 같은 긴장감이 느껴진다.
시욱은 대기실에서 기다리고 있는 다른 사람들도 자신과 비슷하게 느끼고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주변을 둘러보았다.
고개를 숙인 채 기도하는 사람과 다리를 떨고 있는 사람, 그리고 눈을 감고 있는 사람이 눈에 띄었다.
총 백 명이 참가하는 이번 2차 예선에, 이 방에 남아 있는 사람은 시욱을 포함해서 다섯 명.
나머지 95명은 이미 그들의 차례가 끝나 이 자리에 남아 있지 않았다.
“후우~ 후우~”
심호흡을 하며 달려가는 심장을 잡아 보려 애쓰지만, 이미 시욱 자신의 힘으로는 제어가 불가능.
바이올린을 쥔 손에서 흐르는 땀이 나무 뒤판에 묻을까 쉴 새 없이 닦아내 줄 때,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Ready!”
대기실의 문을 열고 조연출을 따라 무대로 향하는 진한 붉은색의 커튼을 바라보았다.
쿵, 쿵, 쿵, 쿵-
아까보다 더 크게 뛰는 심장 소리가 귓가에 들려 온다.
“침착하자. 침착하자.”
늘 해 왔던 대로 혼잣말을 하며 자신을 다스려 보려 했지만, 다른 때와는 달리 먹히질 않았다.
커튼 앞에 서 있는 사람이 버튼을 눌러 커튼을 열자 밝은 빛이 새어 들어왔다.
어두운 곳에서 갑자기 마주한 밝은 빛에 살짝 눈을 찌푸렸다.
바닥을 향했던 고개를 들고 밝은 빛을 향해 걸어가려는 찰나.
“Good luck.”
등 뒤에서 작게 들려 온 말을 뒤로한 채, 시욱은 바이브의 무대를 향해 발을 내디뎠다.
“후우, 후우. 긴장하지 말자. 긴장하지 말자.”
생전 처음 서 보는 무대 위로 올라가자, 어두운 객석이 아닌 정면에 있는 세 명의 심사 위원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헛! 이정현!”
시욱은 자신도 모르게 소리를 내어 말을 했다. 그 말에 놀라 입을 틀어막았지만 이미 늦어 버린 상태.
분명 예선을 알리는 포스터에서는 이정현이 심사 위원으로 나온다는 이야기가 없었는데, 이곳의 심사 위원석에 앉아 있었다.
“아, 네. 안녕하세요. 이정현입니다. 예선에 참가하신 분들 중에서는 처음 뵙는 한국분이시네요.”
항상 TV에서만 보던 이정현을 마주하자, 시욱의 심장은 이미 터져나갈 정도로 뛰기 시작했다.
“후우, 후우.”
심호흡을 하며 어떻게든 정신을 차려 보려고 했다.
하지만, 모르는 사람들을 보았을 때 보다, 자신이 알고 있는 이정현을 마주쳤다는 것이 더 긴장을 하게 만들었다.
“긴장하지 말라고 말을 하면 아마 더 긴장하게 될 테니까, 아무런 말도 하지 않겠습니다. 하지만 시간을 너무 끄시게 된다면 실격 처리가 될 수 있어요.”
이정현의 옆에 앉은 광고에서 나온 인자하게 생긴 심사 위원이 말을 했다.
‘그래 지금 여기는 경연 대회다. 시간을 끌어서는 안 돼.’
꿀꺽-
침을 삼켜 보고 심호흡을 하면서 긴장한 자신을 어떻게든 되돌려 놓으려 애썼다.
땅을 바라보면서 심호흡을 하고 있던 중에 심장의 박동이 점차 원래대로 돌아오는 것이 느껴졌다.
최소한 수백만 명이 시청할 프로그램에서, 자신이 가장 좋아하고 자신 있는 곡을 연주할 시간이 왔다.
“참가번호 96번. 김시욱. 사랑의 인사를 연주하겠습니다.”
오른손에 활을 쥐고 바이올린을 턱의 아래에 고정시켰다.
“그러면, 시작하세요.”
시욱은 귀에 들려온 이정현의 목소리를 신호로 오른손에 쥔 활을 내리그었다.
음악이 싫은 음악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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