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musical genius who hates music RAW novel - Chapter 81
080화
[2034년 1월 전 세계 역사상 가장 큰 클래식 이벤트가 지금 시작됩니다!]는 세상에 존재하는 그 어떤 클래식 콩쿠르보다 큰 백만 달러라는 상금을 걸고 시작되는 이벤트로, 크게 외치는 진행자의 말과 함께 시작되었다.
지금까지 있었던 콩쿠르에서는 돈보다는 명예를 우선시했고, 그 명예를 이용해 연주회를 하며 돈을 벌게 되는 시스템이었다.
하지만 이 바이브라는 프로그램은 처음부터 백만 달러라는 커다란 돈뿐만이 아니라, 세계 곳곳에서 몰려든 사람들 위에 올라섰다는 명예까지 제시함으로써 그 틀을 깨어 버렸다고 할 수 있었다.
[이 역대급 이벤트의 수상자를 가려낼 세 명의 심사 위원을 소개합니다! 먼저 비올리스트의 전설이자 커티스 음악 음악원의 총장 로베르토 디아즈!]청중들의 박수 소리와 함께 붉은색 커튼을 열고 등장한 첫 번째 인물은 비올라계의 거장 로베르토 디아즈. 커티스 음악원은 전교생이 수백 명밖에 되질 않는 작은 학교지만, 미국의 클래식계에서는 첫 번째로 꼽는 학교.
이 학교의 총장이 직접 출격했다는 것은 어지간한 콩쿠르 이상의 파괴력이 있었다.
로베르토가 당당한 발걸음으로 무대를 지나 자신의 이름이 쓰여 있는 자리에 가서 앉자, 카메라가 심사 위원들이 앉을 자리를 비추었다.
로베르토의 자리 옆에 보이는 명패에 붙은 이름은 페르디난트 뢰베.
[그리고 오스트리아 빈에서 이곳까지 참가자들을 심사하기 위해 찾아온, 빈 필하모닉 관현악단 지휘자 페르디난트 뢰베!]유럽의 대표 관현악단이라고 할 수 있는 빈 필하모닉의 현역 지휘자가 등장하자, 청중들은 조금 전보다 더 열광하며 소리를 치기 시작했다.
***
“아니 대체 왜 자리에 앉아서 기다리면 안 되는 거야. 다리 아프게.”
“심사 위원석 가운데에 있는 자리에도 천 같은 걸 씌워서 가려놨던데?”
무대의 커튼 뒤에서 내가 나갈 차례를 기다리며 크리스에게 불평불만을 쏟아내었다.
겨울이 시작된 11월 말에 촬영하는 것도 불만인데, 오늘은 LA에서 1년에 한두 번 내린다는 비까지 내려 오는 길까지 막혀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었으니까.
게다가 홈페이지에서 저 둘의 얼굴은 보여 주었지만, 이상하게 나의 존재를 비밀로 하는 것처럼 쉬쉬하며 보여 주질 않았다.
“얼굴에 화장품 바른 곳이 가려워. 긁으면 안 되겠지?”
“그거 한 시간도 넘게 한 메이크업이야. 녹화 시간 동안만 참아 봐.”
이게 뭐라고 긴장해서 조금 볼이 가렵기 시작했다. 셔츠에 메어놓은 나비넥타이까지 목을 조이는 느낌이 들어 손가락을 넣어 조금 느슨하게 만들어 주었다.
쓸데없이 클래식에 맞는 복장으로 드레스 코드를 지정하는 바람에, 전에 입던 옷을 입고 나왔는데 살이 쪄서 목이 조금 조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역사상 가장 많은 클래식 콩쿠르 우승자를 이 자리에 모셔 보겠습니다! 심사 위원 이정현!]길고 긴 기다림의 끝에 드디어 사회자가 나의 이름을 부르며, 내가 앉을 가운데 자리에 있는 천을 걷어내는 것이 모니터에 보였다.
“그러면, 다녀올게.”
“사람들한테 너무 심한 말 하지 말고, 적당히 돌려서 말해 줘.”
벌써 내가 무슨 말을 할지 걱정하기 시작하는 크리스를 뒤로한 채, 나는 무대로 향했다.
조연출이 붉은 커튼을 옆으로 조금 당겨 내가 지나갈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주었다.
어둡던 커튼의 뒤편에서 무대로 올라갈 때 눈을 찌르는 조명이 쏘아졌지만 최대한 찡그리지 않고 미소를 지었다.
쏟아지는 함성과 사람들의 박수 소리가 들려온다.
객석과 카메라에 손을 흔들어 답해 주고, 천천히 몸을 돌려 정면에 객석을 등지고 앉는 심사 위원석을 향할 때 사회자가 나를 불렀다.
“잠시만요. 우리의 비밀 심사 위원 이정현 씨를 잠시 모시고 이야기를 나눠 보도록 하겠습니다.”
응? 뭐야. 대본에 없는 거 하지 마.
갑자기 커다란 헤드셋을 낀 연출 보조가 달려와 마이크를 가져다주었다.
“지금까지 인터뷰를 제외한 그 어떤 방송에도 출연하지 않으신 것으로 아는데, 저희 프로그램의 심사 위원으로 나와주신 이유가 있을까요?”
“어…. 질문을 받을 거라 예상하지 못해서 조금 당황스러운데요.”
당황해하는 표정으로 대답하자 이곳에 있는 모든 사람이 소리를 내어 웃었다.
“가장 먼저 말씀드릴 것은, 저는 기존의 클래식 콩쿠르에 불만 같은 것은 없다는 점입니다. 그저 제가 데려다 함께 작업하고 싶은 사람을 찾기 위해 이 자리에 나왔습니다. 좋은 연주자는 찾기가 굉장히 어렵거든요.”
이 프로그램의 컨셉이 기존의 전통적인 콩쿠르의 틀을 깬다는 것이라서, 기존 클래식에 불만을 품고 있다고 느낄 사람도 있기에 나는 그렇게 대답했다.
“오, 그러면 벌써 다음 앨범들을 만들고 계셨다는 건가요? 이 정보 저희 프로그램에서 최초 공개가 되는 건가요?”
“음악이 만들어지는 것은 어떻게 보면 교통사고 같은 겁니다. 갑자기 찾아오는 거죠. 그런데 갑자기 찾아온 그 순간에 연주자를 찾으면, 괜찮은 사람들은 모두 공연을 하고 있어 찾기가 어렵습니다. 그래서 미리 준비하려는 것뿐입니다.”
적당히 만들어진 대답을 하면서 본능적으로 가려워진 볼을 긁었는데 손톱에 화장품이 긁혀나온 것이 보였다.
젠장. 아직 녹화 시간이 몇 시간은 더 남았는데….
“답변 감사합니다!”
사회자의 그 말을 끝으로 나는 내 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
“이렇게 각 분야에서 이미 최고의 자리에 계신 세 분이 참가자 여러분을 심사하게 됩니다! 참가자들이 갖고 있는 바이브를 지금 바로 경험해 보시죠!”
카메라를 향해 선언하는 사회자의 말이 본격적인 경연의 시작을 알렸다.
스튜디오 촬영 전에 제작진 측과 함께 영상으로 걸러냈던 1차 예선 참가자의 숫자만 해도 수십만이라고 들었다. 이 세상에 이렇게 많은 악기 연주자가 있었나 싶을 정도로 많은 사람이 참가를 했다.
나의 경우에는 영상에 집어넣는 용도로 사용한다고 한두 시간 정도만 영상 심사에 참여했지만, 이 심사에 든 시간만 해도 대략 한 달이 넘게 걸렸다고 들었다.
지난번에 촬영한 심사위원들 세 명이 모이는 장면도, 사전 광고에서는 내 모습이 등장하지 않고 본방이 시작 되어야 등장한다고 한다.
“후…. 이제 한숨 돌리겠네요. 왜 갑자기 대본에도 없는 질문을 하는지.”
“하하. 저였다면 돌발 상황에 대처하기보다는 그냥 무시하고 자리에 앉았을 것 같습니다.”
나의 말에 옆자리에 앉은 페르디난트가 대답해 주었다.
그가 지휘자였던 때의 빈 필하모닉과는 아주 어릴 적 성악 연주에서 함께했던 기억이 있기에, 그나마 이 자리에서 익숙한 사람이라고나 할까.
빈 필하모닉은 전통적으로 상임 지휘자가 없이 매년 바뀐다. 오케스트라의 독립성을 유지한다는 전통 때문인데, 상임 지휘자가 없기에 다른 오케스트라에 비해 독특한 음색을 들려주기도 한다.
보통 상임 지휘자가 있다는 것은 그 사람의 뜻대로 오케스트라를 이끌어 나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 말은 기존의 오케스트라 연주 스타일이 바뀔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빈 필하모닉은 그걸 원하지 않는 것뿐이고.
단원들의 투표로 정해지는 빈 필하모닉의 지휘자를 가장 많이 맡았던 사람이, 바로 지금 내 옆에 앉은 페르디난트 뢰베였다.
“1차 예선 참가 때 눈여겨보셨던 사람은 좀 있었나요?”
“저는 1차 예선에는 참가하지 않았습니다. 어제 오스트리아에서 넘어왔거든요. 내년은 악단을 맡지 않기로 하면서 이쪽에 출연을 결정하는 데 시간이 좀 걸렸습니다.”
앗. 1차 예선의 영상을 안 봤다니…. 말을 이어 나갈 수가 없잖아. 설마 나만 본 거야?
가장 끝에 앉은 비올리스트 출신 총장이라고 하신 분은 잘 모르는 분이라 말 꺼내기가 좀 조심스러웠다.
“저는 되도록 1차 예선 때 많은 시간을 쓰려고 했습니다. 학생들을 가르치는 입장이라 최대한 많은 기회를 주고 싶었거든요.”
“아….”
로베르토는 학교 총장이라서 그런지 굉장히 너그러운 말투로 이야기했다.
그때 귀에 꽂힌 인이어 이어폰으로 연출진의 신호가 들렸다.
-1번 참가자 들어갑니다.
거대한 그랜드 피아노가 등장하며 사회자가 내려가 비어 있던 무대를 가득 채웠다.
진한 진홍색의 몸에 달라붙는 드레스를 입고 등장한 첫 번째 참가자는, 심사 위원과 청중을 향해 가볍게 인사한 뒤 피아노 벤치에 앉았다.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에 부담이 되었는지, 건반을 바라보고 심호흡을 한 뒤 손가락을 얹어 놓았다.
눌렀는지 안 눌렀는지 집중을 하면 제대로 들리지 않을 정도의 터치로 시작되는 멜로디.
페달링과 함께 손끝에서 펼쳐지는 달빛이 스튜디오를 채워 넣었다.
그녀가 연주한 곡은 드뷔시의 달빛. 분위기 있는 곡이지만 이런 축제 같은 분위기에서 들려 주기에는 너무 분위기가 있는 곡이라고 할까.
잔잔하게 흘러가는 그 선율에서 격정적인 하이라이트 파트가 지나가고, 5분이라는 시간이 지나 곡이 마무리되었다.
쏟아지는 관객들의 박수 소리에 자연스럽게 자리에서 일어나, 마치 콩쿠르나 연주회에서 연주한 것처럼 허리를 숙여 인사를 한다.
그리고 의기양양한 얼굴로 심사 위원석을 바라본다.
첫 번째로 입을 연 것은 로베르토.
“연주 잘 들었습니다. 섬세한 터치가 듣기 좋네요. 저는 합격입니다.”
그가 결정 버튼을 누르자, 자리의 앞에 보이는 LED 패널에 녹색의 PASS라는 글자가 떠올랐다.
“저는 굉장히 능숙한 감정 처리에 점수를 주고 싶네요. 아직 완벽하다고 볼 수는 없겠지만, 장차 독주가로 성장할 수 있는 여력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역시 페르디난트의 자리에도 녹색 글자가 들어왔다.
앞의 두 명이 호평을 했는데 내 귀에는 그렇게 좋은 연주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너무 조심스러웠다고 할까. 과감할 때는 과감하게 치고 나가야 하는데 미스 터치를 두려워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 연주라고 생각했으니까.
“음…. 저는 자신감을 좀 가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틀리는 걸 너무 두려워하는 것 같아요. 아무래도 대부분의 콩쿠르가 틀리는 것에 감점이 크다 보니, 그런 성향이 되신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내 자리 앞에 있는 패널에 올라온 붉은색 글씨. Fail.
어차피 만장일치로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서 3차 예선에는 올라갈 수 있다.
[2표 획득으로, 2차 예선 통과하셨습니다.]장내에 들려 오는 방송에 무대를 내려가는 1번 참가자가 뒤를 돌아 나를 한번 바라보았다.
내가 너무 심사 위원이라는 것을 쉽게 본 건가. 저 눈빛은 원망하는 눈빛이잖아.
첫 번째 참가자가 무대에서 내려가고 나서야, 지금 이 자리에서 평가하는 것은 콩쿠르의 심사 위원과는 다르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적어도 그들은 얼굴을 마주한 상태로 결과를 발표하지는 않으니까.
“후아. 눈을 괜히 마주쳤나 봐요. 원망하는 느낌이 드는데….”
“그럴 수밖에 없죠. 아무래도 걸린 상금이 백만 달러 아니겠습니까. 두 표를 획득해서 통과하기는 했지만, 사실 참가자들이 상위 라운드 진출보다 더 많이 원하는 것은 이정현 씨의 눈에 드는 거라고 볼 수 있거든요.”
“제 눈에 들어서 뭐가 좋은데요?”
“단 몇 곡만 써 주셔도 저작권 수익으로 평생 먹고살 수 있게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당장 눈앞의 백만 달러보다 장기적으로는 그쪽이 더 가치가 있을 테니까요.”
와…. 그건 전혀 생각 못 했는데. 아니 아예 누군가에게 독주곡을 써 줄 거라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음악들을 조금은 제어할 수 있게 되면서, 독주곡은 한 번도 떠올린 적이 없었으니까.
“저는 이정현 씨가 그런 생각을 하실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항간에는 다른 사람의 눈치를 전혀 보질 않는 사람이라는 소문이 있어서요.”
로베르토는 웃는 얼굴로 나에 대한 안 좋은 소문을 이야기해 주었다. 내가 다른 사람의 눈치를 전혀 안 본다니….
대체 소문 속의 나는 얼마나 나쁜 놈인 건가.
“제가요? 전혀 그렇지 않아요. 물론 미디어나 다른 쪽을 신경 쓰지 않는 것은 맞지만….”
“오히려 그쪽이 더 부담되어야 하는 것 아닙니까?”
나는 이해가 되질 않는다는 투로 말을 하는 둘을 바라보며 말했다.
“미디어는 남들에게 상처를 주거나 파헤치는 일이 직업인 사람들이지만, 여기에 참가하는 사람들은 일반인이잖아요. 모르는 사람들에게 상처를 줄 수도 있으니까, 저는 이쪽이 더 부담되네요.”
심사 위원이라는 거 생각보다 부담되는 자리네. 어릴 때 TV에 나오던 사람들은 굉장히 쉽게 쉽게 평가하던데.
-96번 참가자 들어갑니다.
그때 다음 참가자가 입장하는 것을 알리는 소리가 귀에 꽂힌 이어폰으로 들려 왔다.
그렇게 하루에 오십 명이 연주하는 것을 듣고 평가해야 하는 2차 예선의 이틀째.
수십 명의 참가자의 연주를 듣고 드디어 끝이 보이기 시작했다.
“후아. 백 명이라 얼마 안 될 거라 생각했는데 엄청 많네.”
긴 시간 동안 집중해서 들으며 피곤해진 몸의 여기저기를 주무르고, 고개를 돌려가며 스트레칭을 하고 있을 때 한국어가 들려왔다.
“헛! 이정현!”
무대를 바라보자 그냥 봐도 긴장해서 온몸을 떨고 있는 것 같은 한국인 남자가 서 있었다.
“아, 네. 안녕하세요. 이정현입니다. 예선에 참여하신 분 중에서는 처음 뵙는 한국분이시네요.”
그 96번 참가자에게 한국어로 답해주자, 그는 전보다 더 얼굴이 창백하게 바뀌기 시작했다.
왜지? 왜 나를 보고 더 긴장하는 거야.
뢰베가 무어라 말을 해주는 것이 들리고, 남자는 심호흡을 하며 마인드 컨트롤에 들어갔다.
클래식 콩쿠르에서는 자신의 차례에서 긴장을 지우기 위한 루틴을 실행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 어떤 콩쿠르에 가더라도 조금씩은 기다려준다. 그 시간을 너무 오래 끌면 실격이지만.
그의 창백해졌던 얼굴이 조금 괜찮아지기 시작했을 때, 내 손에 쥐어진 마이크에 입을 가져다 대고 말했다.
“그러면, 시작하세요.“
음악이 싫은 음악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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