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musical genius who hates music RAW novel - Chapter 82
081화
키킹-
바이올린의 현을 내리긋는 첫 도입부에서 갈라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건 연주자의 실력에 문제가 있다기보다, 오래 사용할 수 있는 금속 현을 사용하고 있다는 것.
부드러운 음색을 들려 주는 거트현이 아니라 연습용 바이올린에 끼워 사용하는 현을 사용할 때 주로 발생한다.
바이올린은 보디와 현의 가격이 음색으로 드러나는 가장 대표적인 악기.
정말 좋은 소리를 내는 거트현은 비싼 가격에도 불구하고 1주일밖에 사용을 못 한다. 취미로 시작한 사람이 좋은 소리를 듣기 위해 매주 그 돈을 투자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연주가 직업인 사람들도 중요한 연주회에서만 사용하는 현이니까.
클래식의 대표 악기라고 하는 바이올린뿐만이 아니라 교향악에 사용되는 활과 현을 마찰시켜서 소리를 내는 찰현악기의 현은, 튕겨서 소리를 내는 실용 음악이라고 불리는 기타나 베이스의 현에 비해 굉장히 비싸다.
도입부에서 들려온 소리에 실망했지만 그 실망감은 오래 가지 않았다. 96번 참가자는 내가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좋은 연주를 들려 주고 있었으니까.
“오, 이런 연주는 꽤 오랜만에 들어 보는군요.”
“콩쿠르에서는 들을 수 없는 연주 스타일입니다.”
양옆에 있는 두 명의 심사 위원의 말처럼 일반적으로는 볼 수 없는 연주 스타일이었다.
클래식계에서 일반적으로 들을 수 있는 연주 스타일은 악보를 똑같이 따라가는 것. 악보의 특징을 적혀 있는 대로 재현하는 것이 가장 쉽게 높은 점수를 얻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이 연주의 가장 큰 단점은 연주자 개인의 개성이 사라진다는 것.
이런 이유로 한국의 연주자는 외국의 연주자에 비해 높은 대우를 받지 못한다. 악보대로 연주하는 것에 너무 익숙해서, 연주자의 개성을 드러내야 하는 독주나 협주에서 매력이 느껴지지 않기 때문이다.
시키는 대로 하는 동양과 개인의 개성을 중시하는 서양 문화의 차이랄까. 그런 의미에서 김시욱의 연주는 한국인에게는 정말 보기 힘든 스타일의 연주라 할 수 있었다.
“상당히 독특하네요. 사랑이 충만함을 이야기하는 원곡과는 다르게 사랑해 달라고 말하는 것 같아요.”
“이정현 씨도 그렇게 느끼셨습니까?”
과거 팝과 클래식 그리고 힙합을 섞은 음악을 발매하며, 세계적으로 굉장한 인기를 끌었었던 스윗박스의 음악과 비슷한 느낌이 들었다. 굉장히 현대적인 연주.
여운을 남기는 긴 보잉으로 연주를 끝낸 96번 아니, 김시욱의 연주는 이름을 기억하고 싶을 만큼의 파급력을 갖고 있었다. 클래식적으로 굉장히 뛰어난 연주라고 보기는 어려웠지만, 자신만의 독특한 색을 갖고 있었으니까.
심사 위원석 뒤의 관객석에서 박수 소리가 들려왔다.
그제야 김시욱은 바이올린을 켜는 자세를 풀고 객석을 향해 허리를 숙여 인사를 했다.
“굉장히 인상 깊은 연주 잘 들었습니다. 다른 분들이 연주하는 사랑의 인사와는 굉장히 다른 느낌으로 연주를 했는데, 그렇게 연주를 한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어…. 음….”
뢰베의 독일어 억양이 섞인 물음에 김시욱은 대답하지 못했기에, 내가 한국어로 해석해서 전달해 주었다.
저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나도 처음에 독일어나 프랑스어의 억양이 섞인 영어는 정말 알아듣기 어려웠으니까.
“영어로 대답하기 어렵다면 한국어로 해도 됩니다. 제가 통역해 드릴게요.”
내가 한 말에 김시욱은 안심했는지 그제야 미소를 지으며 말을 했다.
“제가 음악에 관심을 두기 시작했을 때, 처음 들었던 곡이 지금 앞에 앉아 계신 이정현 님의 곡이었습니다.”
“오! 그랬군요. 듣고 따라하기는 굉장히 어려운 곡이었을 텐데요.”
응? 5~6년 전에 내 이름이 붙어 있던 앨범은 밖에 없는데, 초보자가 그 곡에 손을 댔다고? 숙련자도 어려워하는 곡인데.
“그때가 군대를 제대하고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는데, 스무 살이 넘어서 음악을 듣고 눈물을 흘린다는 게 부끄럽더라고요. 태어나서 처음이었어요.”
이걸 통역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말이 길게 나온 건 둘째치고 여기에서는 안 먹힐 너무 한국적인 신파란 말이지. 아 몰라. 해 주기로 했으니 해 주자.
“어디에 나갈 것도 아니지만 혼자 꾸준히 연습했습니다. 그러다 다른 사람들이 만들었던 곡들도 들어 보다, 그중에 첫사랑을 떠올리면서 연습했던 곡이 사랑의 인사였습니다.”
내가 생각하던 이유는 아니었네. 한국 사람들이 좋아하는 클래식 랭킹 상위권에 있어서 좋아하게 된 줄 알았는데.
에드워드 엘가가 서른두 살에 만든 사랑의 인사 (Salut d’Amour) 는 자신의 약혼녀를 위해서 만든 소품이었다. 영국인인 에드워드 엘가의 곡에 프랑스어로 만든 제목이 붙은 것이 재밌기는 한데, 중세시대 영국의 언어를 살펴보면 쉽게 알 수 있는 점이다.
귀족들은 프랑스어와 독일어를 사용했으니까.
음악에 크고 작은 것이 어디 있겠느냐만, 적은 수의 악기를 사용하는 짧은 클래식 곡을 부르는 미니어처 (Miniatures)라는 말을 일본에서 그대로 직역하며 소품이라는 말이 되었다.
이 곡이 인기가 많은 한국에서는 가요에서도 샘플링되었던 적이 있고, 제목까지도 동일했다.
“잘 들었습니다. 저는 96번 참가자의 이러한 개성은 지켜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합격입니다.”
로베르토는 당연히 합격을 줄 것으로 생각했다. 이 사람은 불합격을 준 사람에게도 굉장히 따듯한 조언을 해 주었었는데, 아무래도 그게 교육자라는 입장 때문이 아닐까 싶었다.
“저도 같은 이유로 합격에 한 표입니다.”
뢰베는 내가 생각하던 그 이미지보다 훨씬 엄격한 사람이었다. 합격을 주는 일이 드물었고, 대부분의 지적은 기본기를 향했다.
“일단 결과만 말씀드리자면 저도 합격입니다. 다른 곡을 더 들어 보고 싶은데, 그건 본선을 기대해 보겠습니다.”
솔직히 한 곡만 갖고 합격자와 불합격자를 나누는 것은 이상하다. 간혹 한 곡만 특출나게 잘 연주하는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한때 에릭 클랩튼의 Tears in Heaven이라는 곡이 인기가 많았던 시기에, 대부분의 어쿠스틱 기타 연주자는 그 곡을 연주할 줄 알았다.
기타 전용 악보인 타브를 보더라도 감미로운 멜로디와는 다르게 굉장히 복잡한 곡임에도, 대부분의 사람이 연주를 할 수 있었다는 거지.
그래서 다른 곡을 들어 보고 싶었다. 한 곡에 특화된 사람을 본선에 올리는 것은 말이 안 되는 일이니까. 그리고 지금 무대에서 연주를 끝낸 김시욱이라는 사람 역시 그럴 가능성이 높아 보였다.
하지만 시간은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이 자리에서 다른 곡을 청하는 것은 말이 되질 않는다.
그리고 그의 뒤에 나왔던 네 명의 다른 참가자들의 연주가 끝나고 나서야 예선이 마무리되었다.
“계속 집중해서 듣는 게 생각보다 엄청나게 힘드네요. 항상 이 자리에 앉아 있는 사람들에게 심사를 받는 입장이었기 때문인지 쉽게 보였었는데….”
“지금은 예선이라 크게 상관은 없을 수도 있습니다만, 대대적으로 치러지는 본선에서는 더 힘드실 수도 있습니다.”
“그렇죠. 멘토링도 해야 하니까요. 자기가 가르친 학생이 연주하는 곡을 듣고 평가하는 일은 정말 힘든 일이거든요.”
두 거장은 처음 겪는 일에 힘이 들어 하는 나에게 위로는 하지 않고 아직은 쉬운 과정이라는 말을 했다. 위로를 하란 말이야.
“그런데 참가자 백 명 중에 통과자가 여섯 명밖에 되질 않네요.”
백 명의 예선 통과자 중에 세 명의 심사 위원이 합격시킨 사람은 달랑 여섯 명뿐이었다.
“그건 저희가 신경 쓸 문제가 아닙니다. 제작진 측에서 알아서 하겠죠. 열 명을 뽑겠다고 말을 했지만, 본선에 나갈 실력이 되질 않는 걸 어떻게 하겠습니까.”
“게다가 본선 시드에 올라온 사람이 누구인지 저희에게도 알려 주지 않은 것을 보면, 뭔가 꾸미는 것이 있는 것 같기도 합니다.”
‘방송국 놈들은 속이 시커멓다. 항상 무언가를 꾸미고 있다.’ 이런 이미지는 어디에 가든 있구나.
솔직히 방송에 나갈 내 모습이 걱정되기는 했다. 내가 합격을 준 건 백 명의 참가자 중에 겨우 두 명뿐이었기 때문이다.
그 두 명 중의 한 명은 같은 한국 사람이었기에, 편파적인 심사라는 말을 들을 수도 있었다.
뻣뻣해진 목덜미를 주무르며 예선이 끝난 울프 플라자에서 나와 집으로 향했다.
그렇게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
“나 당분간은 집에서 쉴 거야. 어차피 지금은 회사에 나가도 크게 할 일 없잖아. 방송 녹화 때문에 자주 나가지도 못하고.”
“그래. 알았어. 지금 회사도 좀 한가하니까.”
심사 위원이라는 것에 어려울 것이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생각보다 엄청나게 피로한 일이었다.
다행히도 예선의 방송이 2주는 나갈 것이라고 했기 때문에, 한 주 간은 쉴 수 있었기에 나는 집에 머무르고 있었다.
오늘부터 시작되는 바이브는 울프 TV를 통해 전국으로 방영된다. 저녁에 시작되는 바이브 본방송 사수를 위해서 뒷마당의 선베드에 누워서 체력을 비축 중.
다음 주에는 심사가 아니고 멘토링을 해야 할 사람을 뽑는 일종의 오리엔테이션. 예선 때처럼 그렇게 신경을 쓸 일이 없겠지만, 그래도 컨디션 관리는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으니까.
“요즘 들어 느끼는 건데, 체력이 부족한 것 같아.”
“그러게 내가 운동 꾸준히 하면서 관리하라고 했잖아. 맨날 운동도 안 하고 패스트푸드만 먹으면서 체력이 부족하다고 말을 하면 안 되지. 사람이 양심이 없어.”
“크리스 너, 요즘 말하는 게 우리 엄마 같은 거 알아?”
“…….”
어머니랑 비슷하게 잔소리가 많아지길래 이야기했더니 삐졌는지 갑자기 볼을 부풀리는 크리스. 뾰로통해진 얼굴로 나를 바라본다.
“알았어! 운동 열심히 할게….”
“진작에 그랬어야지.”
그렇게 말하고 나서야 부풀었던 볼에서 바람이 빠졌다. 쟤는 처음에는 그렇게 소심하던 애가 이제는 조금 억척스러운 분위기가 되어 버렸다. 나 때문인가.
“아, 그리고 안젤리나한테 음악 많이 듣고, 꾸준히 곡 만들어서 나에게 들려 달라고 해 줘.”
“그렇게 안젤리나가 신경 쓰이면 차라리 여기에 와 있으라고 해 줄까?”
“아니, 그건 싫어. 혼자서 아무 생각 없이 여기 누워 있는 게 좋다고.”
그렇게 크리스를 돌려보내고 선베드에 누워 종일 선선한 캘리포니아의 겨울을 느끼다, 예선전의 본방송을 사수하기 위해 집으로 들어와 TV의 전원을 켰다.
“생각보다 편집이 꽤 자극적이네.”
악마의 편집이네 뭐네 하는 말은 많이 들어 봤지만, 내가 예능에 출연한 적이 없었기 때문에 알지를 못했었다.
하지만 순서를 이렇게 뒤집어 놓으니 그렇게나 밋밋하게 흘러갔던 심사가 꽤 스펙타클한 장면이 되었다.
아직 예선에서 가장 독보적인 연주를 선보였던 김시욱이 나오지는 않았음에도 상당히 자극적인 편집 점을 잡아 놓았다. 특히 내가 하는 말에 무게를 엄청나게 둔 느낌.
본방 사수를 하며 재밌다는 느낌을 받았다. 아무래도 아메리칸 아이돌이 30년 동안 진행되며 조금 식상했기 때문인지, 이런 아이템이 더 잘 먹힐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 이 시간-]하지만 본방송이 끝나고 보이는 예고편에서 보인 장면에 나는 이 한마디를 내뱉을 수밖에 없었다.
“진짜…. 방송국 놈들이란….”
자극적인 타이포와 내가 방송 전에 촬영했던 티저 영상의 모습이 지난번 광고처럼 어둡게 처리되어 누군지 알아볼 수 없게 나왔던 것과는 반대로 창샤오위와 대칭되게 편집이 되어 있었다.
특히 포스터에 사용할 거라던 사진은 내가 마치 위에서 창샤오위를 내려다보고 있었고.
아무리 자극적인 게 시청률에 도움이 된다고 해도 이런 식으로 국제적인 이슈였던 걸 써먹네…? 설마 이거 처음부터 계산하고 만든 건 아니지?
“내가 마치 악당 같잖아….”
음악이 싫은 음악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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