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musical genius who hates music RAW novel - Chapter 83
082화
“하…. 진짜 방송국 놈들. 아닌 척하더니 시청률에 목숨을 거는구먼.”
그래도 다음 회 예고에 RPG 게임의 끝판왕처럼 묘사된 나를 보면서 생각보다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수퍼히어로 영화에 보면 매력적인 빌런들이 많으니까, 그런 역할도 나쁘지 않은 것 같기도 하고.
하지만 심사 위원과 참가자의 사이라면 당연히 심사 위원이 유리하지 않을까? 참가자가 심사에 불만을 느끼더라도 할 수 있는 것은 없으니까.
게다가 국제 콩쿠르 우승자가 우승한 지 반년밖에 되질 않았는데, 오케스트라와 협연을 하는 것이 아니라 이런 방송에 나온다?
상금을 노리는 것이 아닌 이상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지금이 가장 이름값이 높아서 협연료와 실황 앨범으로 돈을 많이 받을 수 있을 때니까 말이다. 피아노니까 성악이랑은 다르게 독주 앨범 같은 것을 발매할 수도 있겠지.
PD에게 전화해서 항의를 해 볼까 했지만, 의미가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화제가 되는 구도를 만들어야 시청률이 오를 테고, 그것을 위해 나를 섭외했을 테니.
중국과 상대하지 않으려고 아무런 반응을 하지 않았었는데, 이런 식으로 장작을 넣으면 불이 붙지 않을 수가 없다. 게다가 같은 프로그램에 출연한다면 반응을 하지 않을 수도 없고.
문제는 멘토링. 다음 주에 멘토링 멤버를 뽑는 과정에서 방송국 놈들이 손을 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를 가르치는 것에 큰 재능이 없는 나로서는 사실 멘토링이 가장 걱정이 될 수밖에 없었다. 내가 뭘 배운 적이 있어야 남을 가르칠 것이 아닌가.
초반에 너무 아무 일이 없이 흘러가서, 끝까지 아무 일도 없을 거로 생각했던 내가 너무 순진했던 것 같네.
“악당이 되어 주기를 원한다면 악당이 되어 주지.”
아주 철저하게 말이야.
***
촬영 날, 정해진 시간보다 조금 일찍 울프 플라자 스튜디오에 방문해 담당 PD인 캐서린 도벡을 만났다.
“제 뒤통수를 아주 제대로 치셨네요? 아직까지 얼얼할 정도예요.”
“너무 나쁘게만 보지는 말아 주세요. 아시다시피 방송은 광고로 먹고사는 곳 아니겠습니까. 광고료를 많이 받기 위해 시청자 수를 올리는 기본은 관심사를 건드리는 것이니까요.”
내가 무시하려고 하지 않았다면 아직까지 미디어에서 장작을 활활 태우고 있을 것 같은 구도니까, 당연히 많이 볼 수밖에 없었겠지.
“미리 이야기를 해 주셨다면 그렇게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을 텐데, 살짝 기분이 나쁘더라고요.”
“다행입니다. 저는 조금 걱정하고 있었거든요. 그래도 예고편에서 최고 시청자 수가 나왔기 때문에 저희 예측은 맞아떨어졌습니다. 대결 구도가 되어야 시청자 수가 늘어날 거라는 예측이 있었거든요.”
“얼마나 나왔는데요?”
“예고편이 나간 순간에만 3,500만 명 정도입니다.”
시청률로 따지면 대략 12% 정도인가. 미국은 시청률을 퍼센테이지로 이야기하는 게 아니라 시청 인구수로 계산하기 때문에, 총인구수 대비 퍼센테이지로 계산하는 한국하고는 방식이 조금 다르다.
이 프로그램이 시작하기 전에 아메리칸 아이돌에서 보여 준 시청자 수는 대략 1천 2백만 명 정도라고 들었으니 꽤 높은 숫자였다.
1억 명보다 적은 사람이 보면 뉴스거리가 되는 미식축구 결승전 슈퍼볼보다는 당연히 적지만, 그건 어쩔 수가 없겠지. 추수 감사절 시기에 이루어지는 슈퍼볼은 온 가족이 함께 시청하는 미국인의 국민 행사 같은 느낌이니까.
시청자 수 1억의 슈퍼볼의 하프 타임 광고료가 30초에 5백만 달러라고 들었는데, 3천 5백만이면 얼마 정도 받는 걸까. 아무리 시청자 수가 늘어도 내 출연료는 변하지 않겠지만….
“다음부터 이런 일이 있으면 미리 말씀해 주세요. 이번처럼 집에서 TV로 보다가 놀라는 일이 생기지 않도록.”
“알겠습니다. 꼭 미리 말씀드릴게요.”
누가 나오건 사실 상관은 없다. 단지 방송을 통해 출연자인 내가 모르는 것을 알게 되었다는 것이 기분이 나쁠 뿐이었다.
담당 PD에게 불만을 이야기하고 돌아온 대기실에는 이번 일 때문에 임시로 고용한 메이크업 아티스트와 매니저인 크리스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물어봤어? 담당 PD는 뭐래?”
“뭐라긴, 예상했던 대로지. 시청자 수를 늘리기 위해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진짜 리 말대로 방송국 놈들은 믿을 수가 없네. 어떻게 이렇게 말도 없이 진행할 수가 있어.”
크리스의 입이 거칠어졌다. 영국에 있을 때는 사용하는 단어들이 꽤 부드러웠던 것 같은데, 미국에서 1년 정도 있으면서 미국식 영어가 입에 붙어 버렸다.
“됐어. 이미 벌어진 일에 짜증을 내고 화내 봐야 이미 벌어진 일이 바뀌지는 않으니까. 메이크업 부탁드려요.”
“하지만….”
“크리스, 더는 아무런 말도 하지 마. 대기실 안에도 카메라가 설치되어 있기 때문에, 안 좋은 소리를 하면 방송에 나갈 수도 있다고.”
나보다 더 화를 내는 크리스를 옆에 두고 메이크업을 시작했다. 화장품 냄새는 싫지만, 방송을 위해서는 메이크업을 해야 하니까.
게다가 왜 심사 위원의 방에 카메라가 달려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방의 천장 모서리에는 촬영용 카메라가 달려있었다.
안 좋은 말을 하면 그대로 가져다 쓰겠지. 그리고 논란을 만든 다음에 그걸로 시청자 수를 늘리는 불쏘시개가 될 거다.
딱히 내가 안 좋은 말을 하는 것이 방영되건 말건 그런 건 별로 상관없지만, 논란의 중심에 서고 싶지는 않다.
똑똑-
“촬영 30분 전입니다!”
언제나 그렇듯이 큼지막한 헤드셋을 쓰고 돌아다니는 조연출이 문밖에서 녹화 시간을 이야기해 주고 간다.
전쟁터로 향할 시간이 되어간다.
***
“수십만 명이 참여한 예선을 통과하여 이 자리에 올라온 참가자를 소개합니다!”
방송을 진행하는 진행자의 멘트에 따라 차례차례 등장하는 예선 통과자들.
피아노가 가장 많을 것으로 생각했던 나의 예상과는 다르게, 바이올린의 참가자가 가장 많았다.
“심사 위원님들이 멘토가 되어주실 텐데, 다들 마음의 준비는 하고 오셨나요?”
““네!“”
진행자는 무대 위에 줄줄이 서 있는 여섯 명의 참가자를 바라보며, 진행 카드에 나와 있는 대로 진행을 하기 시작했다.
“자, 여섯 명의 본선 진출자가 선택한 멘토 먼저 보여 드리겠습니다!”
무대의 뒤편에 설치된 커다란 화면으로 본선 진출자가 선택한 멘토들이 나왔다.
로베르토 디아즈 3명.
페르디난트 뢰베 2명.
그리고 나는 한 명.
예상했던 결과라고 생각했다. 내가 예선에서 사람들에게 준 점수가 좀 짜긴 했지.
그리고 상대적으로 사람들이 나를 어렵게 생각한다는 것이 느껴졌다. 멘토라는 것은 어떻게 보면 일대일로 맞춤 교육을 받는 것이라서, 교육자인 로베르토 디아즈가 인기가 많은 게 당연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누가 선택했는지 이름은 표시되고 있지 않습니다만, 의외의 결과가 나왔습니다! 디아즈 총장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하하하. 예선에서 보여 준 저의 모습만으로 가르칠 때도 편안하게 가르치리라 생각하신 것 같은데, 저는 생각보다 굉장히 엄한 사람입니다.”
진행자의 질문을 로베르토는 능숙하게 웃으며 받아넘겼다.
“자! 그렇다면, 이번에는 멘토분들의 선택 결과를 보여 주시죠!”
무대 뒤의 화면이 바뀌며 이번에는 멘토가 선택한 사람의 목록이 나왔다. 조금 전과는 다르게 익명이 아니라 각자의 이름이 보이는 실명.
내가 선택한 것은 김시욱 한 명. 나머지는 누가 누구인지 이름을 몰라서 선택할 수가 없었다. 다른 한 명에도 내가 합격을 주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그렇게 인상적이지는 않았으니까.
나머지 두 명의 심사 위원은 각각 두 명을 선택하여, 최종적으로는 선택받지 못한 한 명이 남게 되었다.
“결과가 흥미롭습니다! 하지만 각자 두 명의 멘티들과 함께하셔야 하므로, 한 명만 선택하신 이정현 씨에게도 두 명의 멘티가 할당되겠습니다.”
“아, 선택한 사람만 데리고 하는 것이 아니었나요?”
“네. 모두 동일한 인원과 함께하는 것이 룰입니다.”
그런 쓸데없는 룰을 만들다니. 한 명도 귀찮은데 두 명이면 두 배로 귀찮은 거 아냐.
그렇게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아무도 선택하지 않은 사람까지 두 명을 맡게 되었다.
누구지? 아무도 선택하지 않은 사람은?
한쪽 구석에 소심하게 고개를 떨구고 있는 여자아이가 보였다. 아이라고 하기에는 나이가 좀 있어 보이기는 하는데, 어떤 연주를 했었는지 기억이 잘 나질 않았다.
웨이브 진 연한 갈색 머리에 커다란 안경을 쓴, 키가 꽤 큰 여자였다. 고개를 숙이고 있어서 눈동자의 색은 보이질 않았지만, 연주가 전혀 기억이 나질 않는 것을 보면 큰 특징은 없는 것 아닐까?
“자신이 원하지 않은 멘토와 매칭이 된 분도 이 자리에 분명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만, 멘토가 멘티를 지정하는 것이 공지되어 있던 기본 룰이었으니 불만은 없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자, 이제 자신의 멘토에게 가 주시기 바랍니다!”
무대 위의 여섯 명이 각자 선택받은 세 명의 심사 위원에게 다가간다.
다들 얼굴이 왜 이리 비장한지 모르겠지만, 마치 투기장에 들어가는 글래디에이터 같은 표정들을 짓고 있었다.
얼굴들 펴라고, 여기는 로마 제국이 아니니까.
역시 내가 예상했던 대로 가장 구석에서 고개를 숙이고 있었던 여자가, 아무에게도 선택받지 못한 사람이었다.
“그리고! 세계의 콩쿠르를 우승한 본선 참가자들을 소개합니다!”
진행자의 말이 끝나자 무대의 구석에서 하얀색 연기가 뭉게뭉게 피어올랐다. 그리고 천장에서 쏘아지는 조명들까지.
조금 전에 예선 통과자들이 등장하는 것보다 훨씬 화려한 연출로 등장하는 여섯 명의 본선 시드 배정자들.
옷차림에도 상당히 힘을 썼는지, 그냥 체크무늬 셔츠에 청바지 차림으로 온 사람도 있는 예선 통과자와는 다른 고급스러움이 느껴진다.
이거 차별 대우가 너무 심한 거 아니냐? 이쪽은 아무런 특수 효과도 써 주지 않았으면서, 저쪽은 프로레슬링의 챔피언이 등장할 때나 쓸 법한 효과를 써 주었다.
세 명씩 짝지어진 멘토와 멘티들과 그들을 마주 보았다.
“이제 여러분은 각자의 방식대로 멘토링을 해 주시면 됩니다. 기한은 1주일. 다음 주부터 눈앞에 있는 본선 시드 출전자와 겨루게 되며, 심사는 인터넷 투표로 진행되게 됩니다.”
이런 규칙이었나. 대결 구도를 보여 준다는 게 이런 식이었을 줄은….
나는 애초에 물건을 사도 설명서를 제대로 읽지 않는 사람이라, 아메리칸 아이돌 같은 규칙인 줄 알고 관심을 안 가졌는데 내가 모르는 규칙들이 계속 튀어나오네.
그러면 이제는 심사 위원이 아닌 거잖아.
애초에 1주일이라는 짧은 시간만으로 연주 능력을 향상시킬 수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도 문제가 있다.
그렇게 짧은 시간으로 드라마틱한 성장을 할 수 있으면 그건 사람이 아니라 만화 주인공이지.
점점 방송국의 손아귀에서 놀아나는 느낌이다. 썩 좋은 기분은 아니네.
나는 눈앞에 있는 콩쿠르 우승자들을 바라보다, 내 옆에 서 있는 두 명의 남녀를 바라보았다.
믿음직하지 않은 얼굴의 김시욱과 소심해 보이는 이름도 모르는 안경녀.
진짜, 이 둘을 데리고 콩쿠르 우승자들에게 이겨야 한단 말이야?
콩쿠르에 나갈 일이 없어서 다시 도전자가 될 줄은 꿈에도 몰랐는데 말이지.
벌써부터 머리가 아프기 시작한다.
음악이 싫은 음악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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