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musical genius who hates music RAW novel - Chapter 85
084화
프로그램 녹화를 마치고 두 명의 예선 통과자와 함께 회사로 돌아왔다. 울프 플라자에 있을 때 제작진이 설치해 두었는지 곳곳에 촬영용 카메라가 보였다.
나와 두 명이 들어온 방은 회의실. 사장실에는 나의 사생활을 지켜 달라는 주문으로 카메라를 설치해 두지 않았기 때문.
“일단 여기에 앉으시고, 우리 서로 잘 모르니까 자기소개 부탁드려요.”
“저는 우크라이나에서 온 엘레나 자야치키프스카라고 합니다. 이름이 좀 어렵죠? 엘레나라고 불러 주세요.”
안경녀는 커다란 뿔테 안경을 손으로 올리며 말했다. 이름 진짜 어렵네. 성이 몇 글자야. 스펠링은 차마 물어볼 엄두도 나질 않았다.
조금 전까지 고개를 숙이고 있어서 제대로 보질 못했었는데, 왜 사람들이 우크라이나는 연예인들이 밭을 갈고 소를 몬다고 말했었는지 알게 되었다.
와, 어떻게 이렇게 예쁜 얼굴을 이렇게 막 쓸 수가 있는 거지?
푸석푸석해 보이는 머리카락과 얼굴을 반쯤 가리고 있는 안경을 어떻게 처리하면, 할리우드에서 볼 수 있는 연예인들보다 예쁘다는 소리를 들을 것 같은 얼굴.
김시욱은 엘레나의 얼굴을 보고 충격을 받았는지 입을 벌리고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어떤 악기를 다루시죠?”
“어…? 예선에서 들어 보지 않으셨던가요? 아닌데, 그 자리에 계셨는데?”
갑자기 머리를 부여잡더니 혼자만의 세계에 빠져간다. 엉뚱한 면이 있네.
“그게 한 명을 대하는 것과 백 명을 마주하는 거랑은 다르거든요. 모두 기억하기가 어려워요.”
“아, 죄송해요. 그렇게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어서…. 저는 피아노를 쳐요.”
대답을 들고서야 납득하는 얼굴로 머리카락을 쥐었던 손을 풀었다.
“좀 특이하시네요.”
“제가 좀 소심한 편이라서….”
소심하다기보다는 자폐가 아닌가 의심이 될 정도로 낯을 가린다. 자폐는 아닐 거다. 만약에 자폐증이었다면 혼자서 이렇게 돌아다니지도 못했을 테니.
“저는 한국에서 온 김시욱이라고 합니다! 스물여섯 살이고 군필입니다! 만나게 되어서 영광입니다!”
“나이랑 군대 갔다 온 이야기 말고 무슨 악기를 다루는지 이야기해 주셔야죠.”
지금 소개팅 나온 게 아니라고, 아저씨.
“아! 죄송합니다. 바이올린을 다루고 있습니다.”
피아니스트와 바이올리니스트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앞에 아마추어라는 말이 붙어야 하지만.
“알고 계시겠지만, 저는 이정현이라고 합니다. 이 LJH 뮤직 컴퍼니의 대표입니다. 일주일 동안 여러분이 하는 연주를 발전시켜야 하는 임무가 주어졌는데, 상대방은 아시는 것처럼 꽤 수준이 높은 솔리스트가 모여 있습니다.”
“저희가 이길 수 있을까요?”
“그건 결과가 나와 봐야 알겠죠. 아직은 알 수 없습니다.”
벌어지지도 않은 일을 예측하는 건 일기 예보처럼 틀릴 수도 있고, 부정적인 결과를 생각하면 부정적인 일이 생긴다.
대회에 출전하는 사람들이 가져야 하는 마음가짐은 무조건 긍정적인 방향이어야 한다. 위축되고 겁을 먹으면 결과가 더 안 좋게 나오니까.
두 명의 햇병아리들을 바라보고 있으려니, 내가 처음 콩쿠르에 출전하던 때가 떠올랐다. 출전해 본 경험이 없어서 지레 겁먹었던 첫 대회.
처음 이후로는 대회 출전에 겁을 먹었던 적이 없기 때문에, 사실 공감은 되질 않는다.
“내 계획은 이렇습니다.”
꿀꺽-
두 명이 침을 삼키는 소리가 방 안에 울렸다.
“앞으로 일주일 동안 하루에 두 시간은 좋은 음악을 듣고, 두 시간은 좋은 생각을 할 수 있도록 카운슬링을 받습니다. 그리고 두 시간은 마사지와 피부 관리. 나머지 시간은 자유 시간. 연습하시건 쉬시건 마음대로 하시면 됩니다.”
당연하게도 연주자가 아닌 내가 구체적인 테크닉을 가르칠 수는 없다. 해 줄 수 있는 것은 최고 수준의 레퍼런스를 제공하는 것과 긍정적인 사고를 할 수 있도록 카운슬링을 받게 하는 것.
교육자인 로베르토나 오케스트라를 이끄는 뢰베보다 나에게 훨씬 불리한 조건이다. 그들은 항상 누군가를 가르치는 사람들이었지만, 나는 가르치는 것에 익숙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선택한 방법이 이 둘에게 긍정적인 사고를 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전문가의 힘을 빌려 무조건 좋은 생각만 하게 만들어야 한다.
“저…. 음악을 듣는 거랑 카운슬링은 이해가 되는데 마사지와 피부관리는 왜 해야 하는 건가요?”
“투표를 시청자들이 해 준다고 했잖아요. 방송에 나가는 모습이 사람들에게 호감을 줘야 해요. 그것을 위한 겁니다. 카메라 마사지라는 게 있기는 한데, 한두 번 나가는 거로는 카메라에 맞는 외모가 되기는 힘들어요.”
그제야 김시욱은 궁금증이 해결되었는지 끄덕이며 수긍했다.
“듣게 되는 음악은 제가 직접 선별한 것으로 듣게 될 겁니다. 그 음악들이 여러분의 수준을 한층 올려 줄 거예요.”
“음악을 듣는 것만으로 수준이 올라가나요?”
조용히 있던 엘레나가 질문을 해 왔다.
“듣는 것으로도 충분히 수준은 올라갈 수 있습니다. 테크닉만 늘린다고 해서 실력이 늘어나는 건 아니에요. 내부에 충분히 좋은 음악들을 쌓아 놔야 자신의 표현력이 늘어나는 거예요.”
대부분의 연주가는 테크닉을 익히는 시간이 길다. 레퍼런스를 같이 쌓는다는 생각보다는 테크닉이 우선이 되는 쪽이 많은 것. 당장 실력이 늘어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테크닉 쪽이기 때문이다.
초절기교를 익히는 편이 좋은 음악을 듣는 시간보다 더 소중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는 부분이다.
그 어렵기로 유명한 프란츠 리스트의 라 캄파넬라를 어지간한 피아니스트 지망생들은 모두 비슷하게 칠 수 있지만, 그들의 순위를 나누는 것은 테크닉이 아니라 감각적인 부분이다.
그것을 배우는 시점에는 알기가 힘들고 선생님들이 지적하더라도 수긍하기 어렵다. 왜? 눈앞에 바로 보이는 것은 이해하기 어려운 감각보다 테크닉이니까.
“결국에 음악의 수준을 나누는 것은 긴 시간 동안 연습을 한 연습 시간이 아니라, 연주를 할 때의 감성이거든요. 음악을 듣는 것은 그 감성적인 부분을 쌓아가는 거예요. 테크닉을 익히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거죠.”
파블로 피카소가 말하길 ‘좋은 예술가는 모방하고, 위대한 예술가는 훔친다’라고 했다. 결국 새로운 것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배우는 단계에 있는 사람은 다른 누군가의 것을 배우는 것이 먼저라는 것.
다른 사람의 무언가를 배우기 위해서는 일단 먼저 답습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미술가는 보아야 하고 음악가는 들어야 한다.
“이해했습니다.”
커다란 안경을 살짝 쥔 손으로 올리며 엘레나가 반짝거리는 눈으로 나를 바라보며 대답했고, 김시욱은 여전히 잘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하지만 납득이 되기 전까지 움직이지 않는 서구권보다는 비교적 시키는 것에 순응하는 한국인이니까 괜찮겠지.
그렇게 두 명의 아마추어와 프로들을 이기기 위한 계획에 돌입했다.
사람들이 보통 잘못 생각하는 것 중의 하나는 대회 우승자와 탈락자의 실력 차이가 엄청나지 않을까 하는 것.
결론만 이야기하자면 일반적으로 이들의 실력의 차이는 생각보다 크지 않다. 간혹 압도적인 실력을 선보이며 우승하는 사람이 있기는 하지만, 대부분은 비슷한 실력을 보인다.
승자와 패자를 나누는 부분은 아주 작은 차이. 광고에서도 나오던 말인데 디테일의 차이가 명품을 만든다고.
국제 콩쿠르에 나가기 위한 조건은 주니어 대회 우승경력 혹은 저명한 누군가의 추천. 추천을 받을 수 있는 실력이라는 것은 수준이 높다는 것을 어느 정도는 증명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그렇게 똑같이 추천을 받은 사람 중에서도 탈락자가 엄청나게 많은데, 그 이유는 출전자가 많다는 것도 있지만 대부분은 긴장처럼 부정적인 생각에서 오는 것이다.
연습실에서는 전설의 바이올리니스트 니콜로 파가니니 뺨치는 연주실력을 보여 준다고 하더라도, 실제 무대에서는 긴장으로 인해서 여섯 살짜리 꼬맹이들도 하지 않을 실수를 하게 되니까.
현을 잘못 짚는다든지, 음계를 틀린다든지 박자가 틀어진다든지. 앨범을 열 개를 몇 개씩 낸 가수들도 자신의 노래 가사를 틀리는 경우가 있는 것처럼.
무대에 올라가서 긴장하지 않기 위해서는 마인드 컨트롤을 하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 우승하고 싶다는 욕심으로 간절한 마음이 생길수록 지고 싶지 않은 마음이 커지기 때문에 더 큰 실수를 하게 된다.
스포츠에서는 간절한 마음이 승리를 불러온다고 하지만, 음악에서는 오히려 반대로 마음을 비우지 않으면 연습하던 때와 동일한 실력을 보일 수 없게 된다.
“자, 깊은 동굴 속으로 들어갑니다. 동굴 안에는 작은 호수가 있습니다. 그 호수는 반짝이는 거울처럼 비춰 주고 있네요. 그곳에 가서 한번 들여다볼까요?”
“네.”
지금 하는 것은 카운슬링의 일종인 자아 정체성을 찾기 위한 것. 어릴 때부터 잘한다는 말만 듣고 연주가가 된 사람들은 하지 않는 것이기는 한데, 심리적으로 위축된 사람들을 위한 자기 자신을 격려하는 방법이다.
“무엇이 보이나요?”
“넘어져 있는 사람이 보여요.”
“그 사람을 일으켜 세워 주시겠어요? 손을 뻗으면 닿을 거예요.”
“일으켜 세웠어요.”
“그리고 그 사람에게 모든 것이 다 괜찮을 거라고 말해 주세요.”
첫날이라 둘을 카운슬러에게 데려와 옆에서 지켜보는데, 참 가관이다. 넘어지고 쓰러진 사람들이 가득 차 있는 둘.
대체 상처란 상처는 왜 그렇게 받고 사는 건지 모르겠지만, 둘 다 상처로 가득 찬 삶을 살았나 보다.
자존감을 세워 주기 위한 카운슬링이 끝나고, 회사의 연습실에서 연습을 하는 시간.
“저, 본선에서 연주할 곡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걸 왜 나한테 물어요?”
내가 무대에 서는 것도 아닌데 그걸 물어보면, 내가 어떻게 대답을 하니.
“본인이 가장 연습을 많이 하고 자신감 있는 음악을 연주해야죠.”
“그건 이미 예선에서 연주했는데요.”
콩쿠르에서는 보통 지정곡이 있기 때문에, 연주곡을 생각 못 했네.
산 넘어 산이구나.
“그러면 연습을 많이 했고 좋아하는 곡들 가운데 하나씩 말해 주세요. 연습하기 전에 듣는 시간 먼저 갖는 게 낫겠어요.”
계획을 세웠을 때 계획대로 된 것이 거의 없다. 이 친구들이 항상 예측을 벗어나기 때문이다.
“김시욱 씨는 생각해 놓은 것이 없다 하고, 엘레나는요? 엘레나도 생각해 둔 것이 없나요?”
“본선에서는 어렸을 때 발레를 배울 때 들었던 곡을 하고 싶어요.”
“곡 제목이 뭔데요?”
“‘꽃의 왈츠’예요.”
일반적으로 가장 널리 알려진 호두까기 인형의 음악은 ‘꽃의 왈츠’와 ‘행진’.
이 두 곡은 방송에서 삽입곡으로 많이 쓰이는 유명한 곡이다.
러시아의 대표 작곡가 차이코프스키가 작곡했고, 지금도 발레 공연에서 쓰이는 곡.
다른 유명 행진곡들에 비해서 아기자기한 면이 보이지만, 적어도 체임버 오케스트라급은 되어야 제대로 들을 수 있는 곡이다.
물론 많은 오케스트라 곡이 그렇듯, 두 곡 모두 피아노 독주곡으로 편곡된 악보가 있다.
“한번 여기서 연주해 볼래요?”
“지금이요?”
연습실 안에 놓인 신시사이저와 나를 번갈아 바라보며, 엘레나는 의구심이 가득한 질문을 했다.
“아래에 보면 페달도 있어요. 물론 일반 피아노보다는 소리가 좋지는 않겠지만. 제대로 된 피아노는 내일이나 올 테니.”
“알겠어요.”
비장한 표정과 목소리로 대답한 엘레나는 신시사이저 앞에 놓인 피아노 벤치로 다가가 앉았다.
이윽고 신시사이저에서 엘레나의 길고 가느다란 손가락으로 빚어진 음악이 흘러나왔다.
음악이 싫은 음악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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