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musical genius who hates music RAW novel - Chapter 87
086화
편곡은 어떻게 보면 새로 한 곡을 만드는 것보다 더 어려울 수 있다.
일단 25분짜리 곡 하나를 5분 이내로 압축해야 할 뿐만 아니라, 120인 심포니 오케스트라가 연주하는 곡을 바이올린 독주곡으로 만들어야 하니까.
“그러면 여기에서 음악을 좀 듣고 있어요. 이번에 런던 필하모닉이 연주한 쪽이 더 좋으니까 그쪽으로.”
“여기에서 계속 듣고만 있으면 되나요?”
“다른 생각하지 마시고, 음악이 담고 있는 감정들을 잘 생각하시면서 들어 주세요. 결국에는 감정을 어떻게 표현하느냐가 연주에서는 가장 중요하니까.”
“알겠습니다!”
독서실에서 공부할 때 음악 듣는 것처럼 아무 생각 없이 듣기만 하면 의미가 없지. 머릿속에 여러 명이 연주한 버전을 확실하게 담아 두고 들어야 한다.
사용하던 연습실에 김시욱을 넣어두고 나는 전화를 걸기 위해 방에서 나왔다.
혹시나 원래 있던 곡만 연주해야 한다는 룰이 있을 수도 있으니까.
[캐서린 도벡입니다.]“이정현입니다. 혹시 바이브 룰에 원래 있는 곡만 사용해야 한다는 규정 같은 게 있나요?”
[…설마 곡을 만드시려고요? 이정현 씨가 곡을 만드는 건 반칙인데….]“아니 그러면 콩쿠르 우승자랑 맞짱 뜨라고 하는 건 반칙이 아닌 건가요? 그게 오히려 더 형평성이 어긋나죠.”
내가 직접 붙는 것은 아니라지만 경험치 차이로 보면 이쪽은 아마추어고 저쪽은 프로인데, 어느 쪽이 유리한가를 생각해 보라고.
“그리고 생각을 해 보세요. 새로 만드는 곡을 연습해 봤자 일주일 동안 얼마나 연습할 수 있겠어요. 그 누가 되었건 새로운 곡을 연습하는 데 적어도 한 달은 필요해요.”
그래도 너무 유리하지는 않다는 것을 알려 줘야 수긍을 할 수 있겠지.
지금 상대편이 압도적으로 유리한 것을 ‘멘토링으로 어떻게 해 봐라.’ 이렇게 나오고 있는데, 그걸 다른 방법으로 극복하는 건 연출진이 원한 그림이 아닐 테니.
[정 그러시다면 알겠습니다. 다만, 알려지지 않은 곡을 연주하는 것 때문에 인터넷 투표에서 불리해질 수 있다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그 정도는 괜찮습니다.”
담당 PD인 캐서린에게는 굳이 알려진 곡을 편곡한다는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왠지 모르겠지만 이쪽이 불리하길 바라는 것 같단 말이지.
통화를 끝내고 비어 있는 연습실에 들어갔다.
처음에 이 연습실을 만들 때는 연습실 세 개가 다 차는 날이 한참 뒤에나 올 것으로 생각했었는데, 벌써 세 개를 다 채웠다.
김시욱과 리카르도 그리고 나.
나는 내 방에서 작업해도 상관은 없겠지만, 그래도 카메라가 설치된 곳에서 작업해야 규칙에 어긋나지 않고 떳떳하다는 기분이니까.
“슬슬 해 보자고.”
원곡을 떠올리는 것은 어렵지 않다. 처음부터 내가 만든 거고 얼마 전에도 리메이크를 진행하면서 약간의 수정을 거쳤으니까.
다만, 독주곡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어떤 것을 뺄 것인가가 중요한데, 그걸 정하는 게 우선순위.
리듬 악기는 모두 제외하자. 바이올린으로 리듬 악기를 재현할 방법은 스타카토(짧게 끊으며 강세를 넣어서 연주하는 것)밖에 없는데, 그것을 재현하는 것보다는 멜로디에 치중하는 편이 나아 보이니까.
어쩌면 원곡보다도 더 쓸쓸하게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원곡은 하이라이트 부분을 제외하면 120명이 한 번에 연주하기 때문에, 웅장한 느낌이 들어서 쓸쓸한 감각은 조금 덜하니.
찬 바람이 불어오는 겨울에 불어오는 매서운 칼바람 같은 아슬아슬한 멜로디를 만들어 그 위에 덧씌운다.
하이라이트 부분에 있는 바이올린 독주에서 베이스 독주로 넘어가는 파트를 현을 바꾸는 것으로 대체하고, 목관 악기 부분을 과감하게 삭제하는 것만으로 나아진 느낌이 들었다.
“이 정도면 되려나?”
오케스트라 버전은 하이라이트가 두세 번 돌아오기 때문에 그 부분을 한 번으로 줄였다. 연주 시간을 줄이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
하지만, 하이라이트라는 것은 음악에 있어서 가장 강조되는 부분이라 이것을 줄이는 게 맞는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이미지를 떠올려 보고 다른 멜로디를 떠올려 봐도, 머릿속에서는 이것보다 나은 것을 가르쳐 주질 않는다. 이게 최선이라는 거겠지.
항상 가장 나은 것 이외에 다른 것들을 들려 주지는 않으니까.
“크리스는 언제 돌아오는 거야?”
작업이 끝나서 시계를 봤더니 마사지 샵에 간지 두 시간이 지났는데, 아직도 크리스는 돌아올 생각을 하지 않고 있었다.
둘이 돌아올 때까지 작업을 끝내두려고 했는데, 생각보다 너무 빨리 끝났다.
***
“생각보다 오래 걸렸네?”
“한인 타운에 있는 그 마사지 샵이 너~ 무 좋더라고. 게다가 이것저것 권해 주는데 안 할 수가 없잖아. 크림이랑 이것저것 설명 듣고 사느라 시간이 좀 걸렸어. 여기 카드.”
아…. 한국인의 상술에 걸려 버린 건가. 가만히 누워서 시술만 받다가 올 줄 알았더니, 상품 카탈로그를 열었구나.
거울로 보이는 시술을 받기 전보다 훨씬 나아 보이는 모습에, ‘고객님의 피부에는 이게 정말 잘 맞는 것 같아요.’라고 말을 하면 누구라도 안 넘어가고 배길 수가 없다.
“내 얼굴 봐봐. 피부 엄청나게 좋아졌지?”
“어? 영수증은?”
카드를 돌려받으며 크리스의 얼굴을 보는 둥 마는 둥 했더니 자신을 보라며 어필한다.
“영수증은 내가 챙겼지. 어차피 나한테 줄 거 아니었어? 내 얼굴 좀 보라니까?”
“응. 많이 예뻐졌네. 피부 관리 자주 받으면 좋아. 한국 사람들은 젊을 때부터 자주 받는다고. 그래서 내가 둘이 같이 가라고 했던 거야.”
크리스 꼼꼼해졌구나. 예전에는 그렇게 허당 같더니…. 카드를 받아 주머니에 챙기면서 조금 이상하다고 생각했더니, 엘레나의 모습을 보질 못했다.
“엘레나는? 같이 온 거 아니야?”
“옆방에 있어. 나는 그 방에 리가 없길래 찾아온 거고.”
“작업은 거의 다 끝났으니까. 그쪽에 있는 사람들을 이쪽으로 불러와 줄래?”
사실 엘레나가 얼마나 예뻐졌느냐는 나의 관심사가 아니다. 자신감을 갖게 되느냐 마느냐가 중요하다.
크리스가 다른 사람들을 부르러 간 사이에 작업한 음악을 MP3 파일로 저장해서 비어 있는 USB에 옮겨 담았다.
작업실의 문이 열리고 크리스가 먼저 들어왔다.
“데려왔어.”
“그래? 어디 어떻게 바뀌었나 보자.”
나는 의자를 뒤로 돌려 문을 향해 앉았다.
그런데 크리스의 뒤로 들어온 김시욱의 뒤에는 아무도 따라 들어오질 않고 있었다.
“데려왔다며? 없는데?”
“왜 안 들어오지? 엘레나? 엘레나!”
크리스가 크게 부르고 나서야 대답을 하는 엘레나.
“네….”
뭐야, 자신감이 왜 더 줄었어. 전보다 나아진 자신의 모습을 보고 자신감에 가득 차 있을 줄 알았는데, 방 안에 들어오지도 못하고 있었다.
결국 크리스가 문밖으로 나가 데려온 엘레나는 정말 설명할 수 있는 방법이 없을 정도로 예뻐져 있었다.
내 취향이 이쪽이냐고 누가 물어본다면 나는 안경 쓰고 부스스한 느낌이 더 친근해서 좋지만, 지금 엘레나의 모습은 역대급 미모를 보여 주는 중이었다.
대중의 시선을 사로잡는 것은 역시 외모니까, 이쪽이 더 낫겠지.
“죄송해요. 제 모습에 적응이 안 되어서…. 왠지 부끄러워요.”
“아까 전보다 훨씬 나은데 뭐가 부끄러워요.”
내 말에 김시욱이 모터라도 달린 듯 강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눈을 커다랗게 뜨고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는 그를 향해 물었다.
“시욱 씨는 어떻게 생각해요?”
“네!”
“아니, 대답이 아니라 어떻게 생각하시냐고요.”
“너무너무너무너무 아름답다고 생각합니다!”
“들었죠? 시욱 씨도 전보다 훨씬 나아졌다고 하잖아요. 자기 모습에 자신감을 가져요.”
“네…. 감사합니다.”
“이 방으로 부른 이유는, 두 사람이 연주하게 될 곡의 편곡이 끝났기 때문이에요.”
“펴, 편곡을 하셨다고요?”
이 자리에 없었던 엘레나가 되물었다.
“네. 편곡을 했어요. 처음에는 시욱 씨 것만 해 주려고 했는데, 그러면 형평성에 안 맞는 것 같아서 둘 다 했죠.”
“아…. 이렇게 신경 써 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사실 김시욱의 것만 해 주려다가 시간이 남아서 했지만. 하긴 했으니까.
나는 두 명에게 MP3가 들어 있는 USB를 내밀며 말했다.
“이건 미디로 된 곡이라 제대로 된 느낌은 아닐 거예요. 그러니까 꼭 자신의 버전으로 완성 시켜야 됩니다. 이제 6일 남은 거 알죠?”
“감사합니다. 열심히 연습할게요!”
씩씩하게 대답하는 김시욱을 보며 나는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그런데 엘레나 쪽에서는 대답이 들려 오질 않았다.
고개를 숙이고 USB를 보고 있는 건가 싶었는데….
우냐? 우네.
어깨가 들썩이는 엘레나를 보며 나는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제가, 무대에 올라갈 수 없게 된 이후로 저를 이렇게 신경 써 주시는 분은 처음 뵈어요…. 너무 감사합니다.”
“어흠. 별말씀을요. 우리 꼭 우승하자구요.”
휙
엘레나는 갑자기 고개를 들어 팬더가 되어 버린 눈으로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제가 꼭 우승할게요!”
파란 눈 가진 사람이 크게 뜨니까 좀 무섭네….
어찌 되었건 이렇게 해서 다사다난했던 첫날의 일정이 마무리되었다.
둘이 연습을 할 수 있도록 연습실을 비워 주고, 사무실로 돌아와 주머니에 들어 있던 휴대폰을 확인했더니 문자가 와 있었다. 아마도 작업하느라 문자가 오는 것을 느끼지 못했던 모양이다.
“뭐?! 3,500달러?!”
아니 무슨 피부 관리가 이렇게 비싸냐. 나도 저녁에 김시욱과 함께 방문할 생각이었는데, 생각보다 비싼 가격에 살짝 놀라고 말았다.
“가격, 알고 있는 거 아니었어? 나도 처음에는 엄청 비싸다고 생각했는데, 리가 가라고 한 곳이니까 그냥 들어갔는데.”
“위치는 알고 있었는데 가격은 몰랐지….”
“거기 영화에 나오는 영화배우들 사진들도 막 걸려 있던데?”
그래 TV에서도 거기 여자 연예인들 많이 간다고 하더라.
이상하게 건물 사는 데 들어가는 돈은 아깝지 않은데, 이런 먹지도 못하는 것에 들어가는 돈은 아까웠다.
“앞으로 여기 자주 가야 할 텐데, 회원 할인 이런 거 없대…?”
***
[여러분의 음악 세포를 자극할 최고의 아티스트들이 이 자리에 모였습니다.지금 TV로 시청하시는 여러분들이 직접 심사 위원이 되어 합격과 불합격을 가를 수 있는 시간이 드디어 돌아왔습니다.]
쓸데없이 힘을 주어 멘트를 치는 진행자의 말에 사람들의 얼굴이 굳어 간다.
[지난 한 주 동안 바이브의 참가자들이 시청자 여러분들의 귀를 즐겁게 만들어 주기 위한 연습을 하고 돌아왔습니다.]대기실의 모니터로 지켜보는 이 순간에도 저 사람은 참 열심이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저런 재능이 있어야 진행자가 될 수 있는 거겠지.
어릴 때는 토크쇼 같은 것을 보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질 않았었다.
그런데 나이를 먹고 나서 TV를 보면, 사람들의 호기심을 유발하는 멘트를 찰지게 하는 것이 굉장히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저희는 언제 나가나요?”
지난 한 주 동안 나에게 괴롭힘을 당한 김시욱이 옆에서 빨리 나가고 싶다는 투로 말을 했다.
“나는 모르죠. 보통은 조연출이 와서 몇 분 전입니다 라고 말하고 가니까.”
“매도 먼저 맞는 게 낫다고 하잖아요. 얼른 하고 쉬고 싶어요. 연주를 하고 나서보다 하기 전이 더 힘드니까….”
오늘부터 생방송 중에 연습하던 녹화 장면이 섞여서 들어간다고 하던데, 내가 편집을 하는 건 아니지만 어떻게 나올지 궁금하다.
우리가 이렇게 떠들고 있는 이 순간에도 모니터에서는 끊기지 않고 진행자의 목소리가 들려 왔다.
[바로 오늘! 이 자리에서 네 명의 탈락자가 가려집니다!]음악이 싫은 음악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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