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musical genius who hates music RAW novel - Chapter 89
088화
[Chopin : Andante Spianato Et Grande Polonaise Brillante, Op. 22 (안단테 스피아나토와 화려한 대 폴로네이즈)]모니터의 자막은 샤오위가 쇼팽의 곡을 연주할 것이라고 말해주고 있었다.
쇼팽의 곡 특성상 미친 듯한 초절기교와 절제된 감정 표현이 핵심인데, 저렇게 몸에 달라붙은 옷과 하이힐을 신고 제대로 표현할 수 있을까?
쇼팽의 안단테 스피아나토와 화려한 대 폴로네이즈는 2000년에 중국의 피아니스트가 쇼팽 콩쿠르를 우승할 때 연주했던 곡이다. 아무래도 영광의 곡이라고 생각해서 골랐을지도 모른다.
“연출을 너무 과하게 했네.”
“맞아. 옷이 너무 과해. 모델도 아니고 몸매 자랑하는 거야, 뭐야.”
크리스가 감자 칩을 먹으며 대답했다.
“아니, 옷도 옷이지만, 곡 선정도 과해.”
“곡? 곡은 왜?”
혹시 내가 쇼팽 콩쿠르에 대한 말로 도발을 해서?
아직 연주를 시작하지는 않았지만, 무리해서 쇼팽의 곡을 골랐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곡을 저런 옷을 입고 연주하기에 쇼팽은 너무 버거울 거라는 생각이 들거든.
15분에 가까운 연주 시간을 갖는 곡에 쇼팽 곡들 특유의 화려한 퍼포먼스뿐만이 아니라, 절제된 감정 표현이 필요하기에 페달링을 엄청나게 많이 해야 하는 곡이기 때문이다.
잔잔한 호수에 물방울이 튀는 것 같은 도입부가 들려왔다.
“저런 퍼포먼스로 끝까지 버틸 수 있을 것 같아? 저렇게 불편한 옷을 입고? 아마 격렬하게 바뀌는 두 번째 장부터 꽤 힘들 거야.”
뒤를 이어 호숫가에 지저귀는 새소리 같은 잔잔한 멜로디가 들려온다.
붉은색 차이나 드레스에서 뻗어 나온 팔이 부드럽게 건반을 어루만지며 쇼팽의 음악을 온몸으로 표현한다.
피아노의 해머가 현들을 끊임없이 때리는 모습이 카메라에 비친다.
손가락이 움직이면서 함께 따라 움직이는 해머의 모습이 어딘지 모르게 묘한 기분이 들게 한다.
쉴 새 없이 움직이는 손가락과 페달의 움직임에 따라 올라갔다 내려가는 해머들.
“음악 좋다. 잔잔한 게 호숫가에 소풍 온 것 같아.”
“그래? 아직 시작 안 한 건데…. 아직은 도입부거든.”
그때 교회의 종소리 같은 소리가 들려왔다. 도입부와 두 번째 장을 이어주는 브리지 부분.
연주를 조금 빠르게 하는 건지, 5분 정도에 등장해야 하는 브리지 소리가 아직 4분 정도밖에 되질 않는 시간에 들려왔다.
“박자를 틀린 것 같은데? 너무 심취했어.”
쇼팽이 어려운 점은 이런 점이다. 빠른 타건이 이어지면 박자감이 점점 옅어진다. 그것이 쇼팽을 연습하는 많은 학생의 연주 시간이 대부분 달라지는 이유.
악보가 그리고 있는 박자는 대부분 정확한 박자를 요구하지만, 연주를 위해 악보에 올라와 있는 음표들을 따라가다 휩쓸릴 수 있는 음악이 바로 쇼팽이었다.
게다가 이 안단테 스피아나토와 화려한 대 폴로네이즈는 피아노 건반 대부분을 사용하는 곡. 그 말은 몸의 움직임이 엄청나게 많이 필요한 곡이라는 것.
잔잔한 호숫가 분위기에서 말을 달리는 것 같은 강렬한 연주로 전환되었다. 1초에 3~4옥타브를 넘나드는 강렬한 움직임.
페달링으로 스타카토를 주어 강렬하게 표현을 해야 하는 부분.
벼락을 치는 것처럼 강렬한 음들이 뿜어져 나온다.
콰콰콰 쾅-
소리를 줄여 줘야 하는 부분에서 페달링을 놓쳐 끝소리가 울렸다.
“이거 안 좋은데…?”
“뭐가 안 좋아요?”
심각한 표정으로 말을 했는지 엘레나가 걱정이 되는 말투로 내게 물었다.
“이렇게 엉망이면 엘레나가 아무리 연주를 잘하더라도, 저 여자 자기 컨디션이 좋질 않아서 연주를 못 했다는 말이 나올지도 모르겠어요.”
“이게 엉망이에요? 저는 전혀 모르겠는데?”
“박자도 몇 번이나 틀렸고 페달링 미스도 여러 번 나오고 있어요.”
격렬한 움직임을 요구하는 하이라이트 부분.
오른쪽 끝 건반부터 왼쪽 끝 건반까지 단숨에 내달려 순식간에 소리를 만들어 내는 것은 정말 대단한 퍼포먼스.
아무리 손가락이 빠르다고 하더라도 연달아서 페달을 밟으며 음이 울리는 끝소리를 줄여서, 다음 음에 연결이 되지 않는 연주법을 요구하는 미친 곡.
이런 미친 연주법을 요구하는 피아노계의 끝판왕을 창샤오위는 그럭저럭 잘 연주하고 있었다.
점수는 높을 것이다. 대중은 심사위원들처럼 많은 배경 지식이 없어서, 이런 화려한 퍼포먼스에 열광할 가능성이 크니까.
대중에게 정통파 락 그룹이 비주얼 락 그룹보다 인기가 떨어지는 이유랄까.
그래도 정통파 락 그룹의 음악은 사람들 기억 속에 오래 남는다.
잠깐 인기를 끌었다가 소리소문없이 사라지는 수많은 비주얼 락 그룹의 음악들은 기억도 나질 않지만, 여전히 우리는 70, 80년대의 오래된 락 그룹들의 음악을 듣고 있으니까.
꽃미남 꽃미녀 밴드가 아니고서야 대중들에게 엄청난 인기를 끌지는 못하기에, TV의 무대가 아닌 공연장을 전전하며 알음알음 소수의 사람만 듣게 되는 음악들.
그렇기에 저 창샤오위가 하는 연주는 위험하다. 사람들의 시선을 끌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하고 있었다.
화려한 의상, 화려한 곡.
시청자들의 시선을 한 방에 사로잡을 만큼 시선이 가는 강렬한 카메라 워크까지 더해져 정말 마법 같은 장면이 연출되어 버렸다.
실상은 박자와 페달링이 몇 번이나 잘못되었음에도, 저 화려한 퍼포먼스에 눈이 팔려 그 누구도 알아차리지 못하겠지.
사람들의 눈을 휘어잡는 화려한 연주가 끝이 나자, 창샤오위는 피아노 벤치에서 일어나 마치 벌써 우승이라도 한 것처럼 손을 흔들어 객석과 카메라를 향해 세리머니를 시작했다.
우레같은 청중들의 박수 소리가 TV의 스피커를 통해 들려온다.
이 연주를 보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전혀 떨지 않았던 엘레나가 나를 바라보며 물었다.
“제가 저 사람보다 잘할 수 있을까요…?”
“그냥 연습 때 하던 대로 하세요. 누구보다 잘해야 한다는 부담 갖지 마시고, 무대를 즐기고 오세요. 하지만 자신감을 갖는 건 잊지 마시고요.”
만약 이 방송을 시청하는 사람이 내가 본 것을 하나도 보지 못한다면, 이 경연의 우승자는 창샤오위가 될 것이다.
내가 만약에 쇼팽 콩쿠르의 심사위원이라면, 거의 100%의 확률로 탈락일 텐데…. 감점 요인이 너무 많잖아.
똑똑-
“엘레나 씨 준비하세요!”
이쪽 대기실에 있다는 걸 어떻게 알았지. 대기실의 문밖에서 다른 때와 마찬가지로 준비하라는 말을 하는 조연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늘 엘레나의 의상 콘셉트는 창샤오위와 정반대.
하얀색 순백의 드레스를 입은 자신이 연주할 곡의 제목인 꽃의 왈츠처럼 아름다운 모습의 엘레나. 만약에 외모로 평가를 하는 무슨 무슨 여성 대회였다면 엘레나는 이미 우승일 텐데.
이곳이 음악 경연장인 것이 조금은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외모로 비교하자면 이미 이겼어요. 그러니까 이겨야겠다고 생각하지 마세요. 부담감 생기면 실수만 늘어나니까.”
“네!”
엘레나가 무대로 향했다.
***
“너무 많이 틀린 것 같아. 어떻게 하지?”
“괜찮아. 네가 틀렸다는 걸 알아챈 사람도 없을 거야.”
자신의 연주에 만족하지 못한 창샤오위는 대기실에서 기다리고 있던 매니저에게 하소연했다. 돌아오는 말은 언제나 그렇듯이 괜찮을 거라는 한마디.
어쩌면 저 말을 듣기 위해 하소연을 하는지도 몰랐다.
“연습이 너무 덜 되어 있었던 것 같아. 다음 쇼팽 콩쿠르에서 연주하려던 곡인데.”
“지난번 퀸 엘리자베스 이후로 6개월이나 연습한 거잖아. 그 정도면 충분하지. 그리고 아까도 말했지만, 너무 잘했어. 나는 정말 잘했다고 생각해.”
창샤오위가 ‘안단테 스피아나토와 화려한 대 폴로네이즈’를 연주해야겠다고 생각했던 것은 별다른 이유가 없었다.
다음 쇼팽 콩쿠르에 우승하고 오면 대화를 해 주겠다는 이정현의 말에 자극받아 한참을 연습했던 곡이기에, 자신 있게 경연곡으로 선택했던 것뿐.
하지만 아직은 연습이 부족했던 것인지 연주 도중에 박자가 어긋나는 느낌이 들었다.
Brrrr-
“네, 회장님. 그럼요. 완벽하죠. 바꿔 드릴까요?”
매니저는 전화기를 내밀면서 말했다.
“받아, 회장님이셔.”
회장은 전화로 연주를 잘 보았고 너무나 자랑스럽다는 이야기만 계속했다. 별다른 내용도 없이 칭찬만 오가는 전화 통화.
매번 대회가 있을 때마다 이런 식으로 샤오위를 격려했다.
“전화 주셔서 감사합니다. 좋은 결과 있기를 기대할게요.”
[우승은 걱정하지 말아라. 10억 인민들이 너의 뒤에 함께 있으니 말이야!]회장은 중국에 있는 인민들의 샤오위의 편이라는 이야기를 하며 전화를 끊었다. 자신의 편이 많다는 것은 참 반길 만한 일이지만, 대회에서 탈락했을 때가 두려워지는 샤오위였다.
10억이라는 사람들이 자신에게 기대하는 것이 너무 많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가끔은 무서울 때도 있었으니까.
“언니, 모니터 켜 봐. 다른 사람 연주하는 것 좀 들어 보자.”
“응. 그래 알았어.”
매니저는 능숙한 손길로 리모컨을 손에 쥐어 전원을 켰다.
모니터에 보이는 순백색의 아름다운 드레스를 입은 여자. 샤오위는 자신도 저런 아름다운 드레스를 입고 싶었지만, 중국의 상징이 되어야 한다며 실크로 만들어진 고급 차이나 드레스를 입을 수밖에 없었다.
“옷이 참 예쁘네….”
“저게 뭐가 예뻐. 네가 입은 옷이 훨씬 예쁘지.”
주변 사람들은 항상 자신을 제외한 다른 것들을 비난하고 샤오위를 치켜세우기 바빴다. 누구에게 무엇하나 물어보더라도 정상적인 대답이 돌아오질 않았다.
샤오위는 조금씩 지쳐가고 있었다.
동화 속에 나오는 것처럼 예쁜 모습의 여자가 피아노 벤치 위에 올라앉았다.
건반에 손을 올리기 전에 깊게 숨을 들이마실 때 보이는 모습마저도 아름다워 보였다.
하얗게 빛나는 손이 움직이며 시작되는 도입부.
피아노에서 들리는 소리도 손놀림만큼이나 우아한 소리가 들려왔다.
폭포가 쏟아지는 시냇물 소리가 들려오는 도입부가 끝이 나고, 인형들이 귀엽게 왈츠를 추는 장면이 눈앞에 보였다.
앞뒤로 흔들며 손을 맞잡고 무대 위에서 뱅그르르 도는 호두까기 인형.
꽃이 만발한 언덕이 그들에게는 무대가 되어 주는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샤오위는 자신이 그렇게 괴롭게 연습하고 연주를 했던 것과는 다르게, 행복한 표정을 지으며 연주를 하는 저 여자가 부러웠다.
“어떻게 저렇게 행복한 표정으로 연주를 할 수가 있을까…?”
아름다운 음악 소리는 자신을 꽃이 피어난 언덕으로 데려가는 힘이 있었다.
수도 없이 많은 음악을 들어 보고 살아왔지만, 이렇게 구체적으로 안에 담긴 장면을 떠올리게 하는 음악은 들어 본 기억이 나질 않았다.
원곡과는 비슷한 것 같으면서도 다른 구성.
원래대로라면 조금씩 반복되는 왈츠의 구성에 하이라이트를 들려 주고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는 구조였을 텐데, 이 곡은 그렇게 눈에 띄는 반복적인 구성이 없었다.
이제는 옆에서 다른 사람들을 비난하기 바빴던 매니저까지, 샤오위의 말에 대답하지 못하고 모니터만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끌려가 버린 것이다. 꽃이 피는 언덕 너머로.
“위험한 곡이야….”
샤오위는 그렇게 소중하게 관리해 오던 손톱을 잘근잘근 물어뜯기 시작했다.
음악이 싫은 음악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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