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musical genius who hates music RAW novel - Chapter 9
008화
사업자 허가를 내고 계약을 했다고 영화처럼 바로 부자가 되거나 하는 것은 아니었다.
결과만 말하자면, 나의 생활은 거의 바뀐 것이 없었다. 평일에는 학교가 끝나면 집에서 과외하고.
주말에는 수원이네 집에 가서 내가 쏟아낸 것들을 악보로 정리해서 MP3와 함께 넘겨주면, 윤 교수님과 수원이가 거기에 제목을 붙여 분류하는 작업을 했다.
수원이는 그렇게 무임금 노동을 하게 되었지만, 걔는 워낙에 음악을 좋아하는 놈이라 오히려 더 좋아했다.
어딘지 모르게 짜디짠 염전의 향이 느껴졌지만 본인이 괜찮다고 하니 뭐 별수 없지.
내가 만든 것들을 법인 명의의 지적 재산으로 전환하고, 내 이름으로 저작권 협회에 등록을 하는, 이 단순하고 귀찮은 작업을 끝내는 데 한 달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그 한 달 동안 음악소리가 몇 번 더 떠올라 곡은 오히려 늘어 버렸다.
“정현아, 근데 이 곡들 믹싱은 누가 한 거야?”
믹싱이 뭐지? 처음 들어 보는 말이다. 김수원은 가끔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한다.
“믹싱이 뭔데? 섞는 거?”
가사 도우미 아주머니가 간식으로 가져다준 달콤한 슈크림을 먹으며 내가 대답했다. 이거 진짜 맛있네.
어디 유명한 베이커리에서 파는 건가?
대답이 돌아오질 않는 느낌에 슈크림에서 눈을 떼고 수원이를 바라보니 애가 고장 났는지 멈춰 있었다.
“야, 뭐야. 왜 그래.”
“너 진짜 믹싱이 뭔지 몰라?”
“뭔데 그게 그렇게 놀랄 정도로 대단한 거냐? 꼭 알아야 되는 거야?”
수원이의 표정이 경악으로 물들어갈 때, 윤 교수님이 돌아왔다.
“맛있지? 아줌마가 만든 거야.”
세상에, 항상 너무 맛있어서 어디서 파는지 물어보고 단골이 되고만 싶었던 슈크림의 제빵사가 윤 교수였다니. 내 얼굴도 수원이의 못생긴 얼굴처럼 경악에 가득 찼다.
우리 엄마가 만든 건 된장찌개조차 맛이 없는데…. 집밥은 맛있어서 먹는 게 아니라 의리로 먹는 거라고 알고 있었다….
“엄마! 얘 믹싱이 뭔지도 모른대!”
쯧쯧. 고등학교 2학년이라는 놈이 엄마에게 칭얼대며 이르기나 하고 말야.
“아니, 그래서 내가 물었잖아, 믹싱이 뭐냐고. 일단 그게 뭔지를 알아야 내가 대답해 줄 거 아냐.”
윤 교수는 미소 짓더니 교수님답게 차분한 목소리로 단계별로 음악 작업을 알기 쉽게 설명해 주었다.
악보를 만들거나 즉흥 연주 같은 것과 DAW 같은 작곡 프로그램 등으로 새로운 곡을 쓰는 것이 작곡.
그렇게 작곡이 된 곡을 상황이나 여러 가지 것들에 맞추어서 다듬는 것이 편곡.
실제로 연주해서 만들어진 곡과 악보 사이의 차이를 확인하는 것이 실연(실제 연주. DAW를 사용할 때는 가상 악기로 연주되어 실시간으로 음을 확인할 수 있어 음을 확인하기보다는 실제 연주가 가능한가를 확인한다) 단계인데 이건 작곡과 편곡 사이에 지속해서 이루어진다고 한다.
전문 스튜디오에서 실제 악기나 보컬 녹음을 하는 것을 세션 혹은 레코딩이라고 부른다.
여기까지가 프로듀싱 파트. 일반적으로 작곡가가 관여하는 부분이다.
그렇게 녹음이 된 결과물을 모아 디테일(볼륨이나 피치 같은 것들) 같은, 곡 전체적인 밸런스를 조절하는 단계가 믹싱.
믹싱이 된 것을 소비자에게 듣기 전에 듣기 좋게 손보는 작업이 마스터링.
믹싱과 마스터링은 훈련받은 엔지니어가 손대는 것이라고 했다. 간혹 욕심 많은 작곡가나 프로듀서들도 손대기는 하지만.
별로 기억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알고는 있어야 한다고 하길래 조금 집중해서 들었다.
하지만, 믹싱과 마스터링의 차이가 뭔지 그걸 말로 들어서는 알기가 어려웠다. 알고 싶지도 않았고.
“음…. 있잖아.”
이제 믹싱에 대해 이야기를 해 줘야 할 때가 왔다.
“내가 머릿속에서 음악소리가 들린다고 했잖아?”
“그랬지.”
수원이는 흥미로워하는 느낌으로 나에게 집중하며 몸을 가까이 숙여왔다.
“그 소리가 정확하게 같지 않으면, 볼륨이나 밸런스나 그런 거 말야.”
“같지 않으면?”
“응. 완전히 그 소리랑 똑같지 않으면, 소리가 없어지질 않아. 그래서 난 그냥 들리는 대로 똑같이 만든 거야. 믹싱이 뭔지 그런 건 모르지만.”
“…….”
“왜?”
“…세상은 불공평해….”
수원 로봇은 망가져 버렸다.
몰랐지만 윤주란 교수는 굉장히 왕성한 활동을 하는 현역 성악가였다.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것 말고도 예술의 전당에서 열리는 정기 공연과 해외 공연, 그리고 오페라 배우의 발성 코칭까지 하고 있었는데 거기에 내가 일거리를 떠넘긴 셈.
그녀는 처음이라는 상징을 내 목소리가 들어간 음악으로 만들기를 원했다.
물론 나는 앨범 제작에 관여조차 하고 싶질 않아 거절했지만, 지속적으로 처음이라는 것이 중요하다는 세뇌를 받아 어쩔 수 없이 딱 한 번만 내 목소리를 넣어 발매하기로 했다.
지금까지 나는 의도적으로 음악이 들리는 모든 곳을 피해 왔다.
새로운 무언가가 있다면, 그것에서 비롯되는 음악 소리들이 내 의지와는 상관없는 연주를 시작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이번에는 콩쿠르에 나설 때 처럼 레퍼런스에 맞춰 부르는 것이 아니라, 내 머릿속에서 나온 여태까지 세상에는 없었던 곡을 불러야 했기 때문이다.
윤 교수는 내가 여태까지 몇 개의 실황 앨범을 발매했었다는 것을 알기에 이번에도 실황 앨범으로 발매하는 것이 나을 거라고 말했다.
일반적인 성악가라면, 실황 앨범 말고도 성악 전문 레코딩 스튜디오에서 개인 앨범이나 작품집을 발매하는 것이 기본이다.
전문 레코딩 스튜디오에서 완벽하게 통제되는 환경은 깨끗하고 아름다운 목소리를 들려 주기에 유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태까지 내 이름으로 나온 앨범은 하나도 없었다. 그래서 언제인가부터 사람들은 내가 앨범을 내는 것을 극도로 싫어한다고 생각했고, 공연만 하고 싶어 한다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처음에 국제 콩쿠르를 우승했을 무렵에는 그렇게 개인 앨범을 내자고 달려들던 사람들이, 어느 순간부터 아예 사라졌으니까.
그런 이유로 스튜디오 레코딩보다는 실황 앨범이 내 이미지에 부합한다는 말을 곁들이며 방학이 시작되고 나서 보름 뒤인 8월 15일, 단 하루 동안 내 이름을 건 연주회가 열리게 되었다.
윤 교수가 주도하여 서울 시립 교향악단과 내가 만든 곡의 연주를 해 주기로 계약을 하고, 예술의 전당에서 오케스트라 공연이 열리는 콘서트 홀을 대관했다.
원래는 성악 레코딩에 유리한 2,200석 규모의 오페라 하우스의 오페라 극장을 대관하려고 했으나, 오페라 극장은 정기 공연이 끊이질 않는 곳이라 지속적인 공연을 보장할 수 없다면 대관이 불가능하다는 답변이 돌아왔다고 한다.
그런 이유로 어쩔 수 없이 콘서트 홀로 변경되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좋은 2,500석 규모의 클래식 전용 공연장인 콘서트 홀의 대관은 계약금을 비롯하여 선금이 꽤나 비싼 걸로 알고 있었다.
그런데 윤주란 교수와 나의 이름이 걸리자 예술의 전당 측은 대관 비용을 후불로 납부하는 이상한 계약을 맺어 주었다.
웃기는 건 예술의 전당과 국예종이라고 줄여 부르는 국립 예술 종합학교에서도 대관비를 분담하면서까지 이 공연에 참여하고 싶어 한 것이다. 아직 대학교도 들어가지 못한 고등학생의 공연을.
어쨌거나 윤 교수가 직접 방문해 한 달 뒤에 있을 공연을 위해 연습해야 하는 서울 시립 교향악단에게, 내 첫 번째 앨범에 들어갈 곡들의 악보를 넘겼고 나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다.
여느 때처럼 학교의 동아리실에서 빈둥대고 있을 때였다.
“야, 우리는 공연 언제 해?”
그제나 그렇듯 사건은 내가 모르는 사이에 다가온다.
특히 유재욱이 나에게 건넨 이 말은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것이었다. 나는 연간 동아리 일정을 잡던 학기 초에 10월에 있는 축제 말고 아무것도 넣어 놓질 않았던 것이다.
왜냐고? 공연할 실력이 안 되니까.
“공연… 할 실력은 되고?”
스트라이크! 유재욱 아웃!
“일 년 동안 축제 기간 딱 이틀만 공연한다는 게 말이 돼?”
유재욱의 방망이가 헛스윙을 당하자, 2번 타자로 김수원이 올라온다.
왜 이래, 얘네 짰나? 내가 대답할 새도 없이 말을 이어나가는 김수원.
“그러지 말고 외부 공연 한번 하자. 홍대나 신촌, 이대 앞에 라이브 클럽 있잖아.”
너였구나, 범인이. 내가 공연 일정을 잡은 것을 아는 사람은 이 안에 이놈밖에 없다. 내가 공연한다고 하니까 자기도 하고 싶었던 거다.
열 명이 넘는 사람들의 시선이 내 입을 향해 있는 것이 느껴진다.
“…하고 싶으면 해야지. 근데 공연할 실력은 되냐고.”
동아리실을 채우는 잠시 동안의 침묵. 이렇게 투 아웃이 되어 가는 줄 알았는데….
“나 맨날 바닥에 젓가락 튕기는 거… 너무 재미없어…. 심심해….”
“…….”
야생의 김지섭이 등장했다. 근육질인 김지섭의 입에서 나온 말들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너무 어울리지 않았지만, 어떻게 보면 쟤네들 입장에서는 작전 성공일지도….
그는 내가 답변할 수도 없게 이렇게 홈런을 날려 버렸으니까.
밴드가 라이브 클럽에서 공연을 하는 것은 보통 두 가지로 나뉜다.
클럽에서 채용해서 공연 레퍼토리로 끼우는 경우. 즉 여러 밴드들이 하루의 공연을 이루는데, 그사이에 한두 곡을 하는 거다.
이 경우에는 클럽 측에서 연주 비용을 지급한다. 그 금액은 해당 밴드의 인기나 관중 호응에 따라 다르다.
또한 땜빵(빈자리 메우기)이 있는데, 이건 급하게 채우는 자리라 연주 비용이 올라간다.
그리고 밴드 측에서 일일 대관을 하는 경우. 이건 아주 작은 콘서트를 연다고 보면 되는데, 대관할 경우는 좀 복잡하다.
클럽이라고 해서 하루 빌리는 비용이 엄청나게 비싼 것은 아니지만, 기본 대관 비용이 백만 원 가까이 한다면 학생의 입장에서는 다가가기 어려울 수밖에 없다.
게다가 기본 대관 비용에 손님들이 구매할 티켓 발매 및 홍보 비용, 음료수나 술 같은 것을 판매하는 클럽 직원의 인건비까지 엄청나게 복잡해지는 거다.
보통 공연 클럽의 경우 사람들이 가득 찬다고 해도 서서 관람하는 스탠딩 기준 50~100명 규모밖에 되질 않으니까, 티켓만 팔아서는 절대 대관 비용을 대기 어렵다.
티켓을 비싸게 팔면 사람이 안 온다. 비싼 돈 주고 유명한 밴드 공연을 보러 가지 왜 아마추어 공연을 보러 오겠는가?
즉, 티켓을 비싸게 팔 수도 없다. 아마추어 밴드가 대관을 한다는 건 티켓 팔아서 번 돈을 모두 박고, 모자라면 추가 금액까지 사비로 낼 각오를 해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대관은 일단 열외를 할 수밖에 없다.
왜냐. 밴드가 최소 십수 곡을 연주해야 하기 때문이다. 보컬도 이제 막 연습 시작한 지혁이라 세 곡 이상은 무리일 거다.
겨우 두 달 연습했으니까.
게다가 중간중간 공연장의 관중들을 이끌어야 하는 보컬이 카리스마가 없다. 이건 진짜 치명적이지.
보컬은 밴드의 얼굴마담이다. 공연장의 열기를 올리는 것도 보컬이 해야 하고, 연주 중간중간 쉴 시간을 벌어 주기 위해 말주변도 뛰어나야 한다.
들국화 하면 전인권. 넥스트 하면 故 신해철. 산울림 하면 김창완. 옥슨80 하면 홍서범.
에어로 스미스의 스티브 타일러(배우 리브 타일러의 아빠). 퀸의 프레디 머큐리. 너바나의 커트 코베인. 그린데이의 빌리 조 암스트롱. 비틀즈의 존 레넌.
모두 보컬이 얼굴마담인 밴드다. 이외에도 위에 열거하지 않은 수도 없이 많은 밴드의 상징은 보컬이 될 수밖에 없는데, 그 이유는 간단하다.
대다수의 많은 사람들은 자신이 따라 할 수 있는 가사와 멜로디를 부르는 보컬의 목소리를 기억하기 때문이다.
특별히 악기를 다루는 사람이 아닌 이상, 곡을 떠올릴 때 가사와 멜로디가 담긴 목소리를 떠올리지 기타 솔로나 베이스 슬래핑, 드럼 킥사운드를 떠올리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밴드를 떠올릴 때 가사와 멜로디를 부른 목소리와 그 목소리의 주인공인 보컬의 얼굴을 떠올리게 되는 거다. 그래서 노래방이라는 것이 있는 거고.
물론 밴드들 중에도 당연히 다른 파트가 상징이 되는 밴드들이 있다.
부활은 공식적인 첫 번째 보컬 이승철 이후에 지속적인 외부 영입으로 보컬을 바꿔 왔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리더인 김태원이 얼굴마담이 될 수밖에 없었다.
시나위 역시 마찬가지 이유로 신대철이 얼굴마담이 되었지.
다만, 없다는 것이 아니라 보편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특수한 경우가 아닌 이상 보컬은 밴드의 상징이 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는 거다.
‘보컬은 밴드의 대변인이 되어야 한다.’
그런데 우리 밴드의 보컬은 이진혁. 고등학교 1학년. 이제 갓 발성을 배우고 있으며 단 한 번도 무대에 올라 본 적 없는 새싹이다. 얘가 무대를 이끌어간다?
그건 경차로 슈퍼카에게 제로백을 이길 수 있다고 말하는 거나 마찬가지다.
그렇다고 기타리스트 유자나 키보디스트 수원이에게 마이크를 넘긴다? 그건 더 말도 안 된다. 얘네 너무 못생겼거든.
이런 이유로 대관은 제외. 특별하게 장시간 이끌어가는 무대 매너를 익히지 않아도 되는 레퍼토리로 가야 한다.
그렇다면 레퍼토리로 들어가기는 쉬운가 하면 그것도 아니다.
돈만 주면 빌릴 수 있는 대관보다, 오히려 레퍼토리가 더 어렵다. 오디션을 거쳐야 하기 때문.
“에휴…. 알았다. 일단 클럽들 오디션 일정부터 보고 기말고사 끝난 다음에 해 보자.”
“오오오!”
짰네, 짰어…. 티 난다, 이것들아.
“이번 주부터 일요일에는 교대역에 있는 합주실 예약하고 빡시게 간다. 그전까지 공연할 때 쓸 곡 3개 정해서 알려 주고.”
공연하고 싶다고 한 걸 후회하게 해 주마, 이놈들아!
음악이 싫은 음악천재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