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musical genius who hates music RAW novel - Chapter 90
089화
[대단한 연주들 잘 들었습니다. 좋은 곡들 뿐이라 정말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네요.]클래식 전공자들 사이에 화제가 된 TV 프로그램 바이브를 시청 중이었던, 영국 런던 왕립 음악원의 학생들은 곧이어 발표될 우승자가 누가 될 것인지에 관심을 가졌다.
이들은 삼삼오오 모여 각자의 집에서 혹은 비어 있는 강의실에서 바이브의 실황을 지켜보며 각자의 평을 늘어놓았다.
“난 솔직히 연주를 들었을 때 가장 좋았던 건 그 러시아 여자…. 이름이 뭐였더라?”
“엘레나? 좋았지. 그 감미로운 선율은 정말 최고였다고 생각해.”
“너희들 음악만 들었다고 거짓말하지 마라. 멜로디만 좋았던 게 아니라 외모도 미쳤다고!”
바이브의 본선 결과를 이야기하는 학생들의 이야기에서 연주자들의 빼어난 외모 이야기는 절대 빠질 수 없는 주제였다.
이들은 마치 TV에 나오는 가수나 배우 같은 연예인들을 보는 시선으로 본선 참가자들을 바라보았다.
“저 차이나 드레스 입은 여자는 어떻고. 저 육감적인 몸매 좀 보라고!”
“하지만 하이힐을 신고 무대에 올라가는 건 좀 이상해. 페달링을 하기가 너무 어렵잖아. 아마 지금쯤 발목이 엄청나게 아프지 않을까?”
이들은 대부분 외모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바빴지만, 일부 음악을 듣는 수준이 꽤 높았던 사람들 사이에서는 음악에 대한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음악이 원래 알고 있던 거랑 너무 다르지 않아? 나는 이쪽이 더 좋았었어. 원곡은 발레 공연에 맞춰서 만들어진 느낌이었다면 이쪽은 연주를 위해서 만들어진 느낌이랄까?”
“나는 그 전에 이정현 경의 음악을 편곡해서 연주한 곡이 더 좋았다고 생각해. 그 곡 참가자가 편곡한 게 아니고 이정현 경이 편곡한 거겠지?”
“생각을 해 봐. 그 둘을 데려간 사람이 이정현 경인데 둘 다 했겠지. 한쪽만 해 주면 형평성이 어긋나잖아.”
어느새 정현은 영국의 클래식을 이끌어갈 차기 아티스트들에게 있어서 ‘손을 대면 무엇이든 환상적으로 바뀌는’ 인물로 머릿속에 박혀있었다.
***
미국과 시차가 17시간이나 나는 서울의 상황도 그리 다르지는 않았다.
“방금 연주했던 한국 사람이 우승해도 10억을 주는 거야? 정말? 미국 사람이 아니라도?”
“그렇대도! 우승 상금만 100만 달러라고 했으니까 환율 생각하면 10억이 넘는 거지. 세금을 생각하면 10억이 안 될 거고. 지금 본선에서 연주하는 사람들 중에 미국 국적이 아닌 사람이 더 많을걸?”
곳곳에 여러 명이 모여 함께 바이브를 시청하는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이들의 화제는 대부분 10억에 달하는 상금에 대한 이야기.
“부럽다. 저 돈을 받아서 어디에 쓸까? 너라면 어떻게 할래?”
“나라면 일단 집 하나 사고 차 하나 사고….”
“이 멍청아, 서울 안에 아파트 가격이 10억 밑으로 떨어진 데가 얼마나 있냐? 그런데 차까지 산다고? 당연히 지방으로 가서 유유자적하게 살아야지.”
누가 상금을 받을지 아직 발표도 되지 않았는데, 상금을 받아서 어떻게 사용하는 것이 가장 현명한지에 대한 갑론을박이 여기저기에서 펼쳐졌다.
“그런데 이정현은 왜 갑자기 심사 위원에서 물러난 거야?”
“물러난 게 아니고 처음부터 그런 규칙이었다잖아. 예선으로 합격시킨 사람들하고 메이저 콩쿠르 우승자들을 붙이는 거. 컨셉이 아마추어 대 프로라고 하던데?”
“아마추어가 아무리 달라붙어 봐야 프로는 프로야. 천하의 이정현이 가르쳤다고 하더라도, 아마추어가 프로를 어떻게 이기겠어?”
영국보다 오히려 한국에서 평가가 박한 이정현이었지만, 그것은 상대적으로 클래식을 듣는 인구가 적기 때문이었다.
일본인 참가자가 모두 예선에서 탈락한 일본에서는 오히려 다음 시즌 대회에 누가 나갈 것이냐는 이야기가 더 많이 나왔지만, 그 누구도 이정현과 비교되고 싶어 하지 않았기 때문에 실제로 나가겠다 나서는 사람은 없었다.
그저 권위 없이 상금으로 눈을 현혹하는 대회라며 아마추어 대회라고 비난했지만, 본선 시드 진출자가 모두 메이저 콩쿠르 출신이라는 것에는 침묵했다.
2020년에 한국, 2000년 중국에서 한 명씩 우승자가 나왔던 쇼팽 콩쿠르에서, 아시아에서 클래식 인구가 가장 많다고 자랑하는 일본인 우승자는 단 한 번도 나온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큰 소란 없이 경연의 막바지에 이르고 있었다.
***
“지난 몇 달간 달려왔던 숨 가쁜 여정에 함께 동참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 드디어 본선 참가자들의 순위가 가려지는 날이 찾아왔습니다.”
방영 전에 사전 녹화를 한 시간까지 생각하면 벌써 석 달째. 일반적인 경연 프로그램이라면 하나의 시즌을 끝내고 다음 시즌으로 넘어갈 때가 되었다.
“처음에 심사 위원으로 참여해 주신 세 분에게 먼저 물어보도록 하죠. 어떻습니까? 새로운 제자들을 받으신 기분이?”
사회자는 무대의 아래편 의자에 앉아있는 나와 두 명의 거장에게 물었다.
처음에 대답한 것은 로베르토 디아즈.
“저야 뭐 매년 새로운 제자들을 받아들이고 있습니다만, 이렇게 공개적으로 누군가를 가르쳐 본 일이 없어서 노하우가 빠져나갈까 걱정이 되는 군요 허허.”
“네! 커티스 음악원의 총장이신 로베르토 디아즈 님의 답변 잘 들었고요. 다음은 마에스트로 뢰베에게 묻겠습니다. 즐거우셨습니까?”
“젊은이들과 함께하는 시간은 언제나 즐겁습니다. 배울 점이 없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지만, 사실 젊음에서 나오는 혈기에 배울 점도 상당하죠. 개인적으로는 굉장히 즐거운 시간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지난번에 말씀하셨던 것처럼 빈 필하모닉에 추천하고 싶은 분은 계실까요?”
페르디난트 뢰베는 질문을 받고 한참 동안 고민을 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다가 답변을 했다.
“아직은 조금 고민 중입니다. 이 친구들이 교향악단원이 아니라 독주자가 되고 싶어 할지도 모르니 조금은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지요.”
뢰베는 공개적으로 추천하는 것을 조금 꺼리는 듯했다. 상대적으로 대우가 좋은 독주자는 기본적으로 프리랜서. 커다란 교향악단과 협연을 해서 돈을 많이 벌 수 있다면, 악단원이 되는 것보다 독주자가 되는 편이 낫기 때문이다.
공개적인 자리에서 악단원이 되겠느냐 물었을 때, 그것을 거절하는 것도 추천받은 이와 뢰베 둘 다 얼굴을 붉힐 일이 될 수 있으니까.
“알겠습니다. 자,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이번에는 이정현 씨에게 물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어떠셨습니까? 멘토가 되는 것은 즐거우셨나요?”
“즐거웠습니다. 제가 생각해 본 적 없는 입장에 처하는 느낌이었기에 그런 것도 좋았구요. 다른 사람을 가르치는 것을 워낙 못하기 때문에, 다음에는 그냥 심사 위원만 하고 싶다는 생각이지만 말이죠.”
즐거웠느냐 아니냐라고 묻는다면 즐거웠다고 생각한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을 그렇게 즐기는 편은 아니지만, 그래도 정말 오랜만에 콩쿠르에 나가는 느낌으로 준비를 했으니까.
일주일이라는 시간은 하나의 공연을 준비하는 데에 정말 짧은 시간이었지만, 매 시간마다 발전해 나아가는 모습이 보람을 느끼게 해 주었다.
“하하하. 좋은 답변 감사드립니다. 자 그러면 모든 참가자들은 무대 위로 올라와 주세요!”
무대 뒤에 켜져 있던 커다란 전광판에 불이 켜지며 바이브의 상징인 음파 무늬가 나타났다.
준비하고 있던 참가자들이 모두 등장하는 와중에 다리를 살짝 절룩이는 창샤오위. 거봐 내가 저럴 줄 알았다니까. 그렇게 격렬한 페달링을 해야 하는 음악에 하이힐을 신고 오는 건 정말 선 넘었지.
본선에서 연주를 했던 열두 명의 참가자는 모두 제각기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등장했지만, 그 뒤에 떨림을 완전히 가릴 수는 없었다.
결국 순위를 가르는 것은 시청하고 있던 시청자들의 선택이기 때문.
“바로 오늘! 이 자리에서 네 명의 탈락자가 나옵니다!”
트레몰로의 고조되는 소리가 들려 오며 진행자는 말을 멈추고 모든 시선을 자신에게 집중되게 만들었다.
꿀꺽-
나도 모르게 그 모습에 침을 삼키며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을 때, 사회자는 마이크를 다시 입으로 가져갔다.
“60초 뒤에 공개됩니다!”
아…. 나까지 낚여 버렸네….
광고로 전환이 되었는지 사회자는 마이크를 내리고 목을 가다듬고 있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번 경연?”
로베르토가 그 잠깐의 쉬는 시간에 나를 바라보며 물었다.
“어떻게 생각하냐뇨?”
“누가 우승할 것 같냐는 말입니다.”
이번에 바로 우승자가 나오는 것도 아닌데 너무 설레발을 치시는 건 아닌지….
“우승은 이번이 아니라 다음 주에 결정되는 거잖아요.”
“그래도 누가 우승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사람이 있지 않겠습니까. 음악적인 감각이 뛰어난 이정현 씨에게는 느껴지지 않을까 싶어서 말이죠.”
나를 치켜세우며 나의 예상을 들으려 하는 로베르토의 말에 나는 아무런 생각 없이 있는 그대로를 말했다.
“솔직히 말해서 제가 그대로 끝까지 심사 위원을 했다면, 우승은 엘레나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멘토를 했기 때문이 아니라, 다크호스라고 생각하던 창샤오위가 자기가 판 함정에 빠졌으니까요.”
“역시…. 나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 경연의 심사는 우리가 아니라 시청자가 한다는 것이 약간은 불만스럽기도 합니다. 몇 번의 실수를 눈감아 줄 만큼 너그러운 심사 위원은 대체적으로 없으니까 말이죠.”
역시. 로베르토도 그 실수들을 보았구나. 나만 들었던 것은 아니라는 점에서 상당히 위안이 되었다. 대기실에 있던 사람들 중에 그 누구도 그 실수들을 알아채지 못했으니까.
전문성 점수를 주느냐 아니면 대중에게 보여지는 모습에 점수를 주느냐의 차이가 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자!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어이쿠…. 벌써 1분이 지났나?”
로베르토는 나를 향해 숙였던 상체를 다시 세워 무대를 바라보았다.
사회자 뒤에 서 있는 열두 명의 참가자가 각자 긴장되는 얼굴을 보인다.
“여러분의 마음을 울리는 바이브! 대망의 이번 주 1위는?!”
다시 한번 울려 퍼지는 트레몰로 소리가 스튜디오를 메워가며, 전광판의 뒤에는 여러 가지 글자들이 조합되었다가 흩어지는 화면이 나온다.
[1위! 쇼팽의 ‘안단테 스피아나토와 화려한 대 폴로네이즈’를 연주한 중국의 창샤오위!]팡파레가 울려 퍼지며 언제 준비했는지 무대 아래에서 몇 명이 올라와 꽃다발을 안겨 주었다.
“축하드립니다! 이번 주 1위는 중국에서 오신 창샤오위 님이 차지하셨습니다! 그러면 계속해서 네 명의 탈락자를 발표하도록 하겠습니다!”
이렇게 될 줄 알기는 했지만 조금은 이상하다.
9위부터 12위까지 네 명이 탈락을 하는 것은 미리 정해졌던 것이니까 그럴 수 있다고 쳐도, 내가 생각했던 것과는 다른 광경이 펼쳐졌다.
아무리 생각해도 1위가 엘레나가 아닌 것은 이해할 수 있지만, 창샤오위가 1위라는 것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잠시만요! 결과가 조금 이상한 것 같은데요?”
나는 무대 위에서 꽃다발을 들고 의기양양한 표정을 짓고 있는 창샤오위를 바라보며 큰 소리를 내어 이의를 제기했다.
음악이 싫은 음악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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