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musical genius who hates music RAW novel - Chapter 92
091화
“…경연의 최종 결선은 커다란 무대에서 치러질 거예요. 그리고 거기 현장에서 직접 투표하는 방식을 사용할 겁니다. 지난주부터 벌써 매표는 시작되었어요.”
“혹시 중국의 창샤오위 측에서 돈이라도 받았었나요? 그것만이라도 말해 주세요. 저는 도저히 납득이 되질 않아서 그래요. 그런 연주로 1위를 했다는 게.”
“…. 제가 개인적으로 돈을 받은 것이 아니고, 프로그램 제작 지원이 중국 측에서 나왔어요…. 투자를 받은 거죠.”
“…그래서 1위를 주기로 미리 약속했던 건가요?”
이제는 슬슬 기분이 나빠지려고 했다. 솔직히 말을 해서 그냥 실력으로 1위가 된 것이었다면 납득할 수도 있었는데, 절대로 그럴 만한 연주가 아니었으니까.
“맹세컨대 저희가 1위를 준 것이 아니에요. 정말 인터넷 투표 결과가 그렇게 나온 거예요…. 이것만은 믿어주세요. 정말이에요.”
“결과는 왜 공개하질 않나요?”
“상부에서 공개하지 말라는 명령이 내려왔습니다. 정말 미안해요. 이건 제가 공개할 수 있는 정보가 아니에요. 최종 결선에는 현장에 방문한 사람만 투표할 수 있도록 할게요.”
“알겠습니다. 일단은 그 정도로 해두죠. 인터넷 공개 투표라고 해서 결과도 바로 보여질 거라 생각했었는데, 결과를 보여 주질 않아서 여전히 무슨 일인지 궁금하기는 하지만.”
“…오늘은 여기까지만 해 주세요. 다시 한번 부탁드립니다. 미안해요, 정말….”
나는 캐서린의 사과를 받고 그제야 따지는 것을 멈추었다.
제작진은 객석에 앉은 관객들에게는 실제로는 있지도 않았던 집계 프로그램의 오류라고 결과를 발표했다.
오류로 숫자가 보이지 않고 순위만 보이게 되었다는 핑계를 대는 제작진이 조금은 불쌍하게 보였지만, 그건 그들의 잘못이지 내 잘못이 아니다.
간간이 몇몇 사람들이 말이 안 되는 핑계라며 구체적인 정보들을 요구했지만, 제작진은 그저 미안하다는 말만 반복할 뿐이었다.
그렇게 본선의 첫 번째 경연이 종료되고, 나는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더러운 방법으로 1위를 한 창샤오위가 나를 바라보던 눈빛이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최종 결선에서 이기는 것뿐이니까.
***
오랜만에 산타모니카의 집 뒷마당에서 선베드에 누워 휴대폰으로 인터넷 기사를 검색하고 있었는데, 작년과 올해 시청자 수 1위 프로그램으로 바이브가 뽑혔다는 기사가 보였다.
“와…. 4천만 명이라니. 한국 전체 인구랑 얼마 차이도 안 나잖아?”
“엄청나게 보네…. 이러다가 시에스타가 아니라 리가 스타 되는 거 아니야?”
크리스도 김칫국을 너무 많이 마시는 것 같다. 어떻게 파릇파릇한 스무 살짜리 애들하고 서른 살 먹은 아저씨를 비교하는지….
시에스타는 안젤리나가 만든 곡으로 두 번째 싱글을 발매했다. 그래서 다시 한번 이곳저곳 스케줄에 맞춰 돌아다니고 있어, 정말 얼굴 한번 볼 수 없이 너무나 바빴다.
정규 앨범을 발매한 에릭의 경우에도 마찬가지. 아마도 올여름이 오기 전에 미국과 영국에서 공연을 가질 것 같은데, 아직 확실한 일정이 잡히지는 않았다.
한 회사의 식구라고 할 수 있지만 얼굴을 못 본 지 몇 달이 지나버렸다. 간간이 전화를 하더라도, 워낙 귀찮아서 휴대폰도 잘 두고 다니는 나에게 전화를 걸지 않고 크리스에게 전화를 건다.
그렇지만 내게 돌아오는 혜택은 하나도 없다. 차라리 프로그램을 계약할 때, 시청자 수에 관련된 계약을 하는 건데 그냥 일반적인 출연료로 계약해서 전혀 이득 되는 것이 없잖아.
“시청자 수가 이렇게 올라갔는데 출연료는 그대로잖아. 결국 방송국만 이득 보는 거지 뭐. 시청자 수가 올라가면 광고료가 올라가니까.”
“그래도 이번 프로그램 끝나면 리의 몸값이 올라가는 거잖아? 그러면 되는 거 아니야? 다른 프로그램 나가면 더 높은 출연료 받을 거잖아.”
“난 말야. 지금 이렇게 선베드에 누워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게 가장 행복한 사람이야. 지금 하는 것도 정신없는데, 여기에서 뭘 더하냐?”
휴대폰을 옆에 있는 테이블에 내려두고 두 손을 깍지 껴서 머리 뒤를 받치며 크리스에게 말했다.
사실은 지금은 하루에 한두 시간씩 회사에 가서 멘토링을 하는 것 말고는 하는 것이 없다.
하지만 지금 하는 프로그램 다음에 다른 것에 나가라고 미리 정해 두고 싶을 정도로 방송 욕심이 나는 사람도 아니다.
나는 여전히 평범하게 살고 싶은 사람일 뿐이다. 단지, 그 평범함이라는 것이 조금은 내가 어렸을 적에 생각하던 평범함과 거리가 좀 있을 뿐이지만.
“내가 5~6년 동안 리를 봐오면서 알게 된 게 있는데 말이야….”
“무슨 말을 하려고 말꼬리를 늘려?”
“이해하기가 너무 어려운 사람 같아.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어.”
“원래 사람이 사람을 이해하는 게 가장 어려운 일이야. 쓸데없는 생각하지 마. 나도 나를 잘 모르겠으니까.”
테스 형이 그러더라고. 너 자신을 알라.
자기 자신을 아는 게 엄청나게 어려운 일이니까 그런 말을 하지 않았을까?
당장 오늘 저녁에 무얼 먹을지도 고민하는데, 남을 이해할 시간이 어디 있어.
김시욱과 엘레나는 곧 있을 결승 경연을 위해 각자 연습 중이었기에, 나는 따로 할 일이 없어서 멘토링이 끝나면 바로 집으로 돌아오고 있었다.
어차피 회사에 남아서 할 일이라곤 자전거 타는 일밖에 없으니.
역시 이번에도 선곡은 그들이 알아서 했고, 나의 경우에는 편곡에 손을 댔다. 솔직히 말을 해서 선곡만 하게 되면 어떤 의도로 곡을 선택했는지 알 수 있기에, 편곡보다는 선곡이 더 어려운 것이 아닌가 싶었다.
매번 햄버거 가게에서 치즈 버거를 먹을지 아니면 베이컨 버거를 먹을지 고민하는 나에게 선곡을 맡겼더라면, 아직도 끝나지 않았을 것 같은 굉장히 어려운 일이니까.
20도가 넘어가는 LA 날씨는 한겨울인 1월에도 충분히 따듯하게 느껴졌기에, 이렇게 한가롭게 여유를 부리는 것도 가끔은 좋은 것 같았다.
“아…. 그러고 보니까. 여기에 온 게 처음에 휴가 때문에 온 거였잖아? 그런데 휴가는 즐기지도 못했네, 결국. 힙합 차트 전쟁도 하고, 그다음에는 여기에도 회사를 차려 버리는 바람에 말이야….”
“이 집을 사면서 그렇게 된 거 아니었어? 에릭 음반으로 벌었던 돈 전부 털어서 산 거였잖아.”
그랬었다. 에릭의 싱글 두 개로 벌었던 돈을 거의 모조리 여기에 털어 넣었었다. 그 이후로 벌써 시간이 한참 지나 버렸네.
그때는 정말 꿈에도 그릴 것 같은 그림 같은 집을 샀다고 좋아라 했었는데, 지금은 이 집에서 지내는 것도 자연스러웠다.
집을 사고 돈이 부족해서 중고로 낡은 차를 사기는 했지만, 그 이후에 돈을 꽤 많이 벌었다고 생각하는데도 다른 차를 살 생각은 해 보질 않았다. 남들은 돈을 벌면 일단 좋은 차를 사야 한다고 하던데….
그러고 보니 나는 차보다 건물을 좋아하는 건가?
테스 형 말대로 나 역시 나 자신에 대해 조금씩 알아가는 중인가 보다.
***
최종 결선 장소로 선택된 곳은 작년에 그래미 시상식의 수상을 위해 방문했던 스테이플스 센터. LA 레이커스와 클리퍼스의 홈구장인 농구장을 경연을 위한 무대로 만들었다.
총 수용 인원 2만 명. 클래식 전용 콘서트홀은 대부분 3천석 미만이기 때문에, 이렇게 큰 곳에서 클래식 연주를 하는 것을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지난번 뉴욕 센트럴 파크에서 힙합 공연을 할 때 모였었던 수만 명의 관객들은 집계가 되질 않아 몇 명이 왔는지는 알 수가 없지만 수만 명이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었다.
그 당시에는 야외 공연 특성상 수만 명이 모여도 그렇게 웅장하다는 생각이 들질 않았는데, 지금 이곳에는 농구 코트가 위치하는 곳 한가운데에 무대를 만들어 놓았다.
객석에만 2만 명. 그리고 원래 농구장이었을 공간에 의자를 놓아 그것보다 많은 사람이 볼 수 있게 만들어 놓았다.
벽 같은 것 하나도 없는 수많은 인파에 둘러싸일 커다란 무대.
이런 곳에서 마술을 공연하면 트릭 같은 걸 쉽게 알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조금 들었다. 아주 작은 틈도 보이지 않는 입체적인 무대였다.
무대의 정중앙에는 사방으로 보이게 만들어 놓은 커다란 모니터가 설치되어, 멀리서 보아도 연주하는 사람이 커다랗게 보일 수 있도록 만들어 두었다.
“와…. 정말 엄청나네….”
“인기 가수의 콘서트장 같다….”
함께 무대를 보러 들어온 크리스의 감탄사가 들려왔다.
“그런 콘서트장에 가 본 적은 있고?”
“…아니….”
“그러면서 무슨 콘서트장 이야기를 하고 있어.”
“TV에서 보면 엄청나게 사람이 많이 모인 장소에서 공연하고 그러잖아…. 그런 장면이 떠올라서….”
아직 관객들이 입장하지 않아 분위기는 크게 고조되지 않았지만, 내가 살아오며 보았던 클래식 공연 중에서는 가장 큰 무대 앞에 서자 조금은 압도되는 느낌이 들었다.
내가 섰던 가장 큰 콘서트홀은 3~4천 명이 들어갈 수 있는 수준이었으니까.
“저기….”
그렇게 시골에서 막 도시로 올라온 촌놈처럼 무대의 여기저기를 둘러보고 있을 때, 뒤에서 누군가가 말을 걸었다.
뒤를 돌아보자 나를 독기 품은 눈으로 무대에서 쏘아보았던 그 여자가 서 있었다. 창샤오위.
“무슨 일이시죠?”
“왜 나를 그렇게 싫어해요?”
지난번과는 다르게 몸에 꽉 끼는 그런 옷도 아니었고, 하이힐이 아닌 보통의 에나멜 플랫 슈즈를 신은 창샤오위.
아마 지난번의 실수가 의상에서 나왔다고 생각했던 모양이었다.
“뭔가 잘못 생각하고 있나 본데, 나는 그쪽을 싫어하는 게 아니에요.”
“……?”
“저 아세요? 나는 그쪽에 대해 전혀 모르겠는데?”
싫어하려고 해도, 아는 게 있어야 싫어할 것 아냐.
“…쇼팽 콩쿠르….”
“네?”
“제가 연주했던 곡은 쇼팽 콩쿠르에서 연주할 곡이었어요! 나보고 쇼팽 콩쿠르에서 우승하고 오면 상대해 준다고 했잖아요!”
“우승 못 하셨잖아요. 아니 출전 자체를 못 했죠. 아직 2년이나 남았으니까. 우승하고 오세요. 그러면 어떤 말이라도 대답해 드릴 테니까.”
내가 생각할 때 거기에서 우승할 실력은 아닐 거라 생각한다. 정말로 난다 긴다 하는 연주가들이 모두 모인 곳이 바로 쇼팽 콩쿠르니까.
“두고 봐…! 내가 꼭….”
창샤오위의 얼굴은 붉어지고 눈에는 눈물이 고여가는 것이 보였다.
대체 어떤 생각을 갖고 나에게 말을 걸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왜 나에게 피해망상을 갖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거지?
그런 대사는 하는 거 아니야. 전대물에서 악당들이 퇴장할 때 하는 대사 같잖아.
얼마나 나를 노려보고 있었던 건지는 모르겠지만, 리허설을 시작하겠다고 하는 조연출의 말에 그녀는 자신의 대기실로 향했다.
“우리도 돌아가자. 진짜 이상한 애야. 내가 자기한테 뭐 잘못한 거라도 있나?”
“글쎄…. 저 성격을 봤을 때, 리가 조금이라도 잘못했다면 사과하라고 소리를 칠 것 같은데?”
중국에서 특정 세대의 사람들이 1가구 1자녀 정책 때문에 왕자나 공주처럼 자라, 남들의 시선은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적이 있다. 그런데 쟤는 그 이후에 태어났잖아.
대체 뭐가 저렇게 삐뚤어지게 만든 거야?
음악이 싫은 음악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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