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musical genius who hates music RAW novel - Chapter 94
093화
바이브.
지금까지 존재한 적이 없었던 클래식 경연 프로그램을 표방하며 새로 만들어진 울프의 TV 예능.
이 프로그램이 만들어지게 된 계기는 대중적으로 인기를 끌고 있던 이정현이라는 존재가 그 중심이 되었다.
기본적으로 클래식을 표방하며 사람들에게 클래식이 대중적으로 다가가기 위한 방법이었던 것이 바로 이정현의 포섭.
R & B나 힙합 그리고 아이돌이 부르는 일반 팝 음악까지 모두 섭렵하기 이전에는 클래식의 구세주라 불리던 이정현을 포섭함으로써, 대중음악을 좋아하는 사람과 클래식을 좋아하는 사람 모두 잡겠다는 계획이었고 그 계획은 보기 좋게 성공했다.
그렇게 이정현의 영향력은 클래식계뿐만이 아니라 대중음악계에서도 상당하여, 한창 인기가 떨어지던 아메리칸 아이돌을 대체할 만한 프로그램으로 거론조차 되지 않던 클래식 경연 프로그램 바이브를 아메리칸 아이돌 이상으로 흥행시키는 쾌거를 이뤘다.
그렇게 그 화려함의 마지막을 장식할 최종 결선 무대에, 참가자가 아님에도 정현은 무대에 올랐다.
[앞서 연주한 두 명의 피아니스트, 어떻게 보셨습니까? 평을 해 주신다면?]지미 카멜의 말에 정현은 마이크를 들어 답했다.
[제 입에서 나오는 말에 따라 여기에 모이신 분들의 표가 갈릴 수도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저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겠습니다. 모든 승부는 정당하게 이루어져야 하니까요.]엘레나의 멘토로서 활동하던 정현이었기에 사람들은 그가 엘레나에게 더 높은 점수를 주는 평을 할 것이라 예상했지만, 정현은 그 예상을 그대로 깨 버렸다.
[그렇죠. 승부는 정정당당하게 이루어져야 하니까요. 그렇다면 평을 하신다거나 점수를 매기는 것 대신 느끼신 점만이라도 이야기해 주실 수 있을까요?] [그 정도라면 문제없겠죠. 모든 분이 느끼셨을 겁니다. 엘레나의 연주에서는 감성, 샤오위의 연주에서는 기교. 이 두 사람이 가진 재능을 한 명이 가졌다면 아마 최고의 피아니스트가 되지 않을까요?]“맞아! 그 두 가지를 모두 가진다면 최고일 거야!”
“신은 공평하다고! 모두 가질 수는 없잖아?”
정현이 지미에게서 고개를 돌려 관중석을 둘러보며 마이크에 말하자, 관중들은 각자의 목소리로 두 사람의 연주 모두 좋았다고 이야기했다.
[이제 피아니스트를 제외한 여섯 명의 연주자가 남아 있습니다. 관전 포인트가 있다면 알려 주실 수 있을까요?] [이 프로그램을 만들자고 캐서린 PD가 기획했던 이유가 있습니다. 혹시 지미 씨는 알고 계시는가요?]정현은 지미 카멜의 말에 다시 질문으로 답했다. 양쪽에서 한 질문 모두 어려운 질문은 아니었으나, 정현이 대답을 하지 않은 이유는 다른 것이 아니었다. 질문의 답에 그 해답이 있기 때문이었다.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이번에 섭외되어서 막 달려온 참이거든요. 하하. 제가 바이브를 즐겨 보고 있어서 와이프도 나가 보라고 추천했고요.] [그러셨군요. 그녀가 이 프로그램을 기획한 이유는 별것 아닙니다. 수많은 사람이 시도했었던 클래식의 대중화를 위한 거죠. 그것을 위해 우리는 오늘 정장을 입지 않았습니다.]무대 위에 오르는 모든 참가자는 캐주얼에 가까운 의상을 입었다. 그 누구도 턱시도를 입지 않았고, 드레스를 입지 않았다.
정현은 주변을 한번 둘러보고 다시 한번 말을 이었다.
[팝 음악을 듣는 많은 사람은 클래식은 어렵다고 말합니다. 틀에 박혀 있다고도 하죠. 그리고 반대로 클래식을 주로 듣는 사람들은 대중음악에 품격이 없다고 말하기도 합니다.]기존에 지미가 가진 이정현에 대한 이미지는 일반적으로는 한쪽에 치우쳐 나타나는 음악 재능을 모두 가진 대단한 사람이라는 생각뿐이었다.
지금까지 양쪽 모두를 섭렵한 사람이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이렇게 양쪽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성과를 이루었던 사람은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뜬금없이 음악계의 대칭을 이루는 양쪽 진영을 모두 까버리는 정현의 말에 지미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하지만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클래식도 대중가요도 똑같은 음악이라는 것을 말이죠. 관전 포인트요? 즐기세요. 음악에 점수를 주기 위해 펜을 준비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냥 즐기면 되는 겁니다. 투표는 마음이 시키는 대로 하세요.]““예에!“”
사람들이 말 한마디 할 수 없고 물 한 모금 마실 수도 없는 분위기였던 기존의 클래식 공연장과 지금 이곳의 분위기는 완전히 다른 느낌이었다.
서로 대화하며 즐기고 감탄사를 내뱉는다.
이곳의 분위기는 클래식 공연장이 아닌 가수의 콘서트 같은 느낌이었다.
분명 TV에서 진행하는 프로그램이라는 특성 때문일 것으로 많은 사람이 생각했지만, 제작진 측에서는 이런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했다.
하지만 그들이 준비한 것과는 달리 이정현의 말 한마디에 사람들은 열광하며 축제를 시작하려 하고 있었다.
커다란 모니터에 이정현의 미소가 비쳤다.
***
나는 다음 참가자 김시욱의 차례가 되어 무대 아래로 내려왔다.
“아니 갑자기 무슨 음악계의 화합이야 얼어 죽을. 어차피 똑같은 음악인데 그걸 나누는 게 이상한 것 아닌가?”
이 프로그램의 PD인 캐서린은 이상한 쪽으로 야망이 있었다.
TV 연출자가 양쪽으로 갈려 있는 음악계를 하나로 만들고 싶다고 이야기하는 것 자체가 이상했다.
하지만 정장을 입지 않고 공연을 하는 것이 더 좋다는 것에는 동의했다.
아무래도 정장을 입으면 움직임이 제한되는 느낌이라 연주할 때 불편하다고 하는 것은 상식 같은 것이었으니까.
그리고 지금은 격식을 차리는 문화라고 인식되어 있는 클래식도, 중세 시대에는 지금 우리가 보고 듣는 대중문화와 같은 위치였다는 것이 역사적 사실.
굳이 두 가지로 분리되어 잘 발전하고 있는 것을 하나로 합칠 필요가 있나? 나는 늘 그럴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으니까.
무대 아래로 내려와 한참을 구시렁거리고 있자, 내가 조금 전까지 자리하고 있던 곳에 김시욱이 올라왔다.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김시욱은 예선전 때의 그 어리바리한 모습은 사라지고, 두 번의 무대로 자신감이 생긴 것인지 긴장을 조금도 하지 않는 모습이었다.
이번에는 분위기가 밝은 곡을 연주하는 것이 대중에게 점수 따기 좋을 거라고 했던 나의 조언을 받아들여, 밝은 곡을 연주하기로 해서 선곡했다.
[비발디 – 사계 ‘봄’ (Antonio Lucio Vivaldi – Le Quattro stagioni, Opus 8, No. 1)]시욱이 연주할 곡 제목이 머리 위의 전광판에 떠올랐다.
세계에서 가장 많은 사람이 알고 있을 곡들의 리스트가 있다면, 아마도 그 리스트의 가장 위쪽에 위치할 곡.
베토벤의 운명과 더불어 가장 많이 사랑받은 곡이기도 했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이 곡은 현악 5중주 이상의 인원이 모여야 제대로 된 음악을 들려 준다는 점.
보통 발표회나 독주회의 경우에는 반주자와 함께 연주하는 것이 기본이지만, 프로그램의 특성상 반주자와 함께 오를 수가 없었다.
피아노의 경우에는 왼손이 반주하고 오른손이 멜로디를 연주하는 것이 동시에 이루어지지만, 바이올린과 같은 현악기는 기본적으로 한 번에 하나의 음밖에 낼 수가 없다.
그렇기에 풍부한 음량 대신 음악이 가진 주 멜로디를 꺼내는 방향으로 편곡을 했다.
마치 바흐의 무반주 첼로 곡처럼 하나의 현악기로도 연주할 수 있는 곡으로 만들기 위해 더는 뺄 것이 없을 정도로 음표 다이어트를 했다.
그렇게 빈약한 바이올린 소리 하나만으로 제대로 된 곡을 만들기 위한 노력이 빛을 발하는 순간.
새들이 합창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새싹 같은 밝은 선율이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른다.
아직은 겨울에서 벗어난 지 얼마 되질 않아 차가운 바람이 불어오는 것 같은 봄 분위기를 만들어 내는 그의 바이올린은 어떻게 보면 이제는 트레이드 마크가 되어 버렸다.
특유의 차가운 소리를 품은 소리에 매력을 느끼는 사람들이 조금씩 생겨가고 있었다.
김시욱은 차갑고 날카로운 소리를 품은 바이올린의 현에 최대한 부드러운 손길로 활을 그으며, 봄의 따뜻한 소리를 만들기 위해 노력 중이었다.
파가니니의 카프리스처럼 초절기교가 있어야 하는 곡은 아니지만, 하이라이트 부근에서 조금 빨라지는 부분에서 여전히 미숙함이 느껴진다.
음 이탈도 여러 번. 힘 조절 미숙으로 음량이 일정하지 않음이 느껴지는 것을 보면
아마도 연습 시간이 너무 부족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도 김시욱은 자신이 가진 자신감만으로 그 짧았던 연습 기간에, 이만큼 연주할 수 있을 정도로 월등히 성장했다.
등 뒤에 앉은 관객들이 김시욱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이 작게 들려왔다.
대부분은 좋은 이야기였지만 간간이 실수를 알아챈 사람들이 그것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5분이라는 연주의 제한 시간이 있었기에 10분의 연주 시간을 갖는 봄의 1악장만 연주해야 했지만, 그것은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왜냐하면 사계의 봄에서 가장 유명한 파트가 바로 1악장이었기 때문이었다.
두 개의 음을 반복하며 하이라이트 파트로 올라가는 소리만큼이나 김시욱의 왼손가락이 바빠진다.
그렇게 빠른 선율이 끝나고 누구나 다 광고에서 한 번씩은 들어 보았을 도입부의 선율이 반음 플랫되어 흘러나왔다.
봄 1악장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특징적인 멜로디.
원곡보다 조금은 쌀쌀한 봄의 분위기를 품고 있던 김시욱의 연주가 끝났다.
처음에 보였던 자신감이 부족하던 모습과는 다르게 온전히 쏟아낸 김시욱. 무대 위에서 관객들의 박수 소리를 즐기는 그의 표정은 내가 보았던 그 어느 때보다 밝게 웃고 있었다.
“그러게 내가 일주일만으로는 상금을 타기 어려울 거라고 했는데….”
처음 마주하게 되는 곡을 연습하는 시간은 큰 교향악단의 단원이라고 하더라도 보통 한 달은 갖는데, 오히려 시작이 조금 늦었던 김시욱의 경우 일주일이라는 시간이 남들보다 더 부족했을 것이다.
본인이 우승에는 욕심부리지 않겠다고 하니 어쩔 수 없었지만….
***
참가자 개인이 보내온 동영상으로 평가했던 1차 예선까지 4개월이라는 시간 동안 진행된 바이브의 마지막 연주가 종료되었다.
역시나 두각을 나타낸 연주자는 엘레나와 창샤오위. 다른 사람의 연주들은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로 수준이 다른 연주를 들려 주었다.
지미 카멜은 연출진이 개표 기계를 사용해 순위를 집계하는 동안 무대에 올라와 사람들의 분위기를 이끌었다.
[첫 참가자의 수가 무려 10만 명에 달했던 지구상 최고의 클래식 이벤트, 바이브. 함께했던 시간 동안 즐거우셨습니까?]““네에!“”
능숙하게 관중석의 분위기를 이끌어가는 지미.
그때 개표기에서 집계가 완료되며 제작진이 분주해지기 시작했다. 막내 작가는 집계된 결과를 재빠르게 인쇄하여 큐 카드에 붙여 캐서린에게 건넸다.
그녀는 큐 카드를 받아 손에 쥐고 만지작거리며 이정현이 앉아 있는 자리를 바라보았다.
그 어떤 것 하나 걱정하지 않는 태평한 표정의 이정현이 건너편에 보였다.
“지미. 발표자는 이정현 씨가 할 수 있게 무대를 이끌어 주세요.”
지미 카멜의 귀에 연결된 이어폰에 캐서린이 전달한 말이 들려 왔다.
음악이 싫은 음악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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